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김뉘연 · ISBN: 978-89-320-4410-1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그림과 그림자가 함께 서 있다. 그림과 그림자가 함께 앉아 있다” 여럿으로 나뉘고 하나로 겹쳐지는 언어의 흔들림 겹겹이 쌓아 올린 그림자 위로 쏟아지는 선명한 감각들

끝난다고 썼다. 여기에서는.

계속되었다고 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여기에서는 이렇게 끝나는데 그는 다른 곳에서 계속되었다」 부분

문자에 물질성을 만들고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인 김뉘연의 네번째 시집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19번으로 출간되었다. 출판 편집자이자 다양한 전시 및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선보인 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2020년에 첫 시집 『모눈 지우개』를 출간하며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두번째 시집인 『문서 없는 제목』에서 ‘시’와 ‘문자’가 지시하는 상황의 안팎을 오가며 시집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가 하면, 차학경의 『딕테』를 이어 쓴 프로젝트 시집 『제3작품집』에서는 ‘쓰기’라는 행위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비선형적이고 다원적인 시의 궤도를 그려내면서 “자신이 대하는 매체가 지닌 기억의 조건을 나열하고 재서술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재창안하며,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창작자”(최가은 평론가)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텍스트를 질료 삼아 시를 제3의 대안적 공간으로 만드는 그의 여정은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에서도 이어진다. 총 61편의 시로 묶인 이번 시집은 별도의 부로 나누지 않고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었을 때 하나의 텍스트처럼 보이도록 구성했다. 각각의 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한 61가지 레이어로 층층이 쌓여 있다. 이 시집은 전작처럼 시각적 요소를 다채롭게 활용하기보다 문자 자체의 ‘나’와 ‘너’가 곧 ‘우리’가 되는 상징성에 주목한다. 비슷한 듯 다른 말들이 씌어지고, 중첩되고, 연쇄되고, 반복되며 결국 “아주 분명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인 김뉘연의 “이것”으로 가득 찬 세계. 페이지를 열면 처음 등장하는 시의 제목 「여기서는 이렇게 끝나는데 그는 다른 곳에서 계속되었다」가 암시하듯 또 하나의 예술적 실험이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