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독2 積讀
명사
《표준국어대사전》
세계 역사는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다는 것을 알지만 사라졌거나 고의로 파괴되었거나 무심하게 소실된 것들. 이 책의 저자 유디트 샬란스키는 이렇게 사라진 것들 중 열두 가지를 선정하여, 그들의 소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책의 이야기는 19세기 중반에 사라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아나키에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태평양 북동쪽 바다에 자리하고 있던 섬, 1842년 말 즈음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저자는 자료들을 찾아 그 섬이 존재했던 흔적을 따라가며, 그곳을 향해 먼 길을 항해했던 탐험가들과 그곳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나간다. 멸종된 카스피해 호랑이, 비운의 추기경 줄리오 사케티의 저택이었으나 어느 날 무너져버린 빌라 사게티,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이 촬영했음이 확실하지만 35개의 조각으로만 남아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라는 무성영화 필름, 시인 사포와 그의 연가들, 마니교의 창시자인 마니의 일곱 권의 책 등, 지금은 사라진 것이 확실한 것들을 통해 저자는 소멸과 파괴의 다양한 현상들에 주목하며 부재자의 존재감을 상기시킨다. 상실과 부재, 그리고 여백은 어느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책에서, 잃어버린 것들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문학적 수단을 통해 재현해내고자 하는 저자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실천과 직결되는 함의를 갖는다. 우선, 베너타의 논증은 무엇보다도 출산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숙고하는 개인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만일 베너타의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출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미 출산을 한 번 이상 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출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출산을 독려하거나 사회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의 도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이 책의 논증이 옳다면 출산에 관련된 기본권이 단지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게 된다. 양심의 자유 역시 관련된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가녀장家女長, 생계를 책임지며 세계를 뒤집어엎는 딸들의 이름 〈일간 이슬아〉 이슬아 첫 장편소설
매일 한 편씩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로 그 어떤 등단 절차나 시스템의 승인 없이도 독자와 직거래를 트며 우리 시대의 대표 에세이스트로 자리잡은 작가 이슬아, 그가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가녀장의 시대’. 〈일간 이슬아〉에서 이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이슬아 작가가 만든 ‘가녀장’이란 말은 SNS와 신문칼럼에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은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할아버지가 통치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가정을 통치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어렵고 자수성가도 어려운 이 시대에 용케 글쓰기로 가세를 일으킨 딸이 집안의 경제권과 주권을 잡는다. 가부장의 집안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아름답고 통쾌한 혁명이 이어지는가 하면, 가부장이 저질렀던 실수를 가녀장 또한 답습하기도 한다. 가녀장이 집안의 세력을 잡으면서 가족구성원1이 된 원래의 가부장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아름답고 재미있는 중년 남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가부장은 한 팔에는 대걸레를, 다른 한 팔에는 청소기를 문신으로 새기고, 집안 곳곳을 열심히 청소하면서 가녀장 딸과 아내를 보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부장제를 혁파하자는 식의 선동이나 가부장제 풍자로만 가득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녀장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키우고 생존하게 한 역대 가부장들과 그 치하에서 살았던 어머니, 그리고 글이 아니라 몸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생각한다. 슬아는 그 어느 가부장보다도 합리적이고 훌륭한 가녀장이 되고 싶어하지만, 슬아의 어머니 복희에게도 가녀장의 시대가 가부장의 시대보다 더 나을까? 슬아의 가녀장 혁명은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세를 일으키려 주먹을 불끈 쥔 딸이 자신과 가족과 세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이슬아의 소설은 젊은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며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혁신과 서사를 만들어내는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소설 속에서 이슬아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베너타마멜타
이 책은 단지 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실천과 직결되는 함의를 갖는다. 우선, 베너타의 논증은 무엇보다도 출산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숙고하는 개인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만일 베너타의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출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미 출산을 한 번 이상 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출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출산을 독려하거나 사회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의 도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이 책의 논증이 옳다면 출산에 관련된 기본권이 단지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게 된다. 양심의 자유 역시 관련된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가 100인의 1인가구를 만나 귀 기울여 들은 새 시대의 풍경 “왜 한국의 미래는 가족이 아닌 혼자를 선택했는가”
2025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가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흔한 삶의 방식이 된 1인가구는 여전히 “왜?”에 대한 답을 설명해야 하는 소수자이고, 이들이 애써 내놓는 설명도 잘 통하는 일이 없다. 묻는 사람들이 이미 1인가구를 두고 ‘자기 몸 편한 것만 좋아해서’, ‘결혼할 만한 조건이 안 돼서’ 같은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한국 1인가구의 삶을 연구하며 100인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가 본 현실은 다르다. 이들 대부분은 자유를 추구하며 전통을 거부한 사람도, 그렇다고 결혼을 ‘못’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보는 1인가구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충실하게 살았을 때 이르는 필연적 결론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혼자 살아갈 때 뒤따르는 그림자는 풍족한 자산이나 충분한 노후 대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으며, 독립이 고립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Leve, Edouard · Lev, Edouard · Steyn, Jan수련
