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가입 · 30권 적독
마르그리트 뒤라스 집필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히로시마 내 사랑』의 첫 장면은 원자 폭탄 투하로 생긴 버섯구름으로 시작되고, 이어서 두 벗은 어깨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 끌어안은 두 어깨는 사랑의 행위에 몰두한 몸인지 죽음으로 향하는 고통에 사로잡힌 몸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이 장면은 작품 내내 독자의 판단을 좌우한다.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그들은 새로 시작되는 사랑과 바로 눈앞에 다가온 이별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개인의 과거와 비극적인 시대의 역사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일본과 프랑스, 히로시마와 느베르, 현재와 과거, 가해자와 피해자,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중첩과 병치가 일어난다.
시나리오 텍스트인 『히로시마 내 사랑』역시 영화 제작을 위한 지문과 영상에서 실제로 발화될 대사가 공존한다. 그러나 준비용 텍스트가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서 영화 개봉 일 년 뒤에 출간까지 이어졌다. 영화의 대중적 성공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텍스트 자체가 충실하게 ‘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대사와 등장인물의 태도를 지시하는 지문뿐만 아니라, 시놉시스와 서문, 그리고 부록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특별한 형태의 문학 작품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롤랑 바르트치즈
롤랑 바르트의 완전한 가르침!
2015년은 롤랑 바르트의 탄생 100주년이며, 또한 다가오는 3월 26일은 그가 사망한 지 정확히 35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대표 인문 출판사 쇠이유SEUIL에서는 일찌감치 그의 유작 강의록을 준비하고 출간하였는데, 바르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했던 강의와 세미나를 엮은 《소설의 준비》가 바로 그것이다.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는 바르트의 《소설의 준비》를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바르트의 빛나는 지성과 삶, 일평생을 관통한 연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유고집이다. ‘소설의 준비: 삶에서 작품으로’와 ‘소설의 준비: 의지로서의 작품’이라는 제목의 강의 2부와 강의와 연계된 세미나 ‘미로의 은유’와 사고로 인해 끝내 마치지 못한 세미나의 텍스트를 수록해 놓았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소설 창작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룬다. 즉, 글쓰기 행위의 산물인 작품이 나올 때까지의 전 과정을 답사하고 있다. 또한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장소,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 사소한 소품 등에 대한 성찰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엘렌 식수치즈
“이 책은 그냥 글쓰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위대한’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Three Steps on the Ladder of Writing)》은 엘렌 식수가 1990년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비판이론연구소가 주최하는 웰렉 도서관 비판이론 강연에서 한 강의를 옮긴 책이다. 엘렌 식수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비시 정권이 알제리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하자마자 프랑스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하는 충격을 경험했고, 알제리 독립을 지지했지만, 독립한 알제리에서 가족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맨몸으로 추방당하는 불행을 겪었다. 엘렌 식수는 나치를 피해 독일을 탈출한 어머니와 스페인과 모로코를 거쳐 알제리에 정착한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출신 아버지 집안의 영향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쓰며 자랐다. 프랑스에서 최연소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파리 제8대학과 유럽에서의 첫 여성학연구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왕성한 지적·사회적 활동을 벌이면서도 어느 집단에서나 유대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삼중의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엘렌 식수는 배제와 금지의 역학에 전방위적으로 저항했다. 공고한 서구의 형이상학적 전통과 언어체계를 고발하고 비판하며 대안적 담론으로써 ‘여성적 글쓰기’를 제안했고, 조어(造語)와 언어유희를 통해 정치적·문학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하며 시와 소설, 희곡 등 분야를 망라한 90권에 가까운 저서를 출간했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에서 엘렌 식수는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작가들을 불러와 위대한 글에 공통되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브라질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러시아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체코 소설가 카프카, 오스트리아 소설가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토마스 베른하르트, 프랑스 소설가 장 주네. 식수는 그 글들의 공통되는 특징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죽음, 꿈, 뿌리로 대표되는 각 부분은 심리적이고 예술적인 심화의 단계를 나타내며, 그 과정에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을 살리는 위대한 글쓰기의 성질을 풍부한 예시로써 드러낸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엘렌 식수의 조화 화음처럼 쏟아지는 텍스트의 향연
엘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한 뒤 줄곧 그 길에 따른 글쓰기를 추구해 왔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서 출발하는 글쓰기로, 논리를 비롯해 우리 인간을 둘러싼 구조와 체계를 무너뜨리거나 그 너머로 날아가 낯설고 강렬한 직관들과 직접 연결되겠다는 결의로 다져져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인간이 서로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언어를 그 이해 바깥으로 끌고 나오며, 그러한 과정을 함께하는 독자들 역시 미지의 세계로 끌고 간다.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식수가 오직 리스펙토르만을 다룬 세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짧은 책 속에서 식수는 스스로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꾼다. 그는 리스펙토르를 받들어 찬미하는 자였다가 리스펙토르를 닮은 무엇이 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권력에 희생당하는 소수자들과 같은 행성에 살고 있는 현대 지식인임을 계속해 자각하고, 비평 훈련을 받은 학자로서 소설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비의에 감화되어 다시금 종교적 열망에 휩싸이고, 그렇게 여러 차례 변환을 거듭하다가 심지어는 ‘우리’로 변하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식수는 자발적으로 계속 형태를 바꾸며 말씀을 전하는 매개체 혹은 전달자가 되며, 이는 유대인인 그의 정신적 뿌리 가운데 하나인 성경에서 성령이 맡았던 역할과 닮았다. 어떤 텍스트에 얼마나 깊이 감화되어야 그 자신을 ‘말씀을 전하는 자’의 근본적 형태, 즉 성령과도 같은 형태로 변환할 수 있을까?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스스로 자신이 주창하는 글쓰기의 전범으로 변신한 ‘글쓴이’가 세상에 전하는 열렬한 복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부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남아프리카의 대가,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는 작가, 우리 시대 가장 과묵한 작가, 존 쿳시
