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2일 가입 · 113권 적독
Emanuele Coccia타로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은 자신보다 앞서 존재한 모든 생명체의 변태다
어릴 적 우리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는 신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존재의 몸은 거의 공통점이 없다. 형체, 해부학적 구조, 외피 등 전혀 다르다. 하나는 땅을 기어다니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이고 동일한 생명체다. 태초에 우리는 모두 같은 생명체였다. 같은 몸을 공유하고, 같은 경험을 했다. 형태와 존재 방식이 다양해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같은 생명이다. 수백만 년 동안 이 생명은 몸에서 몸으로, 개체에서 개체로, 종(種)에서 종으로, 계(界)에서 계로 이어져왔다. 물론 생명은 자리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었다. 우리가 우리 안의 아주 내밀하고 양도 불가능한 무엇이라 상상하는 생명은 우리 자신에게서 기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독점적이지도 개인적이지도 않다. 우리 생명은 타자가 전해준 것이다. 아홉 달 동안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결국 우리를 깨어나게 해준 바로 그 생명이 우리 자신에게 속할 수도 우리 것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이 물리적·물질적 증거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와 동일한 몸이었고, 동일한 체액이자 동일한 원자였다. 우리가 지닌 인간성 역시 인간 본래의 것도,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이 또한 이전 생명의 연장이자 메타모르포시스다. 진화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가면무도회와 같다. 이 과정에서 모든 종은 자신을 낳은 종과는 다른 새로운 가면을 쓰며, 자손들은 부모 세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 세대도 자손들을 더 이상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머니 종’과 ‘딸 종’은 모두 같은 생명의 메타모르포시스다. 각각의 존재가 속한, 이른바 ‘종’은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로부터 빌려온 기술의 총체일 뿐이다. 이런 변형 속 생명의 연속성이 있기에 모든 종은 수백 가지 다른 종과 무수한 특질을 공유한다. 메타모르포시스란 우리가 완전히 자기 자신일 수 없으며, 완전히 타자와 뒤섞이거나 동화될 수도 없는 채로 타자를 자기 안에 품고 살아야 하는 조건을 뜻한다. 태어남이란 곧 순수하지 않은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며, 어딘가에서 온 이질적인 것을 자기 안에 간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부모를, 조부모를, 그들의 부모를, 인간 이전의 원숭이를, 물고기를, 박테리아를, 그리고 탄소·수소·산소·질소 등 최소한의 원자들까지 품고 있다. 우리는 결코 동질적이거나 투명하거나 완전히 식별 가능한 존재일 수 없다. 메타모르포시스는 단순히 서로 다른 두 모습의 이어짐이 아니다. 메타모르포시스란 누구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될 수 없으며, 단 하나이자 동일한 생명 안에 가장 동떨어져 있고 서로 모순돼 보이는 가능성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다. 코치아는 메타모르포시스란 하나의 생명체가 서로 다른 몸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현상일 뿐 아니라, 모든 종을 서로 연결하고 생물과 무생물을 잇는 관계임을 주장한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류, 식물, 동물 등 우리는 모두 하나의 동일한 생명체다. 각각의 생명체는 세계를 이루는 이 무한히 변화하는 살의 또 다른 메타모르포시스이며, 우리는 지구라는 이 거대한 애벌레의 나비인 셈이다. 코치아의 변태에 대한 탁월한 성찰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연결하는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정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우리의 관점을 버리고, 우리가 훨씬 더 크고 상호 연결된 생명체의 일부임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성체뿐 아니라 각각의 형태가 동일한 무게, 동일한 중요성,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성체인 생명체가 보여주는 형태는 경이롭다. 그래서 이 성체 단계만을 완전하고 성숙한 것으로 인정하곤 한다. 성체 이전 모든 단계는 우리가 도달할 그 모습의 준비 과정이며, 성체 이후는 모두 쇠락이자 파멸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인의 삶이란 수정 후 두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배아의 삶이나 죽음의 문턱에 선 노인의 삶보다 더 완벽하고 더 우리다운 것이 아니며, 더 인간적이고 더 완성된 것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삶을 펼치기 위해 되돌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과 여러 몸을 거친다. 모든 생명은 변해가는 시간 속에 펼쳐지는 해부학적 행렬이다. 이 다양한 생명 형태들 사이의 관계를 메타모르포시스 개념으로 사유하는 것은 단순히 모든 목적론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각의 형태는 동일한 무게, 동일한 중요성,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모든 형태, 모든 성질은 서로에게서 기원하며 서로 동등하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과 ‘얽혀’ 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2장에서 자세히 묘사하는 곤충의 변태 작용을 통해 ‘변태’의 의미를 살아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 방식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우리를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끝없이 형태를 변화해가며 존재하는, 한 거대한 생명의 ‘변태’임을 일깨우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코치아가 만든 이 고치 속에서 우리는 하나이자 유일한 생명의 끝없는 변태를 경험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가이아다. 