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246권 적독
후쿠시마 료타 · 청육만 · 윤재민 · 정창훈한뉘
2024년은 2014년 홍콩 우산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된 해다. 당시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도 한 저자 청육만은 이 책에 수록된 편지에서 홍콩 현지 문화 번역가라는 역할을 자청해 홍콩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사...
로런 포니에 · 양효실 · 김수영 · 김미라 · 문예지한뉘
자기이론은 기존의 이론(주인 담론/지배 담론) 안에서 오독되거나 이론에 애당초 진입하지 못한 주체들, 즉 여성, 선주민, 유색인, 성소수자,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이 이론과 실천, 예술과 삶을 연결한 글쓰기와 예술 작업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1960년대 이후의 2물결 페미니즘과 교차성 페미니즘, 젠더와 섹슈얼리티, 신체와 연관된 쟁점을 전면화하는 동시대적 흐름 속에서 ‘자기이론’을 위치 짓고 역사화한다.
주디스 버틀러 · 프레데리크 보름스한뉘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픽션의 정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지적 모험의 서사 몫 없는 자들의 말과 글은 어떻게 픽션에 새겨지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바꾸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가 ‘픽션의 정치’를 주제로 쓴 《픽션의 가장자리》가 출간됐다. 보통 문학 용어로 통용되는 ‘픽션’은 실재와 가상,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을 나누는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오랜 철학적 물음이기도 하다. 랑시에르는 특이하게도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픽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한 챕터로 의미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0)라는 랑시에르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적 저작과 마주 서 있는 미학적 작품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가 ‘정치의 감성학’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입구 중 하나였다면, 《픽션의 가장자리》에는 그에 대응하는 ‘미학의 정치’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새겨져 있다. 이 책은 스탕달에서부터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 모파상, 프루스트, 릴케, 에드거 앨런 포, 콘래드, 제발트, 버지니아 울프, 포크너를 거쳐 브라질 현대 작가 주앙 기마랑이스 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 분석을 통해 문학혁명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지 살핀다. 또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극작법을 분석하고, 근대와 현대 픽션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는 누구이고 공통의 세계는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것과 그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들을 살펴보는 데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은 “이와 같은 온갖 모험들을 통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에 대한”(20쪽) 이야기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픽션의 정치’를 통해 어떻게 주체로 등장하고,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크리스토퍼 윌리엄스한뉘
모양, 크기, 비율 등 모든 형태에는 이유가 있다
인류학, 고생물학, 지질학, 구조공학, 역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을 넘나드는 이야기 생물, 무생물, 도구, 구조물, 건축 등 수백여 개의 삽화를 통해 읽는 재미 더해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환경의 형성 과정 그리고 진화를 이해하는 길잡이
시릴 모라나 · 에릭 우댕한뉘
미학을 명백한 탐구의 대상으로 여긴 최초의 철학자 플라톤에서 예술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항한 들뢰즈까지, 약 삼천 년의 서구사상을 지배해온 거장들의 예술과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을 압축한 책이다. 이 책의 가치는 각 철학자들의 미학 이론을 형이상학 이론과 연동시킴으로써 미학사와 서양철학사의 그림을 동시에 그리는 데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디드로, 버크, 칸트, 헤겔, 니체, 베르그송, 알랭, 메를로퐁티, 들뢰즈라는 12명의 철학자는 서양 철학사뿐 아니라, 미학사에서 반드시 연구되어야 하는 핵심적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는 거론된 철학자들의 사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원서에 수록되지 않은 걸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국어판에 추가했다.
프랑스의 대표지성, 앙드레 콩트 스폰빌은 이 책을 두고 ‘정신은 다른 이들이 남긴 흔적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가다 때때로 그 길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것이 곧 철학이다. 치밀하고 명료하며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이 훌륭한 책은 철학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준다’고 평했다.
밸리 기포드 논픽션상(전 새뮤얼 존슨상) 수상작.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저자의 외할아버지 가족에 대한 회고록이자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이 탄생한 뉘른베르크 재판을 둘러싼 국제정치 논픽션, 유대인 학살을 명령한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한 두 변호사의 법정 드라마다.
유대인을 비롯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나치 전범들에게 적용한 '대량 학살'과 '반인륜 범죄'라는 죄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저명한 국제 인권 변호사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인 저자는 2010년 국제법 특강을 위해 우크라이나 리비우를 방문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외할아버지 고향인 리비우에서 '대량 학살'과 '반인륜 범죄'라는 개념이 처음 싹텄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도 몰랐던 외할아버지(유대인)와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접하게 되고, 동시에 리비우대학의 두 법학도가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서 등장하게 될 '인류 정의의 기준'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이 책을 "2중의 탐정소설"로 규정한다. 나치 점령 하의 유럽에서 살았던 유대인 외할아버지의 비밀스런 삶을 추적하는 동시에, 라파엘 렘킨(제노사이드)과 허쉬 라우터파하트(인도에 반하는 죄) 교수의 국제 인권법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개인이 그 자체로 세계가 되는 문화기술지에서 빈곤은 부단한 과정이자 고된 분투로 등장한다”
당연한 의존을 문제 삼고 삶을 끝없는 불안으로 포위하는 빈곤 통치에 가려진 세계와 가능성을 찾아서 -인류학자가 동행한 빈곤의 과정과 확장되는 빈자의 외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빈곤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우선 나와 내 가족의 삶에 달라붙을 수 있다. 배고픈 삶, 전망 없는 삶에서 기어 나오는 공포, 분노, 무력감이 자기비하로, 피붙이에 대한 폭력으로 치닫는다. 쪽방촌, 고시원, 다세대주택, 임대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지척의 가난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 어디 인간뿐인가. 자연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따른 비인간 생명의 아우성은 전염병, 홍수, 산불 등 인간이 포착 가능한 형태로 번역되어 극히 일부분일지언정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인류학자인 내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빈곤을 학술적·실천적 주제로 등장시켜온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여러 현장을 기웃거리면서, 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빈곤을 새롭게 발견하고 쟁점화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무허가 판자촌, 공장지대, 슬럼화된 노동자 거주지 등 빈곤의 전형성이 도드라진 현장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빈곤의 역사성과 관계성에 주목했고, 대학 수업, 이주자들의 공간, 국제개발과 자원봉사 무대처럼 서로 이질적인 현장에서 빈곤이 실존의 불안으로 현상하는 공통성을 포착했다. (…) 인구 다수가 불평등 구조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 다른 한편에선 금융자본주의와 팬데믹을 거치면서 부의 양극화가 가파르게 진행 중인 시대에 빈곤을 긴요한 정치적·윤리적 의제로 소환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_「서문」
그림책을 잘 알고, 제대로 읽고, 골고루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그림책 관련 강의를 꾸준히 이어온 저자가 현장의 요구들에 응답한 책. 그림책에 관한 생생한 질문에 대한 친절한 답변이 담겨 있다. 또한 그림책만의 표현이나 구성상의 특징 등을 친근한 그림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면서, 그림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알려 준다. 이러한 방법들 적용해서 읽기에 좋은 그림책들을 선별하고 소개하기도 한다.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20세기 한국미술의 아름다움
독특한 시각으로 시대의 초상을 그린 한국 근현대작가들. 그들의 작품에 담긴 자연, 인간과 문화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고, 한국인들의 삶의 역사와 환경에 녹아든 한국적 미의식의 보편성을 추출하다.
‘예술’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래리 샤이너의 걸작
예술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일리노이대학교의 철학과 명예교수 래리 샤이너가 『예술의 발명』에서 예술의 기원을 추적한다. 오랜 시간 미술, 문학,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영역을 탐구한 샤이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 즉 현대 순수예술의 체계가 18세기 유럽에서 수공예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예술에 대한 이해 없이 예술과 수공예로 구분되는 기존의 체계를 의심하지 않은 탓에 예술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고, 무엇이든 예술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과 예술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혼재하게 되었다. 샤이너는 예술과 수공예의 경계를 구분 짓는 18세기 이전과 이후의 역사적 맥락에서 예술의 기원을 집요하게 추적해나가며, 16~17세기의 예술과 그 이후 분리된 18세기 이후의 현대 순수예술 체계를 지배하는 규범들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본다. 기존의 예술과 현대 순수예술의 체계의 거리를 좁혀 제3의 예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샤이너는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 개념들을 뒤흔들어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을 보도록 하며,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최샛별 · 김수정한뉘
* ‘햄버거’는 작품이고, ‘케첩’은 작품이 아니다? *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의 작품은 왜 각광받을까? * 인스타그램 속 미술관 사진들의 숨겨진 의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예술은 없다!” 모나리자와 인상파부터 뱅크시와 BTS까지 사회학의 렌즈로 들여다본 ‘걸작’과 ‘취향’의 비밀
아서 단토 · Demetrio Paparoni한뉘
예술의 종말을 고해 미술계와 철학계 모두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철학자, 아서 C. 단토. 그의 주장은 오랜 기간 비틀리고 왜곡되고 오인되어 왔다.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인 데메트리오 파파로니는 단토 생전에 그와 개인적·학문적으로 깊은 우애를 나누었고, 1990년대부터 단토 타계 직전까지 장기간에 걸쳐 동시대 예술에 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단토와 파파로니는 미국의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에서 추상과 차용,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과 중국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의 주제를 논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단토의 사유에서 핵심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동시대 예술의 의미와 미래에 관한 질문들을 낳는 도발적 개념인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로 재차 되돌아간다.
이 책은 두 사람이 풍성한 주제를 아우르며 주고받은 진지한 대화와 서신을 소개하면서 단토의 사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함을 입증하며, 독자로 하여금 단토의 지적 흥분을 몸소 경험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학구적인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때로는 미술가 밈모 팔라디노와 철학자 마리오 페르니올라가 대화에 참여해 토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서론에 해당하는 파파로니의 에세이도 주목할 만한데 이 글은 단순히 보론이라기보다는 1~4장의 대담과 별개로 그 자체로도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에세이로, 단토의 사유를 명료하게 분석해 소개하는 동시에 단토와 파파로니가 서로에게 배운 것은 무엇이고 또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어디인지를 잘 드러내 보여 준다.
야청빛 저녁의 시간,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의 심오한 원천을 탐색하며 현대 프랑스 미학의 지도를 그린다
이 책은 지은이가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철학과, 서울대 미학과에서 했던 강의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이 책의 제목은 랭보의 시 「감각」에 나오는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랭보는 시에서 여름 야청빛 저녁 들판의 한복판에 서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촉감으로 충만하게 차오르는 삶의 기쁨을 찬양하고, 오직 그러한 자연 안에서만 가능한 어떤 것으로서, 저멀리 사랑을 찾아 떠나겠다는 기대와 결심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랭보를 따라 신체의 모드가 전환되는 듯한 시간, 말과 생각의 스위치를 내리고 감각기관만 조용히 열어두고 싶은 욕구가 찾아오는 시간, 바로 ‘야청빛 저녁’의 시간에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의 심오한 원천을 탐색하며 철학과 예술에 대해 사유한다. 이 책은 현대 프랑스 미학의 다양한 이론을 특정한 관점하에 소개하고 배치한다. 그 관점이란 18세기 말에 이미지와 개념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면서 근대 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는 가운데 20세기 현대 프랑스 미학은 그것에 대한 사유와 대답으로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푸코, 메를로퐁티,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들뢰즈, 랑시에르는 이미지와 개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지, 더 나아가 예술과 철학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각자 고유하고도 독특한 입장을 취해 사유를 밀고 나아갔다. 이 책은 현대 프랑스 미학의 개별적인 이론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지도를 그려 보임으로써 예술과 철학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 독자들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프랑스의 알뱅 미셸 출판사에서 출간한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의 Les raisons de l’art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2022)에서 철학자를 그린 예술 작품들의 해석 작업을 통해 서양 철학과 사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선보인 저자의 현대 예술 입문서이다. 예술은 ‘미(아름다움)’에 주된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옹프레는 모든 예술 작품을 하나의 언어로 간주하면서, 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잘 들어맞는 열쇠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1701년)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 있는데,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이 초상화는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8세기 초의 상징들을 아는 만큼 이 초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옹프레의 주장이다. 그런데 현대 예술 작품은 그것을 해석하는 열쇠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현대의 대표적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했던 LGBTQ+ 투쟁, 곧 성소수자를 위한 투쟁에 대해 모른다면 그의 작품 튤립 꽃다발(2019)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옹프레는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옹프레는 예술의 첫 흔적이 발견된 프랑스의 쇼베 동굴 벽화로부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싼 작품을 창작하는 제프 쿤스의 튤립 꽃다발에 이르기까지의 예술 작품들을 생의 도약, 우아함, 진실주의, 교화, 알레고리, 내재성, 유사성, 디오니소스, 반동, 추상화, 개념화, 도상, 스펙터클 등 13개의 코드를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옹프레는 예술사의 시대 구분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 이러한 코드들이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어떻게 의미화되는지를 밝힌다. 옹프레가 제시하는 예술의 이유는 ‘의미’, ‘의미작용’, ‘메시지’이다. 현대에 오면서 예술은 예술 아닌 것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예술에 관한 또 다른 물음들을 들을 수 있다. 예술의 재현의 대상이 되는 실재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현대 미학에서 재현의 한계 문제가 대두되었다. 또한 실재를 둘러싼 사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 실제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의 경계 문제 또한 뜨거운 미학적 논의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예술과 자본, 시장, 투기, 후원자 등의 문제도 언급된다. 옹프레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즉 현대 예술의 ‘애호가’로 칭하며, 절대적 옹호나 절대적 비판 모두를 경계한다. 감상자의 의미 해독 작업에 저항하는 것이 현대 예술이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을 폄하하기보다 그 의미를 알려고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작품은 두 힘을 균형 잡히게 한다. 조형적 형태와 메시지의 힘이 그것이다. 보이는 것은 마음을 사로잡고, 말하는 것은 설득시킨다. … ‘무엇이 말해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말해지는가?’”
옹프레의 전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를 공역한 변광배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옹프레의 독특한 사유와 글쓰기, 실험 정신에 매료된 독자들에게, 예술 작품들을 사진으로 접해 보며 예술과 미학의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고 앞으로 출현할 새로운 예술을 기대하고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카를 브루너한뉘
미란 무엇인가 이것은 인류가 제기해 온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다. 아름답고 싶은 욕망과 아름다운 것을 쟁취하려는 노력은 오랜 기간 우리의 의식과 언어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퇴적되어 문화적 소통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 만큼 미는 단순한 이론적 해명으로 끝나지 않는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 실존적 범주이다. 아름다움은 ‘행복을 약속’하지만 누구나 다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미에 대해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미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막연한 동경과 욕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본문에 인용된 비트겐슈타인의 요구처럼 소기의 목표에 도달하면 우리는 그간 사용했던 사다리를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자기만의 사유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일반 미학서와 다른 이 책이 아무쪼록 독자들에게 미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인식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한뉘
오늘날 민중들이, 그리고 민중들의 재현이 위협받고 있다. 디디-위베르만의 이러한 생각은 이 책의 도입부 첫 번째 도판이 주는 시각적 충격과 함께 개진된다. 역사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얼굴이 찢겨진 익명의 참호전 희생자의 ‘깨진 얼굴’ 초상사진(25쪽 도판)은 이 책이 미술사, 역사철학, 이미지 인류학이 교차하는 사유 지대에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첫 번째 이미지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후 전개되는 다섯 개 장에 걸쳐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즉, 민중들에게 ‘대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 절단된 얼굴 이미지에 대한 응답은 유려한 산문 텍스트로 책을 마무리하는 다섯 번째 장인 에필로그를 통해 이루어진다. 왕빙의 영화 '이름 없는 남자'에서 취한 12장의 스틸 이미지는 민중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를 시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역사에 의해 말소되고 훼손된 민중의 이미지인 첫 번째 도판과, 시적인 형상으로 민중의 존엄성을 재발견한 ‘이름 없는 남자’의 이미지 사이에는 수많은 이미지가 텍스트를 따라 배치된다.
“예술사회학 연구 분야에서 오래전에 나왔어야 할,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며 짜임새 있는 책을 펴낸 것에 대해 잉글리스와 휴슨은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 헬렌 토머스 교수, 런던예술대학 부속 런던패션대학 연구소장
이론에서 실천까지, 예술사회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보는 예술의 사회적 의미
예술이라는 단어를 보고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갤러리에 걸린 그림인가 아니면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인가? 당신이 선호하는 것은 슈워제네거의 영화인가 아니면 발레 공연인가? 이러한 질문들의 답은 우리에 관해 많은 것을 드러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예술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는 그 사회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예술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부차적인 기능만을 수행하는가?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능동적으로 예술 생산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다시 말해 예술을 살펴보는 것은 사회를 살펴보는 탁월한 방식이며, 반대로 사회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애버딘대학의 데이비드 잉글리스와 오타고대학의 존 휴슨이 기획한 이 책은 앨런 스윈지우드, 재닛 스튜어트, 재닛 월프, 폴 윌리스, 헬레나 불프 등 현대 영미 예술사회학을 대표하는 쟁쟁한 이론가들의 글을 한자리에서 탐독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의 사회학적 분석이라는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다루는 이 책은 부르디외의 사상부터 문화연구, 사회학적 미학, 예술사, 페미니즘 이론에 이르기까지 예술사회학을 특징짓는 다양한 이론적 개념들을 소개하고, 이러한 이론을 활용하여 회화, 영화, 오페라, 대중음악, 발레, 도시와 건축 등의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예술사회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논의점을 제공한다.
왜 아름답고, 무엇에 이끌리는가?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등 인간의 신체 매력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통섭하며 분석 ‘아름다움’과 ‘이끌림’의 이해를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본질적 의미 함께 물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컬러 도판으로 소개하며 이해 돕고 읽는 재미 더해
인간의 아름다움에는 비밀이 있을까? 그리고 순간의 이끌림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상적인 비례와 조화로운 대칭 때문에 상대에게 이끌리는 걸까? 아니면 서로의 몸에서 매혹적인 곡선을 발견한 걸까? 특히 여성의 ‘허리-엉덩이’ 비율과 남성의 ‘허리-가슴’ 비율이 최적이어서? 매력적인 몸무게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그리스의 작은 섬 밀로에서 두 팔이 사라진 채 발견된, ‘밀로의 비너스’를 동반자로 삼아 이 오래된 논쟁의 역사·과학·사회·문화적 맥락을 관통하는 여정에 나선다. 이 매혹적인 과정에서 우리는 플라톤에서 미켈란젤로, 루벤스에서 마네, 다윈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 셰익스피어에서 나오미 울프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 역사가와 비평가, 화가와 작가로 이루어진 인상적인 갤러리를 마주하게 된다.
미술평론가이자 미학이론 연구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수미 저자의 벤야민 연구서. 지난 2008년 ‘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술-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그 후 벤야민의 미학 사상에 대한 지속적인 후속 연구와 현장에서의 경험, 오늘날 벤야민 이론탐구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보강하여 이번 책을 펴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학계와 문화계 전반에 명석한 사유와 글쓰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줘 온 그가 보여주는 벤야민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책에서 우리는 벤야민 특유의 잡히지 않는 미학에 대한 일종의 건축학적 묘사와 그것이 시대와 맞물려 변화해온 인간적 진실을 엿볼 수 있다.
자크 랑시에르한뉘
자크 랑시에르는 자신의 정치철학적 주저인 『불화』에서 ‘정치’를 민주주의의 동의어로 이해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미학적 주저라 할 수 있는 『아이스테시스』에서 ‘미학’을 역시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제시한다. 즉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미학은 민주주의 체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부제 ‘미학적 예술체제의 무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무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14개의 무대는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역사적 시기의 주요 예술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통상적으로 ‘모던’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되고 분석되었던 시기의 예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무대’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모더니즘’ 혹은 ‘모더니티’에 대한 기존 담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그 서사는 이 책의 「서곡」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술적 모더니티에 대한 하나의 ‘대항-역사’(contre-histoire)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감상은 미술 작품 앞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심리 행동이다.”
근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그림 감상의 법칙 심리학 실험으로 예술 감상의 비밀을 밝히는 미술 교양서!
예술을 심리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학문인 ‘예술심리학’은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을 실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대에서 약 10년 동안 학부생을 대상으로 예술심리학 강의를 진행한 오성주 교수는 『감상의 심리학』에서 예술심리학의 흥미로운 실험과 결론을 소개하면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뒷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예술심리학은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감이나 광기,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일반 감상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영화를 통해 “다르게 사유하라!”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연 철학자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담고 있다.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중심으로 영화와 인접 영상 예술을 연구해온 철학자 이지영 교수는 이 책에서 들뢰즈를 사다리로 삼아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기어오르고, 올라타고, 사다리를 변형시키고자 한다. 들뢰즈의 영화철학이 사변적인 영화 존재론 내지 아트하우스 영화만을 위한 난해한 미학 이론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삶, 지금보다 생의 생성적, 창조적 역량을 더 상승시킬 수 있는 삶을 사유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통념을 전복하고 ‘다르게 사유’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싶은 사람들 모여라.’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신가요?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디자인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피그마 등 툴에 대한 강의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디자인의 뼈대가 되는 기초 이론은 미대 전공자가 아닌 이상 쉽게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디자인 구구단은 총 9개의 이론(비율, 공간, 균형, 색의 속성, 질감, 형과 형태, 움직임, 율동, 서체)을 통해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분이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감각은 앉아서 강의를 듣고 이론을 이해한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입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이론을 배우고, 직접 작업물을 만들어보면서 무의식적인 감각이 키워지게 됩니다. 디자인 구구단에서는 12년간 실무에서 감각을 키우고 3년간 직접 교육을 하면서 누구나 쉽게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만든 트레이닝 북입니다. 디자인 툴을 다루지 못해도 일상을 관찰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간단한 드로잉 훈련을 통해 디자인 감각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현대미술 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로 현장에서 10여 년 간 활동해온 저자가 그간 한국미술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바를 써내려간 책이다. 제목 ‘가까운 미술’은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다루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국내 현대미술은 한국에서 ‘소외된 장르’였다. 과거의 미술의 영광과, 해외 현대미술의 유명 ‘슈퍼스타’의 명성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가 없었다.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좋은’ 작가들과, 현대미술 현장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꼬인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고자 한다. 이 책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장과 비평,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 K-아트의 정체성, 한국 현대미술의 세대간 차이점, 한국의 공공미술, AI 시대의 현대미술 등의 챕터별 이슈로 저자의 발언을 무겁거나 어렵지 않은 에세이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신진작가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바탕으로, ‘예술가로 살아남기’ 전략에 대해서도 말미에 언급한다.
오프라 윈프리한뉘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오프라 윈프리의 자전적 에세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출간 10주년 기념 증보판 한미 동시 출간 개정판 서문, 에세이 ‘마음 씀(Caring)’ 추가
〈타임〉 선정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오프라 윈프리의 자전적 에세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 출간 10주년을 맞이해 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오프라 윈프리가 영화 평론가 진 시스켈에게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1988년부터 14년 동안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O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했고, 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진 그녀의 사유를 한데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기쁨, 회생력, 교감, 감사, 가능성, 경외, 명확함, 힘을 나 자신을 사랑하며 보다 윤택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털어놓으며 출간 후 10년간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왔다. 출간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증보판에는 새로운 서문과 함께 ‘마음 씀’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더 추가했다. 평범한 일상을 기적으로 변모시키는 이 아홉 가지 키워드는 다시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만만하게, 단단하게, 간략하게! 한 권으로 흐름을 꿰뚫는 철학의 역사
역사 분야 최고 스테디셀러 저자 박영규가 완성한 ‘신박한 정리’ 시리즈 철학 편 마침내 출간!
300만 밀리언셀러 저자 박영규가 당신의 생존력을 높이는 최소한의 철학 지식 《동서양 철학 신박한 정리》를 펴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태동부터 포스트구조주의까지, 유학의 탄생부터 양명학까지, 탈레스와 소크라테스, 노자와 공자부터 칸트와 헤겔, 쇼펜하우어와 니체,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까지! 시대와 인물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점으로 동서양의 주요 사상을 정립한 철학자의 생애는 물론 꼭 알아야 할 사상의 기본 개념과 대표 저작, 등장 배경을 간단명료하고 일목요연하게 압축했다. 쇼펜하우어만 읽어본 독자도, 니체만 아는 독자도, 윤리와 철학 공부가 처음인 청소년과 배웠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성인 모두 수천 년 철학사를 단숨에 통달할 수 있다.
서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지식인’의 글을 떠올린다. 적어도 책을 쓴 저자만큼은 ‘글밥’을 먹고,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이 인정할 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형식을 갖춰 쓴 글이라야 서평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많다. 이 책은 ‘서평가’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던 시절부터 서평가로 활동해 온 경험 많은 서평가의 책이다. 저자는 적어도 서평에 대해서는 아무도 글 쓴 사람의 자격을 묻지 않기에 누구나 서평가가 될 수 있고, 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형식이 어떻든 전부 서평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서평가가 많아져야 책 세계가 넓어지고 튼튼해지기에 책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한 발만 더 나아가 서평을 쓰고 서평가가 되어 보자고 제안한다. 그의 말처럼 서평가가 많아질수록 책 세계는 풍성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서평의 벽을 너무 높게 설정해 두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벽을 허물고, 서평가가 되어 보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을 ‘서평의 세계’로 초대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마르크스, 베유, 랑시에르까지 철학의 숲에서 만나는 사유의 모험가들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듯, 필로소포스(philosophos)는 지혜에 끌려 지혜를 찾는 자를 뜻한다. 지혜를 찾아가는 길은 많지만, 철학의 숲으로 난 길이야말로 지혜를 찾는 자에게 가장 친숙한 길이다.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동서양 철학의 기둥이 된 고전부터 21세기 사유의 최전선에 선 사상가들의 저서까지 76권을 통해 철학의 숲을 답사한다. 그 숲길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홉스, 마르크스, 베버, 아렌트, 푸코, 베유, 에스포지토, 그리고 붓다와 수운과 만해 같은 정신의 모험가들과 조우한다. “철학의 숲에서 만나는 이들은 다 사유의 친구다. 친구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궁금해 못 견딜 것 같으면 조심스레 물어본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를 서둘러 기록한 것들의 모음, 이것도 작은 사유의 숲일지 모른다. 숲은 숲을 키운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미학자본주의와 정동자본주의라고! - 무엇이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와 21세기의 미학자본주의를 구분하는가? - 미학자본주의와 정동자본주의는 어떻게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21세기의 노동 · 경제 · 문화 · 개인의 삶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가?
21세기 자본주의의 영웅은 스티브 잡스 또는 일론 머스크이다. 그러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자본주의 하면, 우리는 그것에 비판적인 마르크스 그리고 그것의 내적 동력학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려는 막스 베버나 창조적 파괴혁신의 슘페터와 관련해서만 자본주의를 논해왔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 경제를 주도한 미국 경제의 부상과 관련해 ‘경제학’보다는 ‘경영학’이 자본주의를 둘러싼 담론을 주도해왔다. 그리고 그 담론의 특징을 21세기의 스티브 잡스 식의 ‘천재’ 자본주의와 관련해 준별하자면, 창조성에 대한 상이한 태도를 가장 좋은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텍스트 ‘우생학’
지금-여기 우리가 우생학을 다시 살펴야만 하는 이유
프랜시스 골튼의 과학적 유산으로 시작된 우생학은 20세기 내내 인류 사회를 휘감은 가장 위험한 사유 방식이었다. 단비의 신간『우생학: 배제, 차별 그리고 혐오의 역사』는 고대 철학부터 현대 생명 과학까지 이어지는 우생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이 이념이 어떻게 인종, 성, 장애, 계급, 노동 등 인간 실존의 조건에 폭력적으로 개입해왔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역사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지금-여기’ ‘우리 안의 우생학’을 살피는 밑거름이 되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체화되었을 수 있는 우생학의 원리와 구분 짓기에 예민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김호연 교수는 ‘우월함’과 ‘완전성’에 대한 열망으로 트랜스 휴머니즘, 포스트 휴먼, 생명 자본주의, 그리고 디지털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우생학적 욕망과 구조를 직시하며, 우리 안에 내면화된 ‘정상성’의 기준을 성찰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 이강국한뉘
“늑대의 자유는 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자칭 ‘자유의 수호자’들은 어떻게 자유를 억압해 왔는가?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자유
오늘날 ‘자유’라는 가치는 인권과 평등의 문제를 넘어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전장이 되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 불편한 진실에 정면으로 맞서, 자유 담론이 어떻게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우파가 자유라는 개념을 교묘히 독점하고 왜곡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시장 근본주의의 폭거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소수 특권층의 자유만이 비대해진 반면, 사회 전체의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은 전례 없이 심화되었다. 『자유의 길』은 이러한 흐름이 과연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어떤 경제 시스템이 시민 다수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인생을 바꾸는 철학이 여기에 있다! 현대사상의 진수를 담은 궁극의 철학 입문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이자, 21세기 일본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받는 지바 마사야의 신간 『현대사상 입문(現代思想入門)』이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19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출간 즉시 일본 학계가 극찬하고, ‘신서대상 2023’ 대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이번 신간에서 저자는 독자를 ‘인생을 바꾸는 현대사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현대사상의 대표자로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를 꼽으며, 프랑스 현대사상에서 ‘차이의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 준 세 사람을 중심으로 현대사상의 진수를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차이의 철학을 방법론적으로 가장 예리하게 드러낸 데리다를 필두로 현대사상 입문의 방향성을 잡고, ‘탈구축’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 “지금 왜 현대사상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강렬하게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현대사상 입문서인 동시에, 현대사상의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데 다양한 참고점을 제시한다. 현대사상의 ‘원류’(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현대사상과 ‘정신분석’의 관계(라캉, 르장드르),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21세기 현대사상 경향, 사변적 실재론)를 소개하며, 현대사상 이후의 최근 움직임까지도 종합적으로 전망한 유일한 ‘연구서’이자, 현대사상 전반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며 일상에서의 현대사상 적용 가능성을 제시한 획기적 ‘대중서’로도 평가받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현대사상을 ‘읽는 법’을 설명하고, 현대사상을 ‘만드는 법’(새로운 현대사상가가 되는 스킬) 또한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이 책으로만 멈추지 않고 현대사상 입문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용기를 북돋는다.
노자, 공자, 장자, 맹자, 성리학, 한비자, 불교 한 권으로 개념 잡는 동양철학
공자, 맹자, 장자, 한비자 등 동양 철학자들의 이름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고 실천한 사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친해질 엄두조차 못 내기 때문이다. 《미치게 친절한 동양철학》은 유가, 도가, 법가, 성리학, 불교까지 동아시아를 지탱해 온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담았다. 동양철학이 서양철학과 뚜렷하게 다른 점은 바로 삶의 해법들을 현실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욕심을 내려놓게 이끈다. 공자와 맹자의 ‘유가’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역량, 즉 사회적 길을 제시한다. 한비자의 ‘법가’는 조직 운영 원리를 선보인다. 철학적 종교 ‘불교’에는 고통의 원인을 찾고 해법을 밝히는 논리적 사유가 담겼다. 이 책은 동아시아의 정신을 구성해왔던 동양철학을 구체적 사례와 문헌을 바탕으로 친절히 설명, 맥락을 짚을 수 있게 이끈다. 동양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도록 돕는 한편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살펴보는 데 길잡이가 되어준다.
Evans, Nicholas한뉘
“지난 십 년간 나온 사라진 언어에 관한 모든 책 중에서 지적으로 가장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책”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ㆍ 사라져가는 언어를 각인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왜 중요한가 ㆍ 언어 다양성 회복을 위해 현장에 뛰어든 한 언어학자의 고군분투! ㆍ 출간 후 언어학계와 인류학계를 비롯, 다양한 인문학/사회과학 저널의 극찬을 받다 ㆍ 존폐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세한 지도, 도표, 사진 수록
2010년 12월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 레드북 홈페이지’에 제주어가 인도의 코로어와 함께 ‘소멸 위기 언어’로 등재되었다.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기준한 소멸 위기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규정되었는데, 이는 마지막 5단계인 ‘소멸하는 언어’ 바로 직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표준어’라는 규범 속에 각 지방의 방언들은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희화화 대상이 되거나 주요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제주어가 처한 상황은 사람에게 생명이 있듯 언어에도 생명이 있고,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데 인간의 관심이 필요함을 역설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비단 한 나라의 상황이 이럴진대 세계로 그 범위를 넓힌다면 어떨까? 이번에 번역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원제: Dying Words)는 세계 속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단순한 해외 토픽감으로 스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제기한 문제작이다. 즉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언어가 생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언어 다양성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기술하고 사유하는 한 언어학자의 탐사보고서다.
개와 고양이를 진정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길들여진 동물의 윤리를 철학적으로 조명한 첫 번째 책
반려동물은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반려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반려자에게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보호라는 명분 아래 영구적인 의존을 강요하거나, 주인의 목적대로 품종을 ‘개량’하거나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런 사례다. 이때 애정은 지배 또는 착취와 구분되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에게 쏟아지는 애정이 때로 보호라는 이름으로 동물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길들여진 동물이 맺을 수 있는 진정한 윤리적 관계는 무엇일까?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은 길들여진 동물에 대한 윤리를 철학적으로 조명한 첫 번째 책이다. 애완동물을 태어나게 해도 되는지의 문제, 고양이를 놓아길러야 할지, 가두어 길러야 할지의 문제, 선택적 교배, 개 식용과 동물 시민권 논쟁까지, 길들여진 동물의 윤리에 관한 뜨거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다. ‘길들인다는 것은 책임지는 일’이라는 『어린 왕자』의 문장을 되새기며, 우리가 이 책임을 회피해온 것은 아닌가를 되묻는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윤리를 포괄적으로 다시 묻는 동물 윤리 철학의 결정판이다.
혼돈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힘 ‘부근의 소실’에 슬퍼하며 생활을 어루만지는 ‘방법으로서의 자기’
이 책은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여러 대화자를 만나면서 ‘자기’라는 네트워크를 부단히 세공하는 동안, 독자 역시 이 시대의 여러 모순에 대해, 중국에 대해, 나아가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이해의 밀도를 높이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_ 조문영 교수 추천사
인류학자 샹뱌오가 자신의 삶과 연구를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가 출간되었다. 독일의 『디차이트』는 최근 옥스퍼드대학 교수직에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샹뱌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스타 인류학자”이자 “중국의 새로운 사상가”라고 소개했다.
한 사회학자가 30년간 연구한 차별과 차별받는 이들의 감정 “우리의 감정은 거대하면서도 치밀한 그 차가운 구조와 맞물려 있다”
구조와 감정은 하나다
근래 몇 년 사이 젊은 세대에서는 ‘기분부전증’이나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언급하며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증가했다. 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무기력은 대개 차별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지만, 그것과의 정확한 연결 고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 진보시킨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 것은 불평등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개인들은 끊임없이 재능을 갈고닦아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구조’와 ‘감정’을 한 쌍으로 삼는다. 불평등한 구조가 가령 자기혐오나 죽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 구조를 파헤치며 감정을 살피자고 제안한다. 사회학에서는 감정에도 ‘규칙’이 있다고 본다. 어떤 감정 규칙에 따르면 직원이 고용주나 회사에 화를 내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다. 다른 감정 규칙에 따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가 정당한 감정을 느낄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감정 규칙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차별을 당연시하며 영속시키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살펴보고, 차별받는 사람의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 사실 많은 사람은 자기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까지 나가지도 못한다. 개인의 감정을 지배하는 환경은 거대하고 치밀해 분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손쉽게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자신에게 귀착시켜 현재 상태에 만족하거나, 체념하거나,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출로를 마련하는 이들이 꽤 있다. 저자는 사회의 거시 구조 자체가 인간의 정서적 역량의 산물이므로, 감정을 통해 차별을 생산/재생산하는 거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해보자고 한다. 노동자, 빈부격차 문제를 30여 년간 폭넓게 연구한 저자는 현장에서 노사 간 분쟁과 타결에 이론적·실천적 개입을 해왔을 뿐 아니라, 20년 전 『유리천장 깨뜨리기』를 집필하며 여성 문제에도 일찍이 주목했고, 현장에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담는 글을 써왔다. 그동안 차별에 대한 학술적 성과는 누적돼왔지만, 차별받은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유급 노동자와 무급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자와 장시간 노동자, 대학생과 청소노동자, 유리천장에 거의 다가간 여성과 저임금에 머무는 여성, 직장 여성과 그 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나이 든 돌보미 여성, 자신의 외모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한도를 2000만 원까지 높여둔 신용카드 두 장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청년, 자신을 쓸모없는 노인이라 여겨 자살을 고려하는 나이 든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구조를 명쾌하게 분석해낸다. 매 순간 세밀하게 조율되는 이들의 감정은 사회 구조만큼이나 깊고 넓다. 구조에 꼼짝없이 붙들린 감정을 직면하고 그것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걷어내야 하는 것은 구조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 구조의 은폐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올바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너지는 마음과 사회적 효율
사회학 분야에서 마이클 해먼드와 앨리 혹실드는 일찍이 감정의 중요성에 주목해왔다. 해먼드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적 자원은 한정돼 있어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대상을 계속 확장하면 우리 몸이 거부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관계가 많아지고, 불평등한 관계의 취약한 고리인 성별과 연령 등에 따른 차별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보자. 좁은 땅덩어리에서 촘촘한 관계망을 가진 한국인 사이에서는 미세한 차이만 있어도 차별과 불평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혹실드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관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우리는 늘 ‘감정 작업emotion work’을 하는데, 이는 불쾌하고 힘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뿐 아니라 느낌 자체를 만들어내고 고양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감정 작업은 특히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더 많이 일어난다. 저자는 해먼드나 혹실드의 연구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개개인이 겪는 차별을 서사화한다. ‘체념’ ‘적응’ ‘혐오’가 이들의 주요 감정이다. 체념은 현재 가장 첨예한 이슈인 ‘능력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험 서열주의로 바꿔 부를 수 있는 능력주의는 언뜻 효율적일 것 같지만, 저자는 “극심한 낭비를 초래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 더욱이 능력 있는 이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생산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는데, 요즘 아예 일자리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청년 비율의 증가가 이를 보여준다. 저자는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과 시험에 들이는 엄청난 자원의 낭비를 하지 않고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빠져나와 다 같이 사교육을 자제한다면 서열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모의 노후 자금과 자녀의 행복을 소모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고정관념과 달리, 이 관점에서는 평등이 불평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회 전체의 효율은 다른 사안에서도 핵심 잣대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효율’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대립되는 두 의견이 모두 ‘공정’을 이유로 내세울 때 저자는 전체의 효율과 사회의 가치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인천공항에서 수백 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다년간의 경력을 보유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것은 새 인력 충원에 드는 비용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경쟁 완화를 원하고 있다면 방향성도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동시에 공개 채용 원칙을 어기게 된 것에 대한 양해와 대안은 모색되어야 한다). 두 가지 권리가 부딪치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2022년 여름 연세대 학생들은 청소·경비노동자의 학내 집회를 학습권 침해 사유로 형사소송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대법원은 노동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노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 시야를 제시한다. 즉 생애 기간 전체로 확대해서 보면, 학습권은 대학 재학 때 한정해서 학생의 미래를 보호해주지만, 노동권은 이후 전 생애에 걸쳐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다. 따라서 이 사안에 관한 한 우리 대부분은 학생의 권리보다는 노동자의 권리를 우선해서 볼 여지가 있다. 이 책은 찬반을 낳는 현재 이슈들을 단순히 이념적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실용적이고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우리가 흔히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대안(주 4일제, 기본소득 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강점이다.
