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an, James · 진 시튼 · ISBN: 979-11-92090-69-6

탈진실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미디어 민주주의의 설계도
언론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는 독자 혹은 이용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른바 ‘중립’ 혹은 ‘공정성'을 요청 받곤 한다. 그러나 미디어, 즉 정보 중개자로서의 매체는 정보 발화자와 수신자의 ‘중간’에 놓여 있을 뿐 '내용적 중립’을 실천하기 어렵다. 제도의 설계 방식에 따라, 그리고 정치·경제적 개입에 따라, 언제든 정치적으로, 혹은 기타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거나 편향될 여지가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미디어의 본원적 ‘쓸모’다. 심지어 미디어 스스로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닌 적극적 발화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영향력을 얻어야 미디어 스스로 돈과 권력의 일부를 분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게 된 신문 등의 기성 언론과 방송 등의 주류 미디어가 늘 편향성 시비에 놓이면서도 본질적으로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들은 구현 가능한 공정성과 반드시 지켜져야 할 중립성을 정립하기보다, 그저 ‘중립적 외피’를 쓴 채 ‘편향적 내용’을 발산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공격을 받았던 기성 미디어가 먼저 나서서 유튜브 등의 신규 미디어를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공격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정과 불공정 사이의 싸움일까, 아니면 ‘불공정의 정도 차이’를 놓고 벌이는 싸움일까, 또 아니면 그냥 역사적으로 늘 특정 국면에 등장하곤 하는 주도권 다툼에 불과한 걸까? 이는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소셜 미디어의 변화 양상에서도 발견되며, 앞으로 AI의 기술을 어떻게 다루고 활용해야 하는지에도 참조점을 제공한다. AI와 뉴 미디어의 확산으로 전통적 미디어의 중요성은 줄어들었을까. 신문은 일찌감치 웹사이트를 구축하였고, 텔레비전과 소셜 미디어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많은 시정차를 확보하고 있으며, 동영상 및 숏폼으로 재편집되어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이들 미디어가 전성기 시절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