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325권 적독
2001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W. G. 제발트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세계 문학계는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이 “기묘하고 불가해한 작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기억의 유령』은 제발트가 1997년부터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의 심층 인터뷰와 유명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책이다.
제발트는 오늘날 어떤 작가보다도 새롭게 글을 썼다. “굽이치며 최면을 거는 듯한 문장은 뒤엉킨 불안뿐 아니라 무기력을 동반한 현대적 감성의 패러다임 그 자체다.” 제발트는 현대 소설에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하여 ‘산문 픽션’이라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고안했다. 그리고 “유령 사냥꾼”이 되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과 그 일의 불가능성을 다루는 데 헌신했다
이 책에서 제발트는 알프스 고산 지대에서 꽁꽁 언 시신과 함께 지내곤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에 불만을 품고 독일을 떠난 이유, ‘산문 픽션’의 탄생, 애완견을 보고 배운 글쓰기 방식,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 조국의 “집단 기억상실”과 기억하는 일의 압도적 중요성을 신랄하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기억의 유령』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상,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금언에 배치되는 “진정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제발트 면모를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