애완을 넘어 반려와 공생의 관계로 들어선 인간과 동물,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동물을 물건으로 본다
2023년 4월 27일, 11년 만에 전면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1991년 제정된 이후 이제껏 2007년과 2011년 두 번의 전면 개정을 거쳤지만, 증가하는 반려동물 양육 인구와 높아지는 국민들의 동물권 의식을 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에 ‘곁에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대상으로서의 동물이 아닌 ‘짝’ 그 자체가 된 동물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갈수록 잔혹해지는 동물 학대 범죄를 엄벌하기 위해 국회가 적극적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책 『물건이 아니다』는 변호사가 된 2012년부터 곧바로 ‘동물권 변호사’를 자처한 저자 박주연이 새로워진 동물보호법의 조항들을 분석ㆍ설명하고, 그렇게 파악한 법을 통해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동물권 현주소를 담고 있다. 그는 기존 법이 엄벌하지 못했던 동물 학대 행위자의 잔혹함과 보호자의 태만, 또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동물의 권리를 꼬집으며, 개정된 법이 가진 가치와 기대되는 실효를 우리 앞에 펼쳐서 보여준다. 동시에 선진국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법에도 담기지 못한 ‘동물이 행복할 권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로써 책은 동물과 인간의 ‘다음 챕터’를 제시하는 일종의 가이드가 되고자 한다.
베이징 한복판에 형성된 원저우 상인 집거지 ‘저장촌浙江村’ 한 줌의 불법 매대에 불과했던 장소가 10만 명의 공동체로 탄생하기까지 그 사회학·인류학적 생활사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6년간 저장촌에서 직접 생활하고 20년을 추적 관찰한 끝에 탄생한 도시사회의 변화 동학을 통찰해낸 사회학·인류학 명저
벤저민R. 타이텔바움한뉘
가장 근거리에서 영혼까지 들여다보고 담아낸 극우파와 대안우파에 대한 기록 인류학자의 집요한 인터뷰가 극우 논리의 의식적 패턴을 밝혀내다 심도 있는 분석과 르포 정신이 빛나는 책
벤저민 타이텔바움의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은 두 명의 거물급 인물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오늘날 급부상하는 전통주의·우파 포퓰리즘의 사상지도를 그려낸 인류학적 르포르타주다. 이 책이 쓰인 과정은 비밀공작을 방불케 했다. 저자는 녹음기를 들고 럭셔리한 호텔에 드나들면서 암호를 대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위험하고도 비밀스러운 사상을 지닌 두 사람은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마주 앉자 저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저자를 의심할 법도 한데 특별한 방어 기제도 없이 자기 사상, 기획, 비전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콜로라도대학 민족음악학 교수로 인류학자이자 극우 정치 전문 연구자다. 그가 콜로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과 워싱턴 DC로 날아가 만난 사람은 스티브 배넌이다. 바로 트럼프 선거 캠페인의 수석 전략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푸틴의 배후 사상가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저자는 연구 대상을 만나 묻는다. “당신은 전통주의자인가요?” 전통주의Traditionalism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중세의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는 사상적 흐름으로 18~19세기에 태동해 100여 년간 지하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온 철학적·영적 입장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반이민주의적 내셔널리즘과 결합해 이데올로기적 급진주의로 흐르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것을 쫓는다. 학자이지만 그는 곳곳에 연락책을 두고 있다. 여러 인맥을 통해 1년 넘게 공들인 결과 배넌과의 첫 인터뷰를 따낼 수 있었다. 두긴은 저자가 다년간 유럽 급진 극우파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를 하면서 쌓은 인맥으로 만날 수 있었다. 북유럽 음악을 연구했더니 이들이 극우파와 연이 닿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엔 전통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때마침 세계는 극우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콘이자 핵심 권력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미국의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에게서도 전통주의의 낌새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잘 듣는 귀를 가졌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원이다. 잘 듣는다 함은 상대에게 공감해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능력으로 미국과 러시아를 움직이는 두 거물의 머릿속 생각을 캐내, 전 지구적 극우 포퓰리즘의 반란을 작동시키고 있는 협력관계를 밝혀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한분영 · 페테르 묄레르 · 제인 마이달 · 황미정한뉘
“끔찍한 닮은꼴이 여럿 출현했다”
오인된 정체성, 다중 위기, 구조적 실패,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탐구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빈틈없이 혼합해낸 역작 현대의 결정적인 이정표!
극우파 탐구에서 자폐스펙트럼까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완전히 재고하게 만드는 책
이 책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진보 진영의 의제를 개발하고 이를 힘 있게 밀어붙이는 일관된 경력을 쌓아왔다. 가령 기후정의 조직인 더리프의 공동 설립자이며, 수년 전 버니 샌더스 미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도 활약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험담하는 것을 들었다. ‘월가를 점거하라’ 시위가 정점에 달한 2011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너도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거 봤어?” “아니 글쎄, 오늘 행진이 어떻다나.” “누가 자기한테 물어봤대? 우리가 뭘 요구하는 건지도 잘 모르면서 참 나.” 이런 험담은 그날로 끝난 게 아니고 그 후 10여 년간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을 도배했다. 사실 그들이 가리키는 인물은 나오미 클라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비판하려던 것은 또 다른 유명 인사 나오미 울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나오미나 이 나오미나 똑같은 사람이라 여겼다. 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신과 혼동되는 도플갱어가 출현하자 저자는 점점 더 피폐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겪은 일을 수많은 각도로 분석해 『도플갱어』를 썼다. 나오미 클라인은 세계적인 슈퍼 브랜드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의 이면을 해부한 데뷔작 『노 로고』로 100만 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고, 재난을 기회로 공공 영역을 민영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경고장 『쇼크 독트린』을 펴내 세계적인 참여 지식인이 되었다. 그녀와 퍼스트 네임이 같은 나오미 울프 역시 『아름다움의 신화』를 써서 여성에게 부과된 가혹한 미의 기준을 폭로함으로써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울프는 미용 산업의 폐해를 들추며 섹스와 젊은 여성들의 쾌락에 대해 대담한 논의를 펼쳤고, 여성 리더십 연구 기관 설립에 관여하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유대인인 데다 흔치 않은 ‘나오미’라는 이름을 가졌고 폭넓은 사회 활동을 했지만, 둘은 매우 달랐다. 클라인은 3세대 좌파에 속하는 인물인 반면, 울프는 자유주의자이자 엘리트 여성으로서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은 둘을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고, AI의 자동완성 기능 역시 둘을 혼동했으며, SNS 팔로어들 역시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저자 클라인의 주변에는 늘 울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SNS에 들어가면 거울세계 맞은편에 늘 울프가 자리해 있었다. 문제는 팬데믹 전후로 울프가 정치적 입장을 바꿔 극우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고, SNS를 하면서 난데없이 클라인을 태그했으며, 어느덧 온라인상에서 둘의 정체성은 더 단단히 결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저자 나오미 클라인이 나오미 울프와 혼동되는 사적인 도플갱어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내용이 전개될수록 극우파 탐구, 팬데믹 기간의 백신 오보와 웰니스 산업과의 관련성, 자폐스펙트럼을 앓는 저자의 아들과 나치 시대 장애인 소거 전략을 연결하는 고찰, 같은 진영끼리 치고받는 좌파에 대한 반성, 취소문화로 인해 눈엣가시인 인물이 사라졌다고 기뻐하는 좌파의 한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유대인의 치명적인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양극단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놓고 대립하는 현대의 모든 사안을 아울러 광폭의 관점과 분석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의 저서 가운데 가장 성찰적이고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추천사에서 “나오미 클라인은 우리가 처해 있는 순간을 완전히 재고하도록 하는 책을 10년마다 한 권씩 내놓는다”고 말했는데, 『도플갱어』에서 저자가 한 이슈에서 다른 이슈로 도약하며 기존 사안을 달리 보는 방식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즉 전혀 예상 못 한 주제가 뒤이어 나오는데, 그건 우리 개개인이 사실상 자신이 혐오하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의 모습을 닮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정치 진영이 상대 진영보다 낫다고 여기지만 실상 자기 인식의 한계에 갇힌 것일 뿐임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좌파가 어떻게 저항의 언어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고, 더 넓은 형태의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놓쳤는지를 고찰한다.
버리고, 싸우고, 마침내 되찾기까지 국가 폭력의 장막을 찢는 날카로운 기록
2012년 6월 미국 국경에서 생후 15일 된 한국 아기가 보호자 미동반 외국인 아동으로 분류되며 난민아동수용소에 보내질 위험에 처한다. 옆에는 아기를 입양할 것이라고 말하며 서툰 글씨로 작성된 친모의 입양 동의서를 들이미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아기는 90일 단기 체류가 허가되는 비자를 발급받았을 뿐이다.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명백한 불법 이송, 자칫하면 인신매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제입양이라는 미명하에 불거진 이 사건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증언으로 마침내 기록되었다. 아기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명명된 ‘SK 사건’은 국가가 불법 국제입양 아동을 되찾은 유일한 사례이자 당시로서 60여 년간 지속되어왔던 관행과 제도를 뒤흔든 이례적인 사건이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근무하던 저자는 스테판 욘손의 말처럼 ‘한 눈으로는 냉정하게 과거를 바라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사건에 휘말린 목격자’를 자청한다.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곳을 조명하고 납작 엎드려 귀 기울이는 일은 범상하고 만연한 폭력을 주춤거리게 한다. 아기를 되찾는 여정에 최후의 보루로 연루되었던 저자의 이 르포르타주를 따라가다보면 국가 폭력의 장막이 한 겹씩 벗겨지고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미혼모 시설에 거주하던 십대의 친모, 입양을 종용한 시설장, 배후에서 활약한 브로커 김 목사, 모든 사건의 발단인 엉터리 자문을 한 변호사. 완벽하게 짜맞춰진 퍼즐 위로 부조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를 눈감을 수 없게 했던 미심쩍음과 가책의 정동은 지금 우리에게도 진실의 폭풍 속으로 함께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국제입양으로 포장된 구원의 서사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해야만 이 책이 이끄는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해는 미국과 한국 모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축을 벌였으며 특히 오바마 대통령 대선 캠페인의 이민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점화됐다. 정치권부터 각종 언론의 이목이 SK 사건에 쏠렸다. 주 전장은 일리노이주 법원이다. 미 연방정부의 국토안보부와 국무부를 대리하는 법무부 연방 검사, 한국 정부의 변호사와 보건복지부 공무원, 양부모 측에서 선임한 변호인단이 법정을 채웠다. 아동의 신병을 책임질 후견권을 놓고 당사자로 호명된 양국의 주요 부처들은 각자의 법리를 펼쳤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법무부 부장검사가 이 와중에도 직급을 운운하며 물정 모르는 법리 검토서를 보내왔고, 여성가족부는 사건의 직접 조사를 미루며 발 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따라서 이곳이 마지막 전선이다. 저자가 목격한 모든 정황과 진술은 한국이 국제입양을 관할하는 사법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은 물론, 해묵은 악습 속에 이뤄진 방관 그리고 이익을 따진 계산들로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의제가 레토릭에 그쳐왔음을 폭로한다. 한국 국제입양의 주소는 국민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법정에 불려와야 할 첫 번째 피고인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음이 자명해진다. 불법 입양을 시도한 미국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SK를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구하는 것이라고, 어차피 한국은 아기를 고아원으로 보낼 것 아니냐고. 대한민국에 대한 강력한 불신과 그와 같은 혐의 제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곧이어 밝혀진다. SK를 입양하려던 그 또한 수십 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며 그의 첫딸도 같은 기관으로부터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은 법정을 충격에 빠뜨린다. 입양 당사자라는 것이 SK 불법 입양 시도에 면죄부가 되진 않지만, 그의 눈빛에서 저자는 SK를 되찾겠다는 국가의 당위를 수렁에 빠뜨리는 이 나라 역사에 대한 냉소를 읽는다. 국민을 버리며 재난을 자처했던 국가가 과연 두 눈을 부릅뜬 당사자 앞에서도 스스로 아기의 보호 당국이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국제입양이라는 국가 폭력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질문이 발화되는 순간이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 어째서 이 같은 일은 반복될 수 있었는가. 궁극적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김이삭 · 남유하 · 배명은 · 사마란 · 서계수한뉘
오늘날 한국 장르문학의 주목받는 작가 10인이 ‘한국형 호러’의 세계를 다시 쓰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여성 호러 단편선’이라는 부제와 함께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공포 서사를 꾀한다. 늘 살해당하고, 억울하게 귀신이 되어 원한을 호소하고, 사건의 실마리로 전락할 뿐인 여성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뒤엎는다. 그간 공포 문학이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나 소름 끼치다 못해 거북해지는 묘사 등에 의존해왔다면, 여러 장르적 특색이 조화롭게 뭉친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앞으로의 공포 문학이 고심해야 할 방향성이 아닐까. 각자의 개성이 톡톡 튀는 10편의 작품이 우리를 더욱 다채로운 호러의 세계로 안내하리라 기대해본다.
“난초의 생장을 돕는 곰팡이·썩은 나뭇가지와 낙엽, 흙과 버무려진 미생물들· 만개한 산딸나무의 꽃·꽃가루를 옮기는 동물들…”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의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를 일깨우는 다정한 기록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의 저자 신혜우가 신작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신비로운 그림과 섬세한 글로 식물에 관한 정보와 식물에게 배운 따뜻한 삶의 지혜를 들려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원으로 지내며 매일을 걸었던 메릴랜드 숲속의 사계절, 열두 달 식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5년 런던 린네 학회 질 스미시스상을 수상한 작가의 그림으로 화려하게 디자인된 사계절 식물 도안도 만나볼 수 있다. 질 스미시스상은 식물의 과학적인 식별을 돕기 위한 그림을 그린 작가 중 우수성을 인정받은 식물학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매우 권위 있는 상으로, 이번 수상은 한국인으로서 최초다. 저자는 과거에도 1년간 메릴랜드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타지에서의 너무도 외롭고 괴로운 생활에 관한 것뿐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4년 만에 다시 도착한 메릴랜드에서 저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숲을 마주하게 됐다. 그때부터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무작정 숲속을 걸었다. 이 책은 그 숲에서 만난 식물들과의 소통의 기록이다. 학자의 눈에 비친 숲 그리고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 울림이 남다르다. 이 책을 추천한 김금희 작가의 말처럼, 그는 “나무가 불필요한 잎과 꽃을 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과정들을 아는 이이며, 눈이 소복이 내리면 식물들은 안온한 보호 속에 내일을 위한 발돋움을 준비한다는 현상 이면의 진실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를 일깨우는 다정한 기록이자, 상냥한 안내자”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중국과 마주하는 법에 관한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조문영,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과 중국의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지리적 중간물’ 김유익이 통찰한 반대하고 싶은 중국 연대하고 싶은 중국
혐중 정서가 만연한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많은 전문가가 수교 이후 단연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각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 방향으로 설정하는 추세지만 한국만은 글로벌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 영향으로 외교, 경제, 국방,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에게 한중 관계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인사이트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의 저자인 김유익은 중국에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하남석 교수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이어 주는 ‘역사적 중간물’ 루쉰처럼 김유익 또한 중국과 한국을 이어 주는 ‘지리적 중간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매개자가 아니다. 중국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며 두 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와 모순을 성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결 전문가’답게 중국에서 일상을 살면서, 동시에 한국과 부단히 접속하면서 마주한 인물, 매체, 사건을 다채롭게 엮고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혐중을 통찰하고 청년과 세대, 대중문화, 농촌과 도시화, 법과 통치, 홍콩 시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쟁점을 다루었다.(조문영, 연세대학교 교수) 또 애국주의와 정치적 ‘중화 민족 만들기’, 허무한 강국몽, 검열과 탄압에 몰두하며 폐쇄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 사회와 역사적 맥락, 그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했다.(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추상적이고 왜곡된 거대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중국과 그 속의 ‘생활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저자의 코디네이팅은 중국과 중국인을 보다 제대로 알고 그들과의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환경운동가이자 저서 《아무튼, 비건》으로 한국 독서시장에 비거니즘 물결을 일으킨 작가 김한민이 생태·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첫 칼럼집 《탈인간 선언》을 선보인다. “세계의 절망을 목격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냉소와 포기만이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시인 김선오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는 이 절멸의 시대를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약 3년간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 ‘탈인간’을 바탕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새로 덧붙이면서 이 책을 엮었다.
생태·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적 가치와 관습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 절멸 대신 공생으로 나아갈 것을 호소한다. 1부 ‘기후위기, 인류세의 끝에서’에서는 생태·기후위기의 실상을 진단하고, 2부 ‘탈인간중심주의’에서 생태적 파국을 불러온 인간적 가치와 관습들을 비판한다. 마지막 3부 ‘환상, 그 너머로’에서 탈인간중심주의와 교차주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포기와 낙담 대신 책임과 변화를 택하는 힘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그간 기후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인간 편리의 관점 혹은 윤리적 차원에서 말해졌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첨예한 문장으로, ‘인간’의 영역을 기꺼이 허물고 종을 초월한 연결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생태·기후위기에 대한 관점을 확장시키고 기존의 담론을 넘어선다.
허윤 · 손희정 · 이민주 · 김애라 · 김수아 · 이지은 · 임소연 · 권현지 · 황세원 · 노가빈 · 고민지 · 장인하 · 김미현 · 김혜경 · 엄혜진 · 김보명 · 김주희 · 신경아 · 한국여성학회한뉘
가상·기술·현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 사회 공간이 새롭게 구성되며 여성을 향한 혐오·폭력의 범주는 확장되고 방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디지털 시대, 기술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이에 대한 ‘온...
역대 최연소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장 이관후 교수 신간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압축 소멸을 선택했나? 소멸을 앞둔 시한부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대한민국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는 이제 낯설지 않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생과 자살률, 인구 절벽과 초고령화 사회 진입,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등에 더해 기후 재난, 전쟁 위협, 에너지·산업 전환 등 지정학적 문제들이 중첩된 복합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소멸의 ‘속도’다. 과거 우리는 최빈국이자 약소국으로 분단과 전쟁까지 겪었지만 이내 초고속으로 문명적 근대화, 경제적 산업화,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원동력이었던 발전주의, 성장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개인주의, 개발주의가 이제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압축 성장’의 결과로 ‘압축 소멸’을 맞게 된 것이다. 나라 자체가 소멸할 위기 앞에서 우리는 꽤 둔감하다. 사회학자 엄기호 교수의 지적처럼 ‘소멸에 대한 감각이 소멸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대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외면한 채 담담히 최후를 기다려야 할까? 격변으로 인해 사회가 어려울 때, 제도를 만들고 고치고 운영하는 기술인 ‘정치’가 파멸을 막는 장치로서 작동해야 한다. 정치학자로서 국회와 정부에서 이론 현장과 실무 현장을 풍부하게 경험한 이관후 교수는 ‘사회의 소멸에는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 우리 사회가 소멸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먼저 소멸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16쪽)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가 소멸을 극복할 고민과 대안은커녕 당장의 사회적 갈등이나 재난조차 해결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우리는 국가 부재 상태에서 무관심과 무능으로 일관하는 정치를 보고 있다. 과연 정치 소멸과 국가 소멸이라는 양대 위기를 어떻게 막아 내야 할까? 저자는 ‘벼락 발전한 것은 벼락 소멸하기 마련’이라는 자조를 단호하게 배척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국내외 상황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분석해 이 책에 담았다. 절망을 부추기는 대신 희망을 찾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해법 모색은 소멸을 앞둔 시한부 대한민국에 매우 귀중한 인사이트를 선사할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도 최애 디저트가 있었다! 시대와 삶, 눈물과 '로맨쓰'로 빚어진 8가지 단맛
'식민지'와 '디저트'.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끼니를 해결하기조차 힘겨웠던 식민지 조선에 디저트, 간식이라니. 그런데 어쩌랴, 그때도 사람들의 최애 디저트가 존재한 게 사실이니. 국내 유일 음식문학연구자로 전작 《경성 맛집 산책》에서 경성의 번화가를 수놓은 외식 풍경과 그 위로 드리운 식민의 그늘을 쫓았던 박현수 교수가 이번에는 당대의 여덟 가지 디저트를 조명한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로 돌아왔다. '힝기레밍그레'하지만 묘한 매력으로 마음을 끈 커피, 고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팔았던 만주, 작가 이상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어 한 멜론, 얼굴보다 커다래 끼니로도 든든했던 호떡, 조선 최초의 탄산음료 라무네, 그때도 이미 연인들의 과자였던 초콜릿, 겨울밤 구수한 냄새로 발길을 붙든 군고구마, 써억써억 얼음 가는 소리만으로도 더위를 가시게 한 빙수…. 배고프고 고단했던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여덟 가지 간식을 통해 그때 그 풍경 속 웃음과 눈물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먹는다'는 행위의 다채로운 의미를 온전히 되짚어본다. 맛집과 카페가 즐비하고 먹방이 무분별한 요즘, 100년 전 이 땅에 도착한 단맛에 섞인 역사와 삶, 비극과 낭만을 두루 살펴보는 깊고 달콤한 교양서다.
“화법 자체가 주제다”
영화 비평가 유운성의 신간 『물듦: 상호감염의 미학』은 자유간접화법을 단순한 기법이 아닌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으로 탐색하는 책이다.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던 자유간접화법이라는 개념을 영화와 미술, 그리고 여러 폭넓은 예술 실천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새로운 방법이 도출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파졸리니의 논의와 그의 영화, 그리고 발렌틴 볼로쉬노프와 질 들뢰즈의 논의를 넘나들면서 기존의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을 넘어서는 자유간접화법적 주체성을 제안한다. 자유간접화법의 예술은 특정한 형식이나 기법이 아니라 작가적 태도이며, 단순한 창작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세계와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주체성의 양식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기록과 허구를 구분하는 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자유간접화법적 주체성은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작품의 한 부분이 아니라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구성적 혹은 탈구성적 힘으로 기능한다. 또한, 저자는 창작과 수용의 과정에서 상호감염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자유간접화법이 작동할 수 있음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동원의 다큐멘터리와 구파수 륜호이의 〈소리굴다리〉 같은 영화를 예로 들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는 이들 작품을 통해 영화적 형상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조정되며, 과거와 현재의 언어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화적 주체성이 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저자는 파졸리니의 논의를 빌려 종래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미래의 언어를 미메시스하려 들면서도 정작 과거와 현재의 언어는 부정했던 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AI 시대의 경향을 선도하는 예술 작품들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영화라는 ‘구식’의 제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AI 시대의 기술산업적 논리를 자신의 표현적 세계로 래디컬하게 전유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리굴다리〉는 오늘날 보편화된 ‘디스플레이’라는 장소를 배회하며 ‘상호감염’의 주체성을 웅변하는 예시적 작품이 된다. 책의 말미에는 「아카이브, 혹은 자기기술 시대의 미학」, 「예술을 둘러싼 불안」, 「김동원에 대한 두 개의 강의」 등 저자의 기존 강연과 발표문이 부록으로 수록되었다. 본문과 상호작용하는 이 글들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 개념을 사유할 실마리를 제공하며 저자의 다음 여정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듦-상호감염의 미학』은 단순한 영화 이론서가 아니다. 자유간접화법적 주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예술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며,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도전적인 비평서이다.
‘일하다 다치고 병든 이들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해온 기록노동자 희정이 이번엔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세계에 노동자로, 기록자로 선다. 직업병과 산업재해로 사라져간 사람들과 매해 치솟는 자살률, 거듭되는 참사 소식, 혼자 죽을 가능성을 걱정하게 된 비혼·비출산 가구의 증가로 우리 사회 ‘죽음’ 문제에 주목하게 된 저자는 타인의 죽음을 ‘관음’하는 마음을 경계하며 장례 노동자가 되기로 한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염습실에서 직접 고인을 마주하고, 의전관리사, 시신 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각 분야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점차 산업화되어가는 장례 문화와 다변화된 가족 구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장례 제도를 경유해 이 시대의 죽음과 애도 문제를 탐구한다. 나아가 한국과 사뭇 다른 타국의 장례 문화와 ‘생전장례식’ ‘공영장례’ ‘여성 노동자가 이끄는 장례’ 등 국내에서 시도된 색다른 장례도 살펴본다. 우리 사회가 죽음과 애도를 대해온 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장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장례업 노동자 개인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의 마지막 의례에서 고인이 소외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지 등의 이야기를 장례 노동자와 예비 사별자, 예비 고인의 시점을 오가며 풀어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철학과에서 「들뢰즈 철학에서 시간의 종합과 영화」로 석사 학위를, 「들뢰즈와 칸트: 들뢰즈 철학의 형성에서 칸트 삼비판서의 역할」로 박사 학위를 받은 강선형 저자의 박사 논문을 책으로 엮었다.
질 들뢰즈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가장 저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들뢰즈 사상에 대한 뿌리를 이해하고 그의 철학 내부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은 국내에 많지 않다. 이 책은 들뢰즈 철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차이’라는 개념의 뿌리가 칸트의 철학에서 왔음을 사유하고, 그 속에서 들뢰즈 철학의 전반과 여러 개념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민승남한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쓴 마지막 작품이다. 작가 본인의 삶 가운데 일부를 떼어 내 형상화한 두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둘은 기존의 작품들에 등장한 (리스펙토르를 닮은) 인물들에 비해 작가로부터 아...
Richard Rushton · Gary Bettinson한뉘
현대 영화이론에 대한 주요 논쟁을 다루면서, 1960년대 이후 영화 이론가들과 영화 철학자들이 제기했던 주요 이론적 개념, 시각, 전통 등 중심 쟁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런 이슈들에 대한 단계적 접근은 독자를 영화이론의 중심 토픽 속으로 인도한다.
이 책은 구조주의와 기호학 논의로 시작해서 정신분석, 페미니즘, ‘스크린’ 이론, 문화연구를 두루 섭렵한 후 ‘포스트이론’, 인지주의, 역사적 시학, 그리고 관객연구와 ‘어트랙션 시네마’와 같은 최근의 발전방향까지 검토한다.
주요 이론의 분석은 [사랑은 비를 타고], [수색자], [만사형통], [조스], [똑바로 살아라], [브로크백 마운틴],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등 특정 영화들에 대한 자세하고 광범위한 사례연구로 뒷받침된다. 이들은 영화 제작 스틸 사진들과 함께 제시된다.
전혜은한뉘
한국에 나온 퀴어 관련 개론서 대부분이 동성애에서부터 운동의 역사를 그리거나 LGBT 범주의 순서대로 각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어, 퀴어 이론의 지형 전반과 논쟁 흐름을 개괄하고 퀴어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텍스트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여 이 책은 지형 전반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핵심 쟁점 위주로 퀴어 이론을 정리하는 한편, 퀴어 이론의 방대함과 다채로움을 독자들이 맛볼 수 있게끔 구성하였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퀴어 이론을 구축해온 굵직한 학자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어렵고 복잡하게 꼬인 논의를 명확하고도 비교적 쉽게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퀴어 이론에 관심 있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이 책은 퀴어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대표적 사안을 소개하고 퀴어 이론이 대중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생겨난 오해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답하고자 했다. 셋째, 이 책은 단순히 외국의 퀴어 이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퀴어 운동과 공명하고 현재의 담론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 논의를 정리하여 한국의 퀴어들이 일상적 투쟁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이론적 도구를 공급하고자 노력하였다. 마지막으로, 감히 교과서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안내서로 기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기획했다.
멜리사 지라 그랜트한뉘
전직 성노동자이자 현직 저널리스트가 직접 성매매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성과 노동을 둘러싼 국내외적으로 첨예한 논쟁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저서다. 저자는 인신매매와 성노동을 구분하지 않고 성노동을 인신매매 담론 안에 두고 정책을 입안할 때 그것이 어떻게 성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낳는지를 캄보디아와 미국 등의 사례를 오가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한국 사회의 성노동/매매 논의에 큰 도움을 준다.
‘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그들이 단지 ‘창녀’로 낙인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음지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와 시선, 경찰력을 위시한 사회적 폭력성을 생생히 보여준다. 일찍이 여성학자 정희진은 “성노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중노동이며 위험한 노동이고 죽을 수도 있는 노동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성노동은 외딴섬에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오래전부터 들어와 정치/경제/사회문제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성노동의 문제를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성노동자의 시각에서 다룬 이 책은 그들이 처한 문제를 좀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자고 한다. 더불어 성노동자만이 아니라 타인과 약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함께 문제해결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몰리 스미스 · 주노 맥한뉘
루인 · 한채윤한뉘
우리, 퀴어의 눈으로 역사를 읽자!
고조선 시대부터 어제 같은 오늘까지 역사 속 퀴어의 흔적을 찾는 365개 이야기 잊힌 역사 속 숨겨져 있는 목소리를 우리 역사의 퀴어한 순간들을 따라가는 특별한 여정
더글러스 크림프한뉘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은 미술비평가이자 퀴어 운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쓴 16편의 글을 모은 책 Melancholia and Moralism: Essays on AIDS and Queer Politics (2002)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에 묶인 크림프의 글들은 미국 에이즈 운동에 대한 비판적 연대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에이즈 위기에 대한 대응과 반응 속에서 부상한 ‘퀴어’와 관련하여 이론과 운동을 이어주는 연결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에이즈 아카이브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 책에서 크림프는 미술작품과 영상, 사진, 도서 등 여러 매체의 에이즈 재현을 비판적으로 살피며 에이즈와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 주류의 비난과 에이즈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투쟁이 쇠퇴하고 동성결혼을 위한 운동을 중심에 두며 주류 도덕을 내면화한 퀴어 정치학을 동시에 비판한다.
“이 책은 몸을 향한 모든 편견을 부서뜨린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 몸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인간의 탄생부터 성형, 타투, 거식증, 섹스, 죽음까지 우리 몸 구석구석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생을 향한 질문들
이 책은 인류의 몸이 언제부터 강력한 물적 자본으로 부상했는지 살펴보고, 사회적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얼굴, 성형, 살집,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피부, 허기와 식인(카니발리즘), 죽음, 부활 등 인간의 몸 이야기에는 인류가 겪은 억압과 권력, 극복의 서사가 모두 담겨 있다. 독자들은 몸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교묘한 협상, 폭력적인 착취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인류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들을 이해하고, 오늘날 다층적인 사회상과 얽히고설킨 문제의식들을 공유할 것이다.
권보드래 · 심진경 · 장영은 · 류진희 · 이혜령한뉘
이제는 ‘페미니스트 감수성’을 갖춘 새 세대 문학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은 2017년 2월,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어 매회 10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참여해 열띤 호응을 보냈던 강좌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의 기획 의도이자 목적은 페미니즘적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학을 다시 읽는 일이었다.
강좌가 끝난 후 출간을 요청하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강연자로 참여한 열 명의 연구자를 비롯하여 세 명의 연구자가 새롭게 필자로 참여하여 펴낸 이 책은 바로 지금, 오랫동안 뚝심 있게 ‘페미니즘 프리즘’으로 한국문학사를 검토해 온 소장, 신진 여성연구자들이 1910년대~2010년대 한국문학사의 주요 마디를 점검하면서 한국문학(사)의 성별을 우아하고 거침없이 묻는다.
모두 3부로 나누어 묶인 열세 편의 글들이 지닌 문제의식과 관심사는 근대문학, 신여성, 사회주의, 해방, ‘위안부’, 교양, 전쟁, 남성성, 진보, 독재, 민주화 등으로 모두 다르지만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공통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를 통해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일, 그것은 전부 페미니스트가 해야 할 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칼 야스퍼스한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 부정의와 비참 앞에 놓인 ‘인간의 죄와 책임’을 논하다.
『죄의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정치적으로 예민한 국면에서 국가폭력과 관계된 인간 군상들의 죄와 책임을 성찰한 정치철학서이다.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내면의 목소리를 깨운 것은 ‘홀로코스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쟁과 잔혹행위에 대한 독일의 정치적 책임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국가폭력이 자행된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의 져야 할 책임을 가리는 준거 틀을 제시한다.
야스퍼스는 법학과 의학, 철학을 섭렵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범죄국가에서 태어난 죄로 독일의 보통 시민이 져야 할 죄가 무엇인지 4가지로 나눠 이야기한다. 법적인 죄, 정치적인 죄, 도덕적인 죄, 형이상학적 죄이다. 이는 또 크게 개인적 죄와 집단적 죄로 나누는데 야스퍼스가 펼쳐 보이는 다체로운 죄 개념을 우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유하고 구사해야 할지 좋은 정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권미선한뉘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요 저작을 다시 만나다! 잘못된 번역어를 바로잡고 용어를 통일한 ‘셀렉션 시리즈’
2017년 1월 9일, 91세 일기로 별세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들은 수년간, 국내에도 바우만의 인기를 입증하듯이 경쟁적으로 번역되었다. 그 책들에는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 《리퀴드 러브》처럼 그의 이른바 ‘액체 근대’ 연작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바우만이 쓴 특유의 개념인 ‘liquid’를 ‘액체’, ‘유동하는’ 등으로 달리 번역해왔고, 번역하기가 어려웠는지 그냥 ‘리퀴드’로 쓴 책들도 있다. 바우만은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인 ‘solid’의 상대 개념으로 ‘liquid’를 썼는데, 전자를 ‘고체’로 후자를 ‘액체’로 번역하기도 해, 바우만의 대표작 중 하나인 《Liquid Modernity》(2000)는 《액체 근대》라는 제목을 달고 2009년 국내에 번역되었다. 바우만은 오늘날의 문화를 ‘liquid modern world’라고 칭하며 그 중요한 특징으로 그려낸 학자로 유명하다.
이렇게 바우만의 중요 개념인 ‘liquid modern’에서 ‘liquid’를 ‘액체’ 혹은 ‘유동하는’으로 번역하는 것도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modern’을 근대로 옮기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2013년 바우만의 책 《유행의 시대(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를 출간한 오월의봄 출판사는 책의 보도자료에서 “바우만의 ‘모던’이 근대를 가리키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바우만은 ‘modernity’의 두 국면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그 올바른 역어가 ‘현대성’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근대’라는 역어는 그 단어가 ‘현대성’의 첫 번째 국면을 가리킬 때만 올바른 단어다. 그리고 그 현대성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세상이 유동적(liquid)이지 않고 견고(solid)했다. 따라서 ‘유동하는’ 또는 ‘액체’라는 표현은 절대로 ‘근대’라는 단어를 꾸미는 말이 될 수 없다. ‘근대(近代)’라는 말이 바우만의 의도대로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시민사회가 성립한 17~18세기 이후 시대’를 지칭하는 표현인 한.”이라고 밝히며 기존에 잘못된 번역어를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동녘출판사에서 이번에 출간하는 는 이렇게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바우만의 중요개념을 바우만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들과 논의를 거쳐 일관성 있게 통일했다. 논란이 되어온 ‘liquid modern’을 이 시리즈에서도 ‘유동하는 현대’로 번역했다. 또한 오역을 바로잡고 용어를 통일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바우만의 중요 저작이지만 국내에 절판된 바우만의 책들[《새로운 빈곤(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 등을 새롭게 번역하고, 더불어 번역의 문제점 등이 제기되어온 동녘에서 출간한 바우만의 책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44 Letters from the Liquid Modern World)》] 등을 새롭게 번역하거나 보완해서 재출간할 계획이다.
생의 무참한 무의미함 앞에서 그것을 감당하며 이겨내게 하는 절절한 각성의 아포리즘!