예술로 재탄생한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철학 모든 한계와 형식을 무너뜨린 파격 그 자체의 압도적인 자전소설 3부작
빼어난 우아함과 함축적이면서도 절박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존 쿳시의 삶과 예술
진실을 향해 가기 위해서라면 자신에게마저 가혹할 수 있는 치열함과 성실성, 그리고 윤리성이 그를 독보적인 작가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실과 진리의 구도자다. 정말이지 흔치 않은 작가다. _ 『서머타임』 옮긴이의 말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부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어권 작가’이자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는 작가’ J. M. 쿳시의 자전소설 3부작 세트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소년 시절』 『청년 시절』 『서머타임』은 ‘우리 시대 가장 과묵한 작가’로 불릴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쿳시의 삶과 사랑, 예술, 철학을 잔인할 만큼 솔직한 서술인할 만큼 솔직한 서술, 검소한 동시에 응축되고 폭발적인 문장으로 쏟아낸 회고록이자 소설이다. 이 3부작을 통해 작가 존 쿳시의 삶은 또 한 편의 예술로 재탄생한다.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세 번째 작품이 출간된다. 이번 작품은 탐미 문학의 대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세 차례나 거론된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대표작 《금각사》다. 작품에서는 말더듬이에 추남이라는 콤플렉스를 안은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미조구치가 절대적인 미를 상징하는 ‘금각’에 남다른 애정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섬세하고 유려한 언어로 그려낸다. 미시마 문학 특유의 미의식과 화려한 문체, 치밀한 구성으로 정평이 난 《금각사》는, 1950년에 일어난 실제 방화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쓰인 ‘시사 소설’인 동시에 작가의 내면이 반영된 ‘고백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젊은 시절의 고뇌와 더불어 말년에 극우 사상에 심취하기 전 작가가 거쳤을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간행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금각사》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탐미주의 문학의 걸작이자 소설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제3의 장소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사회학자, 기업가, 도시계획가 등은 물론 도시 거주민에게 영감을 주었고, 도시사회학의 중요한 저작으로 자리 잡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10년 연구가 담긴 도시사회학의 결정판 『제3의 장소』.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으로, 발간 이후 여러 분야에서 도시 환경과 거주민의 삶의 관계를 활발하게 분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제3의 장소는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기능을 한다. 사람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고, 그래서 끊임없이 가정과 학교, 또는 일터 밖에서 다른 교류 활동을 추구한다. 저자는 이를 비공식적 공공생활이라고 칭하고, 여기에 필수적인 요소인 공간을 제3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삶의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이용자는 거의 의식하지는 못했던 장소의 사회적 가치를 발굴해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3개의 부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상적이고 전형적이라 할 수 있는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상과 어떤 장소가 제3의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조건 및 특징을 담는 데 할애했다. 2부에서는 비공식적인 모임이 이루어지는 제3의 장소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3부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다룬다. 이를 통해 주어진 환경에 불편을 느끼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를 거부하는 시민 자신에게 제3의 장소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독창적이려고 애쓰지 마라” 형식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 작가 미국 최고 산문 스타일리스트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 수업
리디아 데이비스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자신이 발명한 문학 형식의 대가” “미국 최고의 산문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집 《불안의 변이》를 보면 시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단편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경계 구분이 모호한 글들이 많다. 그는 자신의 글들을 그냥 ‘이야기’로 불러주길 바라는데, 이 ‘이야기’는 한두 줄 길이의 초단편소설, 질문은 지워진 채 답변만 있는 인터뷰, 항의 편지, 연구 보고서 등 전통적인 단편소설의 형식을 비껴가는, 더 짧고 기이한 형식들을 두루 포함한다. 이런 그의 글쓰기 특징을 두고 소설가 앨리 스미스는 “데이비스는 단 두 줄이나 두 문단 길이의 이야기로도 생각하는 우주 전체를 전달할 수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책 《형식과 영향력》은 독창적이고 대담한 형식, 정밀하게 구축한 문장으로 “기존의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작품을 선보였고, 마침내 그것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범주를 만들어낸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 역사를 보여주는 문학적 자서전이자, 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도로 자기 경험을 투명하게 들려주는 강의록이다. 그는 자신이 매혹되어온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가 어떤 배경과 영향 아래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숨김없이 들려준다.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유지하고, 그것을 “쓰려는 충동”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집요하리만치 순수한 열정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예리하고 방대한 글을 쓰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의 풍요로운 문학적 사유와 아낌없는 조언을 듣는 것은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될 것이다.
