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독2 積讀
명사
《표준국어대사전》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결정판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평가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이다. 이 책은 난해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흐름 속에서 꼼꼼히 재구성해낸 전기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흥미진진한 전기로서뿐만 아니라 철학 연구서로서도 손색이 없어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추천되는 책으로 꼽힌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그의 삶을 잘 알지 못한 채 철학만을 연구하거나, 그의 흥미로운 생애에 매력은 느끼지만 난해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둘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논문 이후 8년, 그사이 일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2010년대 중반,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혐오의 유희로 온라인을 물들인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사이버 공론장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드립’이란 말로 유머를 가장한 채 온라인에 퍼져나간 혐오의 메시지들은 일베가 생긴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실 정치인들의 목소리로 발화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남’에 대한 문제적 호명과 함께 한국 사회의 ‘일베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도대체 왜, ‘일베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가?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는 ‘일베의 그림자’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베는 정말 ‘낡은’ 이야기인가? 2014년 일베가 몰고 온 사회적 충격이 가장 크던 시점에 일베를 연구한 논문으로 화제를 모았던 저자가 그로부터 8년 이후, 혐오 선동의 정치가 부상한 이곳에서 다시 일베를 이야기한다.
일베라는 현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인가? 저자는 이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사이버 유머의 기원과 함께 딴지일보와 디시인사이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베의 계보를 훑는다. 일베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님을 이해할 때, 다시 말해 일베에서 벌어진 지독한 혐오의 놀이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일베 또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자 사이버공간에서 일종의 자본으로 기능하는 ‘웃음’을 논하고, 한국형 밈의 기원으로서 딴지일보식 패러디를 설명하며, 그것을 심화ㆍ발전시킨 곳으로 디시인사이드를 서술한다. 일베가 탄생한 직접적인 원인이 디시의 게시물 삭제 조치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사이 딴지-디시-일베로 이어지는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는 일베가 어떻게 사이버문화의 ‘전통’을 나름으로 ‘발전’시킨 커뮤니티인지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김기태 · 하어영수련
성매매, 방임과 묵인 속의 거대한 불법
우연으로 입수된 보고서 하나로 이루어진 2011년 1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기사화 되었던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가 보강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4,699만 건의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여성 종사자 수는 14만 2,248명으로 추산됐다. 한 해 ‘화대’로 거둬들인 돈은 6조 6,258억 원이었다. 이조차 추정치일 뿐, 조사 기관에 따라 24조 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2년)까지 바라보기도 한다. 평생 성매매를 해 봤다고 답한 남성은 절반(49%)에 육박하는 충격적인 자료들을 담았다.
1장에는 성매매 업소의 거대한 불법과 먹이사슬의 역사와 현재를 담았다. 위안소 운영에서 기생 관광까지 성매매를 겉으로 불법화하면서 군인들의 사기 진작과 외화 벌이를 위해 포주로 나선 국가에 대해 적발하고 있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성매매라는 ‘정상적인’ 거래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기 위해 당사자들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의 불법 성매수 산업을 심층적으로 조사한 한겨레21(주간잡지)의 "불온한 호황"이라는 시리즈 기사가 있었음. 그것만 봐도 한국에서 불법 성매수를 근절하려면 강남 땅을 박살내야 하는데 그러자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함. 그저 거기 건물이나 사길 희망하고 있음.
『차별하는 데이터: 상관관계, 이웃, 새로운 인식의 정치』는 뉴미디어와 네트워크 기술, 기계학습 등을 둘러싼 기술적·인식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북미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를 주도해 온 웬디 희경 전의 국내 첫 번역서다. 상관관계, 동종선호, 진정성, 인식 등 21세기 빅 데이터와 소셜 네트워크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들이 어디에서 비롯했으며, 어디로 이끄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기술과 문화에 깊이 관여할 수 있음을 촉구하는, 연구서이자 지침서다.
해석틀을 완전히 새로 정립해주는 책이었음 사회학 수학 통계학 비판적 인종연구 인류학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으로 네트워크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작동 방식을 검토하기 그러면서도 온라인의 lived experience 와 찰싹 붙어 있음 너무나흥미진진 빅잼보장
‘그러고 보니 왜 그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해볼 생각을 못 했을까?’ 과학 부정론을 연구하는 괴짜 철학자 평평한 지구론자, 기후변화 부정론자, 백신 거부자와의 대화에 도전하다!