시오랑은 진정한 역량을 지닌 오늘날의 저술가들 중에 가장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 수전 손택
김정란 시인의 번역으로 새롭게 읽는 에밀 시오랑의 대표작! 197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유럽 독서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도 열렬한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시대를 이어가며 읽혔던 에밀 시오랑의 대표작 『태어났음의 불편함(De l’inconv?nient d’?tre n?) 』이 김정란 시인의 번역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 『내 생일날의 고독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이전의 판본과는 다르게 원래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 번역자인 김정란 시인은 에밀 시오랑의 독특한 프랑스어 구사법과 우리말과의 간극을 메우며 또는 드러내면서, 세상에 ‘던져진’ 우리 존재에 대한 그의 육성에 가까운 아포리즘적 절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세계에 대한 혐오감만으로 거룩함을 얻는 것이라면, 나는 별 수 없이 성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차별의 막대한 비용을 분석하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리
- 사회는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 인재를 놓치고 있는가? -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기업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는가? - 국가가 성소수자 혐오로 인해 감당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2020년 6월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후 계류된 지 꼭 4년이 지났다.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년 넘게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 바깥에서는 아직 39개국이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며 11개국은 동성 성관계를 사형에 처한다고 한다. 각국의 정책 결정권자들, 기업의 의사 결정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설득할 길은 없을까? 인권이라는 가치와 평등이라는 사상에 반하지 않고서도 강력한 지지의 근거가 되어줄 무언가가 없을까?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덜어줄 직접적인 대안이다. 30년 이상 LGBT와 경제학을 엮어 탐구한 저자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면 실질적인 이득이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일견 이해타산적이기만 한 접근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방대한 양의 통계와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경험을 접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성소수자를 위한 ‘경제적 논리’는 오히려 정치와 경제 분야의 결정권자들에게 인권이라는 이상을 제시할 견고하고 새로운 사고 틀이다. 저자가 다년간 축적한 자료는 차별의 비용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막심했음을 보여준다. 차별을 멈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구적인 경기 침체’를 겪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결정권자들에게 그 계산서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성소수자 지지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니컬러스 에번스 · 김기혁 · 호정은한뉘
존폐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 세계 속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단순한 해외 토픽감으로 스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제기한 문제작이다. 즉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언어가 생존한다는 것이 ...
에세이라는 형식을 깊고 다채롭게 탐구하는 책. 조이스 캐럴 오츠, 올리비아 랭, 존 밴빌 등이 칭송한 작가 브라이언 딜런의 대표작으로, 위대한 에세이스트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그 다양한 곁을 들여다보고 글에 깃든 여러 속성을 재탐색한다. 딜런은 에세이즘의 본질이 단순히 에세이를 실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에세이의 모험성, 불완전성, 미완성성 등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본다. 그에게 에세이란 위험과 안정이라는 두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문학 형식이다.
오늘날 에세이는 미래를 지향하는 오랜 양식이자 전통과 실험 사이에 놓인 미묘한 장르가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에세이의 내력과 가능성, 불가해성을 세심히 살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문학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느 순간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고찰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의 에세이를 논할 때에도, 본인의 우울증과 에세이 간의 관계를 돌아볼 때에도, 딜런은 마치 만화경을 조립하듯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유분방하게 결합해 가며 새로운 에세이즘을 창조해 낸다.
비인간 지구행성의 맥락에서 이 책의 내용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들뢰즈 철학에서 지구행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의 차이 철학을 왜 비인간주의로 읽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이것은 최근의 철학적 흐름 속에서 들뢰즈가 차지하는 위상을 확인하면서, 그의 철학적 지향점 자체가 비인간주의를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2장은 『차이와 반복』 이전의 시기를 다룬다. 『경험주의와 주체성』 이후 약 15년의 시간 동안 들뢰즈는 철학사에서 자신의 아군을 확보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행로를 결정하고 거기에 걸맞은 방법까지 마련했다. 그 수확물이 바로 『차이와 반복』이다.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들뢰즈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거기서는 왜 들뢰즈에게 있어서 지구행성과 비인간이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3장은 『차이와 반복』을 다룬다.
“정치,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알아야 덜 흔들리니까, 누구의 편도 아닌 나를 위한 공부
계엄, 탄핵부터 헌법, 정당, 국회, 참정권까지 꼭 알아야 할 필수 정치상식 가이드!
2024년 12월 3일, 한 번도 직접 듣거나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정치사뿐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지하철 요금 인상, 최저시급 동결, 주 4일제 시범 도입, 일회용 컵보증금제 시행 등등 정치는 일상의 순간순간,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누군가 당신의 삶을 대신 결정하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최소한의 정치공부》에는 우리의 소중한 일상과 경제적인 주권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정치상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가장 쉽게 읽히는 정치 입문서다. 계엄, 탄핵부터 헌법, 정당, 국회 참정권까지 균형 있게 고루 다뤘다. 단순히 과거 정치사를 나열식으로 설명하기 보단 생물처럼 움직이는 정치 트렌드와 변화양상을 입체적으로 담아 풀어낸 것 특징이다. 추동훈 저자가 정치부 소속 기자일 때 수많은 국회의원, 보좌관, 당직자, 국회사무처 공무원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쌓은 정보와, 다양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특히나 이념 간 온도차가 크고 양극단의 정치가 일상화된 요즘, 객관적이고도 쉬운 정치 입문서를 찾고 있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1930년대 초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
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 문학 거장들의 대표작은 물론 추리, 환상,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소설에 국한하지 않고 시, 기행, 기록문학, 인문학 저작 등을 망라하였다.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번역을 선보이고, 상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더했다. 또한 낱장이 떨어지지 않는 정통 사철 방식을 사용하고,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양장 제책으로 만들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맥인 존 스타인벡의 첫 정치 소설 『의심스러운 싸움』. 발간 즉시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게 하였던 문제작으로 1930년대 대공황기 캘리포니아 농장 지대의 파업을 극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냈다. 우연히 부랑죄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짐. 그리고 그에게 파업 선동의 기술과 일선 공작을 가르쳐주는 골수 공산당원 맥. 이 두 사람은 떠돌이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을 일으킨다. 각자의 삶의 조건을 내걸고 시작된 싸움은 새로운 비극을 불러일으키는데…….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한뉘
▐ 집을 나와 거리에 선 여자들을 통해 그려낸 ‘여성의 얼굴을 한 가난’의 경로 ▐ 여자들이 겪는 빈곤과 폭력의 연쇄와 이중의 소외 ▐ 빈곤은 여자의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여자들은 그것을 살아내는가 ▐ 가난한 여자들, 미쳐버린 여자들, 성난 여자들의 이상한 말들이 주류 서사에 가하는 균열과 그 공백이 남긴 질문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2021년 봄부터 2년 여간 만나온 여성 홈리스 7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작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를 통해 홈리스 스스로가 말하는 가난의 경로를 듣고 적었던 반빈곤 활동가들은 그 작업에서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여성 홈리스들의 목소리를 찾아 역사와 공원, 거리 구석구석을 헤매며 “미친 여자” “성난 여자” “말을 꺼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워 담았다.
“무서운” 거리 대신 공원 화장실을 집 삼은 가혜의 “이상한” 말들, 역에선 목소리 큰 싸움꾼으로 통하지만 늘 소중한 먹거리와 살림살이들을 뺏기기만 하는 경숙이 불안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쏟아낸 말들, “내 코가 석자인” 홈리스 당사자이면서도 홈리스를 돕는 활동가로 일하는 가숙의 아리송한 이야기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한 가장의 무너진 삶으로 재현돼 왔던 홈리스 빈곤 서사에 균열을 가하면서 폭력으로부터 탈출해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온 여자, 거리의 거친 삶을 자기 식대로 헤쳐나가며 “자유”를 말하는 여자, 쉼터와 옥탑방을 전전하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던 여자들의 이야기로 새로운 가난의 경로를 그려낸다. 큼직한 사회적 변화의 단계를 따라 성실한 일꾼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냈던 남성 홈리스들과 달리 뭉텅뭉텅 비어 있고, 말하지 않는(/못한) 것들 투성이인 이 여자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 공백을 통해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파렴치를 분쇄하라!
2024년 겨울,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다. 자신을 ‘자유의 수호자’라 자처한 대통령이 오히려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무너뜨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파렴치에 맞선 사람은 선출직 국회의원도 자칭 엘리트인 법률가도 아닌 거리의 시민들이었다.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들이 손에 쥐었던 문장, 울부짖으며 외친 문장, 그리고 끝내 지켜낸 문장이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단 하나의 이 문장이 모두의 선언이자 방패였다. 『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는 바로 이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파시즘의 준동 앞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이 “왜”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묻는다.
“우정은 자유다!” ‘반항하는 지성’ 박홍규의 우정의 사상사 『우정이란 무엇인가』
‘성찰하고 반항하는 지성’ ‘진정한 자유를 열망하는 영원한 이단아’ 박홍규 교수의 사상사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시작이 될 이 책은 질문한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고백한다. 사실 자신은 화려한 인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오늘까지도 시골에 파묻혀 평생을 거의 혼자서 살아오다시피 하고 있다고. 혹자는 그런 사람은 우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단호히 말한다. 혈연, 지연, 학연을 근거로 하는 패거리주의는 참된 우정이 될 수 없으며 철폐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진정한 우정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나 결국 얻지 못하고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오, 나의 친구여, 친구는 없다네!”라는 누구의 말인지 그 출처조차 불분명한 말에 쉽게 매혹되고 마치 그 말이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가슴속에 격언처럼 새기고 살아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이니 재산이니 사회적 지위니 하는 것 따위를 자랑하고 과시할 친구는 없지만 대신 평생 책을 친구 삼았노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평생 읽은 사상가들의 우정론을 정리한 책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우정이라는 주제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전한 철학자는 많다. 그래서 오늘날 일각에서는 자본주의로 인해 더럽혀진 우정을 그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선전하기도 한다. 일부는 옳은 말이다. 오늘날의 천민자본주의는 거부되어야만 하고 “그래야 진정한 우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사상가의 우정론이라 할지라도 단일하고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여러 사상가의 우정론을 아울러 정리한 이 책은 그 어떤 사람이나 견해도 찬양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우정론을 종합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 고찰할 뿐이다. 어떤 사상을 다룸에 있어 그 사상이 탄생한 정치·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상가의 전체 사상을 살피지 않고 우정에 대한 일부 언급만을 떼어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총체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책이 많지 않으며 아예 전무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쓰였다. 그러므로 개개의 우정론들을 각 시대의 현실과 사상의 맥락 안에서 비교·고찰하여 하나의 거대한 사상사로 엮어낸 이 책은 독창적이기로 유일무이하고, 가치 있다.
Moritz Altenried한뉘
공장의 종말이 아닌 폭발, 증식, 변이를 일으키는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속 은폐되고 서열화되고 인종화되는 노동!
디지털 자본주의와 자동화 시대의 노동 2011년,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를 촬영한 동영상이 공개됐다. 동영상 화면은 2개로 분할되어 있는데 오른편에는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이상적 업무 공간으로 잘 알려진 구글플렉스의 모습이 담겼다. 왼편에는 어딘지 모를 일반 사무용 건물의 모습이 들어 있다. 카메라는 고정된 채, 두 건물을 드나드는 직원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해당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0RTgOuoi2k
이 동영상은 당시 구글과 외주 계약을 맺고 일하던 비디오 아티스트 앤드류 노먼 윌슨이 촬영했다. 동영상은 구글 본사 노동자들이 빨강, 초록, 하양, 노랑 네 가지 색깔에 따라 4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빨간색이나 하얀색 명찰을 단 노동자들은 노란색 명찰을 단 노동자들이 구글 내에 존재하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일을 하거나 출퇴근을 하면서 서로 동선을 겹치는 일도 없었다. 노란색 명찰을 단 노동자들은 구글 북스 사업부에 소속되어 도서들을 스캔하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다른 색 명찰을 달고 구글플렉스의 멋진 단지를 거니는 노동자들이 주로 고학력 백인들인 데 반해 노란색 명찰을 단 노동자들은 대부분 유색 인종이었다. 《디지털 팩토리》는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배송 노동자, 중국에서 미국 게임사의 그래픽 작업을 하는 하청 노동자, 필리핀의 콘텐츠 모더레이터, 그리고 여러 소셜미디어 상의 홍보마케팅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IT기업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철저히 은폐되고 서열화, 인종화되는 디지털 노동의 현주소를 살피며 공정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떤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디지털 팩토리의 허상 그리고 민낯 어쩐지 디지털 팩토리는 기존의 공장보다 더 세련되고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만 같다. 그리고 노동과정이 디지털화, 자동화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 팩토리》에 등장하는 중국에서 전문 게임 플레이어로 일하는 ‘골드 파머’들이나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콘텐츠 관리자들의 경우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골드 파머들은 게임 내 아이템을 획득해 그 아이템을 원하는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판매한다. 골드 파머들은 ‘전문’ 플레이어임에도 낡은 창고 지하에서 24시간 온라인게임이 실행되는 컴퓨터 앞에서 교대로 근무하며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인종차별까지 겪는다. 수많은 골드 파머들의 일자리는 디지털화로 인해 새롭게 생겨났다. 페이스북 콘텐츠 관리자들의 일터는 그보다 공기가 더 신선할 수는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참혹 그 자체라 할 만하다. 그들은 페이스북 네트워크를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는 업무를 맡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컴퓨터가 결정할 수 없는 페이스북 내 게시물의 내용을 점검해 혐오를 일으키거나 폭력, 인종차별, 노출, 마약 또는 법적 혹은 문화적 기준에 따라 불쾌감을 줄 것으로 판단되는 게시물을 삭제한다. 그런데 콘텐츠 관리자들이 강제로 보아야 했던 이미지들은 과히 충격적이다. 그들은 폭력적인 이미지를 ‘영화처럼’ 개념화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게다가 일일 할당량까지 달성해야 한다. 이러한 콘텐츠 관리자들의 일자리 역시 디지털화로 인해 새롭게 생겼다.
디지털 기술이 만들고 강제한 노동 시스템 또한 《디지털 팩토리》는 디지털 기술이 만든 작업 환경이 20세기 초 테일러 주의적 공장과 아주 많이 닮았음을 짚는다. 그러면서 디지털 자본주의가 공장의 종말이 아닌, 오히려 폭발, 증식, 공간 재구성과 기술적 변이과정을 통해 더욱 노동을 강제하는 디지털 공장을 만들어 냈다고 이야기한다. 아마존의 경우 “직접 사장이 되어서, 스스로 업무 일정을 결정하고, 목표와 꿈을 추구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광고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은 스마트폰에 설치해야 하는 앱을 통해 노동과정 전반을 통제받고 평가받는다. 디지털 공장은 매우 전통적인 건물 형식을 취한 공장의 형태를 벗어나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플랫폼 역시 오늘날 디지털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공장이다. 《디지털 팩토리》는 디지털 기술, 디지털 자본주의가 만든 디지털 공장들과 전환된 노동의 실태를 살피며 또다시 변화해야 할 우리의 모습을 함께 고민한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 안면인식 등 스마트한 디지털 라이프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단순 라벨링 작업을 하는 불안정한 지위의 노동자들이 있고, 푼돈을 받고 육체를 갉아먹는 그 노동이 스마트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크라우드노동의 실태를 고발하고 세계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폭로한다. 나아가 이 파멸적 혁신에 맞서 더 공정한 노동을 보장받을 방법을 모색한다.
미디어버스 ‘선언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중국 젊은 세대의 감정과 조건을 대변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탕핑주의자 선언》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선언문은 2021년 6월,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의 누군가가 쓴 글로 처음 등장하였고, ‘탕핑(?平)’이라는 단어는 이후 하나의 사회적 키워드가 되었다. ‘탕핑’은 ‘드러눕기’를 뜻하는 말로, 성취를 강요하는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저항의 태도를 상징한다.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체제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중국 청년 세대의 새로운 삶의 윤리를 담고 있다. 해당 글은 발표 직후 중국 내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며, 곧바로 정부의 검열 대상이 되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재유포되며 21세기 중국 청년들의 새로운 저항 언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번 한국어판은 홍명교가 번역해 플랫폼C에 게재한 버전을 바탕으로, 중국어 원문과 영어, 한국어 세 언어를 함께 수록하였다.
리디아 데이비스한뉘
맨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번역가 리디아 데이비스의 신작 『우리의 이방인들』
‘자신이 고안한 형식의 대가’라 불리는 리디아 데이비스는 『불안의 변이』에 이어 이번에도 그 어떤 범주의 테두리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다채로운 글을 통해 글쓰기와 나이 듦, 사별, 죽음을 비롯한 삶의 여러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전작에 비해 형식과 주제는 더 완성도 있되, 어조는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앙투안 콩파뇽이 던지는 질문, “문학의 쓸모는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이 ‘현대 세계’에서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고 문학의 자리를 옹호하는 글들은 많았다. 인문학자들, 작가들, 언론인들이 앞장을 섰고, 그 글의 대상은 주로 독자들이었다. 문학이 처한 위기를 염려하며, 문학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이니 문학 읽기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학을 예찬하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앙투안 콩파뇽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관점이 새롭다. 그는 문학이 돈이 되는가, 지금의 교육 시스템과 사회에서 문학 분야는 왜 뒤처지는가, 절대적으로 시간을 써야만 하는 문학에 생산성 개선의 여지가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문학의 쓸모를 되짚어본다. “문학은 돈이 된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걸고서, 그는 독자들 특히 문학인들에게 문학을 다시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문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메트로폴리스 도쿄의 미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유곽과 가부키 극장에서 탄생해 에도에서 도쿄로 이어지는 ‘이키즘’의 도시미학
일본에는 이른바 3대 전통 미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헤이안 시대 귀족의 미의식 ‘모노노아와레’, 에도 시대 지배계급의 미의식 ‘와비사비’, 그리고 서민의 미의식 ‘이키’다. 이 책은 그중 ‘이키’라는 미의식에 방점을 두고, 그 발현과 대중문화로서 지위를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이키’는 오늘날의 도쿄, 즉 에도라는 대도시의 탄생 배경과 그 도시가 가진 특성과 맞물리며 나타났다. 19세기 에도의 유곽과 가부키 극장에서 비롯된 ‘이키’는 이후 서민 대중의 보편적 미의식과 도덕률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이키’는 ‘이키즘’이라는 개념으로 더욱 확장된다. 20세기 도쿄에서 ‘이키즘’은 퇴색하고 지나간 유행이 되지만, 옛 시절을 추억하는 노스탤지어로서 임협영화 등에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간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키’는 재발견되면서 ‘모던 이키즘’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현대화된 미의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늘날 첨단 도시 도쿄에서 ‘이키’는 여전히 ‘일본의 미’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앤 E. 커드 · 낸시 홈스트롬한뉘
찬성 또는 반대, 자본주의에 대한 두 페미니스트의 서로 다른 생각!
정치철학과 페미니즘 이론은 자본주의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고찰한 적이 거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갖는 앤 커드와 낸시 홈스트롬은 자본주의가 이념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실재하는 경제 체제로서 여성에게 이로운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또한 임금 불평등·산업 개혁·노동력 착취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논의하며, 이러한 문제들이 여성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자본주의’와 ‘여성의 이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각 저자는 상대방의 논점에 응답하면서 관련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펼친다. 앤 커드와 낸시 홈스트롬은 2006년 12월 미국철학학회에서 개최한 “페미니즘과 자본주의” 토론회에서 각각 발표를 맡으며 처음 만났다. 두 학자의 상반된 시각은 자본주의와 ‘여성’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부족하던 여성학계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이후 둘은 이를 더욱 구체화해 2011년 2월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부터 페미니즘 내에서 전개된 두 견해, 즉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시각과 비판하는 시각을 철학적·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체계적으로 논증하며 이러한 논쟁의 근원과 변화를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앤 커드는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규범적·설명적인 동시에 정치적 과제라고 설명한다. 즉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정책적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낸시 홈스트롬은 이 책이 자본주의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살펴보는 하나의 사례라고 설명하면서, 경제 구조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단순한 경제 논의가 아니라 페미니즘적 비판과 대안 모색의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이 책이 출판된 지 14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성의 사회·경제 진출이 확대되고, 미투 운동 같은 글로벌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젠더 인식이 확산되는 등 다양한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두 저자가 지적한 가부장제의 억압과 자본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 산재한다. 성별 임금 격차, 소득 불평등, 고용 불안정, 육아와 돌봄 문제 등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들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육아와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된 현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커드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는 복지 및 노동 정책과 돌봄 서비스의 확대를 통한 제도적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홈스트롬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 자체가 여성 억압의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에 더 근본적인 경제 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커드는 자본주의를 페미니스트 정치 변혁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체제로 바라본다. 반면에 홈스트롬은 자본주의를 사회적 생산과 부의 분배가 소수의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며, 노동자 계층과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착취를 동반하는 체제로 본다. 그리하여 홈스트롬은 자본주의를 개혁할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커드와 홈스트롬의 논쟁은 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각적으로 다룬다. 커드는 자본주의의 개혁 가능성을 강조하는 반면, 홈스트롬은 자본주의의 억압 구조를 비판하고 대안적 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논쟁은 페미니즘과 자본주의가 교차하는 문제를 다루며, 체제에 대한 옹호나 비판을 넘어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논의로 확장한다.
서양 중세 윤리학의 중심,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중세인들은 당연히 그리스도교적 삶의 이상에서 찾았다. 다른 많은 종교적 삶도 그렇겠지만 그리스도교적 삶은 물질보다 정신이,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한 삶이다. 또한 그 삶은 아는 것만 아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알고 경험하는 삶의 영역을 넘어 모르는 것, 종내 모를 수밖에 없는 것 역시 고려하는 삶이 그리스도교적 삶이다. 의심해 본 적 없이 확신에만 가득 찬 삶, 실패와 환멸로 인한 낮추어짐을 모르는 삶, 자기중심적이라는 의미에서 자족적인 삶은 그리스도교적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살아 냈고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치는 이 삶이 이상이 12세기에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이상은 이 그리스 정신에 의해 어떻게 소화되었을까?
무지와 무관심, 경계와 동경을 넘어 역사로서 한국 사회주의를 그리다 -대중의 성장과 민족의 대두 속에서 식민지를 살아낸 한국 사회주의
이 책은 1930년대에서 해방 후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주의의 이념과 실천을 다룬다. 한국 사회주의 운동과 사상을 돌아볼 때 1930년대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파시즘, 수정자본주의, 사회주의 심지어 신자유주의까지 포함하여 20세기를 규율한 이념들이 탄생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1930년대 파시즘의 대두로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버텨낸 사회주의는 냉전과 열전을 거듭하면서 1945년 이후 세계를 양분했다. 경성제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박치우는 “1930년대의 시대정신은 파시즘 아니면 볼셰비즘”이라고 동시대의 감각을 기록했다. 한국사적 맥락에서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과 사상은 남북 분단의 기원이자 해방 이후 민주화 운동 및 사회과학 실천의 중요한 토대였다. 사회주의는 대중을 민중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진력했고, 1930년대 특히 식민지에서 그 형식은 민족이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대중의 진출은 민중적 민족주의 형성의 바탕이었다. 1935년 코민테른 제7회 대회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제창했다. 코민테른은 공산주의자 역시 대중의 민족주의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라고 지시했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인민은 곧 민족이었다.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장벽을 쌓고 화살이 되어 날아드는 어떤 말들에 대하여
“언어에는 묘한 힘이 있다. 어떤 단어나 문장은 날 선 칼처럼 사람 사이를 갈랐다. 이쪽 편과 저쪽 편 사이의 장벽을 세우는 말도 있었다. 궁금증이 솟았다. 이 날 선 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_ 프롤로그 중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배우고 타인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언어는 나와 다른 타인을 품고 환대하는 도구가 될 수도,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르고 분열시키는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미래에서 전해 드립니다》 등의 저서를 통해 당면한 사회 문제와 인권 문제를 다루고 설파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화를 가장한 차별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될수록, 조언을 가장한 훈수를 두며 상대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말들이 난무할수록, 배제와 혐오는 당연시되고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는 성격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가난하면 애 낳지 말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월급 받고 일하면서 그 정도는 참아야지”, “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서 자존감이 낮다”처럼 누구나 흔히 사용하는 ‘평범한 말들의 뒷면’을 톺아보고, 이 말들이 어떻게 날 선 칼이 되어 사람 사이를 가르고, 사회를 분열시키는지 포착한다. 특히 고정관념과 편견을 만들기 쉬운 8가지 단어(정상, 등급, 완벽, 가난, 권리, 노력, 자존감, 공감)를 중심으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심리적 빗장 지르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과 가져야 할 시선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통찰한다.
동물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도시의 동물들』은 그 논의와 실천의 현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 최태규의 첫 단독 저작이다. 이 책은 무작스러운 개발주의와 거대 자본의 횡포에 신음하는 한국의 도시에서 동물들이 맞닥뜨린 고난과 각 종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역동적인 장면들을 생생하게 담았다. 나아가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기 시작한 동요, 돌봄과 폭력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실천들, 관계주의와 소비자 정체성에 갇힌 동물보호운동의 한계 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 들끓는 동물 담론 사이를 날카롭게 가로지른다. 저자는 ‘동물권’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하기보다는 각 종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과 그것이 한국의 도시라는 공간, 도시인의 생활양식과 상호 작용하며 빚어내는 생태적 결과를 폭넓게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둔다. 인간과 가까이 살면서 특별한 돌봄을 받게 된 개와 고양이, 쉽게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되는 쥐, 해충, 비둘기를 비롯해 도시의 침입자로 여겨지는 너구리, 멧돼지, 백로 등 야생동물까지 도시에 터를 잡고 사는 동물들의 삶과 죽음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아울러 동물의 ‘귀여움’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비와 돌봄 문화, 예뻐하는 동물과 먹는 동물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윤리, 동물을 팔기 위해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 등 동물 산업에 얽힌 문제까지 두루 다루며 도시인의 동물 사랑이 품은 모순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푸바오에 열광하고, 고기를 덜 먹기로 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동물을 위해 더 잘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다양한 논쟁의 지점을 열어젖히며 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화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최적화로 흥한 나라, 효율성의 성지 미국에서 최적화의 실체와 대안을 찾아 헤매다
최적화는 현대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칙이다. 우리는 생산성과 최적의 성과에 집착하며 일상에서도 효율성을 추구한다. 어떻게 하나의 수학적 개념이 이토록 거대한 문화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까? 그리고 효율성을 얻는 바람에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응용 수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저자는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가 샘 올트먼, 라이프 스타일 구루이자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부터 GMO 재배를 반대하는 농부, 멸종 위기 버펄로 복원에 인생을 건 토착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훑으면서 미국의 건국 원칙에 뿌리를 내리고 현대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최적화의 놀라운 역사를 추적한다. 온 세상을 집어삼킨 최적화라는 메타포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그 안에서 우리가 벌이고 있는 거대한 도박의 실체를 들추며, 휘둘리거나 끌려가지 않고 나아가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고 촉구한다.
엘리스 버넌 펄스틴한뉘
식물이 향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꽃가루 매개 동물과 포식자인 나방과 딱정벌레, 세균과 곰팡이, 꿀벌과 파리 때문이다. 식물은 꽃가루 매개 동물을 끌어들이고, 질병과 싸우고, 초식 동물을 쫓아내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식물이 어떻게, 그리고 왜 휘발성 화합물을 만들고 조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선사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서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둥글게 이어져 있는 세계 곳곳의 역사와 문화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연기, 신앙, 비밀, 권력, 국가 건설, 부, 중독, 혐오, 패션, 유혹을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노동 계급 하층민에게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준 노동 사회학의 고전
노동 계급의 의식과 감정, 그 구조적 복잡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1972년으로부터 도래한, 능력주의의 파국에 대한 오래된 예언
‘자율, 자립, 독립’의 이상은 어떻게 노동 계급을 힘없는 개인으로 쪼개고 그들 마음에 뒤틀린 상처를 남기는가?
2023년, 영미권의 진보 좌파 담론을 선도해온 영국의 버소 출판사에서 《계급의 숨은 상처》가 재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이 청년 시절에 동료 조너선 코브와 함께 1972년에 쓴 책이었다. 2023년에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서 세넷은 그 당시 ‘최악의 병폐’가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적는다. 책을 쓸 당시에는 계급 체계와 능력주의가 노동자들의 마음에 남기는 상처가 ‘사회적 지위’의 문제였으나 지금은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세넷은 여든이 넘는 노학자가 되었다. 그는 “계급 전사로서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는다. “계급 의식이 더욱 투철한 사회”가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은 계급의 숨은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되짚어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972년, 세넷과 코브는 능력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는 기준을 폐기하자고 주장했다.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기에 새로운 기준의 확립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들의 바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능력주의는 그때보다 훨씬 거세게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은 계급의 숨은 상처가 수치스러워 여전히 자신을 ‘입증’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계급의 숨은 상처가 심화되어 ‘생존’의 문제가 된 절박한 현실은 인간 존엄성의 새로운 기준을 다시금 고민할 분명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세계적 거장이 된 어느 노학자가 청년 시절 벼려낸 날카로운 호소력으로 가득한 이 책은 인간을 외롭게 만들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엄성의 기준을 질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리처드 세넷한뉘
모든 세대의 급진주의자가 해결하지 못한 복지, 존중, 불평등의 문제를 가로지르는 사유의 미로
먹을거리와 달리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 존중은 도대체 왜 공급 부족에 시달릴까?
★《계급의 숨은 상처》 출간 기념 개정판★
세넷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하는 불평등과 존중의 역학에 관한 치밀한 탐색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 파괴》의 자매서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노동 계급의 마음에 어떤 불안과 혼란이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한 《신자유주의와 인간성 파괴》에 이어 불평등과 존중, 복지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그 자체로 급진적이다. 노동자가 자기 자신조차 존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현실에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인성과 사회 체제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세넷은 흑인과 가난한 백인, 상이군인, 정신 질환자 등이 주로 거주한 시카고의 ‘악명 높은’ 공공 주택 카브리니 그린에서 보낸 성장기와 첼로 연주자를 꿈꾸며 이웃과 자신이 ‘다르다’고 인식한 순간, 손목 부상으로 첼로 연주자의 꿈이 좌절된 후 ‘특권’을 누린 대학생이 되어 경험한 1960년대의 격렬한 반문화 등에 대한 기억을 넘나들며 불평등과 존중의 관계를 모색한다. 여기에 세넷 저작 특유의 여러 학제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탐색이 더해진다. 세넷은 19세기에 그러했듯 사회학을 문학의 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 말한 바 있는데,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은 세넷의 여러 책 중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가장 도드라지는 저작이다. 이 책에서, 내밀하고 사적인 개인사와 학문적 통찰을 결합하는 글쓰기는 불평등을 걷어내고 서로를 존중하자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과제를 규명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기 위한 최적의 방법론이 되어준다. 세넷은 역동적인 가족사, 개인사와 다학제적 지식의 교차 속에서 기어이 다른 사회를 위한 사유의 단단한 밑절미를 도출해낸다.
리처드 세넷한뉘
《계급의 숨은 상처》 이후 25년 표류하는 노동 계급의 삶과 내면을 파헤치는 또 하나의 역작
★《계급의 숨은 상처》 출간 기념 개정판★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세넷에게 ‘유럽에서 읽히는 미국인’이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책
《신자유주의와 인간성 파괴》는 ‘유연한 자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우리 삶과 내면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에세이형 논문을 표방하는 이 사려 깊은 책에서 리처드 세넷은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과 자유를 보장하는 듯한 신자유주의에 교묘한 통치 논리가 어떤 방식으로 숨어 있는지, 이 체제하에서 인간성은 어떠한 도전을 받으며 파괴되어가는지를 인상적으로 설파한다. ‘노동 계급 하층민에게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준 고전’으로 평가받는 《계급의 숨은 상처》의 후속작이라 할 만한 책으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세넷에게 ‘유럽에서 읽히는 미국인’이라는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신자유주의의 치명적 병폐를 고발한 세넷은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정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는 자신 역시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확신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우리가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의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통성이야말로 바로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자 전위인 다보스 포럼의 참석자들, 그리고 그들이 안착한 체제가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인간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그리고 악의적으로 무능하다. 파괴된 인간성의 문제를 직시하고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다.
“온갖 주의 사항들이 범람하는 밤에게 굴하지 않기”
깊고 두텁게 덧칠된 밤의 풍경과 사유를 지나, 끝나지 않는 끝이 계속되면서 끝을 향해 가는 시
시인 김소연의 여섯번째 시집 『촉진하는 밤』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89번째로 출간되었다. 전작 『i에게』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자 1993년 『현대시사상』에 「우리는 찬양한다」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데뷔 30주년에 나오는 시집이라 특별함을 더한다. 전작에서 극에 달한 내면 풍경을 첨예하게 보여준 소문자 i가 또 한번 등장하는 이번 시집은 이 극단이 끝이 아님을, 이 내면의 풍경이 끝나지 않는 도정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핵심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밤’이다.
이번 시집에서 밤은 하나의 극점을 넘어, 일종의 경계선이 되는 것도 넘어, 어떤 거대한 지대를 향해 가는 끝의 의미를 품는다. 말 그대로 끝이 안 보이는 어떤 지대를 통과하면서 만날 수 있는 밤은 당연하게도 낮의 거짓말을 지우는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과 말이 돌아다니고 서성이는 광경으로 우리에게 온다. _김언, 해설 「끝에서 끝을 내다보는 밤」에서
“그때 알았을까, 어쩌면 내 몸은 삼십 년을 뚫어놓은 구멍이라는 것을”
평범해서 결코 당연하지 않은 미래 그 우연 속에 사랑하는 ‘우리’가 있어서
먼바다의 파도를 타고 오늘로 돌아온 시인 신용목 일곱번째 시집 출간
슬픔에 적극적으로 침잠함으로써 서정과 사회를 연결해온 시인 신용목의 일곱번째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06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 2021) 이후 3년 만에 묶는 시집으로, 마흔한 편의 시가 총 여덟 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가 세상에 나온 지 꼬박 20년이 흐른 지금, 시인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열아홉의 내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삼십 년을 살았다
내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았는데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여전히 계속되는 시속 한 시간의 시간 여행을 이제 멈추고 돌아가서 알려주면, 열아홉의 나 자신 앞에 놓인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보겠다 말할까 아니면 살지 않겠다 말할까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부분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므로 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저 주어진 당장을 살아가기. 얼핏 시시하고 쉬운 길처럼 보이지만, 일상의 평범이 곧 평온은 아니다. 현재를 살아 미래로 가는 일은 “울음소리”와 “닿지 않는 분노”(「목항」)를, “나를 키운 모든 욕망”과 “나를 죽인 모든 것”(「오월에서 사월로 무지개가」)을 끊임없이 통과하는 일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어금니가 다 상해버”릴 정도로 꽉 입을 다물어 “몸속의 아이들을 침묵 속에 가두”(「포인트 니모」)어야 하는, “내 속의 아이가 깨지 않기를/그래서 울지 않기를/바”라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미래의 ‘나’는 이제 과거의 ‘나’가 보고자 했던 미래가, 즉 ‘나’의 현재가 지난한 과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이토록 우연히 미래에 놓인 생존자로서, 열아홉의 마음을 품은 채 30년을 지나온 시인은 의문을 던진다.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의 ‘나’에게 앞으로의 시간이 어떠한지 일러주면, 그는 “살아보겠다 말할까/아니면/살지 않겠다 말할까”(「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대답의 내용이 어떻든 ‘나’는 제 앞에 펼쳐져 있는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우금치」),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고 난 뒤 삶에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아침”(「가로」)은 어김없이 찾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결국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내 몸은/뾰족하게 깎은 인생으로//시간을 뚫어놓은 구멍”이다. 다만 이 구멍은 결손이나 상흔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드나드는 통로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회오리치는 사랑”이 기운차게 그 내벽을 “붉은 피로 돌”(「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며 몸을 한껏 열어젖혀 헤집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으로 “파헤쳐진 몸은 내 것이어도 나만의 것은 아니”(「독주회」)다. 우연한 미래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닌 “사랑 안에서만 믿을 수 있는 우리”(「수요일의 주인」)다.
