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대체 현실 유령 (2010년대 온라인 호러(중 일부)의 역사에 대한 미완의 연작 에세이)

나원영 · ISBN: 979-11-978139-1-7

대체 현실 유령 (2010년대 온라인 호러(중 일부)의 역사에 대한 미완의 연작 에세이)

"지금 당신은 시계열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벌건 대낮 웹서핑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주변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불빛만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는데 낮부터 무엇을 봤는지는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인터넷 문화 혹은 그것을 형성하는 작업도 그런 향유의 날들과 닮아 있습니다. 즐겼던 기억이야 물론 드문드문 남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이 어떻게 오늘날의 이것이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리고 신성한 모든 것은 저속한 것이 되는 웹”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언제나 시계열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대체 현실 유령』의 지은이는 이 혼란 속의 시계열들을 과감히 되짚어 봅니다. 커서를 옮겨 좁은 길목을 돌파하는 중 〈엑소시스트〉의 이미지가 깜짝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 ‘미로The Maze’ 혹은 ‘무서운 마우스 피하기 게임’을 기억하나요?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시계열의 혼란에 주박(呪縛)됩니다. 중앙화된 플랫폼이 웹을 마름질하기 이전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지은이는 슬렌더맨, SCP재단, 〈징징이의 자살〉, 커스드이미지Cursed Image, 백 룸Back Room, 큐아넌Qanon식 음모론, 아날로그 호러까지의 경로를 살펴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혼란을 빠져나오기 위한 참고서가 아닙니다. “경험하고 있는 이 혼란을 도저히 말이 되게 써내지를 못할 것 같아도 일단 무엇이든 기록”해 놓은 『대체 현실 유령』은, 단지 어떤 혼란의 또 다른 판본에 불과합니다. 개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인터넷에서만 존재하는 섬뜩함을 경험했습니다. 이 책 『대체 현실 유령』은 우리를 다시 한 번 그 혼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 혼란 속에서만 온라인과 현실이 엎치락뒤치락 자리를 바꾸는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