“독창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을 갈고닦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공감 능력과 다른 인간 존재들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고, 그런 다음 글을 쓸 때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말하라.” -‘좋은 글쓰기를 위한 30가지 조언’에서, 256쪽
다채로운 형식 시도와 본보기 탐구를 통해 진화하는 글쓰기 좋은 글쓰기를 위한 대가의 아낌없는 조언
리디아 데이비스는 자신이 기존의 형식을 떠나 계속 다른 형식들을 시도했던 건 전통적인 글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글쓰기가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역시나 자기보다 앞서 이런 고민을 한 작가들로부터 힌트를 얻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낱낱이 밝히며 해당 글을 발췌해 구체적으로 논한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 프란츠 카프카, 러셀 에드슨, 그레이스 페일리,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들의 글을 면멸하게 들여다보고, 그 영향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글을 써낼 수 있었는지 소탈하고 진솔하게 설명해준다. 발견한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는지, 한 문장을 끈질지게 고쳐 쓰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창작의 진실은 무엇인지, 문장 구조와 순서 그리고 결말에 대한 생각 등을 생생한 예시와 다양한 레퍼런스로 전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치에 맞는지, 효율적인지, 도덕적인지, 기타 등등을 묻지 않고 그저 본능을 따라간다.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거나 하고 싶어서인데, 아무튼 글쓰기에 있어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 글쓰기는 공개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개인적인 행위로 남아 있다.” -‘한 문장 고쳐 쓰기’에서, 152쪽
우리는 이 책에서 리디아 데이비스가 소설가로서 흥미와 호기심을 느껴왔던 대상들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의 글쓰기에 있어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한다. 창작의 과정과 비밀을 세세하게 공개하는 작가의 대담함과 집요함에 경탄할 수밖에 없는데,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겐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대가의 글쓰기가 궁금하기 그지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맞춤한 특별 수업이 될 것이다. 형식과 영향력에 대한 강의 외에도 자신의 관심사인 “짧은 글” 즉, “단상”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와 해석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좋은 글쓰기 습관을 위한 30가지 조언”은 문학의 대가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글쓰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 값진 조언 하나하나를 잘 소화하여 체화한다면,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점차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치즈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답하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소설을 썼고, 그 작품들이 모두 해당 문학계의 걸작으로 받아들여진 유일무이한 작가다. 두 개의 언어를 문학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그의 재능은 그저 외국어를 잘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각 언어의 특징을 파악하고 거기에 걸맞은 문학성을 창조해 내는 특유의 감수성이야말로 나보코프가 지닌 희귀한 재능이다. ‘작가적 역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재능은 수치화해서 볼 수는 없지만, 독자는 작가가 어떤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따라가 봄으로써 그 남다른 시점과 초인적인 관찰력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에 막 미국으로 건너온 나보코프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모은 이 책에는 바로 그 최고의 재능이 담겨 있다. 뛰어난 문학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또 그 기준에 부합하는 뛰어난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나보코프는 이 주제로 자유롭게 강의를 펼쳐 가고, 독자는 그를 따라가며 ‘교양 문학’의 핵심이자 나보코프가 지닌 천재성의 원천인 ‘문학성’에 대한 고찰에 빠져들게 된다.
망각 저편으로 사라진 어린 시절의 기억!
고향을 잃은 유대인 소년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W. G. 제발트의 장편소설『아우스터리츠』. 2001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 세계적인 극찬을 받으며 전미 비평가 협회상, 브레멘상, '인디펜던트' 외국 소설상 등을 수상하였다. 제발트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지만, 이 소설을 발표한 해에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히틀러가 유럽을 장악했을 때, 유대인 어린아이를 영국으로 피신시키는 구조운동이 일어난다. 네 살이었던 프라하 출신의 아우스터리츠 역시 영국으로 보내진다. 양부모는 그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우스터리츠도 역사를 알고 싶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건축사가가 된 아우스터리츠는 막연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유년 시절을 찾아 나서는데….