감염은 무엇보다 공동체의 일이다 : 의료인류학자가 길어낸 감염병의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
“나는 고통과 사랑의 감염력에 의지해 이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먼저 휘말린 사람들이 들려주는 감염과 바이러스가 품은 희망과 미래의 이야기
‘감염’은 이제 낡은 화두가 된 것 같다. 팬데믹에서 엔데믹까지를 경험하며 한국 사회는 그간 다루지 못한 담론을 많이 얻었다. 재난은 어떻게 불평등하게 배분되는가, 왜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가부터 출발해 질병과 장애에 관한 담론도 확장되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정말로 감염이라는 화두를 온전히 소화한 걸까? 엔데믹으로의 전환, 일상으로의 복귀 속에 우리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눙치고 지나온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팬데믹 초기, 확진자에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사생활의 동선이 전국민에게 공개되던 당시의 공포는 분명 질병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몇 번 환자’가 되어 동선이 공개된다면 비난당하고 공동체로부터 격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여전히 감염은 개인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여겨지고, 감염병에 걸린 사람 개개인은 질병 그 자체보다 낙인과 싸워야 한다. 『휘말린 날들』은 어쩌면 가장 그러한 낙인이 공고하게 찍혀온 HIV/AIDS를 바탕 삼아 이 같은 문제들을 다시 돌아보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인 서보경은 ‘앞줄에 선 사람들’, ‘먼저 휘말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HIV 감염인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혹은 숨거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염이라는 사건을 한발 앞서 겪은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불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숨겨진 상실과 함께 나누지 못한 애도의 기억, 그리고 어떻게 다른 세상을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대담한 통찰이 깃들 이 이야기들을 문화기술지의 형식,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스스로 마주하고 겪어온 경험들을 경유해 길어낸다. 그럼으로써 감염이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일’임을, 그리고 우리의 존재 조건임을 논파한다. 자신 역시 “앞줄에 선 사람들에게 휘말리면서 직업으로서 인류학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서보경의 글쓰기는 인류학적 글쓰기의 전범임과 더불어 나아가 인류학의 외연을 넓히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붙든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을 놓치지 않고 그 의미를 찾아나가기 위해 여러 번 생각하고, 질문하고, 다가가는 동시에, 감염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문법, 어조, 비유를 섬세하게 고찰한다. 이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글쓰기, 감염인들의 숨겨져야 했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온 이야기꾼의 기록 속에서 독자들 역시 온 몸과 마음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아직 감염하지 않았다’는 증명이 방역 지침을 성실히 이행한 좋은 시민이라는 유일한 증거처럼 작동하는 사회에서 ‘나는 먼저 감염했을 뿐이다.’라는 선언은 방어적 웅크림과는 전혀 다른 몸의 자세를 요구한다. 더 이상 감염한 것을 죄스럽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겠다는, 수치심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자긍의 선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을 직시하고 다음을 예비하겠다는 용기가 여기에 있다.(16쪽)
앞줄의 사람들은 바삐 숨거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외려 뒷줄의 사람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는 이들이다. 해줄 이야기가 있다는 마음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끝없이 달아나려는 탈주의 욕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가 있다. 전할 이야기가 있을 때, 앞줄은 버려진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먼저 겪은 사람들의 자리, 다음 사람이 홀로 고통받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의 자리이다. 경계선이 결정하는 운명을 바꾸고, 함께 있을 장소를 찾는 사람들의 자리이다.(17쪽)
HIV에 관한 이야기에는 온갖 차이를 가로질러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숨겨지고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고난과 슬픔을 들려주는 동시에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제 숨지 말고, 홀로 사라지지 말고, 함께 있자고 청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기쁨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은 서로 다른 것들이 마주 닿아 번지는 일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자아의 좁은 틀을 벗어나서 타자에게 나아가는 감염력이 있다.(32쪽)
이때 흥미롭게도 감염원의 첫 발견에 관한 이야기는 흔히 미스터리 형식으로 재창조된다. 코로나19 범유행의 여파로 감염에 대한 각종 출판물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삽화로 돋보기를 든 탐정이 종종 등장했다. 추리 소설 같은 형식의 이야기에서 발견은 곧 발각이다. 범인은 자취를 감추고, 증거를 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벌이지만 결국 체포된다. 탐정과 범인의 형상으로 탐구하는 과학자와 탐구의 대상인 병원체의 관계를 그릴 때, 그 사이에 놓인 감염한 사람은 어느새 비밀과 의심, 은신과 추적, 죄와 벌에 대한 도덕적 드라마 속으로 깊이 끌려 들어간다. 에이즈의 역사에서는 종종 발견이 발각으로 여겨졌고, 환자는 죄인으로 몰렸다. 이로 인해 어떤 처음은 다행스러운 소식으로 다가왔지만, 어떤 처음은 두려운 선고가 되기도 했다.(42쪽)
에이즈는 특정 위험 집단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누군가’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HIV 감염 이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생겨나는 병이다. 만약 누군가 HIV에 감염했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HIV라는, 양성 단일가닥 RNA 유전체가 증식 과정에서 이중가닥 DNA로 변형되는 레트로바이러스의 한 종류가 감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성서와 신화 속의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 비둘기나 고양이, 꿀벌이나 소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에서 ‘처음’의 자리에 서게 된 ‘특별한’ 사람들은 모두 이걸 말하고 있다. 왜 이 질병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발현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감염한 사람 너머를 보라고 말이다.(75~76쪽)
송원섭 씨에게 눈앞에 보이는 욕창의 고통은 자명한 것이었고, 벌어진 상처가 아무는 건 마땅히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처남인 창엽 씨의 긴 입원 생활 동안 그가 더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의료진은 많지 않았다. HIV 감염인이더라도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니 이걸 좀 더 치료해볼 수 있지는 않을지, 원섭 씨는 기대를 걸고 신경외과 의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가 “더 이상 치료할 것도, 좋아질 것도” 없는 상태라며 “지금 수준은 애완견으로, 개로 보시면” 된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HIV 감염인인 이창엽의 손상된 뇌 기능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으니, 가족에게 헛된 기대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섭 씨에게 창엽 씨는 단 한 번도 말 못 하는 짐승이 아니었다. (...)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는 사이, 그래도 “주는 대로 꼬박꼬박 잘 받아먹던” 창엽 씨는 기도 흡인에 따른 폐렴이 이어지자 콧줄로만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고, 소변줄로 배설을 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죽음에 거의 다다른 상태로 여겨졌을지 몰라도, 창엽 씨를 돌본 사람들에게는 결코 여일한 날들이 아니었다. “꽃 피는 봄날”처럼 좋은 날도 있었고, 열이 나서 힘들어하거나 다리가 갑자기 퉁퉁 부은 게 눈에 보여 걱정을 그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이처럼 몸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원섭 씨가 있었기에, 창엽 씨는 말 그대로 살아남았다. 원섭 씨 역시 남들에게 처남의 상태를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고, 자식들에게도 비밀로 했다. 그러나 그에게 이창엽은 “그냥 안쓰러워서 보고 만져주고” 싶은 이(person)이지, 부끄러워 치워버려야 하는 것(thing)은 아니었다.(194~196쪽)
그는 이창엽 씨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그의 등에 생긴 욕창의 모양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숨 쉬기를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등을 알아차리고, 여기에 하나하나 대응해가고자 했다. 의사에게 욕창이 아물게 도와주는 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기도 삽관을 하자는 의사의 권고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일일지 고민했으며, 비위관 상태를 보기 위해서 관 내부를 직접 보여달라고 하기도 했다. 자기 눈앞에 있는 이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였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행동을 했고, 그 결과를 살폈다. 이렇듯 그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필요와 상태를 알아차리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보살핌의 관계 속에서 에이즈 환자이자 친족원이자 인간으로 이창엽의 삶이 지속되었다.(198쪽)
환자의 퇴원을 막는 행태는 갈 곳이 없는 감염인들을 받아들인 병원에서 일종의 비제도적 수용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양 병상의 폭발적인 증가와 그에 따른 과다 경쟁 속에서 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병원 중의 하나가 HIV 감염인의 입원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HIV 감염인이자 ‘중증’으로 분류된 환자의 경우에는 간병비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여러 HIV 감염인들의 입원은 시설이 열악한 병원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이 병원은 특히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를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취약한 조건을 악용하여 입원 기간을 늘리고 있었다.(260~261쪽)
감염과 건강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감염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과 감염으로 생길 수 있는 위해가 커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병원체는 병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며, 동반의 까다로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끈질기게 묻고 있다. 질병의 예방은 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게 하는 일이 아니라 병에 걸릴 사람을 맞이하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389쪽)
당신이 아무리 HIV에 감염한 사람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몸은 언제나 이미 감염한 몸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지금 당장 직접 닿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감염이라는 작용이 매개하는 생명의 의미망 속에 늘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우리는 들이마시고, 만지고, 맛보고, 삼키고, 내뿜고, 그러므로 서로 드나든다. 서로의 몸에 가닿는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고, 피부에 스치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로 휘말리고 있다.(389~390쪽)
더글러스 크림프한뉘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은 미술비평가이자 퀴어 운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쓴 16편의 글을 모은 책 Melancholia and Moralism: Essays on AIDS and Queer Politics (2002)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에 묶인 크림프의 글들은 미국 에이즈 운동에 대한 비판적 연대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에이즈 위기에 대한 대응과 반응 속에서 부상한 ‘퀴어’와 관련하여 이론과 운동을 이어주는 연결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에이즈 아카이브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 책에서 크림프는 미술작품과 영상, 사진, 도서 등 여러 매체의 에이즈 재현을 비판적으로 살피며 에이즈와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 주류의 비난과 에이즈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투쟁이 쇠퇴하고 동성결혼을 위한 운동을 중심에 두며 주류 도덕을 내면화한 퀴어 정치학을 동시에 비판한다.
결핵, 천연두, 한센씨병, 암, 에이즈 등의 질병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부추겨왔다. 은 이처럼 특정 질병에 낙인을 찍으며, 좀더 나아가서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게 만드는 질병을 둘러싼 은유를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 등에서 일관되게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개념을 추구해온 그녀의 연구 중 '중간 결산'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두 번이나 암을 극복했던 환자이기도 한 손택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건조한 논설의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톨스토이, 스티븐슨, 드뷔시 등의 예술작품에서 다양한 예시를 골라내어 에세이 형식으로 집필했다.
책은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을 폭로함으로써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현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이미지를 걷어내야 한다는 '투명성'의 추구는 그러한 이미지를 양산해낸 사회를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배세진한뉘
현대 프랑스철학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흐름인 포스트-구조주의를 다룬다.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를 중심으로 설명을 전개하지만, 개별 사상가들의 생애랄지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의 세계적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의 역작!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놀라운 통찰로 우리의 미래를 구축할 진정한 공존의 헌법을 제안하다
분야를 넘나드는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이 가득한 이야깃거리로 유쾌한 과학책을 선보여온 세계적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의 새 책《식물, 국가를 선언하다》가 출간되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식물, 세계를 모험하다》를 통해 국내에도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 놀라운 통찰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영향력이 있으며 다른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가 의존하는 식물, 그리고 그들이 세운 식물국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식물 덕분에 존재하며 저자가 개념화한 식물국가 안에서만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분명한 명제 아래, 이 책은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식물이 쓴 헌법’이라는 유쾌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저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국가를 지탱하는 8개의 헌법 조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조항들은 단순히 식물 공동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권과 평등, 불가침성, 탈중앙화, 생명의 권리에 대한 존중, 깨끗한 물ㆍ토양ㆍ대기에 대한 보장, 대체 불가능한 자원 소비 금지, 이주의 자유, 상호부조 등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규칙을 담고 있고, 이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한 권리장전인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지구에 거주하면서 생물 공동체를 형성하는 수백만 종 중 하나일 뿐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묻는다.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단지 가장 불쾌하고 성가신 세입자’ 중 하나인 인간은 생명체의 공동주택인 지구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그리고 심각한 위기에 처한 지구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지구의 오랜 주인 ‘식물’에서 찾아낸다.
‘녹색 세계’라는 현실적 해법을 과학자의 정확한 자료와 수치로, 때로는 유쾌하고 삐딱하게, 때로는 강한 어조로 제시하는 만쿠소의 글쓰기는 대중들의 공감과 이해를 한껏 끌어모은다.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식물학자 신혜우의 꼼꼼한 감수를 거쳤다.
식물학ㆍ진화론ㆍ경영학ㆍ사회현상ㆍ역사 등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지식으로 가득 찬 풍성한 이야기
식물국가의 헌법 조항들은 우리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인간 중심적 관점이 지구의 상태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식물학은 물론, 진화론ㆍ경영학ㆍ사회현상ㆍ역사ㆍ인문학 등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지식과 데이터를 논거로 놀라울 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먼저 생명체들이 공동으로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주권과 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국가보다 수억 년 전에 태어난 식물국가, 우리 세계의 중개인 역할을 하는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주권을 부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 얼마나 오래 생존할지를 예측해보면, 인간은 스스로 그리 낙관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인간이 자랑스러워하는 뇌가 인간을 언제든지 지구에서 소탕해버릴 무수한 위험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일어났던 멸종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동식물의 수명은 수백만 년으로 측정되는 반면 인간은 언제든 사라질 위험에 놓인 것으로 측정된다. 생명체의 목표는 종의 생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 공동체의 불가침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생명체는 공동체를 바탕으로 진화했으며 생명체의 균형 잡힌 메커니즘은 변화하는 환경의 진동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데 필요한 힘과 대항력을 생성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개입이 금지된 경우에만 계속해 나갈 수 있다(마오쩌뚱의 제사해운동과 염료 독점판매를 위한 영국의 선인장 및 코치닐 수입은 인간이 개입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자연은 항상 결정권을 갖기를 원하며, 식물국가는 자연 공동체의 불가침성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광범위하고 분산된 식물 민주주의, 즉 탈중앙화는 식물이 동물과 크게 구분되는 부분 중 하나다. 뿌리에서 나뭇잎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보든 식물은 동물의 중앙 집중식 모델과 달리 광범위한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과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통해 중앙 집중식 조직과 위계 조직의 본질적 취약성을 일깨운다. 또한 ‘인터넷’이야말로 식물처럼 완전한 탈중앙화를 이룬 현대의 대표적 상징임을 밝힌다. 식물국가는 반복되고 탈중앙화한 광범위한 조직 모델만 이용하면서 동물의 위계 조직 또는 중앙 집중식 조직의 전형적인 취약성, 관료제, 거리, 동맥경화증, 비효율성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8개의 조항들은 깨끗한 물ㆍ토양ㆍ대기에 대한 보장, 대체 불가능한 자원 소비 금지, 이주의 자유, 상호부조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확실한 대안은, 식물에게 다시 맡기는 것이다! 주권과 평등, 불가침성, 탈중앙화, 깨끗한 물ㆍ토양ㆍ대기에 대한 보장, 대체 불가능한 자원 소비 금지, 이주의 자유, 상호부조…
책의 감수를 맡은 식물학자 신혜우는 〈감수의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소 식물이 지구의 주인이며 우리가 얹혀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로 또 다른 무언가를 개발하기보다는 그저 자연에게, 특히 지구의 주인인 식물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믿음을 만쿠소 교수님은 이 책에서 정확한 자료와 수치를 근거로 사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자 역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은 식물에게 다시 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식물만이 이산화 탄소 농도를 무해한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지구 역사상 이산화 탄소가 경보 단계에 이른 것은 결코 처음이 아니다. 약 4억 5,000만 년 전,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 탄소 농도는 현재의 대기 중 이산화 탄소 농도보다 높은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이산화 탄소 농도가 크게 낮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식물은 도저히 탈출구가 없는 상황을 급전환시키면서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백만 년 전 막 태어난 나무숲은 막대한 양의 대기 중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고 이산화 탄소CO2의 탄소C를 이용하여 유기물을 생성함으로써 이산화 탄소 농도를 대략 10배 줄였다. 이는 지구 환경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육상 동물들이 광범위하게 출현하도록 해주었다. 식물은 다시 그렇게 하게 할 수 있고, 식물에게 다시 맡기자고 저자는 촉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식물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지구에 식물을 가득 채워야 하며, 그럼으로써 식물은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한다.
샹탈 자케한뉘
사회적 유동성 수준이 상당히 축소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이 보여 주는 탐구는 시의적절한 이론적 개입이다. ‘자수성가한 인물들’의 존재가 계급적 기준에 따른 사회적 선별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자원을 분배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능력주의 신화의 선전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비-재생산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기성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계급횡단자를 발생시키는 조건인 복잡다단한 인과 규정의 연쇄를 도외시한 채, 계급횡단자 혼자의 힘으로 어떤 성공을 거머쥐었으며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충분한 능력만 있다면 그 능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부여하는 공정한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불과하다. 샹탈 자케는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서 스피노자의 ‘이해하라’(intelligere) 원칙에 입각하여 고전 철학의 분석 도구들을 활용하면서 재생산과 비-재생산을 결정짓는 사회적 역관계를 사유하는 한편 비-재생산 현상의 문제를 철학적 개념들에만 의존하여 풀어 나가지 않는다. 즉 스탕달의 『적과 흑』처럼 비-재생산 사례를 제공해 주는 픽션을 비롯하여 리처드 라이트의 『흑인 소년』, 존 에드거 와이드먼의 『형제와 보호자』처럼 문학적 접근과 이론적 성찰이 뒤섞여 있는 계급횡단자의 자전적 소설에 기초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아니 에르노, 디디에 에리봉, 리처드 호가트의 작품과 같은 사회적 전기형 자서전 속 이야기들을 통해 개인의 삶이나 운명이 외부의 인과 결정과는 유리되어 있는 한 자아의 성취가 아니라 그 개인이 관계하는 환경 속의 사회적 생산물이라고 사유함으로써 계급횡단자 혹은 비-재생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그 개념을 손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자살 문제는 꺼내 논의되어야 한다 그들은 왜 죽으려 하고 왜 살아 있어 기쁠까
열 번의 자살 시도와 열 번의 실패. 이런 이력의 철학자 클랜시 마틴은 ‘지금 살아 있어 기쁘다’고 고백한다. 왜 그들은, 왜 나는, 죽으려 하는 걸까. 저자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가장 취약한 순간, 자기 파괴에 사로잡힌 자의 마음을 상세히 탐구하며,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주제를 인간적으로 그려낸다. 자살을 고려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처절한 서술이다.
피에르 다르도 · 크리스티앙 라발 · 피에르 소베트르 · 오 게강한뉘
신자유주의는 대체, 왜, 어째서 끝나지 않는가? 근본적으로 반평등, 반민중, 반혁명적인 체제,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진화를 파헤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수많은 지식인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고, 또다시 신자유주의 체제 종식에 관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포스트 신자유주의’라는 말마저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 지금, 여기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를 쓴 네 명의 저자들이다. 신자유주의를 푸코의 통치성 관점에서 분석하여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바라본 저자들은, 이 폭력적인 체제의 특성을 ‘내전’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출발부터 ‘자유’의 이름으로 ‘평등’에 맞서는 내전을 전략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배 세력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그들은 시장 질서와 경쟁에 반대하는 모든 ‘적’을 분쇄하기 위하여 법을 이용한 지배, 즉 법치를 내세우며,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직접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대중 혐오, 즉 반민주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하이에크와 대처에서부터 집권 좌파의 몰락, 신보수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까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따라 그것의 지배 전략을 파헤친다. 지난 80여 년 동안 보수는 물론 진보 세력까지 이 체제의 교리를 충실히 따랐다. 신자유주의의 작동 방식을 낱낱이 드러낸 이 책은 낡은 것을 떠나보내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 진정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Nagamatsu, Sequoia한뉘
자멸하는 인류, 녹아내리는 빙하,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가는 불치의 고대 전염병! 어린아이들부터 죽어 나가는 극한의 상황에서 다시 피어나는 공동체의 유대와 회복 피할 수 없는 재난을 섬세하고 우아한 문체로 해부하며 전미의 찬사를 받은 문학적 SF!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인간의 유대에 대한 희망을 현실적으로 그리며 평단의 압도적인 극찬을 받은 『우리는 어둠 속에서 얼마나 높이 닿을까』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기후 위기로 북극 빙하에 갇혀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풀려나 전 세계에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뜨리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을 그린 열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소설이다.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도 가족과 마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연대 및 회복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야기들로 “비극의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었다(LA 타임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염병이 번진 후 어린아이들의 안락사를 인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락사 테마파크, 장기 이식용 돼지를 죽은 아들 대신으로 생각하게 된 과학자, 전염병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가상 현실에서 만나 그를 자살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내려고 하는 노숙인, 장례식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합동 매장을 하는 동네 사람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매개로 장례와 죽음에 관한 독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상상력을 펼쳐낸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중국 설화의 대표 걸작
국내 최초 원전 완역본
「목련구모권선희문」(전 2권)이 을유세계문학전집 138, 13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악업을 쌓고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들인 목련이 온갖 역경과 고난을 거친 끝에 비로소 모친을 구하게 된다는 목련구모 설화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걸작이다. 또한 동아시아인의 가치관을 형성한 유교, 불교, 도교의 특색이 모두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주디스 버틀러 · 프레데리크 보름스한뉘
시, 회고록, 비평을 넘나들며 장르를 구부러뜨려 온 매기 넬슨의 대표작.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시점부터 해리 어머니의 사망과 넬슨 자신의 출산에 이르는 몇 년간을 소재로 퀴어함, 사랑, 트랜지션, 모성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글쓰기로 재생한다.
이 책은 쾌락과 돌봄, 퀴어와 가족, 래디컬과 순응의 관계를 흩뜨리며 끊임없이 나와 우리를 다시 빚는 ‘되어 감’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문화적 이분법과 명명의 한계를 조심스럽게 피해 가며 파트너와 아이를 비롯한 타자들과의 마주침을, 그들이 가져다준 갖가지 쾌락을, 서로를 보듬는 보통의 헌신을 열렬하고도 진실하게 재현한다.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삶의 내밀한 사건들을 (인용을 경유해) 이론적, 비평적 성찰과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은 출간 후 문화계 전반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작품과 삶,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린 오랜 페미니즘 전통을 잇는 한편 ‘자기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우리는 재벌을 이야기할 때, 사회 정의의 문제를 내세우며 감정 섞인 비판을 한다. 하지만 정작 재벌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어떤 편법을 쓰는지, 경영권을 세습하고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어떻게 일감을 몰아주고 어떤 교묘한 방법을 쓰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이 책은 속 시원히 답을 해준다.
저자는 재벌의 문제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분석한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일반 투자자들이 어떻게 이용되어 어떤 피해를 보는지,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쉽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런 폐단을 방지해 재벌이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재벌 기업이 기업의 이익이 아닌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 깨닫고, 재벌과 한국 경제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커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 관련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나 한국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핵심이다!
『아 대한민국 재벌공화국』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위상과 힘 그리고 실상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어 해방기에 재벌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권력과 유착해 특혜를 받으며 성장했는지 등을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북유럽 선진국의 예시를 들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기득권층에게는 반성을 촉구하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재벌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욕망과 광기의 역사에 숨겨진 인간 본능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하다!
1841년 영국의 언론인 찰스 맥케이는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이 집단 속에서 매우 빠르게 확산한다는 사실을 담은 문제작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발표한다. ‘집단 광기’를 다룬 고전이지만 당대의 지식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는 이 명저를 21세기 시점으로 재해석해 전 세계 미디어에서 ‘현대판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찬사를 받은 책이 있다. 바로 『군중의 망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이론가이자 경제사학가로 활동하는 윌리엄 번스타인이다. 그는 투자 세계에 입문하기 전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며 인간 심리를 분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통해 집단 광기의 흑역사를 최신 진화심리학 이론과 신경과학 이론을 접목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인간 본능의 실체를 통찰하고 있다.
중세 시대 제세례파의 뮌스터 참사, 14세기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중동 IS의 발흥, 양극화된 오늘날 미국의 종말론 신앙 등 지난 수백 년 동안 존재했던 종교적 광기의 역사부터 18세기 남해회사 사태, 1990년대 닷컴버블, 2000년대 엔론 스캔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부에 대한 강력한 욕망 때문에 벌어진 금융 광기의 역사까지, 저자는 위험천만했던 욕망과 광기의 인간사를 통해 인간의 실체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정말 합리적인 존재인가?” 인류사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의 역사가 증명하는 진실은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라는 점이다.
인류에 충격을 안긴 집단적 망상과 대중의 광기가 어떻게 확산하고 결국 어떤 종말을 맞는지 이해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서 더욱 현명한 선택을 내리게 될 것이다. 물질적·종교적 버블의 발생 원인을 심도 있게 고찰한 이 대서사와 함께 인간 본능의 민낯을 만나보자.
로버트 월드 서스먼한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품 ‘인종’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을까?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세뇌와 미신으로 점철된 가짜 과학의 실체를 만나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종혐오 범죄가 더욱 빈번해졌다. 이는 낯선 일이 아니다. 백인과 흑인을 강제 분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아시아인의 유입을 막으려는 미국의 이민 제한법,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국경 간 장벽 설치까지… 인류 역사에서 자주 ‘피지배 계층’이 되고 말았던 몇 인종들을 향한 날선 비난과 무분별한 배제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의심해 보지 못했던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인종’이다. 백인, 흑인, 황인 등의 인종 구분은 과연 과학적인가? 그렇다면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1950년에 유네스코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은 마치 과학적 분류인 양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인종’과 ‘인종주의’의 역사를 낱낱이 해부하고 그 안에 숨겨진 가짜 과학의 실체를 끄집어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인종’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왜 이 개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사회를 혐오와 차별로 물들이고 있는가? 여기 그 답이 있다.
1938년 이른 봄 에토레 마요라나(그는 그의 세대 물리학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들 가운데 한명이었다)는 나폴리에서 출항하는 한 증기선에 승선했지만, 다시 그의 직장과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 사태를 두고 숱한 의혹들이 쏟아졌다: 자살설, 핵무기 개발을 예상하고 사라지기로 결심했다는 설, 신앙의 위기로 수도원에 칩거했다(가족들과 신부들)는 설, 나폴리에서 거지가 되었다는 설, 남아메리카로 갔다는 설, 나찌의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 등등.
그러나 아감벤은 마요라나의 사라짐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이십 세기 초반에 불어닥친 새로운 과학 혁명에 대한 시몬 베유와 에토레 마요라나 자신의 주장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그 결과 아감벤은 마요라나의 사라짐이 당대 과학(양자역학)의 흐름에 대한 단순 회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마요라나의 사라짐은 현대 물리학의 확률론적 우주에서 자신의 인격을 ‘실재’의 지위에 대한 모범적인 상징으로 탈바꿈시킨 존재론적 사건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한뉘
정신 질환의 낙인을 만들고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역사적, 문화적 힘들에 대한 깊이 있고 매혹적인 탐구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가 정상성이라는 허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추적한 책. 낙인은 세상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 이 책은 ‘자본주의’, ‘전쟁’, ‘의료화’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 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다. ‘생산성’에 따라 인간 가치를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몸들이 배제되고 소외되었는지, 군진정신의학이 정신의학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열된 뇌’ 모델, 생물학적 모델이 정신 질환과 장애의 낙인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추적한다.
항정신병 의약품 개발과 탈시설화 등은 정신 질환의 낙인을 감소시키고 정신의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요인이다. 이상행동과 정상행동을 하나의 스펙트럼상에 있지만 정도의 차이로 보는 신경다양성 관점 등 낙인을 해체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지속적인 노력도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대한 비교문화적 접근으로 낙인을 없애기 위한 역사문화적 노력과 성과를 소개한다.
19세기 후반에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증조할아버지부터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받고 시카고대학에 정신의학과를 설립한 할아버지,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까지 정신의학에 몸담은 집안에서 성장하며 저자는 자연스럽게 의료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정신 질환과 장애에 드리웠던 낙인에 우리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지를 서술하는 이 책에는 정신의학의 역사와 함께한 그린커 가족 4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한뉘
페소아의 새로운 에세이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대문호, 포르투갈을 넘어 세계문학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문학 에세이 『이명의 탄생』이 국내 처음 소개된다. 이 책은 페소아 전공자의 번역으로 포르투갈어 원어 번역이다. 국내에 대표작 『불안의 책』과 시집들로 알려져 있는 페르난두 페소아. 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시각, 문학 창작자로서의 솔직한 태도, 번역 예술, 그가 자국 포르투갈과 기타 유럽의 작가들을 다룬 산문과 비평들이 본격적으로 엮여 출판되는 것은 처음이다. 즉 이 책 『이명의 탄생』은 페소아의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문학 장르 내에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결연하고 직접적인 페소아의 생각을 에세이 형태로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불안의 책』에서 보이는 일기 형식이나 사색적 기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페소아의 문학에의 뚜렷한 지향과 이상적인 예술의 가치를 논한다. 그것은 문학 작품이기 전에 문학적 일침이요, 자신의 문학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요, 불안한 자의 글이 아닌 냉철한 자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입장문이다. 『이명의 탄생』의 산문들은 비문학적 텍스트이다. 또한 핵심적인 것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가장 대표적 캐릭터인 ‘이명(Heterónimo, 異名)’이 어떻게 고안되고 탄생하는지 이 책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만나고 싶은 존재」, 「다양한 이름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영혼을 가졌는지 모른다」 등 페소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을 하고 탐구하며 고백하는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페소아가 본명이 아닌 이명들로 발표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명들의 관점’으로 심화된다. 책 끝에는 페소아의 상세한 약력을 담은 「페르난두 페소아 소개」와 이 책의 정체성을 함축하는 글 「이명 소개」를 부록으로 실었다. 페소아의 대표적 이명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등에 더해 비교적 덜 알려진 찰스 로버트 애넌, 안토니우 모라, 마리아 주제 등 페소아의 다양한 이명들의 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이명 소개」는 새롭게 소개되는 페소아의 에세이들과 더불어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노동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삶과 영혼에서 길어온 고통의 정치학
《커밍 업 쇼트》의 저자 제니퍼 M. 실바가 모색한 계급 정치의 가능성
양극화와 불평등의 시대, 더는 들리지 않는 노동계급의 목소리에 주목하다
전 세계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져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보일 정도다. 많은 전문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두고 온갖 제언을 쏟아낸다. 하지만 빠진 게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 즉 가난한 노동계급의 목소리 말이다.
노동계급의 삶과 문화, 불평등을 주제로 활발히 저술 활동을 해온 제니퍼 M. 실바가 황폐해진 미국 동부의 탄광촌 콜브룩으로 떠난 건 이 때문이다. 실바는 마약, 범죄, 가난, 폭력 등의 문제가 가득한 탄광촌 콜브룩에서 가난한 노동계급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 하루하루의 힘겨운 일상에서 어떠한 감정의 구조를 구축했는지를 면밀히 살핀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삶과 영혼, 그들의 일상을 잠식한 고통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치적 가능성을 벼려낸다. 흐릿해지고 있으나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한 정치학 말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정신의학자 아르노 그륀의 문제작. 아르노 그륀은 독일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로 인간성을 억압하는 독재와 폭력에 대해 평생 동안 연구하며 독재의 잔재와 마주한 독일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그의 연구는 한 개인이 태어나서 마주하는 폭력과 소외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으며, 독일 최고의 권위지인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는 문명 비판과 정신분석을 연결 지어 고찰해낸 이 책에 대해 “너무나도 놀라운 에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한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겪게 되는 복종에 대한 강요와 그것이 어떻게 한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정신의학.심리학적인 분석은 물론, 사회학적인 측면에서까지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그가 오랜 기간 정신의학자로서 만나온 여러 사례들 위에 정신의학자 산도르 페렌치의 저술부터 ‘밀그램 실험’으로 잘 알려진 스탠리 밀그램의 이론을 더해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을 억압하고 때때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이 책에서는 인류학자, 사회심리학자, 경제학자의 이론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복종의 구조를 구축해온 우리 사회의 역사, 경제적 측면까지 촘촘히 연결 짓고 있다.
현실을 바꿔나갈 힘을 얻는 ‘현장의 인문학’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하녀’는 권력의 테두리 속에서 ‘법’ 없이 사는 것을 자랑삼아온 소시민, 즉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생존해야 하는 마이너리티를 뜻한다. 당장 오늘과 내일, 나와 가족의 생존이 걱정되는 하녀의 처지에서 철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문학이 무슨 소용일까? 철학은 ‘참 한가한 일’ 아닌가? 그러나 《철학자와 하녀》의 저자 고병권은 “철학은 지옥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철학자라면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하녀’도 철학을 통해서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함께 고민해온 현장 인문학자 고병권은 ‘위로와 도피의 인문학은 끝났다’며 현실을 바꾸는 힘을 주는 ‘현장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한뉘
현대성 이론의 대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 시대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바우만의 마지막 성찰과 통찰
난민 문제, 경제적 격차, 인종차별, 정치에 대한 불신,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 등은 우리 사회가 세계와 함께 앓고 있는 병이다. 『레트로토피아』는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버린 현장에서, 두 차례의 전체주의를 온몸으로 겪어낸 노학자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띄우는 희망의 편지다.
앤드루 페트그리 · Der Weduwen, Arthur한뉘
지성사의 위대한 유산 도서관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니네베 왕궁도서관의 쐐기문자 점토판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중세 수도원의 양피지 코덱스와 구텐베르크의 활자본, 21세기 글로벌 디지털 아카이브, 미디어테크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축적하려는 ‘권력의 욕망’이 빚은 교양과 무지, 헌신과 파괴의 드라마
문자 체계가 탄생한 이래 인류는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노력의 산물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인류 지성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진 장소이자, 지식을 향한 인류의 열정을 보여 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책과 미디어 환경 변화를 분석하며 커뮤니케이션 분야 권위자로서 지난 20년 동안 유럽 인쇄물의 역사를 연구해 온, 앤드루 페테그리와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은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 A Fragile History)』(필로스 시리즈 36번)에서 인류의 지적 자산을 보관하고 전승해 온 장소로서 도서관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들은 도서관이란 단순히 책의 보관 장소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때로는 소실되며,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는 역동적인 공간임을 강조한다. 『도서관의 역사』는 쐐기 문자판이 보관되어 있던 니네베 왕궁도서관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으고자 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필사본의 산실이었던 중세 시대 수도원 도서관과 오늘날의 글로벌 디지털 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의 흥망성쇠를 따라가며 인류의 지적 자산이 어떻게 보존되고 때로 위협받았으며,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조명한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주목하는 것은 도서관의 탄생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지식을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지금까지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주로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왕궁도서관이나 수도원 도서관에 주목해 왔다. 혹은 거대한 국가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의 바탕 욕망인 수집 욕구와 인정 욕구에 날카롭게 주목하면서 공공도서관과 개인도서관(서재)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엮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펼쳐 낸다”.(장은수 역자 해제) 지식에 대한 욕망, 수집에 대한 욕구는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과 개인 서재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책과 도서관이 지닌 본질적 취약성으로 인해 또 손쉽게 사라지거나 파괴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장서들이 무관심과 방치, 전쟁, 검열, 화재 등으로 사라졌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양차 세계대전과 정치적 검열로 인해 많은 도서관이 억압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도서관의 역사』는 지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충돌하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인상적인 부사는 아이러니하게도”(배동근 역자, 옮긴이의 말)인 것처럼 책은 길들이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반란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인류의 교양과 무지를 첨예하게 드러내고, 지식에 대한 헌신과 파괴의 드라마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 준다. “상상 그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주디스 플랜더스, 추천사)
무기력하고 화난 우리 사회의 본성을 이토록 날카롭게 포착해낸 책은 없었다!
위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 극단적 선동과 음모론으로 물든 공론장, 이민자와 여성 혐오자들이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소셜 미디어의 조리돌림과 마녀사냥까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성난 공격으로 사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듯 보인다. 광기에 가까운 격앙된 감정들은 어느새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과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 이념, 성, 계급의 차이로 인한 의견 갈등이 금세 적개심으로 이어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대신 내 분노가 좋고, 옳고, 정당하다며 인정받으려는 모습이 빈번하게 목격된다. 이 책은 이런 분노의 파도에 올라타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고 함께 숙고할 것을 촉구한다. 저명한 영문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조시 코언은 오늘날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경험하는 분노를 ‘의로운 분노’ ‘실패한 분노’ ‘냉소적 분노’로 분류하고, 문학, 심리학,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그 내밀한 기원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실제 상담 사례를 마중물 삼아 분노 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어 기제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과 타인을 향한 호기심의 촉매제로 분노를 수용하는 길을 제시한다.
가스통 바슐라르한뉘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가 펼치는 물에 관한 생동하는 시적 몽상!
가스통 바슐라르는 프랑스 현대 사상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는 과학철학자, 문학 비평가이자 시인이다. 학문적 이력상으로는 과학철학자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의 면모는 무수한 시와 문학작품들을 읽고 상상력의 역동성과 창조성에 대해 꿈꾸며 일구어낸 문학 연구가로서의 자취이다. 이성을 믿는 과학철학자로서 먼저 뚜렷한 업적을 남긴 바슐라르는 인식론적 성찰 과정에서 과학적 인식의 방해물로만 여겨져온 인간의 정신 활동인 몽상, 즉 상상력의 활동과 그것의 가장 뛰어난 표현인 문학작품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이후 『불의 정신분석』의 집필을 경계로 과학적 이성에서 시적 상상력으로 탐구 영역을 옮겨 온 바슐라르는 항상 이성을 인간 정신의 중추로 간주하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 반기를 들며 오랫동안 거짓과 오류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폄하되어온 상상력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상상력이 현실 세계의 변형과 변모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지닌 것으로 새롭게 인식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바슐라르는 인간 정신의 인식에 있어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교되는 전환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사상가이다.
이 책 『물과 꿈』은 바슐라르가 『불의 정신분석』으로 문학 사상가로서 몽상 연구의 첫걸음을 내디딘 이후 질료에 관한 상상력에 더욱 집중해 자신의 독특한 문학 상상력 연구를 확장하고 꽃피운 명저로 평가받는다. 바슐라르는 모든 시학이 질료적 본질의 구성 요소들을 수용한다고 가정하고, 상상력의 여러 유형을 전통 철학과 고대 우주론에 영감을 불어넣은 근본적인 질료적 원소들로 표시하자고 제안한다. 따라서 시와 예술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상상력을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질료에 따라 분류하며, 이런 분류를 통해서 시적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하나의 부류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물은 시인의 영혼에 강하게 결부되어 시적 영감을 고취시키는 질료다. 바슐라르에게 있어 물은 싹을 틔우고 샘을 솟아나게 하는 질료, 태어나고 불어나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질료, 변화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질료다. 이 책에서 바슐라르는 깊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의 상상력을 물에 바치고, 생동하는 물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끝없이 몽상을 불러일으키며 시 작품에 생기를 부여하는지를 여러 시와 문학작품들을 통해 살핀다.
