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와 테츠오 · ISBN: 978-89-94027-85-2
일본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서울 용산을 연상시키는 아키하바라는 오타쿠 문화나 제작 문화를 통해 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관문 가운데 하나이다. 『아키바 손의 사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교육자, 미디어 활동가, 영화 비평가인 코가와 테츠오의 다양한 활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저서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코가와 테츠오는 자유라디오(Free Radio) 운동을 통해 전세계 미디어아트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그가 진행했던 소출력 라디오 송신기 제작 워크숍은 이 책에서도 상세하게 나와 있듯이, 유럽과 한국, 미주 지역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그의 활동을 확장시킨 중요한 도구였다. 제작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송신기는 참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FM 신호를 송출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이 활동은 코가와 테츠오 활동의 근간이 되는 ‘네 스스로 만들어라(Do It Yourself)’ 문화의 핵심과 공명한다. 이 책은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크게 ‘망각의 아키바’와 ‘손의 사고’, ‘손의 여행 일지’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하는 ‘망각의 아키바’는 TV 키트를 제작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이끌었는지 설명한다. 특히 과거 ‘아키바’의 폐쇄적이면서도 독특한 문화는 작가로써 코가와 테츠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키하바라 지역의 변화를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아시아 지역의 전자상가 문화에 대한 고찰까지 다양한 논의를 풀어놓는다. ‘손의 사고’는 이렇게 형성된 작가의 정체성이 어떻게 미디어 활동가로써 구체화되었는지 개념과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는 챕터이다. 전설적인 미디어 액티비스트인 디디 할렉과의 만남이나 다형성의 라디오 같은 작가의 중요한 개념들이 이 챕터에 등장한다. 책의 3부에 해당되는 ‘손의 여행 일지’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진행했던 소출력 라디오 송신기 워크숍을 중심으로 서술된 여행 일지이다. 미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의 서울까지 그가 돌아다닌 지역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독자는 그의 여행 일지를 통해 2000년대 초반 전세계 미디어 아트와 미디어 활동가들의 생생한 모습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책의 부록에는 코가와 테츠오가 쓴 중요한 텍스트 2개가 수록되어 있다. 「다형성의 라디오의 향하여」는 자유라디오나 라디오아트의 맥락을 ‘다형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개한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일반 FM 방송과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대신에 소출력 라디오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라디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기술한다. 두 번째 글인 「라디오아트 선언문」은 2008년 영국의 뉴캐슬에서 열렸던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위해 쓴 강연 퍼포먼스 대본으로, 아도르노와 들뢰즈, 가타리를 경유하면서 라디오아트의 가능성을 이론적이고 실재적인 관점에서 검토한다. 『아키바 손의 사고』는 1941년 생으로 현대예술가이자 미디어 액티비스트로 살아온 그의 경험과 지식이 집약된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근대적 인간이 어떻게 지역과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라디오를 하나의 급진적인 매체로 사유하고 활용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미니FM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로써, 예술과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써 라디오를 고민하고 활용했다. 동시에 그는 일본 사회를 넘어 전세계와 소통한 아시아 작가로, 특히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중요한 예술가이자 이론가, 비평가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다양한 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특히 이 책에는 즉흥실험음악 연주자인 류한길이 그린 드로잉 10여점이 포함되어 있다. ‘점액 곰팡이 다이어그램’이라는 이 드로잉은 라디오 신호 수가 늘어남에 따라 확산되는 곰팡이의 모습을 유형학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류한길 작가의 가설은 주파수를 재료로 작업하는 코가와 테츠오의 예술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