김철호 · ISBN: 979-11-5866-720-7
이 책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 개념인 선과 악을 주자학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성리학의 도덕추론과 선악론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은 왜 선보다 강한가, 악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악에도 존재 이유가 있는가와 같은 실존적 질문 뒤에 감춰진 우리 시대의 절망과 탄식을 읽어내고, 오늘날의 선악 문제에 주자학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인지, 그 제안은 유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논증을 펼친다.
□ 주자학의 모든 개념을 연결하는 구심점은 선과 악이다 유학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답하지, 선(善)이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기존 연구를 보아도 이기론, 심성론, 수양론을 주제로 삼을 뿐 선악을 별도의 연구 주제로 다룬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저작에 선악에 대한 언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그의 글 곳곳에서 선과 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기(理氣)·음양·성(性)·태극·인의예지 같은 유학의 핵심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주자학의 중심부에 있는 이기, 심성, 격물(格物), 성의(誠意) 등의 개념은 각기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만 선악이 빠지면 구심점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테면 리(理)는 절대선을 정립하기 위해 도입되었고, 기(氣)는 뿌리 깊은 악의 원인을 해명하기 위해 동원되었으며, 격물이나 성의는 뿌리 깊은 악을 극복하기 위해 재해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도·태극·음양 같은 다른 개념들도 마찬가지이며, 주자학의 모든 개념을 연결하는 공통의 문제의식이 있다면 바로 선과 악의 문제라고 말한다.
□ 현실에서, 악은 늘 선보다 강하다 주희의 스승은 31세의 주희에 대해 “선을 즐거워하고 의로움을 좋아하는 것이 그와 견줄 만한 인물이 드물다”고 평한 바 있다. 주희의 이러한 선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악이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 주희가 살았던 12세기 남송은 이전 어느 시기보다 생산력이 증대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권세를 가진 자들의 탐욕과 착취로 인해 백성들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웠던 시대다. 주희가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던, 선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당시의 세태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 세계가 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탄식은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라는 칸트의 말처럼, 악하기는 쉽지만 선하기는 어려우며, 현실에서 악은 늘 선보다 강하다. 그런데도 주자학은 극구 선이 인간의 본질이고, 악은 선이 아닌 무엇일 뿐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주자학은, 선하면서 악한 인간의 이중성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악을 제거하고 선을 실현할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는 형이상학적 타당성과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이 모두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저자는 공자로부터 맹자, 순자, 한당유학, 북송유학을 거쳐 주희에 이르는 선악 개념의 변화와 특징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 선으로부터 악을 정의해야 하는 이유 저자는 주희를 중심으로 유학의 선악 개념을 소개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선악론과의 비교를 통해 그 보편성을 확장한다. 무엇보다도 주자학의 선악 개념을 우리 사회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유 문법으로 다듬어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그 핵심은 악의 실체를 부정하고 선으로부터 악을 정의하는 방향성에 있다. 오늘날 대중 매체에 넘쳐나는 타자를 악마화하고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손쉽게 선한 사람이 되거나, 명시적인 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적 태도가 악으로부터 선을 정의하는 역방향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주자학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만 동시에 악을 유발하는 기질을 지녔다고 본다. 따라서 악은 제거하고, 악인은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기원이 분명치 않은 격언은 인류가 오랫동안 악(죄)과 악인(죄인)을 구별해서 다루어왔음을 보여주며, 동서고금의 현인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한 결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악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악을 알아차리고 선을 깨닫는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주자어류』에는 주희가 제자에게 ‘물의 비유’가 본성의 선과 악을 설명하는 데 미흡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비유라고 강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이 탁해지듯 본성은 악으로 향하기 마련이지만 처음부터 맑지 않았던 것은 아니며, 비록 탁하더라도 맑게 할 수 있는 것은 물과 사람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의 시작점에 깨끗한 물이 있었듯이 인간의 본성에도 선한 본성만 있다. 그렇기에 선에 무지하거나 악을 행하는 것의 책임을 인간에게 물어야 하고, 지독한 악인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