This story cannot be read as simply another novel it is, in a sense, the author's own oblique, public suicide note, a unique meditation on this most extreme of refusals. Jan Steyn is a South African translator from French and Afrikaans to English. He lives in Paris where he does work in Cultural Translation at the American University of Paris. Suicide cannot be read as simply another novel ??t is, in a sense, the author "s own oblique, public suicide note, a unique meditation on this most extreme of refusals. Presenting itself as an investigation into the suicide of a close friend ??erhaps real, perhaps fictional ??ore than twenty years earlier, Lev gives us, little by little, a striking portrait of a man, with all his talents and flaws, who chose to reject his life, and all the people who loved him, in favor of oblivion. Gradually, through Lev "s casually obsessive, pointillist, beautiful ruminations, we come to know a stoic, sensible, thoughtful man who bears more than a slight psychological resemblance to Lev himself. But Suicide is more than just a compendium of memories of an old friend; it is a near-exhaustive catalog of the ramifications and effects of the act of suicide, and a unique and melancholy farewell to life. A astonishing novel. A book that will never disappear, a book too provocative ever to be forgotten. Jean Rolin is a companion with whom one can walk as one hears his clear and dispassionate voice, his wry humor . . . 'One day I'll have to tell this story, the story of my heroic death and the ensuing revolution,' he announces on the final page. I look forward to this. Jean Rolin is a companion with whom one can walk as one hears his clear and dispassionate voice, his wry humor . . . One day I "ll have to tell this story, the story of my heroic death and the ensuing revolution, " he announces on the final page. I look forward to this. Suicide is not a fictionalized account of Lev "s death; in some respects it is a negative image of it. You didn "t leave any letters for loved ones to explain your death, " he writes, although Lev himself reportedly did. Lev "s art and life nonetheless converge, fuse, and end brutally together. Ironically, Suicide represents a new departure for Lev : his previous books could be considered conceptual conceits, whereas Suicide is something else, a purely literary work. At the end of his life, Lev had by no means exhausted his art. Suicide is not a fictionalized account of Lev?s death; in some respects it is a negative image of it. 'You didn't leave any letters for loved ones to explain your death,' he writes, although Lev?himself reportedly did. Lev?s art and life nonetheless converge, fuse, and end brutally together. Ironically, Suicide represents a new departure for Lev? his previous books could be considered conceptual conceits, whereas Suicide is something else, a purely literary work. At the end of his life, Lev?had by no means exhausted his art. Edouard Lev delivered the manuscript for his final book, Suicide, just a few days before he took his own life. Edouard Lev?delivered the manuscript for his final book, Suicide , just a few days before he took his own life. Edouard Lev?delivered the manuscript for his final book, Suicide, just a few days before he took his own life.
a devastating, pitiless book. Levé hung himself 10 days after completing it, and one gets the sense that he was simultaneously trying to explain the act and talk himself out of it, or at least face it with the utmost lucidity. a book one cannot argue with
나와 세계관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엇갈리는 사람과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지금 이곳의 철학 이야기
분열의 시대, 대화란 가능한가? 『동료에게 말 걸기』는 바로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에서 시작한다.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는 말이 어긋나는 시대의 새로운 철학을 찾아 나선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엇갈리는 가족, 관심사가 다른 직장 동료에서 기후변화에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까지.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모두 동등하게 존재하는 세계에서 ‘동료’가 되어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다.
“내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간 거리에 엄마가 태극기를 들고 서 있다. 우리는 각자의 무리에 숨어 서로를 미워하다가, 집에 와 서먹한 얼굴로 방문을 닫는다. 아무리 비판을 쏟아내도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집회가 끝난 후 일상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바로 그 닫힌 방문 앞에서 철학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추상적인 당위 대신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으며, 속 시원한 비난보다는 울퉁불퉁한 협상안을 내밀며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엄마와 직접 대화할 용기를 얻는다. 친구 그리고 적과 함께 읽고 싶은 귀한 책이다.” - 김지효(여성학 연구자, 『인생샷 뒤의 여자들』 저자)
“편집자 박동수가 관계적으로 읽는다면, 저자 박동수는 연결하면서 쓴다. 끊임없는 독서와 대화를 통해 내 안에 자리 잡은 수많은 타자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 누구도 삶의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동료와 가족, 학계와 사회에서 인공지능과 행성까지 말을 걸면서 아래로부터의 철학을 시도한다. 그의 정갈한 문장이 만드는 섬세한 고요 속에서 희망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마주한다.” - 김성우(응용언어학자,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저자)
“철학은 모든 인간에게 합리성 그리고 경청을 요구한다. 우직한 편집자 박동수는 이 오래된 요구에 응한다. 서로가 서로를 말 바꾸기와 말 돌리기를 일삼는다고 비난하고, 인공지능이 내놓은 그럴듯한 헛소리가 범람하며, 지구가 가열되어 기후를 종잡기조차 어려워진 2025년. 그럼에도 여전히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이 책을 자신의 협상 상대를 경멸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다.” - 전현우(교통·철학 연구자,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저자)
As groundbreaking synthesis that promises to shift our understanding of the mind-brain connection and its relationship with our bodies.