이 책은 번역 출간된 지 40년이 된 기존 번역서(『물과 꿈』,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1980)의 오류와 문제점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실제로 전 번역자가 번역의 부족함 때문에 재번역을 하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인문 고전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이 책이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꿈꾼다, 고로 존재한다.”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이성과 몽상의 합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골몰하는 상상력의 철학자 바슐라르. 학문적 이력상으로는 과학 철학자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의 면모는 상상력의 철학자이자 그가 사랑한 무수한 시와 문학 작품들을 읽고 그것에 대해 꿈꾸며 일구어낸 문학 연구가로서의 모습이다. 과학과 상상력 혹은 문학을 통합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철학으로 나아간 바슐라르는 이성의 힘을 믿는 과학자로서의 긴 이력을 먼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식론적 성찰 과정에서 과학적 인식의 방해물로 여겨진 인간의 또 다른 정신 활동인 몽상, 즉 상상력의 활동과 그것의 가장 뛰어난 표현으로서의 문학 작품에 사로잡힌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을 경계로 과학적 이성에서 시적 상상력으로 탐사 영역을 옮겨와 상상력의 역동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게 된다. 바슐라르는 전통적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중등 과정을 마친 후 독학으로 공부하여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 그는 인간이란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앞서 무엇보다 꿈꾸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언제나 이성을 인간 정신의 중추로 간주해온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비이성적인 것 혹은 거짓으로 간주된 서구의 사상적 전통에서 상상력은 오랫동안 ‘거짓과 오류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폄하되어왔으나, 바슐라르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객관적 과학의 세계보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상상의 세계가 우선함을 주장하면서, 상상력을 현실 세계의 변형과 변모를 가능케 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지닌 것으로서 종합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간 정신의 인식에 있어서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교되는 이러한 인식을 그는 어떻게 해서 이루게 되었을까? 『불의 정신분석』은 상상력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그의 일련의 저작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그가 상상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창조성과 자율성에 대한 탐구로 뛰어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가 상상력의 원초적 힘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애들을 제거하여 과학적 사유의 순수성을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상에서였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 인식에 이르지 못하는가?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오류의 원흉들은 무엇인가? 『불의 정신분석』은 그가 이러한 물음들을 제기한 『과학 정신의 형성-객관적 인식의 정신분석을 위한 기여』라는 저작의 속편의 성격으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불의 정신분석’이란 표현에는 불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반응, 불에 대한 심리적 가치 부여, 불이라는 현상의 인식과 관계된 우리의 “주관적 확신들”을 정신분석함으로써, 이 억압적인 확신들로부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탐구를 해방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표상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 공허 텍스트 위에 흩뿌려진 하얀 물감 얼룩, 번역, 그 흼에 대하여
클레어 키건, 조앤 디디온, 수전 손택의 번역가 홍한별 에세이집
제목이 암시하듯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번역에 대한 거대한 비유다. 허먼 멜빌이 거대한 흰 고래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 『모비 딕』의 화자 이슈메일의 입을 빌려 그토록 방대한 서사시를 써냈듯 홍한별 번역가는 이 책의 열네 장에 걸쳐 끝내 완성되지 않을 번역에 대한 글을 책장 위에 그린다. “번역이라는 실체 없는 행위를 말로 설명하려는 기도”이자 “불가능한 번역을 정의하려는 불가능한 몸짓”, 절대적인 사랑이 추동한 집요하고도 아름다운 글쓰기의 모험. 언어와 언어 사이 새하얀 진공에 다가가려는 도전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번역이라는 축에 의해 떠오르고 연결된다.
홍한별 번역가는 지난 20여 년간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하며 평단과 독자의 아낌을 받아왔다. 애나 번스의 『밀크맨』으로 한 해 출간된 영문학 번역서 중 한 권의 번역가에게 수여하는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2024년 서점가를 휩쓸며 다수의 언론과 독자가 최고의 책으로 호명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번역했다. 가즈오 이시구로, 데버라 리비, 수전 손택, 시그리드 누네즈, 리베카 솔닛, 조앤 디디온,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품이 홍한별의 번역으로, 그가 쓴 우리말로 독자를 만났다. 무한에 가까운 단어들의 목록으로 사전의 세계를 섬세하게 어루만진 『아무튼, 사전』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되는 단독 저서인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텍스트의 이면을 꿰뚫어 그 너머의 침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 번역에 관한 에세이다.
클레어 데더러 · 노지양한뉘
예술을 소비하는 관객의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쳐 보는 책이다. ‘작품과 창작자는 분리해야 하는가’는 해묵은 논쟁거리이지만 그동안 양쪽의 의견을 각각 들어보고 비교해 보는 시도는 많았던 반면...
제인 타이넌 · 이상미한뉘
‘지식산문 O’의 세번째 책은 『트렌치코트』다. 트렌치코트는 제1차세계대전의 참호에서 군용 외투로 탄생했다. 이 코트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현실 및 허구의 인물들과 함께하며 탐정, 작가, 기자, 반항아, 예...
피에르 다르도 · 크리스티앙 라발한뉘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의 『새로운 세계합리성: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는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파헤치는 책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어떤 단일한 사상의 발전된 버전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하나의 단일한 본질을 갖고 있는 실체가 아니며, 그 안에 수많은 갈등과 변화의 과정들이 있어 왔다. 그 갈등과 변화의 과정들 속에서 우연히 한 지점에 맺힌 매듭이 신자유주의이다. 이렇게 이 책의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주로 참고하면서도, 푸코의 죽음 이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또 신자유주의의 맹위가 극에 달해 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그 기획의 의미를 물으며 비판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미 하나의 합리성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이름이 아닌 경영과 효율성, 공공 서비스 체계의 민주화라는 이름하에 시행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할까?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타개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신자유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효과적인 비판지점을 찾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합리성』은 훌륭한 지적 동반자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타우베스, 바디우, 지젝, 데리다, 아감벤 등 오늘날의 현대 정치철학자들은 근대 이후로 신학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것처럼 보여도 서구 정치와 제도에 내적 논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로 결속되어 있었다고 진단한다. 즉, 근대 정치는 국가, 민족, 역사, 인종, 계급 등의 개념들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초월적 신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치적 우상들이기도 하다. 현대 정치 철학은 바울의 급진적인 사상을 통해서 이러한 정치적 우상들과 맞서고자 한다. 나아가, 근대 정치에 의해 배제되고 추방되어온 소수자들의 ‘메시아적’ 정치를 지금 여기서 실현하고자 한다. 『불가능성의 정치신학』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대 정치철학과 바울의 급진적인 정치신학이 이러한 ‘탈신성화’의 기획 속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가에서 출발한다.
한나 아렌트한뉘
한나 아렌트가 그리는 발터 벤야민,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한 줄기 빛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발터 벤야민: 1892-1940』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이 두 철학자가 한곳에서 만난 책이다. 원래 이 글은 아렌트가 1960년 10월 12일 「뉴요커」에 게재한 전기적-사상적 소묘인데(당시 그녀는 두 차례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시기를 통과한 사상가들을 다룬 짧은 분량의 전기를 연재했고, 이 에세이들은 나중에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묶여 출간된다), 아렌트는『조명Illumin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터 벤야민 선집을 영어권에서 처음으로 출간할 때 이 글을 서문으로 싣기도 했다. 이 책은 140쪽 가량의 짧은 분량에 벤야민의 사유체계를 등고선처럼 그리고 있다. 아렌트는 ‘위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벤야민의 불우한 삶, 그로부터 비롯된 그의 사유를 차츰 꿰어나가며, 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적으로 생각했던 벤야민의 사유방식을 글로 보여준다. 철학자 겸 작가, 번역가 이성민의 번역은 손쉽게 읽어낼 수 없는 한나 아렌트의 세밀한 생각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아렌트만의 은유 가득하고 깊이 있는 문장을 원 의미에 가깝게 읽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그 길에서 독자들은 “꼽추 난쟁이”가 따라다닌 삶을 산, “어두운 시대”에 “돛대 꼭대기” 위치에 있었던, “진주 잠수부” 벤야민을 만날 수 있다.
“낯선 혀로 말하는 사람은 조류학자이자 한 마리의 새입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명되는 작가,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의 시학 강연집이 출간됐다. 『변신』은 다와다 요코가 튀빙겐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시학 강연 세 편을 엮어낸 작품이다. 강연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다채로운 은유와 매혹적인 수사는, 그가 여러 작품에서 구축해온 포스트휴머니즘적인 필치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카프카, 벤야민, 오비디우스, 첼란, 클라이스트, 바그너와 같은 유수의 문인과 음악가들이 만든 작품을 들여다보며, ‘목소리’와 ‘신체성’, ‘문자’와 ‘번역’, ‘얼굴’과 ‘변신’이라는 키워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다와다 요코의 시학이 이 책에 간명하게 담겨 있다. 은유와 실재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들며, 독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강연집 『변신』은 다와다 요코의 난해한 작품들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길로 안내할 탁월한 이정표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유대계 지식인,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그는 일찍이 아도르노가 특징지었듯이 비범한 사변의 능력과 고도의 문학적 특질이 결합된 문체를 구사하는 글들을 썼고 그 대상은 문학과 예술, 사진과 영화와 건축뿐만 아니라 특히 『파사주』 프로젝트(국역: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의 경우 19세기의 역사와 사회 전체를 아우른다. 글의 형식은 고전적 작품과 작가 또는 사조에 대한 문헌학적 해석(주해)을 시도한 논문을 위시하여 그 자신이 ‘사유이미지’라고 칭한 단상들, 언어나 역사와 같은 철학적 주제에 대한 성찰을 펼친 트락타트와 에세이, 신간에 대한 서평, 작가의 초상을 그린 에세이 등 실로 다양하다. 1920년대 중반 ‘정치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이룬 이래 그는 스스로 ‘문학투쟁의 전략가’라고 칭한 비평가의 임무를 수행하는 글쓰기를 전 방위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한다. 이때 초기부터 견지해온 유대신학적-형이상학적 사유는 새로 전유한 역사적 유물론과 혼융되어 독특한 사상지평을 이루게 된다.
68학생운동 당시 프랑크푸르트학파, 신좌파 등이 부상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어 주목받기 시작한 벤야민은 1970년대 초 독일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에서 『전집』이 출간되면서 서구에서 이른바 “벤야민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활발한 수용의 역사를 몰고 왔다. 그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담론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인용되는 작가이다.
국내에 1970년대 중·후반부터 단행본으로 저작과 전기가 소개되기 시작한 벤야민은 2007년 도서출판 길에서 15권으로 기획된 『선집』(처음에는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나중에 임석원, 김남시 합류)이, 그리고 2009년 한길사에서 『독일 비애극의 원천』(김유동, 최성만 옮김)이 출간되면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수용되어 왔다.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가 『상허학보』 35호(상허학회, 2012)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국문학자들이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학자로 1991년에서 2002년까지는 게오르그 루카치, 2003년에서 2007년까지는 가라타니 고진이 꼽혔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발터 벤야민이 꼽혔으며 가라타니 고진,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조르조 아감벤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책은 국내에 벤야민을 번역하고 연구한 대표적인 전공자로 알려진 최성만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가 그간 학술지에 발표한 벤야민 관련 주요 논문 10여 편을 모아놓은 논문 모음집이다. 저자는 2007년 『벤야민 선집』 출간을 도서출판 길과 함께 처음 기획한 이래 서너 명의 전공자들과 함께 벤야민의 주요 저작들을 번역해왔다. 선집은 2024년 5월 현재까지 총 15권 가운데 12권이 나왔다. 또한 저자는 벤야민의 생애와 저작들을 소개한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년)도 출간했는데, 오래전에 절판된 그 책이 향후 중쇄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책이 그 틈을 어느 정도 메워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벤야민 연구』에 실린 논문들을 선별할 때 저자는 『벤야민 선집』에 실린 ‘해제’들과 가급적 중복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아울러 각각의 논문을 오늘날의 수준에 맞게 용어를 수정하고 보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밖에 ‘발터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과 ‘한국에서 벤야민 사상의 수용에 대하여’를 실었다. 그리고 최근 저자가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는 동학·천도교와 벤야민을 연결해서 쓴 강연문 「정신이 깨어 있는 ‘침잠’과 동학(東學)에서 ‘수심정기(守心正氣)」, 망명기에 벤야민의 생계를 적극 지원하고 그 자신도 여러 에세이를 발표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기관인 「사회연구소」를 소개한 글 「자유로운 연구를 수행하는 한 독일 연구소」(1938), 1916년 무렵 숄렘과 교류하면서 ‘정의’(正義)에 관해 적어둔 메모 「정의 범주에 대한 연구를 위한 노트」와 그에 대한 해설을 ‘보유’로 실었다. 특히 이 ‘정의론’은 벤야민의 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의’ 개념의 독특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가 벤야민을 처음 접하고 연구하게 된 계기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에 따르면 벤야민은 저자에게 단지 학문적으로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저자는 2020년 가을에 출범한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을 강의하면서 젊은 독자들과 흥미로운 소통과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논문모음집이 그 부산물로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사이토 마사히코 · 조지혜한뉘
일기라는 고유한 기록은 살이 연하다. 꿰뚫어 보려다간 구멍이 나고 함부로 펼쳤다간 찢어진다. 『알츠하이머 기록자』는 머뭇거리고, 주춤대며, 천천히 다가간다. 이 책의 저자처럼 노년 인지증(치매)을 연구한 전...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출간 15주년 기념판!
헌법재판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의했는가! 문재인 전 대통령, 조규광 초대 소장, 변정수ㆍ이시윤 초대 재판관 등 역대 재판관과 사건 관련자가 참여한 헌법재판소의 생생하고 치열한 기록!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이슈로 시끄러운 요즘, 헌법재판소는 태풍의 눈 같은 존재가 되었다. 법조전문기자로 헌법학 박사이기도 한 이범준 기자가 2009년에 펴낸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를 새로운 장정과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이 책은 1988년 9월 1일 제대로 된 사무실 하나 없이 초라하게 태어난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관과 사회 현상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세밀하게 추적한 최초 보고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우선 6개월에 걸쳐 신문·잡지·논문·영상·속기록·회의록 등 1만 장 분량을 검토하고, 재판관·연구관·청와대·관련자들을 집요한 설득을 거쳐 100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이를 위해 질문지 전달, 전화 약속, 직접 인터뷰, 우편 및 전화로 확인 등 143회에 걸쳐 접촉했다. 이 책은 모두 3부 30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대표 사건을 기준으로 시대순서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평생 프로젝트인 대한민국 법조사 4부작 중 첫책으로, 이번 취재 및 집필을 통해 초기 재판소에 관한 자료들을 극적으로 찾아냈으며, 진실에 관해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던 5·18 불기소 헌법소원 사건과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의 모든 과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핵심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했다.
한국의 정치변동, 민주주의, 사회운동에서 종교의 역할
1945년 해방 이후 초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부터 최근의 코로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에서) 종교 요인은 현대 한국의 정치, 사회 및 문화 변동의 주요한 기제(mechanism)와 변수로 작동해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심층을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사회학적 논의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운동과 민주화라는 주제에서, 현대 한국 사회 이해의 인식적, 분석적 지평을 종교사회학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에 더하여 종교 연구에 있어 공간적 접근으로 종교와 사회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에 동참하며, 종교공간에 대한 분석틀을 한국의 역사사회적 맥락에 대입하여 활용하기를 시도하였다. 이는 조너선 스미스와 같은 연구자들의 공간적 접근의 필요성과 효용을 설득력 있게 주장해 왔다. 특히나 한국학의 차원에서는, 민주화운동사에 대한 이해에 있어 진일보한 시각을 더한다. 그동안의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대해서는 학생과 노동자 등의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에 더 나아가 종교공간적 정치에 주목하여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입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난독증은 또 다른 방식의 읽기다. 신경다양성 관점에서 난독증을 새롭게 해석하는 책
우리는 흔히 난독증을 ‘글을 잘 읽지 못하는 학습장애’로 생각하지만, 난독증은 단순한 읽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읽기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고 방식의 차이와도 연결된다. 최신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난독증은 문자 중심의 사고보다 이미지적, 공간적, 패턴적 사고를 더 잘 활용하는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성이 창의적 문제 해결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난독증이 학업과 입시, 문해력 문제와 직결되며 종종 학습 부진이나 낮은 지능으로 오해받는다. 특히 한글보다 영어 읽기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입시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난독증이 있는 학생들은 불리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또한, 난독증은 단독으로 나타나기보다 ADHD, 자폐스펙트럼, 난서증(쓰기 어려움) 등과 함께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난독증을 읽다》는 난독증을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단순히 ‘읽기 어려움’을 넘어서, 난독증이 가진 특성과 강점,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을 조명한다. 또한, 실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이 기존의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브라이언 콕스 · Jeff Forshaw한뉘
칼 세이건을 잇는 우리 시대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의 블랙홀 연구 결정판!
‘블랙홀’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존재다. “블랙홀을 알기 위해서는 물리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할 만큼, 블랙홀은 물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고, 블랙홀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주에 진입할 수 없다. BBC 과학 다큐멘터리 〈경이로운 우주〉 〈경이로운 생명〉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진 브라이언 콕스는 과학의 신비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차세대 칼 세이건”이라는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다. 같은 대학에서 입자물리학을 가르치는 제프 포셔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그간 《퀀텀 유니버스》 《E=mc2 이야기》 등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두 물리학자의 연구가 이번에는 블랙홀을 향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주제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학자들의 수많은 논쟁과 연구로 책의 서막이 열린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는 블랙홀에서 우주의 기원과 시공간의 근본적 특성까지 유추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역학, 사건지평선, 일반상대성이론, 특이점, 호킹 복사, 커 블랙홀, 슈바르츠실트 해, 펜로즈 다이어그램 등 블랙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왜 블랙홀을 안다는 게 어려운 일인지 곧바로 깨닫는다. 블랙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열역학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곧 물리학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서 스티븐 호킹 그리고 오늘날 양자역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물리학의 최전선을 향한 과학적 여정은 우리 우주가 거대한 양자 컴퓨터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지만,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말처럼,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블랙홀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을 처음으로 한데 모은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벤야민은 사는 내내 소설, 꿈,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문학작품들을 썼다. 그 벤야민 사상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이야기는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사이의 문턱을 넘나드는 꿈의 세계,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성애적 긴장감,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 도박과 점술, 소망의 독특한 관계 등을 아우르며 벤야민이 사는 내내 천착했던 주제들을 탐구한다. 한편 이 책은 각 단편이 시작되는 책장마다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예술가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들을 수록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다.
Enzo Traverso한뉘
21세기, 유럽에는 다시 유령이 떠돌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령이. 21세기 한국에서 ‘자본가’ 오일남은 사회주의에 구애하고 MZ세대는 자본을 우상숭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 ‘개혁’, ‘사회주의’가 아니라 ‘좌파’란 무엇인가? 평등을 핵심 이념으로 하는 ‘좌파’의 죽음을 용기 있게 직시하고, 패배의 원인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그럼에도 평등한 미래를 열어나가는 불굴의 용기는 시대가 ‘우울증’에 빠진 21세기의 모든 지적 사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1세기에 사어가 된 ‘좌파’, ‘자본’, ‘비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역사적ㆍ사회적 탐구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ㆍ사상적 난맥상을 새롭게 해명하며, AI시대를 맞이해 왜 우리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 할지’를 명쾌하게 분석해준다!
기독교의 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서양문명!
신의 정체와 서양문명의 핵심을 밝히는 『신』. 2010년에 출간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을 다시 쓴다는 마음으로 고치고 확장한 개정증보판이다. 곳곳에 설명과 화보를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넣어 보완했고, 욥의 이야기를 매개로 살펴본 하나님의 섭리와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한 내용을 새로 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저자는 서양문명의 심층을 ‘신’이라는 코드로 풀어낸다. 어느 문명에서든 신은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종교 밖으로 나가 종교 아닌 것들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세속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문화적인 것 안으로 과감히 침투해 들어가 문화와 문명의 심층을 이루는데, 서양문명이 특히 그렇다.
서양문명을 빚어내고 2,000여 년간 그 근간을 이루어 온 것이 다름 아닌 기독교의 신, 하나님이므로 저자는 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서양문명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길이자, 우리가 삶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신, 하나님이 서양문명에 어떻게, 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파악하고, 성서와 기독교 신학을 집단 내부의 언어가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전범을 제시하며, 성서해석학과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자 중추인 기독교적 사유 방식을 보여 준다.
모드리스 엑스타인스한뉘
역사가 지워버린 행동 패턴들을 파헤치는 통찰력과 재치, 독창성이 빛나는 책! 모더니즘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온한 재평가
현대는 전력 질주하는 삶으로 특징지어진다. 속도를 내는 이유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신념 체계를 무너뜨린 뒤 일시적인 것에 열중한다. 새로움과 발전 속에서 재조명해봐야 할 주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은 ‘현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은 현대 예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시작해 전장 깊숙이 들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은 피와 살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폭발음과 함께 병사들의 살은 너덜너덜해지고 뼈도 봉분처럼 쌓였지만, 이는 병사들이 주로 중간계급 출신이란 점에서 차이가 났고, 그들의 머릿속은 이상적이고 고상한 것, 추상적 이념이라는 ‘현대성’이 지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엑스타인스는 예술과 전쟁을 한 책에 담아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제목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발레에서 따왔으며, 이는 책의 주요 주제인 ‘움직임movement’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쟁 발발 1년여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희생된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술로 서막이 열리지만 독자들은 곧 900만 명의 희생을 목격하게 된다. 기존의 전쟁사는 늘 전략과 무기, 장군과 탱크, 조직과 정치가를 중심에 두고 서술해왔다. 전쟁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살피려는 관점은 거의 없었으며 일반 병사들 역시 가려져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름 없는 병사들로, 바로 스트라빈스키가 내세운 희생 ‘제물’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삶과 예술이 섞인 시대, 존재가 미학화된 시대로 규정한다. 저자는 역사 사료뿐 아니라 무용, 음악, 문학 등 현대 예술의 여러 장르를 분석해 하나의 정신이 관통하는 서사를 직조해낸다. 책 전체를 막과 장으로 진행시키면서 죽음과 파괴, 묘지를 지나 생성에 관한 논의를 한꺼번에 펼쳐놓는다.
『애도의 미학』은 전쟁에서의 무차별 살인, 이민 정책 갈등, 아동 학대, 젠더 폭력 등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 그리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삶을 동시대 예술가와 철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예술 에세이다.
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 한선아는 이 책에서 부당하게 죽어간 이들을 되돌아보거나, 그들이 사라진 흔적을 더듬어 재현하거나,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비참한 삶의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쳐 제시한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고, 다양한 철학 이론으로 그 내용을 풍부하게 확장한다. 이를 위해 당대 중요한 사상가 9인(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S. 매슈 리아오, 리베카 징크스, 김현경, 재스비르 푸아, 마사 누스바움, 로버트 스클로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이론과 예술가 14인(테레사 마르골레스, 모나 하툼, 하룬 파로키, 이보람, 임윤경, 포렌식 아키텍처, 이토 바라다, 윌리엄 포프 L, 캐럴린 라자드, 이강승, 콜린 와그너, 제니 홀저, 조혜진, 최선)의 작품이 동원되었다. 취약성과 비폭력,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문제를 분석한 이들의 시선을 치열하게 좇다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펼쳐지리라 믿는다. 지금, 바로, 여기. 혐오와 차별,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벗어나 소외된 자를 위해 재조형될 다정하고 따뜻한 세계의 건축법, 그 구축과 상상에 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무서움과 불안함에 공감한다. 다문화사회에서 실제로 그들과 이웃해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평범한 이들이 이해하고, 인정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다양성으로 가득해 역동적이면서도 조화롭고 안전한 다문화사회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영화와 드라마라는 콘텐츠를 빌려온다. 13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 생존이 다문화사회에 달려 있는지, 다름은 왜 틀림이 아닌지, 낯설 뿐이지 무서운 건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한민족이 한 민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다문화시대의 민족은 곧 시민이라는 것을,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국민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자분자분 설명한다.
그렇다고 현실성 없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향을 제안한다.
존 다가타 · 짐 핑걸 · 서정아한뉘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실들을 놓고 벌이는 야심 찬 에세이스트와 집요한 팩트체커의 끝장 논쟁. 『사실의 수명』은 작가의 원고가 페이지 한가운데, 이를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논쟁이 가장자리에 배치된 독특한 형...
비평가 후쿠시마 료타가 지난 헤이세이 연간(1989~2019)의 일본 문학이 마주했던 과제와 그 유산을 결산한 책. 헤이세이는 냉전의 종식, 장기 불황의 시작, 소셜 미디어의 출현 등 일본 안팎에서 사회상의 급변이 일어난 시기다. 이 시기 문학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다 요코, 무라타 사야카 등이 세계적 인기를 얻은 반면, 국내적으로는 출판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문학의 위상이 실추되었다. 이 책은 이런 배경 위에서 헤이세이 동안 일본 문학의 현장과 내용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검토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들로 구성된 헤이세이 문학을 포착하기 위해 여섯 개의 ‘문제군’을 제시한 다음 이들을 ‘나선형 상상력’이라는 하나의 형상으로 엮어 낸다. 급변하는 세계가 만들어 낸 나선형 운동에 끝없이 포획되면서도 이탈을 꾀했던 헤이세이 문학의 유산을 올바르게 상속하고 문학의 진지를 다시 세우려는 비평적 노력이 우리 자신의 과제 또한 일깨운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을 유럽의 정치적 관계나 전술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의 참호 속에서 1460일을 버텨내야 했던 병사들의 눈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참호에서 보낸 4년이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삶, 하지만 지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통계와 보고서, 편지들과 문학작품까지 섭렵한 저자는 이 사상 최악의 전쟁을 '병사들의 일상사'라는 측면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책은 거의 1세기 전 종군기자들의 노력으로 남겨진 보기 드문 실제 사진들과 참호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낭만적으로 전쟁을 상상하고 미화했는지, 동시에 전쟁을 처음 경험하는 근대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안이한 상태에서 격전을 치렀는지를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출판사 제공-
존 J. 콜린스 · 존 P. 마이어 · 캐롤린 오시에크한뉘
‘온 세상 땅끝까지’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전해 온 ‘성서와함께’의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 제3권
《역사적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가 독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신화연구소한뉘
Harris, Malcolm한뉘
이곳은 어떻게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는가? 150년 실리콘밸리가 설계한 성장동력의 이면을 추적한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를 다룬 최초의 글로벌 역사서다. 동부에 비해 발전이 미미했던 이곳이 어떻게 경제전쟁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는지, 어떻게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고도 재앙적인 21세기로 이끌었는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속하게 발달한 기술이 어떻게 수많은 인재와 자본과 연결되며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는지, 휴렛팩커드(HP), 제너럴 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전 세계를 흔드는 첨단기술기업들이 어떻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례대로 나타났는지, 더 나아가 미국 자본주의의 욕망 뒤에 가려진 소문자들의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본주의 경제사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이자 비판적 안내서 『자본주의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전문가인 위르겐 코카 교수는 이 책에서 유럽의 중세 시대부터 오늘날 세계적인 확산에 이르기까지, 상업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형태와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최근의 위기가 자본주의에 던지는 명암에 대해 질문하며,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시대적 흐름을 일목요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서술할 뿐만 아니라 여러 변형과 대안까지도 소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입문서이자 비판적 안내서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대륙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횡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당대의 사고 체계나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종으로 횡단하는 교양 역사서다.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ㆍ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 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향유한 소설과 영화, 노래도 다수 인용된다. 그 모든 것들이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역사의 본질을 연결과 연루로 파악하는 이 책은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로 요약되는 국가ㆍ민족 단위의 익숙한 역사 내러티브 대신 움직이고 반응하는 개인의 마음과 태도에 주목한다. 사랑하고 실수하고 꿈꾸고 욕망하는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얽히며 주고받는 역동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역사가 이들에게 져야 할 책임, 나아가 연루된 주체로서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함께 살핀다.
피터 심킨스 · 제프리 주크스 · 마이클 히키 · 강민수 ·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한뉘
오랜 세월 제1차 세계대전 연구에 헌신해온 세 명의 전문가가 각각 자신의 장기분야, 즉 서부전선, 동부전선, 지중해 전선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다각적인 의미들을 섬세하게 포착...
독일의 군사적 성공과 실패. 그리고 신화의 탄생
독일군이 선보였던 작전적 능력은 거의 신화에 필적한다. 제대로 된 동맹은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 합스부르크, 러시아와 맞서 싸우다 한때는 자국이 쑥대밭이 되었지만 결국 승리를 쟁취해 냈던 7년 전쟁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성취한 위업을 맹아로 삼아 1866년의 보오전쟁과 1870년 보불전쟁에서 거둔 완승, 그리고 1914년과 1939~41년에 올린 놀라운 성공까지 근 백여 년에 걸쳐 독일군이 올렸던 큰 성과는 독일군이 가진 ‘무적의 군대’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근원을 독일군이 함양했던 작전적 사고와 뛰어난 작전술 및 작전 수행 능력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완벽한 전쟁 기계’는 20세기에 두 차례의 대전쟁을 겪으며 결국 온 나라가 불타고 패전을 겪었다. 이러한 성공과 실패는 과연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2차 세계대전 뒤에 나온 수많은 독일 장성들의 회고록은 각자의 어조는 다르지만, 거의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군은 최선을 다하였으나,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독일인들 사이에 돌았던 내부중상설과도 어느 정도 통한다. 하지만 독일연방군 육군 대령이자 군사사학자인 게하르트 P. 그로스는 프로이센군부터 시작해 독일 제국군, 이른바 ‘10만 명 군대’라 불린 국가방위군, 독일 국방군을 거쳐 현대의 독일 연방군에 다다르는 동안의 ‘작전적 사고’를 따라가며 성공 요인과 더불어 독일군 실패의 요인을 함께 짚어 간다.
유럽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프로이센과 그 후신인 독일 제국 및 나치 독일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치는 기간 동안 잠재적 적국들에 둘러싸여 ‘양면전쟁’ 및 그에 따른 엄청난 소모전을 야기하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독일의 참모장교들은 이런 지정학적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작전적 사고(Operatives Denken)’를 발전시켜 왔다. 그들이 세우고, 발전시킨 원칙과 교리는 19세기에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고, 현대에 와서 ‘독일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군대란 거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독일군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모두 현실적 한계에 직면했고, 이를 사고의 전환으로 극복하려 했으며 얼마간은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은 제국 건국 이래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된 독일의 태생적 딜레마인 양면전쟁의 위기,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고의 변화 과정을 독일군 특유의 장군참모 제도와 총참모부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집중 조명한다. 군사사학자 게하르트 그로스는 독일 군사사에서 각기 다른 단계로 여겨지던 여러 전쟁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군사적 성공의 신화와 깨끗한 국방군의 이미지에 냉정한 비판을 던진다. 방대하면서도 포괄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통일 독일부터 세계대전의 시대를 거쳐 냉전까지, 프로이센군과 국방군, 독일 연방군으로 이어지는 독일 총참모부를 이끌어온 작전적 사고의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사고의 전환으로 극복되었다고 여겨지거나 간과된 문제들과 그 배경에 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그로 인한 패전 과정을 균형 있게 서술했다.
본서는 2000년대 이후 새롭게 연구된 자료들을 반영하였다. 그 결과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르샤바 봉기 당시 독일-소련군간의 교전과정 등이 주요한 사례로 인용될 수 있었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 연방군 군사연구소에서 제공된 정교한 작전도를 함께 실었다. 또한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구판에 있었던 몇몇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참고문헌 및 주석, 색인을 일신하여 학술적 목적에 활용도를 더하였다. 또한 편집과 장정을 바꾸어 가독성과 편의성을 개선했다.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어떻게 발전했으며 어떤 식으로 작동했고 전쟁의 상황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유럽 전체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만들고 서구 문명을 거의 파멸 직전의 위기로 몰아가는 데 일조했다.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어떤 조직이었는가? 히틀러 암살사건을 일으킨 독일군 참모장교 육군 소령 클라우스 셴크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 최고사령부는 가장 우수한 참모장교가 가능한 한 가장 어리석은 전시 최고지휘부 조직을 만들어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조직보다 훨씬 더 열등하다”고 논평했을 정도로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과대망상증 환자를 수장으로 하고 각종 기관들과 인물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며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형편없는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단 2년 만에 유럽 대륙의 거의 전체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3년 이상 적들을 저지했다.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 조직 내의 문제점들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당시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를 지배하고 있던 사고방식이나 전략적 틀은 어떠했는가? 최고사령부는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을 실행했을까? 이제까지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제프리 메가기의 이 비범한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었던 다른 역사 문헌들이 남겨둔 빈 공간을 채웠다. 메가기는 전쟁을 지휘한 독일 측 인물들에 대한 검토에서 멈추지 않고 고위 지도자들이 전쟁의 여러 가능성을 계산할 때 사용한 지적인 틀과 그들이 활동했던 조직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이 책에 자세하게 설명했다.
최고사령부 내에서 파벌 간의 정치적 균형은 어느 선에서 이루어졌는가? 어떤 분쟁이 진행 중이었고, 그것은 지휘부 조직 자체는 물론 조직이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지휘부의 효과성과 지휘 조직의 발전에 있어서 특정 개인이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가? 전쟁과 전략, 지휘에 대해 독일인이 갖고 있는 근본적 개념은 무엇인가? 이들 개념은 지휘체계의 조직과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런 개념들은 국가사회주의 이념과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했는가? 최고사령부 내의 하루 일과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정보는 어떤 식으로 전파되었는가? 핵심 인물들은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고 실행했는가? 그들이 처한 물리적 환경과 업무의 요구는 그들의 상황 인식이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군수와 인사관리, 군사정보 체계는 계획 과정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었는가? 지휘부에서는 어떤 구조적 변화들이 진행되었으며, 그것들이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그와 같은 변화를 추진하게 된 구동력은 무엇이며, 변화는 어떤 식으로 발생했는가? 지휘부는 전쟁의 상황 변화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
이 책은 1933년까지 독일 지휘 체계가 발전해가는 동안 발생했던 주요 경향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제2장과 제3장에서는 세계대전 이전 히틀러와 독일 군부가 침략전쟁을 위한 초석을 다지던 나치 정권 시기를 다루었다. 제4장과 제5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첫 2년간을 다루면서 핵심적인 전략적 결정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제6장과 제7장에서는 바르바로사 작전(소련 침공) 계획 과정을 일종의 기본 틀로 활용하여 그 속에서 독일군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전투 지원 부서들(정보와 군수, 인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8장에서는 한주 동안 최고사령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독일군의 두 최고사령부가 갖고 있는 업무 유형과 의사결정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제9장과 제10장, 제11장에서는 전쟁의 나머지 기간을 다루면서 이 기간에 점점 더 심각해지는 최고사령부의 문제점들을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특히 자원을 사이에 둔 이전투구식의 내분과 나치당의 영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현재의 잘못된 인식을 수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말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우직하지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야망도 큰 독일 장교단은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끌려 들어갔으며, 군사 기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과대망상증 환자이자 잔혹한 독재자 때문에 독일이 패배했다는 신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후에 장군들과 제독들은 열정적으로 총통을 비난하며 제3제국의 터무니없는 전략적 실수를 히틀러의 탓으로 돌렸다. 전쟁이 끝났을 때 히틀러는 이미 자살해서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독일의 비극적인 패배에 대해 사실상 모든 비난을 떠안게 됐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증거들은 최고사령부가 히틀러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총통과 함께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휘부의 가치관과 사상은 히틀러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것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았으며, 이는 히틀러에 대한 신화가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독일군 최고사령부를 지배했던 군사문화는 나치가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지도자에게 협조하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2차대전사의 전문가인 저자는 히틀러와 군부 사이의 분쟁에 대한 일반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양측 모두가 독일의 몰락에 기여했다고 본다. 독일군 지휘부는 대체로 자기 스스로 곤경을 초래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렸으며, 독일이 패배한 뒤에는 생존자들이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을 아주 그럴듯하게 보이는 희생양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발전 과정과 업적을 세밀하게 평가한다. 이 책이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엄청난 수의 출처들 속에 흩어져 있던 최고사령부에 대한 정보를 하나로 집대성했다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와 전후 생존한 육군 장성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탄생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과 군대의 전략 이론, 조직 이론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완벽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위해서라도 러셀을 읽어야 한다!” _애스트라 테일러(다큐멘터리 감독)
기득권의 착취와 배제에 맞선 자본주의 사회 속 장애인의 치열한 분투
자본주의의 발흥은 장애인의 입지를 급격하게 바꿔놓았다. 자본가 계급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동시에, 장애인들을 사회가 엄격하게 다루어야 할 집단으로 계급화했다. 장애인들은 시설에 격리되었고, 그들의 빈곤은 일상이 되었으며, 장애라는 개념은 심신 장애에 덧씌워진 사회ㆍ경제적 불이익을 지시하는 데 이용되었다. 『자본주의와 장애』는 자본주의와 장애의 관계를 통찰력 있게 사유했던 마타 러셀의 글을 엮은 것이다. 러셀은 자본주의 체제와 장애인 억압의 상관관계, 1990년대 미국 장애인법의 한계 등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마르크스의 경제 개념, 노동이론을 장애인의 노동 조건과 결부하여 설명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장애인이 약자로서 겪는 사회적 제약을 종합적으로 논한다. 자본주의의 배타적 특성, 그리고 집요하면서도 광범위한 장애인 불평등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기시 마사히코한뉘
‘인간에 관한 이론이란 무엇인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재현 불가능한 일회적 행위와 선택, 우리가 이런 상황과 행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망고와 수류탄-생활사 이론』은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저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2018년 일본에서 출간한 책을 한국어로 완역한 것이다. 이 책은 기시 마사히코의 주된 연구 분야인 오키나와 사람들의 동화와 아이덴티티 문제에 대한 연구와 생활사 방법론을 다루면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저자가 얻게 된 통찰과 문제의식, 이를 바탕으로 ‘인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망고와 수류탄》은 사소한 일상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실재에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저자 특유의 스타일대로 때로는 에세이처럼, 때로는 사회학 방법론 연구 논문처럼 주제에 따른 여러 글들이 종횡무진 모여 있다. 이러한 책의 구성에 관해 저자 또한 들어가는 글에서 각 장들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어느 곳에서든 출발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가벼운 이야기와 이론적 이야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독자들은 구술을 청취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모은 가벼운 이야기를 읽다가도, 일본 사회학에서의 양적조사와 질적조사의 문제점과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여러 논쟁들을 지켜볼 수 있으며, 책을 읽어 가면서 날줄과 씨줄로 얽힌 책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인류는 왜 매너와 에티켓을 발명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20세기 섹스 에티켓까지 품격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매너’의 모든 것
☆☆☆ 소비, 여행, 온천, 지도, 인삼, 추리소설, 관상 등 지금껏 역사책에서 본 적 없는 주제로 매번 우리를 역사의 세계로 이끄는 연세대학교 설혜심 교수의 신작!