이 소설은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의 과거와 부모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나'가 벨기에에서 늙은 건축사가인 아우스터리츠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함께 실린 100여 개의 흑백 사진과 이미지가 생생함을 더해준다. 특히 표지에 있는 사진은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독일어판 원서를 비롯한 모든 번역판에서 표지로 쓰인다.
아리엘 도르프만치즈
세계적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대표 희곡선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 희곡선 〈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은 이 시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 중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칠레의 척박한 현실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문학세계를 보여준다. 이번 희곡선에는 그의 대표작「죽음과 소녀」를 비롯하여「과부들」, 최근작인「경계선 너머」,「죽음과 소녀」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신작「연옥」에 이르기까지 총 네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표제작인「죽음과 소녀」는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고연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엉킨 역사 속에서 명백하고 쉬운 해답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해결과 화해를 단호히 배제하면서 절박한 삶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탐구하게 만든다.「과부들」은 도르프만이 한 가지 주제를 시, 장편소설, 희곡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20여 년 동안 고민한 대작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끈기와 의지, 기다림이 잘 드러나 있다.
신작「경계선 너머」는 한국 공연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으로, 도르프만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연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 경계를 가르는 행위에 담긴 비인간성을 탁월한 블랙코미디 형식에 담았다.「연옥」은 도르프만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모색한 최근작이다. 평범한 대화 속에 신화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도르프만 특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다. [양장본]
서양 미술사와 문학사를 그로테스크의 창으로 들여다보다 다양한 예술 영역과 시대를 포괄하는 그로테스크 연구의 결정판!
그로테스크[grotesque]: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한 말로 15세기 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특정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독일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가 저술한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가장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그로테스크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세계는 핵무기의 시대를 맞듯 그로테스크의 시대를 맞았다”라는 어느 극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거의 그로테스크를 살펴봄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그로테스크한’ 현대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힌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독특한 형태의 장식미술에서 출발해, 플랑드르의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피터르 브뤼헐이 펼쳐 보인 기괴하고 묵시록적인 세계,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와 독일의 질풍노도 드라마에 구현된 그로테스크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로테스크의 확장 양상을 세심히 더듬는다. 이어 그로테스크가 매우 활발히 발현된 낭만주의 시대의 다양한 이론적 토대 및 보나벤투라, 호프만,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 작품과 아르님, 뷔히너의 극작품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의 양상을 면밀히 분석한다. 다음으로는 19세기의 ‘사실주의적’ 그로테스크를 검토한 후, 마지막으로 현대의 그로테스크로 옮겨 간다.
저자는 현대의 연극, 공포소설, 언어유희, 토마스 만의 작품, 서정시, 초현실주의 회화와 그래픽 미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를 살펴봄으로써 다섯 세기에 걸친 그로테스크 예술의 발전 과정과 사례 분석에 마침표를 찍는다.
2020년 타이완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金鼎賞 문학도서부문상, 금전상金典賞 연도백만대상 수상작!
타이완 문단을 대표하는 젊은 거장 천쓰홍의 걸작!
빼어난 이야기 구조가 귀기 어린 세계와 만나 기묘한 충돌을 일으키는데, 이는 오직 소설만이 전할 수 있는 방식이자, 이 소설이 가진 뛰어난 미덕이다. _황인찬(시인)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타이완의 젊은 거장 천쓰홍의 장편 소설 『귀신들의 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한 일가족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아픈 현대사를 담아낸 걸작 『귀신들의 땅』은 타이완에서 가장 큰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으며, 12개 언어로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Tsing, Anna Lowenhaupt치즈
21세기 최전선의 사상가 애나 칭의 대표작 『세계 끝의 버섯』! 국내 처음 소개되는 인류학의 기념비적인 작품. “우리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이 책이 필요하다”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붕괴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죽지 않는 존재, 그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버섯’이 안내하는 불안정한 생존과 이상한 신세계
이 책을 읽기 전에 강한 심장을 준비하라!
루쉰문학상,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옌롄커가 자부하는 최고의 작품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다
“딩씨 마을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의 문명사적 재앙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유
제1회,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중국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성취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이 자음과모음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옌롄커가 자신의 작품들 중 단연 최고라고 자부하는 『딩씨 마을의 꿈』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사서(四書)』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한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져온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이 빚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중국의 한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처참하게 붕괴되는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피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딩씨 마을 전체가 에이즈에 점령당하는 지독한 현실을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결합된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문제작이다.
