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s, Patricia J. · ISBN: 979-11-86323-77-9

미국의 법학자이자 문화비평가 퍼트리샤 J. 윌리엄스의 신작 『검은 다리의 기적』이 번역· 출간됐다. 비판법학의 토대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을 정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저자는 법적 객관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인종적, 젠더적, 계급적 편견을 폭로해 온 인물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소위 CRT는 트럼프와 마가MAGA 진영이 격렬히 반대하며 악마화하는 이론이다. 『인종과 권리의 연금술』를 대표로 한 저작들, 〈더 네이션〉에 ‘미친 법학 교수의 일기’란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들에서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추상적인 법률 용어가 아니라 베네통 매장에서 출입을 금지당한 경험 같은 개인적 서사를 가져와 풀어내 온 윌리엄스는 『검은 다리의 기적』에서도 흑인의 다리를 이식받은 백인 남성과 다리를 내주고 숨진 흑인에 관한 수백 년 전 그림 이야기로 독자의 관심을 끌며 미국 사회 내 다양한 갈등과 이슈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성화 속 다리가 절단된 인물처럼 신체가 소모품과 상품으로 간주되는 이들, 온전한 인간 혹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이를테면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을 옭아매는 그물망을 법, 인종, 젠더, 계급의 렌즈에 교차적으로 투과시켜 그 얽히고설킨 층위들을 드러낸다. 먼저 인간의 몸을 동산으로 규정한 노예제의 유산이 현대 계약법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창고 경매로 얻은 타인의 다리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벌어진 존 우드의 다리 소송 같은 인상적인 예를 들며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예제의 법리는 법전을 넘어 사회의 전 영역에 스며들었고, 과거 인간 전체를 소유물로 삼았던 논리를 넘어 이제 유전자 정보와 생체 데이터를 파편화해 거래하는 방식으로도 진화했다. 법은 더는 인간을 대놓고 물건이라 부르지 않지만 알고리즘 분류 시스템으로 특정 집단의 신체를 여전히 결함 있는 상품이나 관리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예컨대 지역의 계급적, 인종적 특성을 반영하는 우편번호를 기준으로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 사례에서 드러나듯 현대의 데이터 기술은 과거의 인종적 편견을 객관적인 수치로 둔갑시켜 노예제의 논리를 재생산한다. 이처럼 진화하는 신체의 사물화와 차별 메커니즘은 공적 가치가 사적인 이윤 논리에 잠식되는 공공성의 사유화와 궤를 같이한다. 흑인 아기를 “잘못된 출생”에 따른 손해배상액으로 환산하고, 부유한 여성들이 아이비리그 여학생의 난자를 5만 달러짜리 상품으로 ‘기증’받으며, 요금 납부를 깜박하면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차가 와서 구경만 하는 일련의 사태는 모두 인간의 존엄을 보호해야 할 공적 영역이 시장의 논리에 항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퍼트리샤 윌리엄스는 존 우드의 다리가 매매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그 존재에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일부이듯이 우리 인간도 서로에게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과 시민으로서 온전성의 회복, 사회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저자는 돌봄의 윤리를 강조하고, 의료, 교육, 복지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공공성을 회복하며, 마지막으로 인종, 젠더, 계급이 교차하는 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심지어 논의 자체를 막는 시도에 맞서 그 고통스러운 기억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 사회에서 ‘검은 다리’는 어디에 있을까?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다쳐도 “다친 데 없으세요?”가 아니라 “배달 가능하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플랫폼 노동자,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단순한 이동 자체가 권리가 아니라 투쟁인 이동장애인, 공기업에서조차 비수도권 대졸자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킨 사건, 최근 대구 성서공단에서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다 추락사한 베트남 출신 유학생이자 이주노동자 25세 뚜안 씨의 죽음까지,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퍼트리샤 윌리엄스의 『검은 다리의 기적』은 이처럼 한국 사회도 폭주하는 트럼프의 미국과 다를 바 없이 경제 성장과 소비자 편의라는 기적을 위해 검은 다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