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실 · ISBN: 978-89-6564-305-0
말 걸기, 들어주기, 함께 써내려가기! 권위의 비평이 아닌, 감각과 나눔의 비평! 이것은 하나의 로맨스 장르다!
비평가 양효실이 지난 10여 년간 시각예술 현장에서 직접 만난 작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비평을 한 권으로 묶었다. 회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퀴어 아트, 공동체 지향 작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45인 작가의 세계를 섬세하게 풀어낸 이 책은, 단순한 평론집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평가”가 예술가들과 함께 ‘함께 써낸 이야기’로 구성된다. 45인의 작가와 엮은 공동의 문장들이 나와 타자, 작가와 관객, 비평과 창작의 경계를 유연하고 흐릿하게 만들면서, 비평이란 이름의 감응적 나눔의 실천으로 탈바꿈시킨다.
비평가란 누구인가: 듣는 사람으로서의 비평 『대화 비평』은 비평가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양효실은 비평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거나 해석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판단하지 않은 채 듣는다. 최초인 것처럼 듣는다. 놀라면서 듣는다”(15쪽)라고 말하며, 비평을 감응적 나눔의 실천이자 관계 맺기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프롤로그에 담긴 여러 이야기-소년과의 조우, 강남에서의 사기 사건, 엄마의 글쓰기, 아버지의 치매-를 통해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듣기의 훈련’으로 예비된다. 양효실은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짜는’ 과정을 통해, 비평을 공저의 글쓰기 또는 공동체적 수행으로 바꿔놓는다. 이때 비평가는 정답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목울대”, “메신저”이며, 이야기가 머무는 그릇이 된다. 비평이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신체와 삶의 언어가 되는 순간이다.
탈정체화와 감응: 퀴어함, 유동성, 관계성의 미학 ‘탈정체화’는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다. 양효실은 고정된 정체성이나 단일한 주체가 아닌, 움직이고 관계 맺고 흔들리는 존재들의 감각에 주목한다. 특히 『대화 비평』의 4부 ‘소년소녀 퀴어들’에서 다뤄지는 작가들은 젠더나 나이, 존재 방식이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흐릿함 자체가 창작의 동력이 된다. 양효실은 퀴어함을 단순히 성정체성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형식, 태도, 감각의 문제로 확장한다. 반복, 모방, 인용, 의태와 같은 요소들은 이러한 감응적 관계성의 실천이자, 예술이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특히 “나와 나의 정체성”의 관계도 애초에 불가능하며, 존재란 본래 바깥에 있다는 급진적 사유는 전은진, 김지민, 김한결 등의 작업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퀴어함은 여기서 ‘자기됨’이 아니라 ‘함께 있음’의 다른 방식이자, 끝내 말해지지 않는 삶의 형식으로 비평 속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관계와 공동체, 평등한 시선의 실천 『대화 비평』의 3부는 슬픔과 비극, 트라우마를 다루되 그것을 단순한 고백이나 상처의 전시로 환원하지 않는다. 양효실은 정면의 비극을 “비틀거나 비켜 말하는” 유머, 패러디, 아이러니의 전략으로 끌고 온다. 이는 단순한 희석이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유머는 슬픔을 감각하게 하는 또 다른 창구이며, 파괴를 수행하는 새로운 언어다. 예컨대 샤먼의 명랑함을 전면에 내세운 임영주의 작업, 억눌린 여성적 슬픔을 복제와 희화로 전치하는 최수련의 작업, 혹은 채프먼 형제의 ‘교정으로서의 파괴’ 등은, 웃음이 미적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비극에 시간을 더하면 웃음이 된다”는 명제를 수행한다. 즉, 상처가 유머로, 비극이 놀이로 전환되는 그 장면을 예술은 감각적으로 연출하고, 비평은 그것을 가시화한다. 양효실의 글쓰기 역시 이와 동일한 장치를 사용한다. 슬픔을 정면에서 외치는 대신, 그것을 미끄러뜨리고 우회하고 엉뚱하게 회로를 틀며, 독자 스스로 감응하도록 설계한다. 그래서 이 장은 웃음의 정서적 깊이를 새롭게 제안하는 장이다.
낡고 약한 회화를 다시 그리는 힘: (포스트)회화의 재발견 책의 1부는 "(포스트)회화의 회화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오늘날 회화는 개념미술, 뉴미디어 아트, 인공지능 이미지 생산 등과 비교했을 때 ‘너무 낡은 형식’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양효실은 그러한 회화야말로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유력한 자리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노경민의 〈붉은 모텔〉 연작은 성적 환상과 쓸쓸한 일상의 교차점인 모텔을 반복적으로 그려내며, 사회적 욕망이 휘감긴 장소를 ‘빛’이라는 회화적 장치를 통해 비워낸다. 모텔은 붉지만 욕망의 색이 아니고, 인물은 있으나 성애화되지 않는다. 양효실은 이런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욕망 그 자체를 계속 바라보는’ 작가들의 태도를 통해 회화의 회복력을 포착한다. 최모민, 전은진, 서원미 등의 작가들도 회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예로 소개된다. 스스로 ‘장르에 갇힌다’고 말하는 작가,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풍경을 흐리게 그리는 작가, 유령처럼 남은 색의 흔적에 집착하는 작가들. 이들은 회화를 매체의 본질이 아니라 삶의 태도, 감각의 증언, 느린 저항의 형식으로 삼고 있다. 양효실이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회화란 결국 “약한 사람의 지독하게 강렬한 욕망”(15쪽)이 드러나는 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제는 지나간 장르’로 치부된 회화는, 오히려 동시대 예술 속에서 가장 예민하고 오래 남는 질문이 된다. 이 책은 회화의 이러한 잔존성과 회귀 가능성을 민감하게 추적하며, 이미지와 이야기가 얽히는 방식의 재정의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