송효정 · 박희정 · 유해정 · 홍세미 · 홍은전치즈
한 아이가 휠체어에 앉아 나를 향해 다가온다. 서로 지나쳐가는 찰나에 얼핏 본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내 옆의 누군가는 섬짓 놀란 듯 걸음을 재촉한다. 더는 그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나 또한 바쁘게 자리를 옮긴다. 어떻게 그를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화상경험자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권유이다. 그들의 흉터가 불의의 사고로 다쳐서 생긴 것임을, 그들에게는 사고 이전의 자아가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이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중증화상사고를 겪은 일곱 사람이 사고 당시의 기억, 치료 과정, 그리고 그 뒤의 일상을 돌아본 인터뷰집이다. 세월호참사 등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재난을 기록해온 작가 다섯 명이 근 10개월간 병원과 집,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졸데 카림 · 신동화치즈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다! 지금의 발전한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를 무한한 고통에 빠트리는가? 오늘날 사회의 지배 원리가 된 ‘나르시시즘’에 대한 통렬한 분석
철학자 이졸데 카림이 신작 『나르시시즘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시대의 타자 혐오 분석으로 화제를 몰았던 『나와 타자들』 이후 5년 만의 신작으로, 지금 가히 내전 상태라고 할 만한 사회 분열의 근원을 파헤치는 책이다. 폭군에게 자발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 정치인 또는 아이돌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비밀은 ‘나르시시즘’에 있다. 나르시시즘은 오늘날 우리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방식이다. ‘나는 지금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 식단 조절을 시작하든, 환경 보호에 나서든 이러한 자기 향상의 부름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것은 반사회적 원리다.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나르시시즘의 이상을 추구하는 길에서 나는 무한히 고통받으며, 타자들은 나의 성공을 인증할 관객으로 격하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졸데 카림은 나르시시즘이 사회의 지배 원리가 되는 과정을 특유의 놀라운 통찰력과 명료한 논리로 포착한다.
“출발점은 오래된 의아함이다. 왜 우리는 현재 상태에 동의하는가? 현재 상태가 우리에게 이롭든 아니든. 우리는 이따금 투덜댈지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는 주어진 상황에 동의한다. 자발적으로. 이 자발성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 머리말 중에서
사토 토모히사 · 카이 켄지 · 기타노 히사시치즈
이 책은 센다이미디어테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아카이브 플랫폼인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의 활동 기록이다. 센다이미디어테크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소재한 예술 문화 시설 및 평생 학습 기관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하자 같은 해 5월 3일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를 개설했다.
와스렌!은 지진에 관한 기억 및 피해 복구, 부흥 과정을 기록하고 발신하는 플랫폼이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영상·사진·음성·텍스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기록하고 발신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실천과 연결되는 장이다. 또한 완성된 기록을 보존, 전승하여 이를 열람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디지털 아카이브로서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저자들은 와스렌!의 이러한 특징을 ‘풋내기 아카이브’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이 책은 와스렌!의 ‘영상 기록’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에서는 이를 위해 와스렌이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를 공간 설계와 집기 구성 같은 하드웨어 측면부터 스태프의 역할과 태도, 영상 워크숍과 행사 등 소프트웨어 측면까지 상세하게 소개한다. 또한 와스렌! 참여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기록한 영상의 형식과 내용이 어떠한지 등을 스태프와 참여자간 인터뷰를 토대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덧붙여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는 실제 와스렌에서 사용하고 있는 업무 서식을 수록했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개념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 및 도서, 학자, 예술가들 또한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백 년 전 온몸을 던져 치열하고 찬란하게 살았던 아나키스트 이토 노에(伊藤野枝)가 백 년 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마을을 불살라 백치가 되어라" 라고
한국인에게 이토 노에(1895~1923)는 낯설다. 일본 여성해방운동인 우먼리브 운동의 원조이며 여러 논쟁으로 당대의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에는 해방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여성이었고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였다. 1900년대 초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일본은 자유주의를 비롯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사회였다. 국가로써의 일본은 강한 나라를 외치며 제국주의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은 치열하게 국가와는 다른 꿈을 꾸었고 그 실현을 위해 싸웠다. 그 중에서도 ‘무정부주의’라고 불리는 아나키즘은 국가 권력을 비롯한 인간 사이의 모든 권력을 부정하면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상이다. 노에는 파트너이자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大杉?, 1885~1923)와 함께 온몸을 던져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실천했지만, 스물 여덟의 나이에 국가의 개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우리가 왜, 지금 백 년 전에 살았던 ‘여성 아나키스트’의 삶을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노에가 당대를 향해 외쳤던 외침들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도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드는 논쟁거리를 던지고 스스로 그 논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1970년대 중반, 나이 오십을 앞둔 존 버거는 알프스 자락 산악 마을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1972년 비비시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와 동명의 책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같은 해 소설 『G』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미술평론가와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때였다. 전성기를 누리던 사십대의 작가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 세계 역사의 흐름은 금융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고, 오직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계급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될 위기를 감지한 존 버거는 이에 저항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두번째 교육’, ‘나의 대학’이라 불렀던 프랑스 농민 공동체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역사였다. 미술평론가나 작가로 불리기보다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사라져가는 이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사명이었다. 이후 십오 년 동안 이 주제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번역 출간된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Into Their Labours)’는 그 결과물로, 1974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0년에 완성했다. 1부 『끈질긴 땅(Pig Earth)』(1979)은 산악 마을의 전통적인 삶을 묘사하고, 2부 『한때 유로파에서(Once in Europa)』(1987)는 그런 마을의 삶이 사라지고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실향을 그린다. 3부 『라일락과 깃발(Lilac and Flag)』(1990)은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 영원히 정착한 농민들의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유럽 시골 마을과 도시이지만, 몇몇 세세한 면을 제외하고 보면 세계 여러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들에 존재하는 보편적 장소들이다.