탈진실의 시대에 과학 부정론자들과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20년 가까이 연구해온 철학자는 어느 날 문득 다음과 같은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러고 보니 정작 나는 왜 그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해볼 생각을 못 했을까?’ 그는 지난하지만 뜻깊은 모험을 거치며 과학의 진실과 가치를 공유하는 방법과 도구를 실험해보고, 과학 부정론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몸소 깨닫는다. 바로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자세로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만이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인류와 지구를 구해줄 유일한 해결책이니 말이다.
왜 서로 뻔한 구라를 옮기는지에 대해
한국을 통찰한다. 한국인을 관통한다
이 책은 현대 한국 사회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리’와 ‘기’로 해부한 독창적인 한국론으로, 조선시대의 유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절반은 한국에 몸담고 있으면서 절반은 한국 밖에 나와 있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한국을 조망하면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독특한 모습들을 저자가 고안한 ‘리기시스템’이라는 내재적인 방법론으로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왜 가상의 대의와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지
“현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정신적 문제는 우울이나 불안이 아니다. 지루함과 공허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때, 마음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때 우리는 ‘우울증인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이것은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이며, 지루함은 언제든지 우리를 슬그머니 휘감는 근본기분이라고 말한다.
지루함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든 아니든, 성실한 사람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지루함은 어쩌면 산만함, 중독, 가학성, 폭력 등 현대의 모든 문제적 감정과 행동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루함은 부정성만 지니지는 않는다. 의미를 추구하게끔 부추기고 새로움에 도전하도록 이끌며, 나아가 우리가 타성에 젖어 흘려보낸 일상을 능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저자는 지루함의 이러한 복합적인 면을 깊은 공부와 유려한 문장으로 분석한다. 중세 신학 및 하이데거, 니체, 벤야민, 톨스토이, 카뮈 등 지루함을 다룬 철학적·문학적 탐구부터 현대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돋보기는 빈틈이 없다.
지루함이라는 아득한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심리학과 철학으로 단단히 엮은 구명줄!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타자화된 나이고, 자신을 타자화하기 위해 인간은 늘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를 구하는 건 나로 표현되는 온 세상이다.”
이 문장을 쓰는 데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가 바로 변지영 작가님의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필로소픽, 2024)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에 대한 분석은 많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을 담은 책은 드물 것이라 생각해요.
변지영 작가에 따르면, 지루함은 어떠한 감정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자기 소외’에서 옵니다. ‘노동 소외’가 자신이 만든 노동생산물에 의해 역으로 지배받는 상태라면, ‘자기 소외’는 사회적 쓸모와 생산성을 인정받기 위해 만든 나로 인해 내가 억압받는 상태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소통하려 노력하는데도 세상과 잘 연결되지 못할 때 느껴지는 초조함,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서서히 다가오는 두려움,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등이 그 억압의 결과입니다.
나로부터 억압받고 배제되는 ‘자기 소외’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지영 작가는 그럴 때일수록 ‘에고를 무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외부 세계와 나의 경계를 지우고, ‘자아’라는 거울에 비친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죠.
왜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를 덜 의식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할까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신경망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인간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오갈 때 비로소 “‘나’라고 하는 것을 경험”(p.184)합니다. 인간은 자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외부 세계를 계속 내면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나와의 비틀린 관계를 풀려면 먼저 나의 일부이기도 한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작가의 주장입니다.
이 책 덕분에 실타래처럼 엉킨 채로 제 안에 걸려있던 생각이 말로, 글로 술술 풀리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를 꼭 읽어보시길!