메타모르포시스는 세상 모든 것과 내가 ‘얽혀 있다’고 말한다. 그 얽혀 있음을 깨닫는 일은 우리 존재의 근본 조건을 성찰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고, 또한 먹는다.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음식은 다른 생명의 형태로 살아갈 자양분이다. 그리고 영양 섭취의 형태로 그 자양분은 존재들을 순환한다.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와 접하고, 다른 종의 생명을 경유해 다른 존재가 되는 일은 필연적이다. 현대 철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근대 철학의 ‘주체’ 개념의 허상을 벗겨냈다. 코치아의 선택은 생명의 연속성 속에서 ‘자아’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자아는 결코 세계를 대상화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인식의 출발점에 설 수 없는 자아다. 그리고 ‘객체’ 역시 ‘주체’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메타모르포시스는 이질적인 생명의 형태들과 이질적인 세계들이 ‘하나의 유일한 생명의 흐름’ 안에서 구성되는 과정이며, 다양한 형태를 통해 생명이라는 하나의 유일한 자기 자신이 표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메타모르포시스인 이 세계의 ‘얽힘’은 근대적 이분법을 해체하는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과 환경, 생물과 무생물, 삶과 죽음까지 끊임없는 메타모르포시스가 일으키는 순환은 이들의 경계를 허문다. 기술·문명·도시는 자연과 대립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과 과학은 일종의 토테미즘이다 이 책에서 전개한 관점은 인식론과 정치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모든 종이 다른 종들과 내재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모든 지식과 과학은 일종의 토테미즘이다. 우리 삶과 관련된 모든 지식은 관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자기인식은 언제나 종간 관계에 기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토테미즘과 인간중심주의는 동일한 사유 과정이다. 만일 우리 생명의 일부가 비인간 존재들과 동일함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있는 인간성의 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반대로, 식물이나 동물에게 인간적 특성을 부여할 때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안에 순전히 인간적인 본성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유 과정은 구조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어떠한 종이든 자신 이전에 존재했던 한 종의 변형으로 정의된다면, 특정 종에 대한 모든 지식은 필연적으로 종간 지식일 수밖에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모든 지식은 토테미즘적이다. 다른 생명체에게서 얻지 않은 지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자기인식은 언제나 다른 생명 형태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각각의 생명 형태는 여러 종들의 콜라주이기 때문이다.
코치아는 1976년 이탈리아 페르모에서 태어났다. 피렌체 대학에서 중세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특히 중세철학과 근현대 사상 간 연결을 탐구하는 연구로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도쿄 대학,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뒤셀도르프 대학,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연구 및 강의를 수행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의 예술이론 및 예술사 연구소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출간한 《감각적인 삶》에서 코치아는 감각을 단순히 ‘인지 수단’이 아닌 세계와 존재를 열어주는 장으로 재사유하며 중세 스콜라 철학, 특히 아베로에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참조해 감각과 정신 그리고 존재를 잇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2016년에는 비인간의 감각적 삶이라 할 수 있을 《식물의 삶》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그의 내용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코치아는 식물의 존재 방식은 세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통해 대기를 구성하는 등 생명체의 삶을 가능케 하면서, 세계 자체를 구성한다고 분석한다. 식물은 자신의 존재를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구성하며 뿌리와 잎, 땅과 하늘, 내부와 외부라는 구분을 흐리게 한다. 이러한 식물의 존재 방식을 통해 코치아는 인간과 동물 중심의 철학이 간과해온 존재 방식의 근본 모델, 즉 존재를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 존재로 사유하는 모델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사유 모델을 확장해 이 책 《메타모르포시스》에서 모든 생명이 형태와 경계를 넘어 서로 연결돼 있음을 고찰한다. 이제 그의 연구는 이종 간 사랑, 행성성애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