“우리가 원할 수밖에 없는 게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어느 것도 타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 타인의 존재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힘껏 경청하고 기꺼이 물어야 한다!
공적 공간에서의 말하기와 듣기, 서사 정체성뿐 아니라 서발턴·이방인·환대에 대해, 나아가 주체의 불투명성과 취약성,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정의와 책임과 연대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듣기의 윤리』는, 저자 김애령이 오래전 만나 관계를 맺어온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언어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시작되었다.
학술적으로는 은유와 서사 정체성 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계속 탐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타자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문제, 곧 듣기의 윤리에 대해 숙고한다. 리쾨르, 아렌트, 데리다, 레비나스, 스피박, 버틀러, 아이리스 매리언 영 등 현대 철학의 핵심적인 사유와 쟁점들을 배경으로, 주체의 불투명성과 인간 실존의 취약성, 그리고 타자(서발턴)의 ‘말할 수 없음’에 대해 고찰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신비로운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_ 김연수(소설가) 몽상과 현실이 뒤섞인 어느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행기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영화의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의 심연 속으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1942~)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이 책은 이 기이한 22일간의 여정 중에 헤어초크가 육필로 남긴 기록을 거의 그대로 담은 것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향했던 이야기를. 『얼음 속을 걷다』는 어디에도 없는 꿈 같은 여행기다. 누군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헤어초크는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몽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이 여행기는 기이하고도 아름답다. 독특한 시선을 지닌 예술영화의 거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닮은 책이다.
“오래전, 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파리에서 죽어가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한 남자가 무작정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게 내가 들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그리고 여기 그 남자가 걸어가는 동안 쓴 책이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죽으면 안 된다”라고,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죽어서는 안 된다”라고. 그렇게 동어반복의 걸음걸이로 그는 8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내게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날이 있었다. 그 이야기 속의 남자처럼 나도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개업을 알리는 고깃집에서 흐르는 음악 소리를 들었고, 화물트럭 기사의 지친 얼굴을 봤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전과 다를 바 없는 이 세계가 어찌나 기이하던지. 그러면서도 또 얼마나 다행이던지. 신비로운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 남자는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결말은 꿈과 같다. 죽음에서 시작해 꿈으로 끝나는 책이다.“
_ 김연수(소설가)
W. G. 제발트치즈
폐허와 상실의 시대를 위로하는 위대한 문학 전세계 작가들이 경의를 표하는 거장 제발트 탄생 75주년 기념 개정판 출간
생전에 단 네권의 소설을 남겼지만 ‘제발디언(Sebaldian)’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한 20세기 말 독일문학의 위대한 거장 W. G. 제발트의 대표작인 『토성의 고리』와 『이민자들』이 작가 탄생 75주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국내에 제발트를 처음으로 소개한 『이민자들』이 출간된 지 11년, 『토성의 고리』가 출간된 지 8년 만이다. 이번 개정판은 한국에도 출간된 『커버』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의 저자이자 세계적 북디자이너 피터 멘델선드가 작업한 New Directions판 제발트 시리즈 표지로 선보인다. 본문 전체를 원문과 다시 대조해 전반적으로 표현들을 다듬고 몇몇 오류를 바로잡아 번역의 엄밀성을 높였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주를 보강하고 외국어 고유명사의 표기법도 새로이 손보았다. 특히 『이민자들』의 경우 흐릿했던 사진들의 화질을 개선하고 크기와 배열도 독일어판 원서에 가깝게 실었다. 더욱 정제된 표지와 본문으로 단장한 이번 개정판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작가를 그리워하는 제발디언들에게는 또 한번의 감동을, 제발트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르몽드』의 평처럼 “제발트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미하라 요시아키 · 와나타베 에리 · 우도사토시 · 고하라 가이 · 닛타 게이코치즈
『문학 ‘읽기’의 방법들 - 문학이론 도구상자』는 ‘읽는 법을 배워 문학과 다시 만나다’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이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문학이론의 기초를 ‘텍스트’ ‘읽다’ ‘언어’ ‘욕망’ ‘세계’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소개하고, 2부에서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휴머니즘, 환경, 정신분석, 젠더와 문학의 관계 등 최신 문학/이론의 구체적 성과물을 소개한다. 이 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이론을 통해 문학의 즐거움으로 흠뻑 적실 물줄기를 발견하는 ‘도구상자’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 기지촌 생활, 미국 이민과 조현병 경험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도 생의 조건과 정신의 고통을 뛰어넘는 존재였던 어머니 ‘군자’의 삶과 영혼을 되살려낸 회고록