퓰리처상 수상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 용은 인간의 오감이라는 한계 너머로 우리를 인도하여, 동물들의 경이로운 감각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는 모든 유기체가 자신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인식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상에는 인간에게 완전한 침묵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소리를 듣고, 완전한 어둠처럼 보이는 것에서 색깔을 보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다른 동물의 경험을 상상함으로써 인간이 알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좁은 범위에 불과한지, 인간의 직관이 얼마나 쉽게 우리를 속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올해 읽은 논문 중 최고 흥미로운 거
<박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옛날 철학논문인데(What Is It Like to Be a Bat? 1974) 동물 좋아하면 추천
논문의 시작은 의식이 있는 존재에게는 반드시 그 존재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가 있다, 라는 거고 이 주관적 성질이 바로 의식의 본질이라는 것
-> <움벨트>라고 하는 이 각 생물종 고유의 감각/지각세계에 대해 더 읽어 보고 싶다면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읽어보셈요 ^^)r
“우리의 탐욕은 안이 아닌 밖을 향해야 한다. 나만의 예술이자 모두의 책임인 양육을 위해” 내 아이라는 영토를 넘기 위한 사회적 사유
아픈 딸아이를 간병하며 질병과 돌봄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간절하고 정확한 의문을 제기한 첫 책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로 호평받은 신성아 작가가 3년 만에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돌아왔다. 전작으로부터 더 확장된 돌봄, 육아와 교육을 아우르는 미성년 양육에 관한 경험과 사유를 풀어낸 에세이다. ‘탐욕스러운 돌봄’이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오로지 가족 안으로만 쏟고 공동체를 도외시할 때 돌봄과 사회가 서로 충돌한다는 개념이다. 결혼 제도가 부부 외의 친구, 이웃을 비롯한 외부 공동체에 에너지를 덜 쓰게 하여 전체 구성원 간의 유대를 약화한다는 뜻의 사회학 용어인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에서 따왔다. 저자는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이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동력으로 삼기에 아무리 성실하게 내달려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임을 인식한다. 돌봄이 가족이라는 진공의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 혼자 다 하는 것 같지만 이 사회의 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직시한다. 그가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곧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다. 선행학습과 체험활동에 대한 강박부터 계급에 따른 교육격차, 의대 선호 현상,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편견, 서울/수도권 중심 교육의 폐해, 민주주의와 젠더 교육 부재까지 저자와 그의 아이가 겪는 개인적 경험들은 결국 ‘공동체의 결함’을 조각조각 비추고 있다. 즉 《탐욕스러운 돌봄》은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개별 가정의 탐욕도 비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런 불안과 욕망을 부추겨 공동체를 훼손하는 사회 전체의 탐욕을 지적한다. 사랑과 탐욕의 경계를 고민하고 양육의 방향을 성찰하려는 부모와 보호자들, 나아가 사회 구성원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일에 관심 있는 독자들 사이에 다양한 논의를 일으켜 기존의 획일적인 돌봄 양상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책이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이 사회를 함께 돌아보면 돌봄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돌봄의 어려움은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는다.” _서문 중에서
‘탐욕스러운 돌봄’이란 자신의 모든 자원을 오로지 가족 안으로만 쏟고 공동체를 도외시할 때 돌봄과 사회가 서로 충돌한다는 개념이다. 결혼 제도가 부부 외 친구,이웃 등 외부 공동체에 에너지를 덜 쓰게 하여 전체 구성원 간의 유대를 약화한다는 뜻의 사회학 용어인 ‘탐욕스러운 결혼’에서 따왔다.
이론은 어떻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광기로 번역되는가 “1000페이지가 넘는 심연을 응시하면, 그 심연도 당신을 응시한다”
충격적이고도 기념비적인 저작 문학, 문화비평, 영화 이론, 역사학,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의 고전 파시스트 남성성에 대한 기묘하고도 천재적인 연구 나치즘의 전조를 섹슈얼리티, 심리학, 사회정치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명저 폭력적인 남성성과 극우주의의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완벽한 지도
50년 만에 출간된 한국어판 문화비평,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영화 이론, 젠더 연구의 고전 잔혹하고 고딕적인 산문시