☆☆☆ 매너에 관한 최고의 고전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후 가장 주목해야 할 저서 《매너의 역사》
우리는 왜 지금 매너를 이야기하는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매너는 마치 공기 같아서 그것이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굳이 말로 꺼낼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매너에 대한 사회적 갈증에 화답하듯 설혜심 교수는 에티켓북과 처세서, 행동지침서, 편지, 매뉴얼북 등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생산된 100여 종의 굵직굵직한 예법서를 치밀하게 분석해 매너의 역사를 일별한다. 서양 매너의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부터 중세의 기사도, 에라스뮈스와 로크의 예절 교육, 18세기 영국식 매너와 젠틀맨다움을 거쳐 상류사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에티켓으로의 퇴행과 개인화된 20세기 에티켓까지, 그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왜 매너를 발명해 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시시콜콜하고 사소하게 여겨졌던 ‘매너의 역사’를 통해 무례함과 불관용의 시대를 넘어설 ‘품격’ 있는 삶의 힌트를 찾아보자.
발데마르 헤켈 · 필립 드 수자 · 로이드 루엘린-존스 · 오태경한뉘
동서양 최초의 대결인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 민주정을 대표하는 아테네와 과두정을 대표하는 스파 르타의 대결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고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알렉산드로 스 ...
그리스 신화의 내용과 그 풀이의 변천 과정을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개략적으로 기술했다. 먼저 그리스 신화의 성격과 특징, 그리스 신화의 형성과 형태 등을 설명하며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창세 신화, 올림포스 신화, 영웅 신화로 분류해서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의 변모와 그리스 신화 해석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며 그리스 신화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김진경한뉘
서양 문명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 2005년 작고한 저자가 30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학문의 깊이와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고려하여 “헤로도토스의 설화성과 투키디데스의 역사성을 겸비한 글이 되기를” 시도...
몽골제국사 연구의 대칸, 서울대학교 김호동 명예교수 칭기스 칸과 그 후예들의 전설을 다시 쓰다
중앙유라시아 역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인정받는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가 세계 최초의 세계사 『집사』의 세계 최초 축약본인 『몽골제국 연대기』를 완성했다. 1980년대 초 하버드대학교 유학 당시에 페르시아 원전을 처음 읽은 그는, 일 칸국의 재상 라시드 앗 딘이 쓴 이 책을 통해 당대 몽골제국 세계의 공기와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13세기에 몽골 기마군단이 말을 달리기 시작하자 동서양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다. 흔히 ‘최초의 세계사’라고 일컫는 『집사』는 그 결합과 연결의 결과물이다. 김호동 교수는 몽골 초원과 실크로드, 중국의 역사는 물론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한국과 일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폴란드와 헝가리, 러시아와 비잔티움까지 모두 포괄하는 『집사』의 내용을 요약하고 압축하여 다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몽골제국 연대기』는 모두 합쳐 5권, 2246쪽에 달하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를 제국의 등장과 팽창, 완성 과정을 중심으로 한 권으로 요약한 축약본이다. 거기에 몽골제국 황금씨족 및 4대 울루스 군주별 계보도, 제국의 확장 과정과 주요 사건에 대한 상세 지도 등을 추가하여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하였다. “라시드 앗 딘의 『집사』를 처음 읽은 날로부터 벌써 40년이 흘렀다. 이 책은 여전히 나를 몽골제국의 역사로 끌고 간다”라는 김호동 교수의 안내를 따라 중앙유라시아의 초원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자.
전작 『반역자와 배신자들』로 전쟁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 이준호의 신간, 『생존자들』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세기를 비명의 늪에 빠뜨렸던 2차 세계대전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중에서도 특히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주목한다.
지옥을 알리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걸어 들어간 폴란드 군인, 미국 정보원과 대통령 보좌관까지 지낸 ‘리옹의 인간 백정’,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지성과 창조성을 빛낸 예술가들……. 생존자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한 사건의 집단 생존자들,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 영웅적 행동으로 승리자가 된 군인들, 가해자를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이겨낸 사람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부지한 악인들 등 다채로운 사례를 조명한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모으면서 저자는 전쟁이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모습, 다시 말해 연대와 의지와 생명력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뜨겁게 불타오르는지를 역설한다.
모래ㆍ소금ㆍ철ㆍ구리ㆍ석유ㆍ리튬 물질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이는가 인간 세계를 확장시킨 물질에 관한 가장 지적인 탐구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기가팩토리 네바다까지, 가장 원시적인 곳에서 발견한 최첨단의 세계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이 여섯 가지 물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물질로 암흑기에서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사회로 인간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전력을 공급하고, 집과 빌딩을 지으며,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만들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물질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물질의 세계》 저자이자 영국의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Ed Conway)는 우리가 알지 못했고 볼 수 없었던 물질이 가진 경이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무더운 유럽의 가장 깊은 광산부터 티끌 하나 없는 대만의 반도체 공장,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소금호수까지. 전 세계 곳곳을 탐험하는 과정 속에 인간의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대체 불가능한 여섯 가지 물질의 비밀이 밝혀진다. 물질은 어떤 과정을 거쳐 놀랍도록 복잡한 제품으로 탄생할까? 여섯 가지 물질의 여정이 만들어가는 기적적인 과정과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물질의 새로운 세계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애드버 게임까지’ 광고, 시장을 흔들고 세상을 바꾸다
‘자본주의의 꽃’, 그 이상의 흥미로운 이야기 광고는 별명이 많다. 예를 들어 ‘문화의 통조림’이란 것이 있다. 특정 시대 사람들의 일상이 압축적으로 담겨있으니 그렇다. ‘세상의 거울’이란 이름도 있다. 웃고 울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되비쳐준다. 역사학자 스테판 폭스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미국 광고를 다룬 자기 책 제목을 《거울 만드는 사람들The Mirror Makers》로 붙인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기에 광고를 보면 경제, 정치, 설득 커뮤니케이션, 예술, 문학, 심리학, 기호학 등 다양한 렌즈를 통해 당대인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광고사의 총체적 조망을 위해 로마 시대 검투사, 전쟁과 페미니즘, 노예제도, 인디언 박해, 뇌과학과 인공지능에 이르는 놀랍도록 다양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담다 여러 광고상을 받은 현장 출신의 대학교수가 쓴 이 책은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본격적 세계광고사다. 단순히 광고의 기법, 트렌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미덕. 소비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망치(하드 셀)’와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솜사탕(소프트 셀)’을 축으로 시대적 변화ㆍ세계사적 흐름을 짚어낸다. 이를테면 2차 대전 당시 근육질의 여성 노동자 ‘리벳공 로지’류의 광고가 득세했다가 종전 무렵 여성 노동자의 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들이 어째서 대공황 시대엔 가격과 품질 등으로 소구하는 하드 셀 광고가 봇물 터지듯 나왔는지 그 배경을 짚는 대목이 그렇다. 순수예술과 상품 광고의 첫 만남으로 기록된 ‘피어스 비누 광고’,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극우파 골드워터 후보를 일패도지시킨 린든 B. 존슨 후보의 ‘데이지 걸’ TV 광고 사례 등을 보면 광고가 ‘세상의 거울’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시장을 넘어 문화를 만든 기념비적 광고들 책은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광고만 다루지 않는다. 광고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을 넘어 문화를 이끄는 첨병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풍성하게 등장한다. 세계 최장의 광고로 마초적인 남성상을 전 세계인의 뇌리에 심은 말보로 담배의 ‘말보로맨’ 광고를 많이들 기억한다. 그러나 2001년 암환자원조협회의 의뢰로, 오길비 앤 매더 사가 전설의 헤비 스모커 말보로맨을 비틀어 만든 광고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황량한 벌판에 쓰러진 말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광고의 카피는 “간접흡연이 죽입니다”였다. 이는 이후 호소력이 뛰어난 금연 캠페인의 상징이 되었다. ‘따봉’은 어떤가. 1989년 말 한 오렌지 주스의 TV에 등장한 이 포르투갈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정도로 일상언어에 스며들었다. 광고 이상의 광고에 얽힌 일화들이다. 소설보다 흥미로운 거장 광고인들의 맨얼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광고계의 전설로 기억되는 거장들이 마치 《사기 열전》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는 것. ‘천상천하 유아독존 알버트 라스커’, ‘냉혹한 저격수 클로드 홉킨스’, ‘광고의 피카소 윌리엄 번벅’, ‘크리에이티브의 왕 데이비드 오길비’ 등 목차만 봐도 놓치기 아까운 인물들이다. 1990년대 ‘신부와 수녀의 키스’ 등 발표할 때마다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베네통의 ‘쇼크 광고’를 제작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그가 그토록 파격을 추구한 데는 전 세계적 마케팅을 펼치기에는 베네통의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데다가 의류는 비교우위적 하드셀 소구가 어려운 상품이란 사정이 작용했단다. 세계적 불매운동이 일면서 베네통을 떠났다가 복귀하는 등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변방’을 훑고 ‘내일’을 짚는 폭넓은 시야 이 책은 주로 미국의 광고 광고인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 광고가 산업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발전했기에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유럽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세계 광고계 흐름을 주도한 영국의 사치 형제, 프랑스 광고의 전설 자크 세겔라, 이탈리아 광고의 자존심 아르만도 테스타를 다룬 대목이 그렇다. 또한 브라질의 살아있는 전설 워싱턴 엘리베토를 소개하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의 광고에도 관심을 보인다. 여기에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등장, 애드버 게임, 인터랙티브 광고 등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까지 살피고 있어 광고인이나 광고학도들에게도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광고산업의 메커니즘과 시대 변화를 고찰한 해설서이다. 하지만 세계 광고사의 숨겨진 면모를 캐낸 덕에 소설 이상의 재미, 역사책 이상의 통찰력을 담고 있다. 그런 만큼 800여 페이지를 훌쩍 넘긴 ‘벽돌책’이어도, 소비중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술술 읽어낼 수 있는 미덕을 갖춘 책이기도 하다.
“질문이 바뀌면 역사 보는 눈이 달라진다” 상식의 빈틈을 채우고 역사 문해력을 키우는 역사학 박사 유튜버 ‘함께하는 세계사’ 김태수의 질문24
사람들은 언제부터 여행하고 주식을 하고 축구를 즐기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지동설과 진화론, 마르크스주의, 군주론은 왜 탄생했을까? 초강대국 미국, 중립국 스위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은 어떻게 역사에 등장했을까?
흥미로운 질문과 놀라운 답변으로 역사의 흐름과 주요 변곡점을 새롭게 조명해온 25만 유튜버 ‘함께하는 세계사’ 김태수가 오늘의 세계를 만든 모든 ‘시작의 역사’를 찾아 나선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에서 저자는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주식 광풍부터 오늘날 파리를 형성한 도시 개조 프로젝트까지, 크고 작은 역사적 주제들을 탐구하며 “어떻게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졌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시간 체계, 여행, 스포츠 등이 과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새로운 개념이었을까? 합리성과 진보,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왜 많고 많은 국가 중 스위스가 중립국이 되었고 호주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범죄자들이 세운 국가가 아닐까?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에서 저자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거나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흐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현대 사회의 구조와 역사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풀어가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질문과 해석을 통해 현재와 소통하는 장”이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열쇠로 제시한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질문으로 세상을 더 깊이, 더 넓게 바라볼 기회를 제시해줄 것이다.
한국사회의 화교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다!
지난 137년간 화교와 우리 삶을 담은 『화교가 없는 나라』. 멀게는 정유재란부터, 본격적으로는 임오군란부터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는, 1944년 7만 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2만 명 정도 남았다. 137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면서 근현대의 격동기를 함께 겪었음에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실패한 나라가 된 우리의 오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저자는 화교의 경제, 생활, 사회, 정치 등 화교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크게 한반도화교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다루는 역사적 시간은 중국인의 한반도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882년부터 현재까지의 137년간이다.
비단 한반도뿐 아니라 동시대 동아시아가 하나의 경제권·생활권으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화교들의 행적을 통해 추적하면서, 종종 추상적일 수도 있는 질문들에 동아시아라는 격동기를 살아왔던 화교라는 역사적 행위자를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답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배척과 차별과 혐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며, 화교에 대해 더 이상 배타적인 이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우리의 이웃임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마르크 블로크한뉘
“우리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 프랑스 아날 학파의 위대한 고전, 22년 만의 재출간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은 20세기 역사학에 혁명적인 업적을 남긴 마르크 블로크의 1940년 저작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참전한 1940년 5월의 전투에서 독일에 패배한 직후, 피로와 절망과 싸우며 이 “이상한 패배”의 원인을 파헤친다. 이 책은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 초에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원인을 가장 정확하고 심도 있게 분석한 글로 평가받고 있다. 블로크는 1944년 나치 친위대에게 총살당할 때까지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패배 후에도 현실 참여적인 역사가로서의 사명을 이어갔다. 따라서 “1940년의 증언”이라는 부제목을 가진 이 책은 양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대위이자 레지스탕스 역사가였던 그가 후세를 위해 남긴 피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임 · 김민숙 · 김연숙 · 문경연 · 박지영한뉘
대중 여성잡지의 시원, 《신여성》 발간 100년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한순간 경성 거리를 점령했다 사라진 ‘그 언니’들의 투쟁기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일군의 여성이 거리에 등장한다. 수백 년 동안 집 안의 존재로서 목소리조차 울타리 밖으로 넘지 말아야 했던 여성들이 밖에, 거리에 등장하자 하나의 사건이 된다.”(7쪽) 단발과 뾰족구두, 교육받은 여학생과 신 직업부인. 근대 경성의 거리에 불현듯 등장해 기득 남성 세력을 아연 긴장시켰던 ‘신여성’에 대해 우리가 그리는 초상화다. 하지만 이것은 이 미스테리한 집단의 모든 면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을까? 지금껏 신여성에 관한 논의는 나혜석, 윤심덕 등 소수 엘리트 신여성에 한하거나 혹은 그녀들의 개성적인 외양을 평가하는 데 그쳤다. 이 책의 초판 《신여성: 매체로 보는 근대 여성 풍속사》는 대중 여성잡지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여성》 속 글과 사진을 분석하여, 위 같은 당대 담론의 한계를 넘어 ‘신여성’ 집단을 다층적으로 복원하고자 시도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때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그들의 이후 행보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 잡지 《신여성》의 발간 10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펴낸 이유도 이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함이다. 초판 출간 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담론은 부지런히 변화하였고, 또 가려져 있던 여성의 역사 또한 다채롭게 드러났다.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낡은 논의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현재 시점에 맞는 질문을 새로이 던지고 걸맞은 사진과 글을 덧붙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100년 전 ‘그 언니’들의 투쟁기가 현재 여성들의 싸움과도 똑 닮아 있음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질문 아래 일군의 여성들이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기득 세력에 의해 강력한 ‘백래시’의 피해자가 되며, 다시 가정과 기존의 직분으로 회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세심히 발굴하여 펼쳐 보이는 데 집중했다. 결국 신여성은 화려한 도시의 모던걸, 거리의 침입자에서 ‘스위트 홈’의 파수꾼, 똑똑한 어머니, 능력 있는 워킹맘이 된다. 왜 그녀들은 이처럼 ‘막힌 출구’를 향해 나아갔을까? 9인의 저자는 그들의 행보를 보고 배움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진짜 출구’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책은 정희진의 추천사처럼 “여성의 역사뿐 아니라 남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지만, “100여 년 전 우리 사회의 일상사, 정치경제, 문화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와 재미를 담보한다.
“사회의 이중적 잣대, 강력한 여성혐오, 노동 기회의 원천 봉쇄 등으로 신여성은 ‘밖’에 자리하지 못하고 점차 도시의 거리에서 사라져갔다. 그 많던 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여성》 읽기는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자, 100년 전 신여성을 통해 현재의 현실과 대결하는 일이다.”_머리말에서
Arnold-Forster, Agnes한뉘
“우리는 어쩌다 과거와 사랑에 빠졌을까” 세상을 사로잡은 복잡하고 매혹적인 감정, 노스탤지어에 관한 인문학적 탐사기
사람들은 왜 직접 경험하지도 못한 시대를 그리워하는가? 기업들과 정치인들은 어떻게 과거를 소환하여 돈과 표심을 움직이는가? 이 시대를 뒤덮은 거대한 노스탤지어 물결은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노스탤지어라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감정을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시대 정서로 조명한 최초의 교양서다. 영국의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는 이 책을 통해 노스탤지어의 기원과 장대한 변천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발견해나간다. 노스탤지어는 본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을 괴롭히던 치명적인 향수병은 산업화와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촉발한 대이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무해한 ‘감정’으로 변모해갔다. 표류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적 안정제로 기능하게 되면서 노스탤지어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자 정치적 선전 도구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중재술이나 인사 및 조직 관리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역사학, 심리학, 신경과학, 의학 지식을 망라하며 400여 년에 걸친 그 감정의 생애를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현대 인류가 공유한 집단적 상실감, 혼란, 불안의 실체를 밝혀낸다. 나아가 퇴행의 상징으로 통용되던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회적 유대와 미래에 대한 낙관을 심어주고, 궁극적으로 고독의 시대를 치유할 기쁨의 원천으로 기능하는지 전망한다.
정영권 · 백태현 · 성진수 · 정민아 · 홍진혁한뉘
이 책은 영화연구자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 영화를 풀어내도록 기획되었다. 역사연구자들에 의해 서술된 몇몇 역사영화 서적이 있지만,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에 담긴 역사를 중심에 두고 연구되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덜어내기 위한 시도이다. 이 책은 영화가 역사를 해설하기 위해 도구가 되는 것을 지양하고, 영화를 중심에 두고 역사를 이야기한다. 1부는 다섯 개의 쟁점으로 서술된다. 현대사 영화의 정치사적 계기, 현대사 영화의 대중 감성 코드, 현대사 영화의 서사로서 부성 멜로드라마적 성격, 현대사 영화의 시각적 요소로서 군중의 스펙터클, 최근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의 동시대적 욕망이 그것이다. 2부는 ‘영화 vs. 영화’라는 포맷으로 대중적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1950~1990년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한국영화를 주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는 형식으로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초적인 학술서이자 대중을 위한 교양서로서 기획된 이 책이 영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 읽기, 역사를 통한 새로운 영화 읽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에게 자유, 연대, 사랑이 왜 중요한가를 다루는 책.” “일상 문화에 대한 저자 특유의 비판적 사유와 치밀한 현실 인식이 결합된 명저.” 음악 연구 분야의 최고의 책 중 한 권으로 꼽히는 《음악은 왜 중요할까?》가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헤즈먼드핼시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문화 생산의 복잡하고 모순된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는 음악‧미디어 연구, 음악사회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뛰어난 음악 연구자가 쓴 《음악은 왜 중요할까?》는 음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놀랍도록 명료한 논리로 집필한 획기적인 책이자, 학제적 연구의 필독서가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음악 관련 서적으로는 믿기 힘들 만큼 다양한 분야의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음악의 공공성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사회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미디어와 문화연구, 인류학, 정치학, 철학과 미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와 이론을 음악에 대한 담론과 연결하여 다루고 있다. 다양한 시각에서 음악 현상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이론 전반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음악이라는 통로를 통해 일상과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여러 이론과 개념들, 통찰력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정동적 전환(affective turn)’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문사회과학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배경으로 폭넓은 감성적 차원에 주목하면서 음악의 가치를 논한다. 저자는 특히 대중음악이라는 세속적인 음악을 주로 다루며 일상적인 영역과 공공적인 영역에서 음악이 가진 중요성에 대해 논한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한뉘
1997년, 2006년, 2013년에 출간된 바 있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펴낸 개정판(4판).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풍부한 시각자료와 파노라마를 통해 개개의 작품을 새롭게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와 해석을 만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예리한 지적과 통찰은 예술적인 유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캐롤 스트릭랜드한뉘
쉽게 배우고 이해하는 서양미술사!
서양미술사의 전통적인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곰브리치의《서양미술사》와 잰슨의《서양미술사》 는 이제 막 서양미술에 관심이 생긴 초보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클릭 서양미술사』를 통해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핵심을 배워보자.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술하며 각각의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설명한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실험적인 비교 고찰을 통해 미술가와 작품, 미술 사조를 조망했다.
쉽게 미술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 로마 모자이크와 비잔틴 모자이크 등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은 각각의 특징을 정리한 표를 수록했다. 큰 도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컬러 Gallery와 미술사의 핵심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Style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통합적으로 미술사를 조명한다. 또한 깊이 이해하도록 연대표와 비교표 등을 배치했으며 부록에는 용어해설도 담겨있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미술사에 등장한 새로운 경향의 미술작품까지 포괄하는 현대적인 미술사 책이다.
시대를 앞서간 세계 최초의 영화이론서
저명한 심리학자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극: 심리학적 연구』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 영화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구함과 동시에 새롭고 독창적인 예술이론을 정립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인 이 책은, 당시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태동한 독특한 볼거리에 불과했던 영상 매체를 눈부신 예술로 격상시킨 단행본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뮌스터베르크는 낯설고 조잡해 보이는 ‘움직이는 사진’으로 된 드라마들이 기존의 예술을 뛰어넘는 미질을 가졌음을 단번에 간파하고,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던 영화산업에 큰 응원을 보냈다. 그의 영화이론은 단지 기술적 장치에 대한 매료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영향력에 대한 인과론적인 고찰과 더불어 이미지 인지 방식에 대한 관심까지 포괄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디트마어 엘거 · 이덕임한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는 20세기를 전후한 문화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국내외 거장 아티스트의 평전으로 구성된다. 2018년부터 다시 출간되는 본 시리즈의 스물두 번째 주인공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독...
호아킨 소로야 · 블랑카 폰스-소로야한뉘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한 공식 걸작선 대표작 100여 점, 가족과 예술에 헌신한 화가 소로야의 일생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아트북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만들어진 이 책 한 권에 소로야의 주요 작품 100여 점을, 최고의 권위자이자 그의 증손녀인 저자가 엄선해 수록했다.” - 〈아트 오브 타임스〉 “그러나 이 창백한 시대에도 소로야의 위대한 작품은 여느 때처럼 환하게 빛난다.” - 블랑카 폰스-소로야
잊혀졌던 ‘세계 최고의 스페인 화가’, ‘빛의 대가’ 호아킨 소로야(1863-1923)는 100년이 흐른 21세기 들어서야 재조명되었다. 2009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로야 회고전이 열렸다. 459,267명이 전시를 관람했는데, 이전 10년 동안 가장 많은 관람객이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09년 뉴욕에서 열린 첫 개인전은 “뉴욕 미술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받았다. 미국 언론은 전시회를 이렇게 평했다. “어쩌면 잔잔한 예술적 관심의 물결에 그쳤을지 모를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열광의 해일로 커졌다.” 프랑스 파리에선 소로야가 만난 많은 비평가와 화가들이 그를 높이 평가했고 우정을 나눴다.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빛의 대가(the master of light)’라며 치켜세웠다. 화가로 활동한 40년 동안 4천 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리며 쉼 없이 일한 소로야는 안타깝게도 그림을 그리다 쓰러졌고, 그 마지막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리고 100년간 깊은 잠에 빠진 듯 스페인 바깥 세계에선 거의 잊혀졌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과 감동이 있는 소로야의 위대한 작품은 어느 때든 환하게 빛났다.
배우들의 스승 신용욱 첫 에세이 30년간 연기를 가르치며 쌓아 올린 사유의 조각들
배우들의 스승 신용욱 첫 에세이 30년간 연기를 가르치며 쌓아 올린 사유의 조각들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 무대 위에서, 혹은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언제나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다.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정작 베일에 가려진 일. 이 책은 그런 배우라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살며시 문을 열어 준다. 강동원, 원빈, 한지민, 한효주, 김지훈, 이준혁, 홍경 등 수많은 유명 배우의 연기를 지도해 온 저자가 보여 주는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 위 화려한 배우의 모습이 아니다. “이 책은 잘 정리된 연기 교재가 아니라, 연기를 하고 또 가르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토대로 써 내려간 연기를 대하는 태도, 결국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30년간 연기를 가르치며 겪어 온 지난한 시간이 페이지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경험이 오롯이 담긴 이 책 자체로 아주 특별한 배우 수업인 셈이다. 책은 인내하고(1부), 발견하고(2부), 배우고(3부), 채워 나가는(4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배우를 꿈꾸는 이들이 꼭 한 번 들어 보고 싶다고 정평 나 있다는 저자의 수업도 마찬가지다. 마치 앞에서 거울을 들어 주듯 배우 각자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특성을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주고, 그 발견을 토대로 연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 수업 자체가 삶을 읽고, 감각하고, 호흡하는 연습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을수록 알게 된다. 배우를 꿈꾸는 이들은 물론, 지금의 자리에서 더 나은 내가 되고자 애쓰는 모든 이를 위한 수업이라는 것을.
앵거스 하일랜드 · 켄드라 윌슨한뉘
마티스의 장미, 호크니의 백합, 마네의 꽃다발… 명화 속에 핀 108가지 꽃 이야기.
“한 장 한 장 그림엽서로 만들어 액자에 소중히 담아두고 싶다.” -정여울(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저자)
세기의 미술가들이 ‘꽃’에 담아 건네는 가장 고요한 위로.
몇 마디 말보다 꽃 한 송이에 위로받을 때가 있는 법이다. 《화가들의 꽃》은 세기의 미술가들이 그린 108가지 ‘꽃’ 그림을 담은 책이다. 화가들의 생생한 붓질이 느껴지는 고화질 도판과 함께, 영국 최고의 그래픽디자이너와 원예 전문 작가의 해설이 친근하게 곁들여져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작품 사이사이 수록된 꽃과 예술에 대한 아포리즘은 메마른 삶에 윤을 내어주기 충분하다.
길가에 핀 소박한 꽃이든 꽃병 가득 꽂힌 한 다발의 꽃이든, 꽃과 마주한 순간 마음이 환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결 고운 꽃잎의 선, 특유의 무늬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누구나에게 완상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 아름다운 대상에 화가들도 마음을 뺏겨, 평생에 걸쳐 꽃에서 영감을 얻고 모두가 익히 아는 꽃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캔버스에 피워냈다.
강렬한 화풍으로 대표되는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Henri Matisse)는 “장미 한 송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그려진 모든 장미를 잊어야만” 한다며 때때로 온화함이 감도는 꽃 그림을 곧잘 그렸다. 마네(Édouard Manet)가 생애 말미에 주로 다룬 소재는 꽃이었다. 그는 건강이 악화돼 파리 자택에 머물렀던 시절, 문병 온 손님들에게 선물 받은 꽃을 가볍고 빠른 터치로 포착했다. 극단적으로 확대된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꽃들은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보는 이에게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열어놓는다. 이외에도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호크니(David Hockney) 등 화가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기만의 꽃 그림을 그렸다.
구겨진 가슴을 펴고 싶을 날, 유난히 지친 날 이 책을 펴보자.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꽃에 가만히 눈길을 내어줬던 화가들의 고요한 아틀리에에 초대받은 듯 마음에 평온이 깃드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페이지마다 곱게 담긴 꽃과 화가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쉼이 되어준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에게 이 시들지 않을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다.” -진병관(프랑스 정부 공인문화해설사, 《더 기묘한 미술관》 《위로의 미술관》 저자)
《새들의 밥상 -뒷산 새 먹이 관찰 도감》은 뒷산 새들의 먹이 생태를 다룬 단 하나의 ‘새 먹이 관찰 도감’입니다. 이우만 화가가 여덟 해 동안 서울 봉제산에서 만난 새들과 새가 먹는 먹이를 관찰한 내용을 현장감 넘치는 글과 아름다운 세밀화로 담아냈습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사철에 따라 어떤 새들이 무얼, 어떻게 먹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새는 우리 둘레에 늘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살아가는지는 잘 모르지요.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뒷산 새들의 밥상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인간 사회라는 야생에서 멸종되어 가는 몇몇 직업-동사의 이야기
첫 책 《퀴닝》(‘인간의 조건’ 개정판)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두 번째 책 《고기로 태어나서》로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교양 부문)을 수상한 작가 한승태가 ‘사라지는 직업들의 풍경’을 기록한 신작 《어떤 동사의 멸종》을 펴냈다. 여러 보고서에서 지목한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대체될(사라질) 직업’ 가운데 그 확률이 높은 네 직업의 어쩌면 마지막일 모습을 담고자 했다. 작가가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며 기록한 네 직업은 ‘콜센터 상담, 택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다. 책 제목과 연관 지어 ‘동사’로 표현한다면 각각 ‘전화하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이다. 작가는 이들 직업을 두루 겪으며 그 풍경의 안과 밖을, 그 가운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세세하게 담아냈다. 이들 ‘직업-동사’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작가는 그 어둡고 무거운 풍경을 익살스럽고 유쾌하면서도 쓴맛을 다시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문체로 들려줄 뿐이다. 어둡다고 안 보이게 하거나 무겁다고 짓눌리게 하지도 않는다. 이들 ‘직업-동사’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모습을 그는 풍자와 해학이 담긴 실없는 농담과 비유를 섞어 드러내며 우리의 가슴께를 찌릿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그 풍경 속의 당사자이거나 관찰자다. 어느 쪽이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이다. 한 치 앞을 모른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하여,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화의 길목에서 우리가 지을 수밖에 없는 표정이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 표정을 이 책을 읽을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세돌은 과연 알파고에게 졌을까, 이겼을까?’ 이 질문이 아직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터미네이터’의 시대, ‘메트릭스’의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일지, 그게 어떤 결말을 의미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읽는다’라는 동사마저 위태로운 지금,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번역 불가능한 작품의 번역 제임스 조이스가 빚은 ‘언어의 미궁’을 헤쳐 나갈 『피네간의 경야』 평역 시리즈 『경야의 서』, 그 첫 장을 열다
『경야의 서: 제임스 조이스 《피네간의 경야》 평역 시리즈 ①』는 이제까지는 없던 새로운 갈래의 제임스 조이스 번역서이다. 우선, 『경야의 서』 1권은 완역본이 아니라 원작 『피네간의 경야』의 1권 1장만을 다룬 책이다. 편역자가 소설 전체를 번역해 싣는 대신 구획을 나누어 편성한 것은, 피상적인 접근만으로는 『피네간의 경야』를 충분히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 박대철은 제임스 조이스의 독창적이고 난해한 언어 세계를 탐구하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복잡한 언어학적 구조 파악이나 원서 독해가 어려운 일반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경야’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언어의 미궁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다층 언어의 ‘프리즘’을 자처한다.
박영진 · 조영아 · 서지형 · 박영옥 · 이혜인 · 고해종 · 김민호 · 퀑탱 메이야수한뉘
『불가능한 애도』라는 제목에서 말하는 ‘불가능성’은 죽음으로 인해 부재하는 망자와의 관계에 관한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이 불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또는 개방성, 관계의 열림을 고지한다. ...
“오늘 점심 때 뭘 먹었더라?” - 뇌는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찾으러 부엌에 갔다가 “내가 뭘 찾고 있었지?”하며 머리를 긁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득 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불현듯 찾으려 했던 물건이 기억나지 않았는가? 『기억한다는 착각』은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흔히 우리는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25년 넘게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온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 차란 란가나스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왜 기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독자를 기억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앤 츠베트코비치 · 박미선 · 오수원한뉘
우울을 단순히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상태로 보지 않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 감정으로 개념화한다. 우울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과 신자유주의의 압박, 노예무역·원주민 학살·성...
세계의 고통을 제 삶으로 연결해낸 공모자-저항자들
“이 세계 다수는 사실상 연루자다”
나에게 인류학적 세계 읽기란 단단한 이해를 거쳐 책임 있는 비판을 길어내는 과정이었다. 이해가 모든 앎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되었고, 비판이 손쉽게 조준할 과녁만 찾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이해가 홀연한 불가지론에 닻을 내리면서 불의에 눈감게 되는 사태도 저어됐고, 비판이 제 수사적 고향을 판단의 유일한 준거로 삼는 것도 우려됐다.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믿음, 가치, 윤리, 삶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길 바랐고, 이러한 비판이 무수한 세계의 마주침을 이끌어 삶의 이해를 확장하길 원했다. 이 과정은 때로 자기수양에 가까워서 ‘더’라는 어중간한 단어를 붙들 수밖에 없다. 더 단단한 이해를 거쳐 더 책임 있는 비판을 시도하기. 그리하여 진리를 포획한 권위로부터 이해와 비판을 해방시키기. _「서문」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한뉘
오늘날 민중들이, 그리고 민중들의 재현이 위협받고 있다. 디디-위베르만의 이러한 생각은 이 책의 도입부 첫 번째 도판이 주는 시각적 충격과 함께 개진된다. 역사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얼굴이 찢겨진 익명의 참호전 희생자의 ‘깨진 얼굴’ 초상사진(25쪽 도판)은 이 책이 미술사, 역사철학, 이미지 인류학이 교차하는 사유 지대에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첫 번째 이미지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후 전개되는 다섯 개 장에 걸쳐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즉, 민중들에게 ‘대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 절단된 얼굴 이미지에 대한 응답은 유려한 산문 텍스트로 책을 마무리하는 다섯 번째 장인 에필로그를 통해 이루어진다. 왕빙의 영화 '이름 없는 남자'에서 취한 12장의 스틸 이미지는 민중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를 시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역사에 의해 말소되고 훼손된 민중의 이미지인 첫 번째 도판과, 시적인 형상으로 민중의 존엄성을 재발견한 ‘이름 없는 남자’의 이미지 사이에는 수많은 이미지가 텍스트를 따라 배치된다.
우리가 감각하는 현실은 세계 그 자체인가? 인식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세 지성의 지적 호기심과 깊은 통찰을 만나다
우리가 속한 현실의 실제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닮았을까? 혹시,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인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철학자이기도 한 윌리엄 에긴턴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 보르헤스, 불확정성 원리를 주창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라는 세 사람의 삶과 저작을 독창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실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가 “천사들의 엄격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제한적인 관점에 따라서 좌우됨을 보여준다. 문학과 철학, 물리학으로 분야는 다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천재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와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을 파고들어 우리 이성의 불완전함을 탐구하고, 그런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계를 풍부하고 장엄하게 경험하는 이유, 자유의지의 의미와 우주의 기원, 도덕의 필요성 등을 고찰했다.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이들의 치열한 사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세계에 투사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관계”로서만 존재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실재와 관련한 세 천재의 깊은 통찰은 사랑과 우정의 상실, 지적 열망과 치열한 논쟁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삶에서 꽃을 피웠다. 이 책은 때로는 마감 기한을 놓쳐 협박 편지를 받고(칸트), 실연의 슬픔에 잠겨 무모한 짓을 저지르며(보르헤스), 시대의 천재이자 학계의 대선배인 아인슈타인과 끊임없이 논쟁하는(하이젠베르크) 세 사람의 모습을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며 독자들을 흥미로운 사색의 숲으로 이끈다. 세 지성의 사유를 따라가며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실재란 어떠해야 한다”는 관점을 넘어 인간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체성 정치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엘리트 포획’이다!
존중 정치를 넘어, 현실의 구조를 구축하고 재구축하는 새로운 ‘세계 만들기worldmaking’, 구성적 정치constructive politics를 탐구하다!