발터 벤야민 지음. “각 글은 서로 다른 형식과 주제를 지니지만 결국 ‘이야기 기술의 종언’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모인다. 벤야민은 정보가 경험을 대체하고 인간이 고립되는 시대를 ‘이야기의 소멸’로 해석했다.”
근대 문학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한국인 정체성을 심층적으로 재구성하다!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한국인의 탄생』.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학적 언어로 정립했던 최정운 교수의 15년 연구의 노작이다. 근대문학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해석과 재평가를 함으로써, 근현대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상사의 구축을 시도한다.
가령, 이인직, 이해조, 신채호, 김동인, 이상, 이광수 등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또 그에 맞서 어떤 인물을 창조했는지 면밀하게 살펴본다. 이를 통해, 신소설이 묘사한 현실이 허구 혹은 날조된 조국에 대한 음해가 아닌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인 현실이었음을 밝혀낸다.
<먹물> 플로우가 도는 것 같은데, 임꺽정을 통해 우리 근대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고찰하는 최정운 선생님의 관점이 흥미롭다. '먹물'에 대한 멸시는 좌절된 지식인들의 자기혐오, 근본적으로 조선에 대한 혐오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것은 이후 당연히 군사독재의 자기 정당화 논리로 이용되었다. 이 논리를 뿌리까지 파헤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먹물 민족>.... 조선의 후예가 아닌가. - 먹물에 대한 혐오야말로 가장 먹물스러움의 징표인 것이다. 행동하는 인간을 그의 말 몇 마디로 심판하는 것은 오늘날 탁상공론의 무한 반복을 심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먹물성의 발현인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조선과 조선의 먹물성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것, 그리고 오늘날 먹물에 대한 혐오 자체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문화는 그런 혐오감이 무엇인지, 그걸 어찌 해야할지 심층적으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먹물들의 차후 과제일 수 있겠다.
https://x.com/Osipi_Kim/status/1992561985339502783?s=20
아쉴 음벰베 · 김은주 · 강서진 · 김은주수련
카메룬 출신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아쉴 음벰베의 주요 저작 《죽음정치》가 출간되었다. 음벰베 사상의 정수로, 현대 민주주의의 퇴보와 폭력, 배제와 증오의 정치를 드러내며, 푸코의 생명정치와 슈미트, 아...
“식민지 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온갖 형태로 고통의 장치를 생산하면서도, 그 고통이 어떤 책임도, 배려도, 공감도, 연민도, 그 무엇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다. 오히려 토착민indigène이 겪는 고통에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그 누구도 고통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체제의 목표였다.
더 나아가 식민지의 폭력은 종속된 사람의 욕망의 힘을 포획하여, 그 힘을 비생산적 투자들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토착민의 이익을 대리한다는 명목 아래, 식민 권력은 사실상 삶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차단하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여길 수 있는 능력 자체를 훼손하고 약화시키려고 했다. 파농의 정치적이고 임상적 실천은 바로 이러한 질서에 단호히 맞섰다. 파농은 누구보다도 근대가 남긴 거대한 모순 중 하나를 정확히 지적했으며, 그의 시대는 바로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근대의 끝에 시작된 세계의 거대한 재인구화는 인류 역사에서 이제껏 알려진 바 없는 규모와 기술을 동원한 대대적인 ‘토지 수단(식민화)’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새로운 토지들을 향한 돌진은 민주주의의 행성화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지구의 법(노모스)을 등장시켰는데, 그 중심에는 전쟁과 인종을 마치 역사의 두 가지 특권적 성례聖禮, sacrements처럼 봉헌하는 것이 있었다. 식민주의의 용광로에서 전쟁과 인종의 성례화는 근대성의 해독제인 동시에 독인, 즉 근대성의 이중의 파르마콘이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파농은 [정치적 존재 조건을 구성하는] 제정적인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탈식민화는 폭력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어떤 경우이든 폭력이란 원초적이며 능동적 힘, 탈식민화의 출현에 앞서 이미 존재한다. 탈식민화는 살아있는 신체가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며, 그 몸은 자기보다 앞서 존재하고, 외부에 있으며, 자신이 자신의 개념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방해물들과 완전히 정면으로 충돌하는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철저히 해명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하지만 아무리 창조적인 힘으로 의도될지라도 순수하고 무제한적인 폭력은 무분별하게 될 위험에 놓여 있다. 그 폭력이 불모의 반복 속에 갇히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그 에너지는 순수한 파괴를 위한 파괴로 퇴행할 수 있는 것이다.
파농에게 치유 행위의 본래적 기능은 질병을 근절하거나 죽음을 제거하고 불사를 도래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가 보았을 때 병든 인간은 가족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공동체와의 교감도 없는 사람이있다. 처음부터 출신이나 혈통을 공유하지 않는 타자들과 진정한 만남을 가질 가능성이 박탈된 사람이었다. 이 관계없는 인간들(혹은 타자로부터 단절되기만을 원하는 인간들)의 세계는 끊임없이 외형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 우리를 ‘이방인 없는 공동체’라는 환각적인 꿈에 빠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