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해링톤 · ISBN: 979-11-92667-29-4
알베르 카뮈는 “사형 집행인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형 집행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엘 해링톤은 사형 집행인 프란츠 슈미트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에서 놀라운 솜씨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이 책은 1588년부터 1617년까지 사형집행인으로 살아온 프란츠 슈미트의 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저자인 해링톤은 슈미트의 일기를 바탕으로 살을 붙이고 극적인 장면들을 능숙하게 삽입해서 완전한 드라마를 구현해내었다. 미국 벤더빌트 대학교의 독일사 교수인 조엘 해링톤은 이 사형 집행인의 일기에서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 드라마에서 슈미트의 역할은 교수형, 불태우기, 참수, 심지어 바퀴로 육체를 찢는 등 다양한 형태로 사형을 집행해야 했지만 이 모든 행위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16세기에는 꿀벌통을 훔치다 걸리는 경우에도 사형을 집행할 정도로 사람의 목숨이 값어치가 없었다. 푸코의 말대로 감시와 규율은 체재의 방패막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가지의 채찍질을 포함하여 이토록 다양한 고문의 방식이 있었다는 점은 충격과 공포에 익숙한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가공할 공포를 심어준다.
실제로 마르틴 루터는 “범죄자가 없었다면 사형집행인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을 휘두르며 목을 졸라 죽이는 손은 이와 같이 더 이상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매어 바퀴를 깨뜨리고 목을 베고 전쟁을 하시느니라.”
슈미트는 소름끼치는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는 “법정의 규탄, 죽음의 행진, 사형집행 자체가 삼위일체로 구성되어 마침내 신중하게 고안된 도덕적 드라마”를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망나니가 의사로서 대단한 명망을 얻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슈미트는 동시대의 다른 사형 집행인들이 가지고 있던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성 모독자의 혀를 찢거나 도박꾼의 손가락을 자르려면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부러진 뼈를 고정하고 사형수에게 약초와 고약을 발라서 마침내 교수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살아남게 하는 비법은 슈미트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시대의 사형 집행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역할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슈미트는 의사로서 수입이 사형 집행인으로서의 봉급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요컨대 그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의사였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일생은 사형 집행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의사로서 모두에게 존경받는 삶으로 인정받고자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은퇴한 사형 집행인으로 삶을 마감하기를 거부한 칠순의 슈미트는 황제(페르디난트 2세)에게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결국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사형 집행인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그 시대에 망나니로 산다는 것은 성 밖에 거주하면서 자녀들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온식구들이 교회의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약 1만 5천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4백명의 목숨을 끊어냈지만 그 열 배 이상의 목숨을 살려낸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의 뉘른베르크 풍경을 놀랍도록 치밀하게 그려낸 조엘 해링톤의 능력이다. 그는 상아탑의 지루한 말놀이 대신 생생하게 구현된 말의 향연으로 우리를 신성로마제국의 한 시대로 데려간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해링톤의 통찰력은 작품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서의 프란츠 슈미트를 창조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놓기가 어렵게 만드는 내러티브는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