차별받는 사람들, 소수자들, 억압받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중요한 정치적 행동으로서, 정체성 정치라는 개념이 세계적으로 또 우리나라에서 최근 특히 진보 정치와 사회운동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등장했다. 정체성 정치는 피억압자가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회를 바꾸는 움직임을 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기존 진보 정치의 맹점을 메꿔 주고, 당사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한편, 이러한 당사자성에 대한 강조가 왜곡되어 그러한 당사자들 가운데 일부에게만 주목을 집중하게 되고, 진정 이루고자 하는 구조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된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이렇게 정체성 정치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격돌하고 있고, 실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당사자들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된 정체성 정치라는 정치의 새로운 양태가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이러한 인물들의 위상만 세워 줄 뿐 원래 달성하려고 했던 새로운 세계 만들기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정체성 정치로는 진정 새로운 정치를 구성해낼 수 없는 것일까?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으로 조지타운 대학교 철학 교수인 올루페미 O. 타이워의 2022년 저작《엘리트 포획: 엘리트는 어떻게 정체성 정치를 (그리고 모든 것을) 포획하는가?》는 이러한 문제에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올루페미 O. 타이워는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철학자로 《배상에 대한 재고찰》 등의 저서를 통해 인종자본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으며 흑인 급진주의 전통과 제3세계 반식민주의 사상, 독일 관념론, 현대 언어철학, 현대 사회과학, 사회운동의 역사와 사상가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는 떠오르는 신진 학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체성 정치에 대한 여러 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의 중심 주제인 ‘엘리트 포획’이라는 현상을 분석하며 도돌이표뿐인 ‘정체성 정치 논쟁’을 다른 관점에서 개입하고자 한다. 미국의 흑인 급진 정치 전통과 제3세계 해방운동 등의 자원을 활용하여 저자는 주변화되거나 상처 입은 집단의 목소리를 듣자는 ‘입장 인식론’에 근거한 정체성 정치의 실천이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역설을 불러일으키는 점을 재조명한다. 한편 저자는 소위 ‘정체성 정치 비판’이 합리적 핵심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그 핵심이 정체성 정치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실제로 비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엘리트 포획이라는 현상이고, 이 현상은 어느 정치에서든 민주적 책임성의 압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사자성 기반 운동 내부의 특정 규범, 문화, 제도가 이 운동이 엘리트에 의한 포획에 취약하게 만든 이유라고 지적한다. 책에서 저자는 입장 인식론의 특정한 실천 방식을 ‘존중 정치’로 명명하며 정체성 정치의 에토스로 드러나는 존중 정치의 함정과 정체성 정치의 진정한 의의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미국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 조직 컴바히강공동체, 미국 흑인 사학을 정립한 카터 G. 우드슨을 중심으로 한 흑인 지성사를 참조하면서 제3세계 혁명운동가 아밀카르 카브랄과 기니비사우의 경험, 파울루 프레이리의 문화적 실천론과 미국 철학자 C. 티 응우옌의 게임에 대한 이론, ‘벌거벗은 임금’ 우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엘리트 포획이 나타나는 이유와 양태들을 짧은 책 속에 녹여 내고 있다. 특히 미국 흑인사와 식민지 해방과 관련하여 소개되는 다양한 인물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로, 독자들은 그 자체로 21세기 일어났던 해방운동의 역사와 그 긍정적 유산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협소한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 해방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성적 정치로 나아가는 대안적인 ‘세계 만들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머무는 ‘방’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함께해 나가는, 힘을 합치는 것만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해방을 위한 연합의 정치라는 목적 없이, 정체성 정치는 엘리트 포획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체성 정치의 문제점이 부각되는 현시점에, 이 책은 관련된 다양한 논쟁점들을 제시하고 토론을 촉발한다.
20세기에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산 지식인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사유의 길을 독자적으로 뚫고 나간 저자의 저서다.
이 책은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으로, 사유가 몽타주적 글쓰기와 얼마나 절묘하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저자의 번뜩이는 사유와 상식을 뒤엎는 몽타주적 글쓰기의 전범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성스러운 정신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책'이 상업물신주의의 회로에 포섭되어 있다는 등의 사실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저자의 혜안뿐 아니라, 오늘날의 제도화된 글쓰기 등에 대해 반성하는 우울한 관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사유의 힘을 되돌려줄 수 있는 최고의 자극제가 되어준다.
☞ Tip! 『일방통행로』는 1981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저자 발터 벤야민의 전집을 원본으로 삼았습니다.
비장애인 다수자에 맞춰 디자인된 사회처럼 일상의 언어에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사고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언어 속 불문율을 겨냥한 두 연구자의 대화 우리는 의지-선택-책임의 선형적 인과에 기인하는 능동/수동의 구도를 깨고 ‘책임’에 기꺼이 ‘응답’하는 인간조건에 참여할 수 있는가
『책임의 생성: 중동태와 당사자연구─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는 간과하기 쉬운 일상의 질문에 철학적 도전을 부단히 이어온 고쿠분 고이치로와,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전직 소아과 의사, 현재는 장애 당사자연구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인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공동연구를 대중 강연 통해 풀어내고 책으로 엮은 첫 작업물이다.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두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연구한다는 것’ ‘다양한 곤란함과 함께 살아나간다는 것’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느낄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출발해 중동태의 개념, 당사자 연구의 지식으로 가고, 또 거기서부터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왔다 갔다’가 독자 여러분들 안에서 일어난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신체장애인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지하철에 승강기가 설치되고 공공시설 곳곳에 경사로가 생겨 비장애인도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한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신체적 장애에 비해 비가시적인 장애는 여전히 은폐되기 일쑤이고 이제 걸음마 단계인 시도도 있으며 철저히 개인의 노력에 맡겨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영역일 것이다. 이 책은 과거의 건축물처럼 다수자의 경험과 합의로 축적된 구성물인 언어의 한 정경을 가시화한다. 언어가 나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험이 소수자에만 국한되지 않는 요즘이다. 애써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포착하기 어려운 언어와 책임의 상관관계에 관해 철학과 당사자 연구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흥미로운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한 번 이상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다 현실 분석을 위한 형이상학의 새 지평
『미래의 형이상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저자는 현재의 기원을 미래에 놓는다. 미래는 우발적이며, 가능과 필연의 양태로 이미 현재에 와 있다. 원초적인 과거도 우발적인 기원을 허용한다. 우리는 미래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며 문제를 파악하고 도전하며, 어떤 미래를 실천할 지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나 난민위기는 이미 와 있는 미래로서 인류의 생존과 새로운 지정학과 정치주체 등 해결에 대한 구상이 시급하다. 저자 아바네시안은 현재의 기술적·사회적·정치적 변화 속에서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의 핵심 분야를 통해 미래를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를 제시한다. 형이상학은 존재, 세계, 지식의 근본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로 저자는 실체와 우유성, 형상과 질료, 진리, 사변 등 형이상학의 중심 개념들을 동시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문제들에 접목해서 설명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소셜 미디어, 과학기술, 전쟁, 좌우 갈등, 난민, 기후 위기 등 사회의 주요 이슈들과 이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고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나쁜 형이상학은 항상 나쁜 정치에 봉사한다. 저자는 형이상학의 언어를 통해 미래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철학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여행의 시대, 기후악당이 된 대한민국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면 여행을 바꿔야 한다
바야흐로 대여행의 시대이다. 유튜브에는 새로운 여행 정보가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공항은 매일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2023년 해외로 나간 한국인은 2,270만 명으로, 어림잡아 국민 2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더구나 2024년에는 상반기에만 1,400만 명을 기록했으니, 2024년은 팬데믹 직전, 2019년에 최고치를 달성한 해외출국자 2,800만 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 사람 모두가 여행을 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계를 살피면 실제 해외여행이 가능한 인구는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5%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항공여행은 G20에 해당하는 국가에서도 극히 일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처럼 여행이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은 여행으로 인한 부작용에서도 차별을 드러낸다. 문제는 탄소배출량이다. 대한민국은 2030년에는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전망될 정도로, 이른바 ‘기후악당’이 된 지 오래다. 당연히 여기엔 관광산업도 큰 비중(10% 가량)을 차지한다. 한 번도 해외를 나가지 못한 많은 남반구의 사람들이 소수의 북반구 여행자들이 배출한 탄소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상황 속에서, 이제 우리도 자신의 여행을 책임 있는 눈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미 경험한 것처럼 자유로운 여행의 시간은 언제든 다시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충돌하는 노동자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남성 중심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을 만나다 건설, 철도, 물류, 자동차 공장… 모두 남성 노동자의 수가 여성 노동자의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 사업장이다. 이러한 사업장은 일반적으로 거칠고 위험한, 남성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곳에도 여성들이 있다. 소수이지만 남성 중심 작업장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현장에서 더 나은 조건 아래 일하기 위해 권리를 외치는 여성활동가들이 존재한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이 자신들의 사업장에 들어오는 것을 ‘침입’으로 여긴다.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노동 환경 속에서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부여받기 쉽고, 여성을 위한 작업복이나 휴게 공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초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구체적으로 여성들은 어떤 조건에 놓여 있을까. 여성 노동자이자 활동가들은 어떤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저자는 남성 다수 사업장에서 일하는 열 명의 여성활동가와 대표적인 여성 사업장인 교육과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 두 명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현장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불화하면서 저항하고 있는지, 이들이 마침내 쟁취한 것은 무엇인지,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지속하면서 다른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남성 다수 사업장과 여성 다수 사업장이라는 서로 다른 조건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과 활동을 비교하여 살폈다. 이 책은 곧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이현경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남성 중심 사업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의 여성활동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 여성활동가들이 노동 현장의 가부장적 구조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여성활동가들의 투쟁과 실천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 여성 노동자가 속한 공간은 여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억압하는가 여성활동가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작업장, 노동조합, 그리고 가정이다. 이 세 영역은 공통적으로 성별 분업구조가 작동하며, 여성에게 특정한 성역할을 부여하고 요구한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남초 사업장과 남초 사업장의 노동조합에는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 중심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여성활동가들은 가족 밖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만 가족 내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수행을 요구받는다. 가사와 돌봄 노동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며 가족 내부에서 계속 협상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을 보조하는 2차적 존재로 취급된다. 핵심적인 업무는 남성이 맡고, 여성은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선로 유지 보수하는 데 있잖아요… 기계화되기도 했지만, 곡괭이질 하고 여전히 흙 고르고 이거 세 명이 줄 잡고 고르고 하는 일도 똑같이 하거든요. 근데 여성들이 막 들어온 거예요… 너무 그거는 좀 위험하니까 일을 아예 안 시키는 거죠. 아예 옆에도 못 오게 하고 그냥 열차 감시 같은 것만 시키고._본문 인터뷰 중에서
이러한 남성 중심적 질서는 노동조합에도 동일하게 반영된다. 노동조합의 권력구조, 운영 방식, 문화 전반에서 여성의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업장에서 부차적인 존재였던 여성 노동자는 노동조합에서도 희소한 존재가 되며, 대개 ‘여성 사업’이라는 제한된 역할만을 맡는다. 여성 다수가 종사하는 산업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의 권력은 여전히 남성이 장악하고 있으며, 여성 대표들은 남성과 같은 방식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기대받는다. 결국, 여성활동가들은 작업장, 노동조합, 가정이라는 세 공간에서 모두 ‘젠더화된 분업구조’에 갇힌다.
▶ 살아남은 여성 노동자들, 페미니즘을 만나다 저자가 만난 여성활동가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노동 현장의 가부장적 구조를 깨닫고, 여성 노동자로서의 주체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페미니즘 학습을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노동조합 내부에서 조직적인 여성주의 실천이 확산되고, 사회적으로도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여성활동가들의 페미니즘 인식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여성활동가들은 모든 여성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남성 중심 사업장에 여성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여성 노동자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며 여성 노동자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성활동가의 재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남성성이 지배적인 노동조합, 가부장적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부수기 위해 여성 노동자와 여성활동가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 이렇게 의욕 넘치는 친구들이, 이런 제도적인 문제나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활동가들에 대한 고정관념 이런 것 때문에 제풀에 지가 쓰러져가지고 활동 안 한다고 해버릴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죠. 그래서 맨날 다독이잖아, 지치면 안 된다고. “우리가 먼저 진짜 포기하면 우리가 지는 거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이런 거죠._본문 인터뷰 중에서
여성활동가는 여성 노동자의 불평등한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해왔고,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내 성평등을 확대하기 위하여 실천해왔다. 이들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작업장의 성평등과 성별 분업구조의 해체를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페미니즘 학습을 통해서였다. 여성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 여성활동가가 생존하기 위한 절박하고도 필수적인 실천이다.
접속하고 교차하는 소설과 대중문화의 상상력: 도시, 기술, 놀이
이 책은 동시대의 문화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생생하게 반영된 소설과 대중문화 텍스트를 분석한다. 도시와 공간 인식, 장소상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자동화, 육체의 사이보그화, 기술에 의한 자아 확장, 인공지능,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쓰레기문명, 생태주의, 디지털화되는 놀이, 놀이의 타락, 저항적 놀이 등의 현실 경험들이 소설과 대중문화에서 형상화되는 양상을 논의하였다. 늘 그렇듯이 문학과 대중문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문학과 대중문화의 고유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1부 '도시와 공간'에서는 근현대 도시 공간의 원리와 속성이 구성원들의 삶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조건을 다루었다. 이어 2부 '기술과 미래'에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파급력과 역기능이 소설과 영화에 재현된 양상을, 마지막으로 3부 '놀이와 감수성'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 변화된 놀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소설과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탐구했다.
얼마나 많이 읽고 보느냐보다는 어떻게 읽고 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더 잘 읽고 잘 본다는 것은 더 천천히 읽고 본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가치 있는 감상의 비결은 '시간'이다. 시계의 시간으로 빨리 읽고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조용한 가운데 홀린 듯 몰입하는, 오랜 시간 집중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큰 문화적 성취를 낳는 원동력이다. 천천히 집중해서 자세히 읽고 보는 일은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읽고 보는 방법 자체를 익히는 경험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한국문학과 대중문화의 인상적인 성취라고 할 해당 텍스트들에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성장의 한계는 자본주의체제의 외적 한계와 내적 한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외적 한계는 이미 원점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인 기후변화, 다양한 생물의 멸종, 각종 자원의 고갈에서 보듯이 목전에 다가왔다. 내적 한계 역시 거의 도달 직전이다. 자본주의는 기존의 다른 생산방식들처럼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 단선적이고 누적적이며 불가역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일부였던 경제는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사회의 규범과 윤리가 되었다. 이러한 외적 내적 위기로 인해 인간 주체들 또한 심리적 구조의 붕괴를 체험하고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체제가 야기하는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대응한 자구적 대안 중 하나인 협동조합의 역사에 관해 정리한 것이다. 일제 독점자본에 대항하여 조선물산 장려의 일환으로 혹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전개된 협동조합운동부터 한국전쟁 후 경제 재건의 일환으로 시작된 신용협동조합운동, 그리고 1960~70년대 인플레에 대응한 자구책으로 전개된 소비조합운동에 대해 다루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개된 경제적 자활운동, 그리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경제의 지역화’ 방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장만능주의와 소비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 연대를 통해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앞 시대의 실천과 성쇠를 기록한 이 책이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길 바란다.
본격적인 국가 성립 시기에 ‘꿈틀거리던’ 베트남 불교의 기원과 변천 과정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전통 시대 베트남 불교를 다룬 최초의 본격 저술
불교는 어떻게 베트남에 전파되었을까?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불교는 베트남에서 어떻게 정착했을까?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받던 북속(北屬) 시기와 독립 과정을 거쳐 리 왕조[李朝, 1009~1225] 시기에 지배 이념으로 작동했던 불교는 어떠한 흐름 속에서 등장하며 새로운 외래 사상 ‘유교’와 직면하게 되었을까? 고려가 존속하던 동안 네 차례나 왕조가 교체된 베트남에서는 독립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불교가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을까? 이 책은 역사학적 관점에서 전통 시대 베트남 불교의 기원과 성장, 그리고 변천 과정에 주목하며 당시 시대정신의 흐름을 개괄한다. 이슬람보다 그 기원이 앞선 또 하나의 외래 종교, 불교를 중심으로 베트남의 전통적인 다양한 시대상의 흐름을 역사적·지역적(regional)으로 파악하고, 동북아 불교사, 특히 한국 불교사와 비교사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유교의 나라’ 베트남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던’ 불교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다. 또한 불교의 초기 전파 과정부터 리 왕조 시기까지, 유교의 점진적인 부상 속에서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발전해 온 베트남 불교를 깊이 들여다본다.
이 책 전반부에서는 윌리엄 캔비의 시대 구분을 따라 다음의 7개의 기간 ① 식민지 시대부터 1820년까지 ②인디언 강제 이주 (1820-1850) ③ 인디언 보호구역 (1850-1887) ④ 할당과 동화 정책 (1887-1934) ⑤ 인디언 재조직과 보존 (1934-1953) ⑥ 종결과 재배치 (1953-1968) ⑦ 부족 자치 결정권 (1968-현재)에 있었던 주요 정책과 법적 사건을 살펴보면서 각 사건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았다.
후반부에는 각 시대별 법적 케이스들이 어떻게 원주민들의 권리를 그나마 살려주었는지에 주목하고, 종교라는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 그들의 풍부한 세계관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인디언 주권과 관련한 현행 이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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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통곡한다. 땅은 말한다. 그리고 땅은 고발한다.
비록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이름 없이 묻힌 가련한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묻힌 땅은 신성하다. 땅을 빼앗고 되팔며 부를 이루며 거룩을 가장해도 인디언의 숨결은 대지에 스며 사라지지 않는다. 불꽃 지핀 자리마다 노래가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다 혼이 깃들어 누구도 이 땅에서 그들을 지울 순 없으리. 대지 깊은 곳, 인디언의 혼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사회, 가장 사회답게 되는 나라, 가장 나라답게 가는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찾은 아나키즘/절대 자유의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양과 한국의 ‘그리스도교 아나키스트’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그리스도교 아나키즘 사상들을 서술하며, 각 장에서 이들 그리스도교와 관계된 철학자들이 아나키즘을 종교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참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명제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의 문제, 나와 종교의 문제,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명석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Veronica Gago · Luci Cavallero한뉘
스테판 츠바이크한뉘
『사랑, 예술, 광기, 운명: 슈테판 츠바이크 아포리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명언이나 격언, 경구처럼 우리의 마음을 찌르거나 감동을 주는 문장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의 문학은 한마디로 사랑과 공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사랑과 공감은 츠바이크 문학의 원형적 모티브이며, 그의 모든 감성적 표현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문학에서 주도 동기가 음악에서 테마 음악이듯이, 사랑, 예술, 열정, 광기, 운명, 죽음은 그의 작품을 대변하는 주제어들이다. 그러나 이 주제어들은 예술적으로 상통하고 교차하는데, 사랑은 예술, 열정, 광기, 운명, 죽음으로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인용한 문장의 원전은 전기로는 『세계를 건축한 거장들』, 『인류 운명의 순간들』, 『마리 앙투아네트: 어느 평범한 인물의 초상』, 『정신을 통한 치료: 메스머, 메리 베이커 에디, 프로이트』가 있고, 자서전으로는 『어제의 세계』, 소설로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 『감정의 혼란』, 『체스 이야기』, 『환상의 밤』, 『과거로의 여행』이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본인은 자신의 전기들을 ‘정신의 유형학’으로 정의하고, 반면에 에로티시즘적 소설들은 ‘감정의 유형학’이라 기술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정신의 유형학과 감정의 유형학을 그의 아포리즘적인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 공공예술을 다룬 최초의 이론서, 문화민주주의를 말하다 공공예술 작업이 즐비하지만, 한 번도 그 작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공공예술 저서는 늘 사례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 상황이 이러니 현장에서는 공공예술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예술 최초의 이론서가 발간되었다. 해외에서도 공공예술을 심도 깊게 다른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공예술은 예술 계 내/외부의 전복을 동시에 꾀한다. 예술은 미술관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기준을 가져야 했다. 예술가의 권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탈권위주의), 일반 시민도 공공예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예술 주권의 회복), 나아가 사회에서 발언권을 잃은 사람에게 거부의 감각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사회적 배제와 차별 철폐)이 그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공예술을 일상의 감각을 벼리는 모두의 기술(art)이라고 한다. 저자는 공공성 이론의 권위자인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으로는 공공예술의 저항적이고 전복적 측면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공공예술의 공공성을 설명하기 위해 ‘임계적 공공성’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임계적 공공성’이란 기존 공공성의 장에 임계의 긴장을 부여하는 가능성의 저력이다. 이는 기존 공공성이 가진 배제의 힘을 전복하는 일이다. 저자는 ‘예술(art)’을 ‘기술(art)’로 되돌리는 전복, 특권적 감각을 일상의 감각으로 되돌리는 전복으로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 공공예술의 역사와 이론적 흐름을 통해 임계적 공공성을 주장하다 1부에서는 공공예술의 역사와 이론적 흐름을 정리한다. 근대 이전의 공공미술,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공공성, 그리고 미술관을 벗어난 공공예술의 변화를 다룬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등 주요 사례를 통해 공공예술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과정과, 거기서 생긴 다양한 갈등을 설명한다. 그 갈등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처가 바로 ‘새장르 공공예술’인데, 저자는 새장르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더욱 진전시킨다. 2부에서는 기존 공공성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공성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공적 감각도 퍼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공공성은 극도로 취약한 집단인 서발터니티가 스스로 공적 공간에서 자기 감각을 펼칠 수 있도록 환대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임계적 공공성’이라 한다. 공공예술은 단순히 공공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적 감각과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며 모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가는 일상의 기술이 공공예술이다. 이러한 기술이 기존 예술의 권위적 특성을 해체하여, 예술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며, 모두의 감각으로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한다. 공공예술의 이러한 저력은 예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 나아가 민주적 소통과 배제 없는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해 중요한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공공예술은 일상의 감각을 여는 환대의 기술이자, 모두의 기술이다. 3부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 없이는 공공예술이 성립되지 않음을 밝힌다. 동양 최대이자, 부산 최대의 그라피티존이 사라진 사례 등을 통해 관료주의적 개입이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훼손하는 방식도 비판한다. 4부에서는 공공예술이 시각예술을 넘어서는 방식에 주목한다. 공공예술이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여 더욱 효과적인 사회적 소통 도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다중 매체를 활용한 공공예술 사례를 소개한다. 공공예술 이론에서는 ‘매체’ 이론이 부재하기에 이 작업은 공공예술 철학에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부록에서는 공공예술을 비평할 때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하며,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비평적 관점도 제공한다. 공공예술 비평 문화의 활성화 역시 공공예술의 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또한 저자의 최근 논문을 수록하여, 독자들이 학술적 논의까지도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공공예술에서 나는 잡음도 공공예술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이 잡음을 공공예술의 실패로 다루지만, 정작 이 잡음 역시 공공성을 띠며, 이전에 말문이 막혔던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한다. 공공예술에서 등장하는 ‘잡음’은 공공예술 작업을 새롭게 이어 나갈 지속 가능성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부산 영도의 벽화 사건, 그리고 매축지 마을 벽화 문제, 초량의 〈살림숲〉 철거 사태를 다루면서 공공예술과 생활의 기술 사이의 매개점이 바로 이 공적 ‘잡음’에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공공예술 비평의 핵심은 단순히 눈요깃거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예술 비평의 핵심은 배제 없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였는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논쟁과 감각을 만들어 냈는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적 감각을 형성했는지를 평가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일상인들이 수동적인 관람객이 되거나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예술은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일상의 감각을 여는 환대의 기술(art)이다.
모순적이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족을 둘러싼 물음에 두 명의 페미니스트가 답하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가족의 반사회성을 여실히 폭로한 페미니즘 고전 『반사회적 가족』. 한국에서 37년 만에 원제 그대로 출간된 이 책에서 미셸 바렛과 메리 맥킨토시 두 명의 페미니스트는 가족에 대한 신선한 관점과 치밀한 분석으로 정상 가족의 환상을 뒤엎는다. 가족을 둘러싼 통상의 관념과 달라 다소 충격적일 수 있지만, 두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책의 제목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가족이 지니는 부와 빈곤의 세습기구로서의 성격, 가사노동을 통한 여성 착취, 사적 공간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개인에 대한 억압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반사회적 가족의 실체를 폭로한다. 가족의 반사회성은 단순히 가족의 현재적 형태가 지닌 비민주성에 머무는 게 아니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전체 사회를 가족화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라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독점할 게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차원에서 확산 공유될 수 있도록 전체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이성애적 성관계의 특권화, 혼인관계에서 출산만 허용하는 사회적 규범, 가족에 양육과 교육의 배타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 남성 가장과 여성 주부라는 성역할 구분 등이 모두 가족주의의 자장 안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는데, 이와 같은 두 저자의 통찰을 통해 안정과 보호의 상징인 가족이 전체 사회를 어떻게 황폐화하고, 해악을 끼치는지 깨닫게 된다.
벨랴코프 일리야한뉘
·문화를 이해하면 문학이 보인다 ·벨랴코프 일리야가 소개하는 러시아 문학의 명문장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26인의 문장으로 읽어내는 흥미로운 러시아 문화
《러시아의 문장들》은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대한러시아인’ 벨랴코프 일리야의 신간이다. 한국인에게 러시아를 친숙하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으로 화제가 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이후 두 번째 책이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고전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26인의 대표적인 문장 36개를 뽑아 러시아의 문화와 정서를 한국인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러시아인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크다. 유명 문학 작품의 문장이 각종 미디어는 물론, 일상의 대화에서도 인용되는 일이 흔하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문학과 친숙하며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따라서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러시아인과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면 러시아 문학이 더 친숙해진다. 러시아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한국인에게 낯선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러시아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여성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이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눈에는 사회에 도전한 인간이 받는 심판으로 읽힌다. 독자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에 명작이지만, 러시아인의 정서를 모르면 그만큼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는 기묘하면서도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싹틔운 러시아 문화는 러시아 문학을 불멸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문장들》은 문학을 통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러시아 문화로 창을 내어 들여다보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디자인의 이해』는 국민대학교에서 개설한 같은 이름의 교양수업인 〈디자인의 이해〉에서 출발했다. 2015년 처음 개설된 〈디자인의 이해〉는 근래에는 매년 약 600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대표적인 교양수업으로 발전하였다. 이 수업은 디자인의 여러 분야를 망라해야 해서 개설 첫 해부터 많은 준비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에 대한 지식을 글로 적은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업이 거듭되면서 PDF 강의자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여러 분반으로 나누어진 수업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국민대학교 출판부를 발행인으로 2018년 2월에 초판을 내고, 2020년 1월에 개정판을 냈다. 이번에 발간하는 〈디자인의 이해〉는 국민대학교라는 개별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여러 대학의 디자인 연구자들과 공동 저술하여, 이 책의 깊이와 보편성을 더하고자 했다.
서광사의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플라톤의 에우티데모스/크라틸로스』 편
철학서적 전문출판 서광사에서 『플라톤의 에우티데모스/크라틸로스』 편을 출간하였다. 서광사는 서양 고대철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야심 찬 기획 아래, 플라톤의 대화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1988년부터 계약하여 출판해 오고 있다. 헬라스어 원전에 대한 번역뿐만 아니라 주석까지 단 형태로 출판해 왔으며, 이번에는 그 열다섯 번째 결실로 『플라톤의 에우티데모스/크라틸로스』 편을 출간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복음서의 여자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복음서와 초기 기독교 연구에 탁월한 신학자 리처드 보컴이 복음서의 여자들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_룻기를 여성 중심 관점으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_마태복음의 계보에 이방인 여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_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사건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성경의 다른 여성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_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며 기도하던 안나는 실존 인물인가? 그가 아셀 지파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_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초기 기독교에서 한 역할은 무엇인가? _예수의 십자가 곁에 있던 글로바의 마리아는 누구인가? _살로메는 예수의 누이인가, 예수의 제자인가? _예수의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여자들의 증언을 우리는 믿을 수 있는가?
권위주의적 정치인과 독재자는 모두 자신의 ‘각본’을 갖고 있다 이 책은 무솔리니부터 트럼프까지 그들이 지닌 각본집의 해부다
“트럼프의 미국은 파시즘으로 가는 무서운 길에서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위험하게 근접했다.”
Sven Nyholm한뉘
『이것이 기술윤리다』는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트랜스/포스트휴머니즘 논의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기술철학·과학기술학(STS) 담론을 바탕으로, 기술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논의에 폭넓게 접근한다. 저자 스벤 뉘홀름은 윤리학 전공자답게 서구의 칸트 윤리학, 공리주의, 덕 윤리, 계약주의 등의 주요 규범 윤리 이론의 핵심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 우분투(Ubuntu) 윤리나 동아시아 유교 윤리까지 포섭하여 다양한 문화권과 전통이 기술윤리에 제공하는 통찰을 조화롭게 엮어낸다. 또한 반성적 평형, 트롤리 문제 유비, 윤리 가이드라인 설정, 전통 윤리 이론의 적용 등 기존 입문서들에서 흔히 다루지 않았던 기술윤리의 다양한 방법론을 소개함으로써, 단일한 접근법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고 틀을 제공한다. 기술윤리에 처음 입문하는 교양 독자부터, 심화 연구를 희망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자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안내서인 『이것이 기술윤리다』는 주요 개념과 내용을 중간중간 요약ㆍ정리하는 친절한 서술 방식, 특정 주장이나 이론의 출처와 학자를 명확히 밝히는 본문, 그리고 각 장 말미의 주석 달린 참고문헌은 독자가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 탐구를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나아가 이 책은 기술윤리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단순히 어떤 기술이 허용되고 금지되어야 하는지의 좁은 논의를 넘어서,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삶과 더 훌륭한 인간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기술이 어떻게 기여하고 또 방해물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까지 깊이 다룬다. 이 책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독자에게 기술윤리의 핵심 쟁점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더 윤리적인 미래를 향한 여정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김내훈 · 이승원 · 이준형 · 현우식한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사상을 소개한다. 라클라우 정치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헤게모니’, ‘포퓰리즘’, ‘비어 있는 기표’, ‘등가와 차이’ 등 주요 개념을 해설하고,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급진 민주주의’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한다.
영화를 통해 “다르게 사유하라!”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연 철학자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담고 있다.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중심으로 영화와 인접 영상 예술을 연구해온 철학자 이지영 교수는 이 책에서 들뢰즈를 사다리로 삼아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기어오르고, 올라타고, 사다리를 변형시키고자 한다. 들뢰즈의 영화철학이 사변적인 영화 존재론 내지 아트하우스 영화만을 위한 난해한 미학 이론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삶, 지금보다 생의 생성적, 창조적 역량을 더 상승시킬 수 있는 삶을 사유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통념을 전복하고 ‘다르게 사유’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어떤 목욕 방식을 좋아하세요?” 목욕에는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목욕탕 풍경을 떠올려보자. 가운데 있는 온탕과 열탕에서 어른들이 몸을 풀고, 건너편에 있는 냉탕에서 아이들이 첨벙거린다. 수도꼭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이태리타월로 때를 밀고, 샤워기 물을 맞으며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목욕관리사에게 등을 맡기고, 탈의실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다. 무척이나 익숙한 목욕탕 풍경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친숙한 이런 공중목욕탕의 모습은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목욕은 동물의 본능적인 습성인 동시에 인류의 문화이기도 하다. 인간이 목욕하는 방식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져 왔다. 증기를 쬘지, 탕에 전신을 담글지, 때를 밀지, 씻는 대신 옷을 갈아입을지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 시대에는 타인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전신욕을 잘 하지 않았지만, 고대 로마인들에게 공중목욕탕은 매일 들러야 하는 필수적인 사교 활동의 장이었다. 이인혜 저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동안 전국 각지의 목욕탕을 돌아다니며 목욕탕 문화를 연구했다. 『씻는다는 것의 역사』는 하루에도 두 번씩 목욕하며 동네 목욕탕을 찾아다닌 저자의 경험과 연구를 고스란히 담았다. 위생 관리 방법, 공공복지, 속죄 행위, 종교 의식, 사교 활동, 계몽 운동…. 오늘날 일상이 된 목욕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인더스 문명의 목욕탕 유적부터 오늘날 한국의 동네 목욕탕까지, 목욕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적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문화가 된 목욕, 변화하는 목욕 풍경 인류는 언제부터 목욕을 해왔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목욕의 흔적은 유적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에 있다. 기원전 3000년 전에 형성된 고대 도시 모헨조다로의 곳곳에는 수로와 우물이 있고, 중앙에 대목욕탕이 자리 잡고 있다. 목욕은 인류 문명과 함께해 왔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종만의 고유한 행동은 아니다. 어류, 조류, 다른 포유류들도 몸을 목욕을 하기 위해 모래나 진흙에서 구르고, 돌에 몸을 문지른다. 신체를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는 동물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류의 목욕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목욕하는 방식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번 변화하고 후대에 전승된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목욕은 습성을 넘어선 관습이자 문화이다. 목욕 문화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청결에 대한 관념, 종교적 교리, 목욕 시설의 보급과 도구의 개발, 자연환경까지 목욕에는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얽힌다. 4체액설을 믿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목욕은 체액의 균형을 맞추는 의료 처치였지만, 열린 모공을 통해 나쁜 공기가 몸에 들어온다고 믿었던 중세 유럽에서 목욕은 불결하고 두려운 행위였다. 한국의 목욕탕에는 뜨거운 물을 담은 욕조가 필수적이지만, 고여 있는 물을 불결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목욕 시설에 탕을 만들지 않는다. 탕에서 때를 불려 이태리타월로 온몸을 벅벅 미는 현대 한국식 목욕도 다양한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한국의 목욕 문화는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라졌는데,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개울에서 몸을 씻었던 고려의 풍습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는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고, 불결함을 미개함으로 간주하는 제국주의적 위생관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새마을 운동으로 지역 곳곳에 공중목욕탕이 세워졌고, 비누의 보급과 이태리타월의 발명으로 때밀이가 유행하게 되었다. 찜질방이 등장해서 다른 나라에까지 찜질방 문화가 퍼지는 한편, 수도 시설의 보급으로 공중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는 세대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목욕의 방식과 거기에 담긴 의미는 언제나 달라져왔다.
인더스 문명부터 현대 한국까지 광범위한 목욕 이야기! 이 책은 목욕을 둘러싼 역사적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고대 그리스부터 일본까지 세계사를 다루는 1부, 삼국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사를 다루는 2부, 해방 이후의 한국 공중목욕탕을 다루는 3부로 구성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오스만튀르크 제국, 중세 유럽, 산업혁명 시기 영국, 아메리카 선주민, 미국, 핀란드, 인도, 일본까지. 인더스 문명부터 근현대 한국까지 다루며 목욕이라는 일상적 행위가 인류의 문명의 핵심적인 문화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책에 실린 다양한 도판과 일러스트 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에서 살펴보는 세계 각국의, 과거의 목욕 풍경은 현대 한국인에게는 꽤나 낯설다. 내용과 관련된 유적 사진과 유물 이미지를 실어 독자들의 내용 이해도를 높였고, 찜질방 쉼터나 목욕탕 탈의실처럼 사진으로 실을 수 없는 목욕탕 풍경의 경우 일러스트를 활용해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목욕은 당시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풍습이다. 목욕은 위생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죄를 씻어내는 속죄 행위이자, 영혼을 정갈히 하는 종교 의식이고, 일상 속의 향락이며, 친교를 위한 사교 행위이고, 계급 유지를 위한 계몽적 행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신도 목욕탕에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오동진의 시대정신”
오동진 평론가의 이번 책에는 비교적 최근 영화가 담겨 있다. 한국 영화로는 〈소설가의 영화〉, 〈그대가 조국〉, 〈헤어질 결심〉, 〈비닐하우스〉, 〈서울의 봄〉, 〈헌트〉, 〈노량: 죽음의 바다〉 같은 작품을 다루고, 외국 영화로는 〈패러렐 마더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부활〉,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슬픔의 삼각형〉, 〈위대한 작은 농장〉 같은 사회성 짙은 작품을 선택해서는 왜 이런 시점에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영화 〈카터〉를 들고서는 미국의 대형 비디오 공급업체인 넷플릭스가 자본으로 영화를 오염시키고 있다면서, 종 다양성을 실현해야 하는 업체가 이러면 안 된다면서, 문화적 특성을 살려야 한다면서 곳곳을 지지하며 충언한다. 〈패닉 런〉을 얘기하면서는 지금 세상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조차 위험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정상이냐, 제도가 올바로 작동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은 인생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로, 서로 도우면서 뭔가를 이루려 하던 순수의 시대를, 잃어버린 시대를,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로스트 도터〉에서는 모성이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말은 가부장 사회의 남성들이 붙여 놓은 환각의 수사학이며, 여성들을 모성애 안에 가두려는 수작질에 불과하며,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증오의 본질을 배우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한다. 〈비공식 작전〉을 보려면 먼저 레바논 역사를 알아야 한다면서 정부를 대표하는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당, 무슬림 민병대를 대표하는 헤즈볼라, 마론파와 시아파의 갈등 등을 설명한 다음 영화에 얽힌 사건을 풀어낸다. 〈다음 소희〉에서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집는다. 궁핍 문제에 앞서 궁핍의 사회학이 만들어 내는 모멸감과 좌절감, 차별받는 느낌, 사회 변방으로 밀려나 소외된 느낌 등 21세기형 노동의 소외를 논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자연의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그 아름다움 안에 있는 속살은 얼마나 찢기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지를 설명한다. 자연에서 벗어나 문명화되고 현대화된 사회에서 산다고 착각하는 우리에게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르는데, 지성의 비관주의로 살아가되 의지의 낙관주의를 잃지 말아야 함을 웅변한다. 〈바디스〉에서는 자본주의가 산업화와 고도화, 첨단화를 겪은 160년을 다룬다. 그동안 우리 인간의 삶은 나아졌는가, 인간의 자유 의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근본적 문제에 대해 참신한 방식으로, 우회적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큐어〉에서는 자본주의적 풍요와 번영이라는 외면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하고, 평범한 척하는 가면보다는 진짜 표정이 더 중요하다면서 자기 안의 공포를 인식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결과가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더 원더〉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는 늘 역사의 큰 파고를 겪으며 발달해 왔고, 그렇게 인간은 신의 영역으로 다가서고 있지만, 인간의 이성이 확장됨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인지, 더 암울한 세상이 될 것인지를 묻고 있다. 〈본즈 앤 올〉에서는 자본주의가 소외된 계층을 만들고, 사람들은 정서적, 정신적 결핍에 시달리다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과 이상 행동을 하게 되는데, 결국 성적인 측면에서도 극단적 행동을 일삼게 된다고 경고한다. 자본주의 분석서이자 일종의 신자본론이라 불리는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영화에서는 온갖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한 최고 부르주아가 뱃멀미로 인해 토하는 등 난리가 나는데, 자본가는 똥을 판매하며 자본주의는 똥물로 넘쳐나고 있음을 파헤친다.