1977~1978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의 한국어판을 50년 만에 선보인다. 원서는 1280쪽이고, 한국어판은 1464쪽이다. 이 책은 총 10개국으로 수출됐는데 1989년에 나온 영어판은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일본어판은 2005년에, 프랑스어판은 2015년에 나왔다. 한국에서도 이미 수많은 논문, 기사, 단행본의 참고문헌으로 등장했다. 문화비평, 영화 이론,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 독문학, 독일 역사학 등에서 이 책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극우파와 극우 남성성의 대두로 인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성 판타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젊은 군인 남성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당시 패전한 독일에 좌파 혁명 단체들이 난립하자, 퇴역 군인과 우익 깡패들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기존 정치권의 사주, 지원, 묵인을 통해 결속하여 만든 것이 자유군단이었다. 이들은 1919~1920년 스파르타쿠스 연맹 봉기, 뮌헨 폭동, 루르 지방의 ‘붉은 군대’ 봉기 등을 진압하는 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 파시즘의 권력 상승과 선거 승리를 이뤄냈다. 이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자유군단은 해산됐지만 그중 일부가 나치 돌격대나 친위대로 흡수돼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책을 담당하게 된다. 저자의 연구는 자유군단 남성들의 텍스트 읽기에서 시작된다. 자유군단 병사들이 직접 쓴 자서전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들을 한 권도 빠짐없이 검토했다. ‘백색 테러’를 소재로 한 소설들은 1918년 11월 9일에서 1923년 11월 9일까지 5년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 외에 일기, 만화, 잡지, 선전선동물, 편지, 포스터 등도 광범위하게 분석한다. 나아가 논란의 에른스트 윙거의 작품들, 괴벨스의 자전적 소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나오는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의 편지와 일기, 진술 내용 등을 분석한다. 저자는 소설을 제한된 사건에 대한 완결적 기술이자 경험의 보고서로 본다. 파시즘 문학은 프로파간다 생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증상 보고서에 가깝다. 따라서 이들 텍스트를 “비정상적 상태와 욕망을 설명한 환자 기록”의 차원에서 해독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가해자 연구다. 자유군단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강철 같은 신념과 애국적 열망으로 기꺼이 살해와 폭력에 가담했던 군인 남성들의 목소리와 언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들의 살해 욕망을 다른 것으로 치환해 설명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며 읽어낸다. 이들이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서 갓 결혼한 신부를 고향에 남겨둔 채 사나이답게 타향으로 떠나 어떻게 더러운 빨갱이들을 쳐 죽였는지, 총 들고 설치는 문란한 빨갱이 계집들의 가랑이에 어떻게 총구를 박았는지, 그러면서 애국 사나이로서의 자부심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현상이다. 수많은 사람이 돌격대가 되고 나치 추종자가 되는 데서 쾌락을 느꼈는데, 이렇듯 자발적이고 쾌감적인 폭력 행사를 저자 자신도 직접 느끼며 그 실체를 파악해보려 한다. 『남성 판타지』는 자전적 역사물이다. 이들 남성이 어떤 양육 환경에서 강한 소년으로 자랐는지, 여성들에게 느끼는 부드러운 감정을 어떻게 억압하도록 배웠는지, 어떤 강압적 군사훈련을 거쳐서 강철 같은 군인으로 완성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동료들과 사회의 압력을 받아 분열과 해체의 공포를 느끼며 긴장을 유지했는지 말한다. 특히 파시스트 남성들의 집착적인 여성혐오와 과도한 경계심에 찬 남성성의 원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다. 혼종, 자웅동체 남녀추니, 진흙탕 속에서 군인 남성들은 경계의 사라짐을 두려워한다. 여기서 물이 한 방울이라도 튀면 그들의 강철 같은 단단함은 흐물흐물 불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본이 된 것은 저자의 학위 논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연구 방법론을 따르지 않았고, 이론으로부터 접근하지도 않았다. 물론 군인 남성들의 무의식과 정신분석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시도하며 단단한 학문적 맥락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의 심리구조론 및 인간학을 자세히 점검하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프로이트, 빌헬름 라이히, 들뢰즈/과타리, 멜라니 클라인, 마거릿 말러 등의 연구를 포괄하며 비판적 재검토를 한다. 또한 엘리아스 카네티, 푸코 등의 역사학, 사회학, 철학 이론이 다양하게 동원된다. 정동 이론, 욕망 기계, 죽음충동, 문명화 과정, 군중과 권력의 역학관계 등의 이론적 도구가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테벨라이트는 원형 파시스트 남성성의 전형인 자유군단 군인들을 병리적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혹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생겨난 독특한 현상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는 당시 독일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실패 탓에 대규모로 생겨난 병리적 개인들의 추종이나 그들을 무력하게 따른 국민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폭력은 결국 자아의 실패이자 몸의 문제다.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세계와 관계맺기를 배우지 못한 섹슈얼리티의 문제다. 모성이 제거되고 사회적 자아의 양육이 인위적으로 차단되며 욕망이 저해받은 남성은 특정한 자아로 만들어진다. 이들은 통합하고 생산하고 연대하고 확장하는 원형적 여성성을 위협으로 느끼며 공포에 질린다. 그래서 여성적인 모든 것을 몰아내려 한다. 해체와 분열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의 자아는 강한 결속과 위계를 부과해주는 폭력적 기관에 스스로를 투항한다. 이처럼 광적인 자발성으로 바치는 폭력이 바로 백색 테러이자 국가 폭력, 여성혐오, 인종 말살로 이어진다는 것을 저자는 수많은 예시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