1986년. 열다섯 살 되던 해, 그레이스는 세상 가장 중요한 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목도한다. 그 사람은 ‘군자’, 1941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이주해 험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생존자이자, 이 책의 저자 그레이스 M. 조를 낳고 기른 여성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야성미와 카리스마가 넘쳤던 군자, 동포를 보살피고 마을을 먹여 살렸던 그는 어느 날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더니 세상에 문을 닫고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소파에 틀어박혀버렸다. 모든 것을 바꿔버린 군자의 사회적 죽음은 조현병이란 이름으로 찾아왔다. 트라우마를 안고 명문대에 입학해 자유와 지성의 세계에서 학자가 된 그레이스는 ‘군자’로 대표되는 전후 한인 이주여성의 기구한 삶의 궤적과 지독한 병의 뿌리를 연구했다. 그리고 2008년 갑작스레 찾아온 모친의 물리적 죽음 이후, 다시 그 생애를 새롭게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스야, 나 기억나지?’ 군자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자 스스로 침묵을 깨고 이야기가 된 한 생애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리아 투마킨치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선한 교만을 뒤흔드는 논픽션 실험
많은 사람은 누군가와(특히 약자와) 연대하기에 앞서 그를(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그에게 적합한 것을, 즉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이해를 우선하지 않는 연대는 일방적인 호혜에 가깝고, 이는 결국 결례와 오만을 내보이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마리아 투마킨은 그 이해조차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섣부르게 베푸는 호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는 타인을 향한 태도로써 합당하다. 그러나 투마킨에 따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기 만족적인) 환상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일 뿐이다. 게다가 그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타인과의 연대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면서, 수없이 좌절하면서 기어코 계속 시도하는 것.
이 책은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거나 이론화하지 않고 글의 구조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인간 각자의 고통을 통해 부서진 기억들은 이 책 속에서 실제로 부서진 형태로 나타난다. 즉 여러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는다. 두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섞여 등장하기도 하고, 여기에 시간 순서까지 뒤섞여 있다. 심지어 몇몇 에피소드의 조각은 백 페이지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시작한 독자는 ‘그래서 그 얘기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갑자기 나온 이 사람은 누구야’라고 생각하며 당황할 수 있지만, 곧 이런 서술 방식이 한 인간의 내면을 쉽사리 추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디자인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쯤이면 그동안 그러모은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 책 속의 이야기-사건들은 이해되기 전에 구성된다. 혹은 이해를 거부하면서 발생한다. 몇몇 평론가들이 이 책을 읽고 W. G. 제발트를 떠올렸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민중, 그 개념의 실천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엿보다!
『민중 만들기』는 이른바 민중 운동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과 대학생에 관한 책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민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민중에 대해 어떤 논쟁을 벌였으며, 민중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을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다룬다. 민중운동에서 운동권이 가지고 있던 중심적인 문제의식을 ‘역사 주체성의 위기’로 파악하고 이를 짚어본다. 민중운동을 대항 공론장으로 개념화하고, 1980년대 노동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와 지식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미국 내 한국학이라는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폭넓은 독자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반영으로 ‘문화사’라는 접근을 시도했다. 시나 수기,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다양한 팸플릿, 대자보, 회의 문건,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했던 다양한 학술 대회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지식인과 운동권들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민중 프로젝트(민중 운동)를 살펴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핵심 사상을 묘파한 독창적인 연구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비평가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독문학자 윤미애의 연구서 『벤야민과 기억』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20년 출간된 『발터 벤야민과 도시 산책자의 사유』 이후 5년 만에 출간되는 그의 두번째 연구서인 이 책은, 최근 국내에서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벤야민에 대한 논의들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줄 독창적인 연구를 담았다. 전작이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도시에서의 산책과 관찰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벤야민의 핵심 사상을 묘파해내고자 했다. ‘기억’ 모티프는 벤야민의 문예 비평과 역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벤야민이 사용하며 널리 회자된 ‘아우라’ 개념처럼 ‘기억’ 또한 그의 여러 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윤미애는 망각, 무의지적 기억, 원천의 기억, 기억 공간, 변증법적 이미지 등에 관해 벤야민의 여러 가지 텍스트들을 인용하며 충실한 논의를 이어간다. 이 책은 단순히 ‘벤야민 연구’에 그치지 않고, 기억의 방법, 기억의 의미, 기억의 시간, 기억의 매체, 기억의 기능 등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심화시키고자 했다. ‘기억’은 철학, 심리학, 역사학 등 인문학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보 기술학, 문화학 등 사회 전반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광범위한 주제이기도 하다. 엄청난 저장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이미 존재하고, 인공 지능이 인간을 곧 뛰어넘는 사고 영역에 도달하기 직전의 현시대에 인간의 기억 능력은 왜 중요한가? 기억은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어떤 측면에서 우리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혹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가? 『벤야민과 기억』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20세기 전반 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사상을 매개로 찾아보고자 했다.