영국 리버풀대학교 고고학 전공 교수 브루스 라우틀리지가 국가의 형성 과정과 작동 방식을 고고학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흔히 국가는 단일한 실체로 여겨지지만, 라우틀리지에 따르면 국가는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여 정치적 권위가 형성된 결과이다. 따라서 국가의 형성 과정과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권위의 형성 과정과 작동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중심으로 정치적 권위의 행사 방식과 정치적 권위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마다가스카르의 이메리나 왕국,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잉카 제국, 마야 문명,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릉 등 다양한 고고학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정치적 권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톺아 본다.
오랜 세월 노동자들의 편에 선 노동인권 변호사가 맡았던 열한 개의 노동 사건 이야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배경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는 노동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돕는 변호사의 용기 있는 법정투쟁이 열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에이드리엔 메이어한뉘
지구 위를 걸어 다닌 최초의 로봇은 탈로스라는 이름의 청동 거인이었다. 이 놀라운 기계는 MIT 로봇 공학 연구소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 속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로봇을 혼자서 쓰러뜨린 마녀 메데이아는 사상 최초의 해커에 해당한다. 영토를 더욱 완벽하게 방어해야 한다는, 즉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더 잘 수행해야 한다는 탈로스의 ‘욕망’ 또는 알고리즘의 맹점을 파고든 메데이아는 그 거인을 공격하지 않고 설득한다. “네가 불멸하는 존재가 된다면 이 영토를 영원히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너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 의외의 제안에 흔들린 탈로스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해킹이 막 성공한 것이다. 탈로스는 그때부터 메데이아의 말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신과 로봇』의 저자 에이드리엔 메이어는 탈로스에 관한 신화에서 인공 지능에 관한 딜레마를 발견한다.
아닐 아난타스와미한뉘
“걸작”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 강력 추천 AI가 구현하는 놀라운 세상을 떠받치며 미래를 만들어갈 핵심 수학!
2024년 챗GPT의 마법 같은 등장은 빠르게 모두의 관심사를 장악했다. AI가 길을 찾아주고, 음악을 추천하고, 그림을 그려주고, 문서를 정리해주는 수준에서 도약하여 정보를 “스스로” 찾아서 알려주고 질문에 “생각해서” 대답하는 수준에 이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AI는 진짜 생각하는 기계가 된 것인가? AI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지고, 우리의 삶은 또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어두운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과학저술가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이 책은 오늘날의 AI를 있게 한 알고리즘을 구성하는 핵심 수학을 상세하게 살펴봄으로써 기계 안에서 어떤 과정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수십 년간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연구자들에게 활력과 흥분을 선사한 정교한 수학 원리와 알고리즘을 설명한다. 기계 학습이라는 방대한 분야에서 구사하는 알고리즘에는 비교적 간단한 수학이 쓰인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수학은 고등학교나 대학 저학년 때 배우는 것들로, 선형 대수, 미적분, 베이스의 정리, 가우스 분포(및 종형 곡선) 등이다. 이 책은 기계 학습 분야를 떠받치는 핵심적 수학 개념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로젠블랫의 퍼셉트론에서부터 현대의 심층 신경망(인공 신경세포라는 연산 단위의 정교한 연결망)에 이르는 여정을 들려준다. 1950년대의 비교적 단순한 개념을 이해하면서 수학과 친숙해진 뒤에는 조금씩 난도를 끌어올려 오늘날 기계 학습 시스템을 떠받치는 전문적인 수학 원리와 알고리즘을 살펴본다. 이 과정은 우리가 기계에 불어넣는 어마어마한 힘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이론적, 개념적 지식을 펼쳐 보인다. 학습하는 기계의 작동원리와 그 바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비로소 AI의 정체를 이해하고 AI로 가득해질 미래를 자신 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드레아 C. 한저트한뉘
유럽의 장대한 역사를 모아둔 기억 저장고 핵심만 간추린 합스부르크 가문 천년사
합스부르크 가문을 빼놓고 유럽사를 논할 수 있을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가문으로 400년,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 가문으로 또다시 100년, 그들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유럽의 권력을 쥐고 흔들며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왔다. 그들의 역사는 유럽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고, 수많은 국가와 민족을 다스린 영광스러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왕위계승 전쟁, 근대화와 민족주의 분쟁 등으로 위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고 만다. 이 책은 10세기 작은 귀족 가문에서 출발해 유럽을 지배하다가 20세기에 결국 무너져 내리기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핵심만 골라 압축했다. 곳곳에 배치된 가계도와 지도, 부가 정보글은 당시 복잡한 인물 관계와 유럽의 세력구도, 낯선 개념 등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종교개혁, 나폴레옹 전쟁, 1차 세계대전 등 세계를 뒤흔든 사건마다 중심에 있었던 그들의 역사는 너무도 치열하고 역동적이다. 그 굽이치는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럽사가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오늘날 유럽의 모습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조경숙 · 한지윤한뉘
〈AI블루〉는 AI라는 기술이 촉발한 변화가 사람들 마음속에 일으킨 감정의 요동을 추적한 책이다. 생성형 AI를 잘 알건 전혀 모르건, 사용을 하건 하지 않건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아주 빠르고 아주 많은 변화인 것 또한 확실하다. 이를 사업의 기회로 여기며 설레는 사람도 있고, 곧 내 일, 내 일자리가 사라지겠다 확신하며 구체적인 공포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 책은 ‘기술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들’이라는 부제처럼, 기술 그 자체 혹은 이를 대하는 막연한 환호와 기대 또는 두려움 대신 개발자, 창작자 등 최일선에서 AI를 대면하고 있는 이들이 어떤 경험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하르트무트 로자한뉘
격해지는 사회 갈등과 소통의 공백 소외를 넘어 사회를 봉합할 해결책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려는 독재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여러 학자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막스베버 고등문화사회연구소장인 하르트무트 로자가 뜻밖의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독일의 한 가톨릭 교구 초청 연설문을 바탕으로 출간된 《공명 사회》에서 그는 종교적, 특히 기독교적 가치와 관계 맺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재건할 희망을 역설한다. 사회학자가 종교의 한복판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간 가속화하는 세계를 지적해온 저자는 이제 공명을 해법으로 제안하면서, 공명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을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현대 사회의 종교는 선명한 명암을 지니고 있다. 상업적, 배타적으로 변질한 종교 단체를 향한 합당한 지적과 별개로, 분명 종교의 기본 가치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오직 이기는 것만이 중요할 뿐 다른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배제하는 이 시대”, 민주주의 위기의 한가운데서 “듣는 마음을 가지고 타인이 말 걸어 올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 다시 말해 공명이 가능한 사회가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사회를 뒤덮은 소외 현상은 공동선으로 나아갈 논의는커녕 의견 교류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개인은 타자, 다른 세계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소외로 인해 위협받는 배경을 살펴보고, 이 위기를 해소할 방안을 탐색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회를 지탱할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종교와 정치 성향, 개인 가치관을 막론하는 어떤 배경에서든 사회 정치 체제의 회복을 위해 연대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을 소모하며 ‘질주하는 정지’ 사회 성장이란 환상 끝에 번아웃이 들이닥쳤다
근대의 성장 논리는 사회의 발전과 개별 구성원의 더 나은 삶을 약속했다. 내 노동이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발전시키고, 다시 사회로부터 보상이 돌아온다는 믿음은 사회가 급속히 발전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에 의존해야 하는 현재로서는 그런 믿음이 기만적인 표어일 뿐이다.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무의미한데도 사회가 존속하려면 어느 분야에서건 더 빨라지고, 높아지고, 많아져야만 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강박을 초래한다. 물론 이는 갈수록 사회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사회 구조의 불안이 악화된 영향이 크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질주하는 정지’로 정의한다. 성장하기 위해 달리고 있지만, 한편 사회는 운동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경직된 상태다. 세상은 이미 생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발전했다. 다만 일자리를 유지하고, 세금을 걷고, 복지 제도를 존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다. 제자리에 정체되는 순간 사회가 받는 제도적 압력이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기나긴 인류 역사 동안 변화와 상향은 꾸준한 흐름이었지만, 단지 현상 유지만을 위해 매년 더 성장해야 하는 사회 형태는 현대가 최초다. 가속과 혁신의 부담을 떠맡은 인간은 세계와 공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매출을 증대하고자 환경을 회복 불가능할 만큼 파괴하고, 개인은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유명무실한 복지로 압박받으며 외부와 불화한다. 이 모든 악순환은 극단적으로 자신과 소속 집단의 안위만 챙기는 이기주의를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태도로 만들었다. 번아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창궐한 사회적 질병이다. ‘좋은 삶’을 곧 ‘소외되지 않는 삶’으로 여기는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누구도 좋은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 사회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다른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을 위한 경쟁이 이어지는 현재로서는 이해받거나 이해할 여지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믿을 수 없어도 들어보겠다는 다짐 민주주의에는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공격적인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를 약속했지만, 그 목소리를 서로 들어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외침으로 흩어질 뿐이다. 사회를 가로지른 분열은 사람들 간 간극을 만들어 내고, 서로 의견이 다른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두 정당이 반목하는 모습은 흔하다 못해 당연할 지경이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없이 상대를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설령 불합리한 주장일지라도 나름의 근거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맥락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비난할 따름이다. 이런 갈등은 다른 집단을 완전히 제압하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응답하고자 하는 ‘듣는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적 이해로 대화의 단절을 해소하고자 한다. 상호 접촉과 소통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다른 의견을 지닌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듣는 상황을 꿈꾼다. 물론 인간을 변화시키는 대화는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허락하고, 나는 그의 말을 듣겠다는 결심이 함께 요구된다. 저자는 타인이 말을 걸어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공명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에게 다른 존재가 와닿아 공명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 이 책에서 공명은 세계와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일을 의미하는데, 자극, 자기 효능감, 변화, 통제 불가라는 네 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여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루는 성가정과 크리스마스가 지닌 거룩한 메시지와 연결되려고 애써봐도 공명이 일어나기는커녕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기존 의견을 강화할 뿐인 대화는 공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존에 생각하지 않았던 낯선 느낌을 받는, 아주 다른 목소리를 듣는 일이 공명이다. 자기 효능감은 타인과의 연결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타자와 연결됨으로써 소외를 벗어나 살아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누군가와 접촉하기 위해 자신을 열었을 때 변화가 이루어져 세상을 다르게 보고 듣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공명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적은 투자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보고 싶어 하는 현대 사회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공명은 비효율적인 수단이기에 외면받고 있다.
“우리의 근원에는 응답의 관계가 있다” 종교의례는 공명이 일어나는 최적의 공간이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이자 장소로 종교를 호명한다. 종교가 제공하는 공간과 특성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다. 따라서 성장 지향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식의 관계의 가능성을 상기시킬 수 있고, 특히 종교의 전반적 사고와 전통이 공명과 그의 실천에 가깝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기도만 떠올려보아도, 종교적 행위는 인간 실존의 근원에 응답의 관계가 있다는 약속을 전제한다. 내가 누군가를 부를 때, 이 말을 듣고 나를 불러주리라는 믿음이 관계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종교의 사회적 위치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종교는 글로벌 경쟁에서 성장을 방해하는 시대착오적 제도일 뿐일까? 혹은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따를 수 있어도 공적으로는 가급적 침묵에 붙여야 할 일종의 미신에 불과할까? 종교 내부의 문제점이 제기될 때마다 종교가 사회의 정의와 선의를 보장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종교는, 최소한 종교적 특성은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현대 사회의 발전과 회복을 위해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종교가 없다면 현대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땅의 교회들이 봉착한 위기와 별개로, 민주 사회에서 종교적 특성이 더 이상 어떤 공명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회의 회복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저자는 종교적 자원으로부터, 또한 공명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회복할 희망을 찾는다.
“비평가는 영화가 자신의 규정에 들어맞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비평가의 역할은 영화에 잘 어울리는 기술description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1972년에 처음 발간된 영화비평의 ‘고전’
V.F. 퍼킨스(1936~2016), 1962년 이안 카메론과 공동으로 영화비평지 《무비》를 창간한 이후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위대한 앰버슨 가〉, 〈게임의 규칙〉에 대한 기념비적 작품론을 위시한 왕성한 비평 활동과 함께 대학에서의 영화교육에도 힘을 쏟았던 그를 영국의 가장 위대한 평론가라 불러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퍼킨스는 《무비》의 창간호에서 「영국영화」라는 제목의 권두언을 통해 당시 영국영화의 문제점 을 지적하며, 이들 영화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연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라고 천명했다. 주제가 아니라 연출-스타일의 분석에 대한 강한 의지는 퍼킨스 비평의 핵을 이루는데, 이러한 의지를 전면적으로 표출하고 정교하게 구성한 작업이 그의 유일한 단행본 저작인 『영화로서의 영화』(1972)다.
조너선 로젠봄이 “영화이론의 다락방에서 거미줄을 치고 오래된 교과서를 내어놓는”다고 비유 했듯, 『영화로서의 영화』는 선구자들의 이론을 이미지의 도그마-현실을 재생산하는 카메라의 객관적 재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입장-와 대상의 도그마-이미지의 도그마를 뒤집어 카 메라의 객관성에서 가능성을 찾는 입장; 대표적으로 앙드레 바쟁,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로 양분하고 이 둘 모두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몽타주의 이미지성과 카메라의 객관성 중 어느 하나를 본질로 하지 않는 종합synthesis이야말로 영화라는 매체의 불순함에 어울리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실제 일어난 사건, 남겨진 유서, 임상 경험 그리고 문학 작품에 비추어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은 간단히 죽을 수 있는 걸까. 혹은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었다가는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에 가끔 무방비하게 열리는 문이라도 달린 걸까.”
정신과 의사가 써 내려간 자살에 대한 색다른 기록
자살을 주제로 한 책들은 대체로 진지하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가스가 다케히코는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인간이라는 생물은 실로 ‘변변치 못한’ 존재다. 자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극적이고 속된 호기심과 흥미를 감추지 못한다”(12쪽)라고 말하며, 이 에세이는 그러한 모순된 두 가지 생각 위에서 지어졌음을 머리말에서 드러낸다. 그렇다고 자살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가볍게 대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정신과 임상의를 지내며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을 마주해왔다. 그는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건, 유서 그리고 문학 작품에 비추어 자살자들이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 그들의 심리를 추리해 나간다. 여기에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의견과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 상당히 덧붙여진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자살에 대한 ‘대담한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의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먼 곳으로 떠나버린 자신의 환자를 생각했을 때 그러한 추측에라도 기대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도 이 책을 감상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프리모 레비한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에세이
『고통에 반대하며』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환 회고록 《이것이 인간인가》로 전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프리모 레비의 에세이집이다. 레비의 작품 대부분이 수용소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삼은 반면, 이 책은 레비의 개인사,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애정, 과학과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 글쓰기와 연관된 단상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 구별된다.
레비의 방대하고 개인적인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참사 이전, 즉 아우슈비츠 이전 레비의 기억을 복원한 글들이다. 이 기억들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반면에 묘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하며 평화로운 레비의 집이 간직한 기억들, 직물을 파는 할아버지의 작은 가게 등에 대한 글은 레비의 아름답고 인상적인 유년의 세계를 담고 있다.
아울러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레비의 주요 관심사는 ‘타자의 존재’다. 그는 과학과 현대 문명, 작은 동물들에 시선을 던지며 인간에게 주어진 긴요한 과제에 대해 성찰한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데, 특히 불명료한 글쓰기에 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온몸으로 고통을 증언해야만 했던 그이기에 이런 주장조차 고통과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앎에는 어떤 정치와 윤리가 깃들어 있는가? 부정의에 저항하는 인식적 실천은 가능한가?
사회적 권력과 정체성, 앎의 얽힘을 탐구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
불신에 둘러싸여 증언을 묵살당하는 흑인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여성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성소수자 인식적 능력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차단당하는 모든 이들
“시간이 흐른 후 미래 세대가 21세기를 돌아보며 철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꼽는다면, 《인식적 부정의》 역시 단연 그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여성,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성소수자, 인식적 능력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불신에 둘러싸여 증언을 묵살당하는 흑인…… 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례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이 겪는 부당한 피해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언어를 오랫동안 갖추지 못해왔다. ‘편견’, ‘고정관념’, ‘무시’, ‘차별’과 같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언어는 이들이 겪는 인식적 층위에서의 부정의injustice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인다. 말하자면, 대화나 발화, 증언 등을 포함해 무언가를 알고 전달하는 인식적 활동에서 이들이 어떻게 배제되는지, 어떤 부정의를 겪는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부재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겪은 당사자들은 그 부당한 경험을 스스로 선명히 이해하고 언어화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도덕철학과 사회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이와 같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유하게 인식적인 유형의 부정의”를 포착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에게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인식적 능력(무언가를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능력) 혹은 누군가가 지닌 지식의 주체로서의 능력에 범해지는 잘못을 ‘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로 개념화한다. 이 개념은 철학, 인식론, 사회학, 문학비평, 페미니즘 등의 분야를 비롯해 여러 사회운동에도 강력한 언어와 사유를 안겨주었고, 그 덕택에 비로소 우리는 그 부정의에 뚜렷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프리커가 제시하는 ‘인식적 부정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말과 증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앎/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사람이 부당하게 낮은 신뢰성을 부여받을 때 발생하는 증언적 부정의testimonial injustice와,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집단적 자원의 결여로 발생하는 해석학적 부정의hermeneutical injustice가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일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인식적 실천, 즉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앎을 전달하는 행위’와 ‘우리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이해하는 행위’에 깃든 윤리와 정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이해를 확립할 때, 인식적 부정의에 저항하는 앎의 윤리 또한 모색할 수 있다.
문화 연구 개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사회 문화 보고서
현대의 핵심 사상을 선정하여 진지하게 탐구하는 「현대사상의 모험」시리즈 제25권 『키워드』. 문화 연구의 개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30년간의 연구를 담아낸 탁월한 사회 문화 보고서로 키워드를 구축해 온 문화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담고 있다. 단순한 어휘 서술을 넘어서 저자의 비판적 시각과 인식을 통해 ‘문화’, ‘민주주의’, ‘계급’, ‘예술’ 등의 용어에서 출발해 당대 문화와 사회에서 쓰이는 주요 핵심 어휘가 겪는 의미상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추상적인 전문 용어 중심의 철학 사상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를 추적해 가면서 정치성이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 키워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한뉘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에 대해 인류학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는 이 간단하지만 거대한 질문 앞에 제출한 답변이다. 그는 성급히 답을 제시하는 대신 인류학이란 어떤 학문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은연중에 ‘원시적’이라고 무시되는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구 문명의 패권이 종말을 맞이한 오늘날 새로운 문화?문명적 비전을 어떻게 밝혀나가야 하는가를 논한다.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학과 인류학적 정신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왜 현대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지가 명료하게 드러난다.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시선으로 치열하게 써 내려간 자살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담론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작가 장 아메리가 1976년에 발표한 《자유죽음(Hand an sich legen: Diskurs ?ber den Freitod)》의 한국어판으로, 자살에 대한 논쟁적 사유와 성찰을 담은 철학적 에세이다. 아메리는 ‘자기 세계 속의 자살자’의 마음을 부표 삼아,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살에 대한 편견을 해체하고 존엄을 일깨우는 시도를 한다.
아메리는 ‘자기 자신을 살해한다’는 의미의 ‘자살(Selbstmord)’이라는 말을 ‘자유죽음(Freitod)’으로 대체하자는 말을 시작으로, 독자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자살자는 뛰어내리기 직전에 어떤 상황에 처하는가?’ ‘죽음은 자연스러운가?’ ‘자연사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살아야만 하는가?’ ‘사회는 왜 자살을 금기시하는가?’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가?’ 아메리는 당대의 실존주의 사상은 물론, 철학ㆍ문학ㆍ사회학ㆍ정치 이론,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치열한 사유를 통해 답을 찾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수용한 ‘삶’과 ‘죽음’ 그리고 ‘자살’에 대한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약 50년이 되었지만, ‘자살’은 아메리의 제안처럼 ‘자유죽음’이란 말로 대체되지 않았다. 여전히 자살은 금기시되며, 자살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야만 하는 인생’을 저버린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1976년에 출간된 이 책이 오늘날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이유다.
슬라보예 지젝한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펼치는 자유론
전쟁과 질병과 극우 정치가 횡행하는 시대 인간의 자유란 무엇이고, 어두운 시대에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번 책 제목은 단 한 단어, 바로 'FREEDOM(자유)'이다. 그의 책이 한국에서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 ‘자유’라는 단어는 한국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얼마 전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과 언론을 분석한 기사를 보면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자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였다고 한다. 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는지에 따라 자유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누군가는 인간의 자유, 사랑의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편에 있는 이들은 권력의 자유, 자본의 자유를 외치며 사람들을 억압하고 선동한다. 그만큼 자유는 매혹적이고 숭고하면서도 때로는 위험한 개념이다. 지젝은 이번 책에서 프로이트와 구조 심리학, 근현대 철학을 망라한 이론으로 신神과 자유의지와 욕망의 문제를 분석하여 자유의 가치와 개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각과 시민 공동체의 연대를 강력히 촉구한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인류는 언제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참상 속에서 가장 큰 자유를 실행해 왔다. 상식과 제도와 자유(리버티)가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의 최저치(프리덤)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총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각성하여 투표장에 들어서는 때는 이미 민주주의가 허물어진 뒤고, 그제야 우리는 투표를 통해 유의미한 자유를 실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정말로 자율적이다. 혹은, 이미 결정된 사실을 알면서도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는 운명과 일치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전쟁, 질병, 혼란한 자본주의, 다양한 가치의 충돌… 붕괴의 시대, 철학으로 자유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지젝은 언제나 그래왔듯 권력자들을 통렬히 비판한다. 독재자들은 강박 신경증 환자와도 같아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발각되지 않도록, 혹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건과 구설수를 만든다. 그들은 무언가를 타파해야 한다며 ‘거세’를 자신의 공적 이미지로 활용하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 뒤에 숨어 정말로 중요한 행정 절차들을 진행시킨다. 지젝은 또한 이 책에서 불평등의 문제도 지적한다. 돈이 많을수록 사회가 빈곤해지는 부의 역설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큰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슈퍼에고의 역설과도 같아서, 사람들은 타인의 명령을 더 많이 따를수록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부패 권력은 부를 확대하여 시민을 가난하게 하고, 명령의 범위를 넓혀서 시민을 죄인으로 만든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논쟁인 차별의 문제도 현대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성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과도한 쾌락이 그녀들을 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지젝은 지적한다.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로 타자의 즐거움에 대한 일종의 질투인데, 타자가 우리 삶의 일부 즐거움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철학과 사회학,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하는 지젝답게 영화 〈매트릭스〉를 이야기하며 묻는다. 당신은 매트릭스의 살아있는 배터리로 계속 머물 것인가? 그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진정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그러했듯 아이러니하게도 각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말초적인 욕망 대신 자유의 객관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혁명도 마찬가지다. 혁명을 주도하는 운명적인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혁명 주체이자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인문, 사회, 예술, 대중문화를 오가는 지식의 향연
자유는 때로 먼 길을 우회하기도 한다. 지젝은 러시아 군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건네던 우크라이나 할머니를 예로 든다. “이 씨앗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어둬. 네가 만일 우리 땅에 쓰러진다면 그 자리에 해바라기가 자랄 테니까.” 그녀의 행위는 군인의 사후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해바라기가 피어난다는 것은 군인이 자행한 폭력에 대한 속죄이자, 그 꽃이 지역 생태계로 받아들여지는 관용이다. 결국 자유란 이미 결정된 것을 알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지젝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발할라 성으로 입성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 속 신들의 모습에서 자유의 일면을 본다. 그것은 새로운 주인의 위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모습이다. 자유와 죽음, 멸망을 오가는 이 논리가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젝의 문장은 칸트와 헤겔은 물론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의 토대 위에 얹혀있기 때문에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철학과 영화와 예술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지식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을 통해 시설 밖을 정상화하고, 지배권력을 유지ㆍ강화하는 사회. 그곳이 바로 ‘시설사회’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숙인, 난민, HIV 감염인, 정신장애인, 비혼모, 탈가정 청소년 등 여러 소수자 집단의 활동가ㆍ연구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왔다. 이를 통해 사회에서 배제되고 은폐된 존재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억압의 구조를 밝히고, 함께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 책은 그러한 교류와 연대의 결과물이다. 필자들은 서로의 운동이 교차하는 지점을 연대의 출발점으로 삼아, 시설이라는 폭력적인 운명을 함께 거부하자고 제안한다. 시설사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해방 담론과 정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퀴어 이론, 반차별 담론,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인권 규범과 반자본주의적 기획과도 연결되어야”(7쪽)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단한 자세로 그 과정을 밟아가며, 탈시설 운동의 지평을 확장시켜 나간다.
우리 시대 최고의 현대 철학 개론서 “현재 철학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이 쓴 현대 철학에 대한 주제별 종합 개론서다. 스크루턴이 유수의 영미 대학에서 행한 철학입문 강연들에 기초한 이 책은, 데카르트 이후 현대 철학의 주요 흐름과 쟁점을 세세한 학술논쟁이라는 미궁에 빠지지 않으면서 철학 초심자도 알기 쉽게 전해준다. 스크루턴은 철학에 몇 가지 핵심문제가 있다는 상투적 서술방식을 거부하고, 일반 입문서보다 주제를 더 폭넓게 선정한 후 ‘진리’ ‘지식’ ‘존재’ ‘자유’ ‘의미’ 등 31가지 철학의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각의 키워드를 축으로 관련 철학자들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에서부터, 윤리학과 정치철학, 언어철학과 과학철학, 수리철학과 미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거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스크루턴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위트와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독자의 흥미와 적극적인 반론을 유도하는 가운데,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식의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로 어려운 철학 논변들의 요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데카르트 이후 현대철학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어떠한 성취와 한계가 있었는지, 오늘날의 철학적 상황이 어떠한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부타 사요코한뉘
친밀함과 폭력의 경계는 흐릿하다. 사랑의 손길은 너무나도 쉽게 약자에 대한 신체적 폭력으로 전환된다. 『가족과 국가는 공모한다: 생존에서 저항으로』는 “화목한 가족”의 이름으로 지워진 고통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정폭력의 원인과 결과를 냉정하게 직시한다. 코로나19로 가정폭력이 증가했다는 뉴스가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고통은 온전히 여성과 어린이 같은 약자에게로 향한다. 국가가 보호하는 “가정”이라는 테두리는 한순간에 무법지대로 변한다.
저자인 노부타 사요코는 40년 넘게 임상심리사로 일하며 알코올의존증, 섭식장애, 가정폭력 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 그리고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이르는 다양한 이들과 상담을 해왔다. 그는 가족문제에 대한 언어 및 대응이 한계에 직면했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의 논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아동에 대한 폭력이 완전히 별개로 다루어지는 현실로부터 시작해, 여러 문제가 혼재한 가정폭력의 양상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역사적, 구조적 배경 속에서 피해자들이 어떻게 부정당했는지를 분석하며, 국가의 폭력과 가족의 폭력이 구조적으로 유사한 형태임을 증명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과 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과학이란 오늘날의 경제학을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정치경제학이라고도 부르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 과학 즉 경제학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결국 『자본』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하게 많이 논의해 왔지만 정작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해 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 두 저서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버려 두고 마르크스주의 과학만을, 즉 경제학만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오히려 이러한 작업에도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자본』 또한 올바른 방식으로 독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없이 『자본』을 읽는다면, 과거의 독자들처럼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교조화라는 잘못된 길 말이다. 자연과학이 과학철학의 도움을 통해 이해되듯, 마르크스의 『자본』 또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통해 더욱 적합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이 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노동의 문제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자본』을 읽기 위해 이 책의 독서에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틈새로 엿본 ‘부엌의 작은 역사’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부터 압축 성장 근현대사 속 파란만장함까지 달그락달그락 들려오는 이야기들
한 권의 책은 나오게 된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사연이 일반적이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 관심을 끄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번에 나온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가 그렇다. 이 책은 다소 특별한 경로를 거쳐 잉태됐다. 저자는 대학에서 국문학과 국어학을 공부한 뒤 사회생활을 하며 동시에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이다. 어느 날 글로 먹고 사는 미래가 슬슬 불안해진 그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기물을 취급했다. 그릇도매상가 C동 3층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치열하게 이윤을 좇는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그릇만 판 건 아니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선풍기, 쓰레기통, 신발 등등 업소가 필요로 하는 온갖 기물을 다 거래했다. 몽상가였던 저자를 장사꾼으로 훈육해준 주변의 베테랑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장사꾼 DNA’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사는 접었지만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저자는 온갖 문헌을 동원하여 주방기물의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엮어내기 시작했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다.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알겠지만 얄팍하게 공부하고 쓴 책이 아니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오롯이 자료 조사와 원고 집필에 소요되었다. 장사한 기간까지 합치면 10년이다. 이 책은 주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백전노장들을 다룬다. 젓가락과 숟가락, 칼과 도마, 냄비와 밥솥, 프라이팬과 밥상, 냉장고와 유리제품, 도자기 그릇과 스테인리스 그릇, 주방가위와 부루스타, 식기세척기 등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 식재료가 조리되고 차려지고, 치워지기까지에 소요되는 거의 모든 주방도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주방 일에 대한 논의와 그에 대한 역사적 비판적 논의도 이끌어가고 있다.
출처도 알 수 없는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거짓 정보들이 눈과 귀를 홀리는 이 시대, 우리는 과연 ‘팩트’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인터넷과 SNS에서는 진위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쏟아지고, 기존 언론과 미디어 역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급속히 발전한 AI, 딥페이크 등의 신기술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거짓을 생산하는 도구로까지 쓰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팩트를 ‘체크’할 수 있는 정확한 지침이 시급하다.
이 책『팩트체크의 기초』는 미국의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전문 팩트체커로 일해 온 저자가 팩트체크 작업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을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팩트를 점검해야할지 등 매체별, 유형별 분류를 통해 팩트체크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팩트체크의 필요성과 중요성 역시 제대로 짚어낸다.
모두가 콘텐츠 생산자가 된 뉴미디어의 시대, 팩트체크는 단순히 언론계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팩트체크를 놓친다면 나도 모르게 잘못된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부지기수다. 수많은 가짜 뉴스 속에서 제대로 된 사실을 판단하기 위해서도, 책임감 있게 ‘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도 팩트체크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팩트체크의 기초』를 통해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분별하는” 힘을 길러보기를 권한다.
지젤 사피로한뉘
작품과 작가의 도덕성을 둘러싼 문제는 이 시점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다. 사건이 생길 때면 논쟁은 뜨겁게 타올라, 때로는 건강한 토론이 아닌 근거 없는 비난과 논리 없는 말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를 다루는 이론적, 분석적 틀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의 도덕성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논의를 아우르고, 활용할 만한 기초적인 이론과 분석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다.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훌륭한 배우라면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 배우는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여야 한다.”
타인을 뒤흔드는 순간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존재들에 대한 18세기 계몽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철학적ㆍ미학적 관점
18세기 계몽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백과전서』의 책임 편집자 드니 디드로의 예술론 『배우에 관한 역설』(주미사 옮김)이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사상가, 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드니 디드로는 철학과 미학, 윤리학의 주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가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예술 이론가이기도 했다. 특히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젊은 시절에는 배우를 직업으로 삼을지 고민한 적이 있었으며, 희곡 「사생아」 「가장」을 쓰고 공연하는가 하면 『극시론』 『「사생아」에 대한 대담』에서는 자신의 연극 이론을 펼쳤다. 『배우에 관한 역설』은 이러한 디드로의 연기론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다. 이 책에서 디드로는 무대 위 배우의 연기 자체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한다. 그가 보기에 위대한 배우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감각의 지속적인 관찰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좋은 연기는 감수성에서 나오지 않으며, 그 역할에 어울리는 행동과 말, 표정, 목소리, 움직임 등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익혀서 표현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배우의 재능을 완성시키는 것은 타고난 목소리나 섬세함뿐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이상적 모델을 상상하고 제대로 모방하는 능력이다. 인위적인 연구와 계산, 기교가 자연스러운 연기를 만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디드로가 말하는 배우의 역설이다. 『배우에 관한 역설』에 담긴 디드로의 생각은 그의 인간관과 맥을 같이한다. 디드로는 인간이 이성과 감성이라는 대조되는 구조 속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비록 그가 자신을 감성에 치우친 사람이라고 여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성과 감성의 이중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성에 치우친 인간을 변변치 못하다 말한 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자기 통제를 강조했다. 그런 그에게 배우란 이런 인간의 이중적인 상황을 집약하는 존재,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며 그것은 자신이 본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은 본성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되고, 모방에 의해서 타인이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란 정말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에요. (94쪽)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죽음과 예술에 관한 고찰’ 한국에서도 40년 넘게 사랑받았던 스테디셀러 기존 번역 누락분을 추가한 국내 최초의 완역판
자살을 다룬 책 중에 국내에서 가장 꾸준한 관심을 얻은 책은 무엇일까. 이 분야의 고전인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책이 바로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다. 이 책은 1982년에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판본이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이후 40년 가까이 판매를 이어 오며 한국 독자들에게 시대를 넘어선 명저로 자리 잡았다. 암실문고에서 새롭게 내놓은 『자살의 연구』는 이 최승자 번역본을 바탕으로 전면 개정했으며, 여기에 기존 판본이 누락했던 내용을 추가 번역한 국내 최초의 정식 완역판이다. 추가한 분량은 원서 기준으로 약 50쪽에 이른다.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한뉘
나무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세계적인 여성 식물학자이자 나무의 의약적, 환경적, 영양적 성질에 정통한 전문가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가 숲과 나무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고대 인류의 생태적 지혜를 시적 산문으로 엮어낸 책. 저자는 나무의 생리뿐 아니라 지질학, 물리학, 화학, 의학, 식품영양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나무가 인간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동식물과 행성 지구에 미치는 이점을 연구해왔다.
‘시인의 언어로 말하는 과학자’ 베리스퍼드-크로거는 과학적 엄밀성을 탄탄한 기초로 삼되 그 위에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예언적 통찰이나 고대 켈트 전통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이러한 독창적인 서술 방식은 나무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지식에 접근할 때 부딪힐 수 있는 장벽을 낮춰주며, 오히려 나무의 세계로 분석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다.
이 책은 ‘세계를 품은 전체이면서 세계를 초월하는 하나’인 숲의 재생만이 우리의 부서진 삶을 회복시키고 서로를 건강하게 연결해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간 우리가 몰랐던 나무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아냄으로써 숲과 나무의 위대함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무가 행성 지구에 아낌없이 선사하는 먹여 살림과 치유, 돌봄과 연결, 그리고 뭇 생명의 평안이 모든 페이지마다에 ‘숲의 경전’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식물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 해방의 정치를 주장하다!
맬컴 엑스에서 컴바히강공동체까지, 미국 흑인 저항운동의 유산에서 시작하여 극우의 부상과 정체성 정치의 한계점을 통렬히 비판하며 펼쳐 보이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오인된 정체성 - 계급, 인종, 대중운동, 정체성 정치 비판》은 파키스탄계 미국인으로, 정체성과 현대 정치와 관련한 여러 논쟁을 통해 주목받는 언론인이자 편집인, 뉴욕 뉴스쿨대학교 객원 조교수인 연구자 아사드 하이더가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기에 출간되었으며, 극우의 부상과 그것이 야기한 실질적인 공격에 대한 사회운동의 실망스러운 대응과 분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미국 흑인운동의 역사와 정체성 정치의 부상을 논하며, 운동의 분열이 띈 특정한 방식, 즉 정체성 정치라는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정체성 정치는 보편적 해방을 표방한 사회운동에 대해서 분리주의적 시각을 제시하였고, 이를 통해 차이만을 중시하고 연대와 공통을 찾는 노력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백인종의 발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미국에서 1960년대 이후 전개되었던 정체성 운동과 문학 논쟁을 통해 살펴본다. 그러면서 인종주의에 맞선 투쟁이 이러한 정체성에 기반할 것이 아니라 실제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작하여 해방이라는 보편성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0세기 미국에서 여러 차례 일어난 인종주의에 맞선 대중운동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초기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혁명적인 정치적 실천을 이론화하였지만, 현대의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개인주의적 방법에 근거한다. 정체성 정치는 인정에 대한 개인의 요구에 근거하며, 그 개인의 정체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것은 이 정체성들을 당연한 것으로 보며, 모든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이들과 상이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정체성 정치는 집단적 자기 조직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보편적 해방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항하는 집단적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인정을 획득하는 것으로 정치를 환원해 버린다. 이 책은 정체성 정치가 사회적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관론을 설파하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틴 루터 킹, 맬컴 엑스, 휴이 뉴턴과 블랙팬서당, 흑인 여성들의 급진적 운동 조직이었던 컴바히강공동체의 선언과 실천, 흑인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자로 옮겨 간 작가이자 조직가였던 아미리 바라카가 보여준 말년의 행보 등 미국 흑인운동의 흐름을 통해, 저자는 정체성 정치가 갖는 한계점을 넘어서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초를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 또한 세대만이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지역, 국적, 난민 등 여러 측면의 사회적 억압에 관한 논쟁과 대립,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서로의 문제에 공감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해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제안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누가 더 약자인지를 증명하고,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구분 지으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낙인 찍는 모습이 더욱 눈에 띈다. 인종이라는 단어를 세대, 젠더, 성소수자, 난민 등으로 대체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이 고민하는 문제가 한국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대중운동, 사회운동이 어떤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각각 분절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문별 운동들이 어떤 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떻게 해방의 정치에 참여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더불어 반란자적 보편성이라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해방의 권리에 대해 논의하는 책의 6장은 정치 이론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대중운동의 새로운 차원에서부터 권리의 문제까지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en-movement.net/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