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493권 적독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한뉘
셋. 나, 디디에 에리봉, 에두아르 루이
우정이라는 삶의 양식은 하나의 윤리를 요청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삶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연속된 일기와 같다. 우정은 삶의 원리이자, 공간과 시간, 제도, 타자와 맺는 관계를 새로이 조직했다. 다만 이 결속이 우리 삶의 일부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이 부정확한 이유는 이것이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정의 자리는 어디에, 언제까지, 얼마만큼 주어질까. 이 책의 저자인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 그의 연인이자 친구인 디디에 에리봉(『랭스로 되돌아가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저자), 또 다른 친구 에두아르 루이(『에디의 끝』 저자). 세 사람은 이 질문에 아마 영원을 답할 것이다. 우정은 영원토록, 심지어 삶의 일부도 아니라 삶 그 자체로서 도래할 수 있다. 라갸느리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 삶의 여러 층위를 제약하는 권력 체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왔다. 푸코, 부르디외, 들뢰즈, 데리다의 궤적을 따랐으며, 체계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혹은 그 바깥에서 비정형적인 삶의 경로를 탐색했다. 그의 주된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될 수 있던 수많은 가능태와 실제로 된 것 사이의 간극은 무엇인가.’ 그의 저술 작업은 이 질문들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다만 이 책의 각별한 점이라면 여기서 꺼내 보일 이야기가 그의 전기 속에 실제로 체험되고 각인된 관계를 다룬다는 점이다. 세 사람의 우정은 2011년 9월을 기점으로, 개별적 삶과 사회적 관계의 위상을 뒤집으며 시작됐다. 우정이라는 삶의 틀이 전면적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셋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지는 못한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게, 라갸느리가 지적하듯 연인의 사랑이 시작된 날은 두고두고 기념되는 것과 달리 우정에는 기입된 날짜가 없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외삼촌의 아들과 아버지의 사촌형의 아들을 구분해 부르는 말은 있어도, 한 달에 한 번 밥이나 먹는 사람과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구별해 부르는 말은 없다. 친구 간의 어울림은 시절인연으로, 즉 정상성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절차쯤으로 축소되고,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삶이 보편이 된다. 세계는 가족중심주의를 강력히 작동시킨다. 가령 팬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돼도 멀리 사는 가족을 만나고자 세계를 횡단하는 일은 아름답고 모범적인 가족애로 그려진다면, 길 건너 사는 친구의 안부를 묻기 위한 이동은 체제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차단되고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전락한다. 이럴 때 ‘친구’라는 말은 턱없이 부실하고 빈곤한 단어에 그친다. 라갸느리, 디디에, 에두아르는 규칙을 거부하거나, 구실을 꾸며내거나, 늦은 밤에야 집을 나서거나, 여러 장의 이동 확인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밖에 없다. 이들 세 사람이 퀴어 당사자로서 경험했던 ‘자리 없음’은 우정 관계에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2의 세계’ 바깥에 정초한 관계는 기념일을 세우지 못하고, 세분된 언어로 불리지 못하며, 계속해서 불안정한 지위에 좌초된다. 라갸느리의 글은 여기서 시작한다. “본질적으로 통치자들의 사유 속에 각인된 가족주의에 대한 반란”이자, “가족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해온 사회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서. 무엇이 우리 삶을 이렇게 배치하며, 어떤 열망과 정동이 공적 공간을 떠도는 이미지들에 의해 지지받거나 외면될까. 이 책은 라갸느리가 자기 삶의 전기로 쓴 일종의 매뉴얼이자 우정을 해부하는 사회학서이고 철학서다. 세 사람의 우정이 보여주는 구체적인 실천은 우리가 친구 사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전부 넘어선다. 이들의 우정은 매일 거듭나고, 삶을 전면적으로 탈바꿈하며, 서로의 창조성을 자극한다. 우정 예찬이라 부제를 달았지만, 우정의 ‘반란’이라 일컬어져야 할 것이 이들 삶에 꿈틀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