피식민지 타자의 얼굴을 마주 본 일본
식민지 민족운동의 영향은 문학의 표상 공간에 저항하는 피식민자를 등장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갖는 중요성은 종주국의 문학자들에게 피식민자도 ‘내면’을 갖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3·1운동 이전에 일본의 문학자들에게 식민지 조선인들의 내면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타자는 문명화에 뒤쳐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지적으로 열등하고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이며, 어떤 진보의 욕망도 없는 비개성적인 존재처럼 간주되었다. 민둥산을 배경으로 흰 옷을 입고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주름진 얼굴의 노인의 모습은 바로 망국의 민중을 상징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즉, 그들은 식민지의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다. 그런데 3·1운동을 거치면서 소설 속의 조선인들 가운데 점차 내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1운동을 통해 조선인들은 지배에 순응했던 태도의 이면에 저항의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비가시적 장소로써 조선인의 내면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3·1운동을 일본인이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파악했다. 그는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장소로서 조선인의 내면을 정의했던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나카노 시게하루는 강제추방을 당하는 조선인들의 내면에 천황에 대한 복수심을 부여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식민지적 타자 인식에서 일어난 내면의 발견은 비단 문학 내부의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타자의 내면에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3·1운동과 같은 ‘반란’에 관한 기억과 결합했을 때, 그것은 타자에 대한 항시적인 불안을 식민자의 내면에 발생시켰다. 그런 점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향해 나타났던 일본의 집단적 폭력은 조선인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낳은 우연한 사건으로 처리될 수 없다. 이때의 광기에 가까운 일본인의 폭력은 조선인은 잠재적 위협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심과 3·1운동에 대한 다분히 ‘피해망상적’ 기억이 쌍방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가정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 출신자들의 반항에 대해 일본인들이 품었던 공포는 지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기 동안 식민지적 타자를 바라보는 ‘정치적 무의식’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절묘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뵈며 모더니즘과 국제주의 문학을 선도한 작가이자 현대 영미 문학에서 매우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헨리 제임스의 빼어난 단편을 엮은 작품으로,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시대순으로 나열하자면 비교적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진짜」(1892), 「짝퉁」(1899), 「밀림의 야수」(1903), 「밝은 모퉁이 집」(1909)이 수록돼 있는데, 먼저 「진짜」와 「짝퉁」은 제목 그대로 ‘진짜’와 ‘가짜’의 의미를 되묻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진짜」의 주인공은 비록 돈벌이를 위해 책에 삽화를 그리지만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자 고뇌하는 화가로,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모델들, 즉 고상함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진정한 우아함을 지닌 모나크 부부를 만나면서 혼란에 사로잡힌다. 화가는 소설 속 귀족들을 그리는 데에 완벽히 아름다운 모나크 부부, 이를테면 ‘진짜’인 이들이 도움을 주리라 예단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주인공은 급기야 예술 자체를 회의하기에 이른다.
「짝퉁」은 모파상의 「목걸이」를 거꾸로 뒤집은 작품으로,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진주 목걸이를 둘러싸고 묘한 긴장감과 기막힌 반전이 거듭 이어진다. 표제작 「밀림의 야수」는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주제와 인생관, 고유한 문제의식이 집약된 소설로, 그의 문학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인 뒤늦은 깨달음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밝은 모퉁이 집」은 헨리 제임스가 그동안 다뤄 온 정체성의 충돌과 때늦은 각성, 국제 주제를 원숙하게 통찰해 낸 대표작이다. 주인공 브라이든은 삼십삼 년을 유럽에서 보낸 뒤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는 미국의 팽창적 에너지를 끔찍해하면서도 동시에 이끌린다. 특히 경제적 활기에 매료된 그는 자신이 만약 유럽에 가지 않았더라면, 미국에서 자기 재능을 발휘했더라면 과연 어떤 존재가 되었을지 강박적으로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