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270권 적독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로마를 바꾸었는가? 역사학의 거장 피터 브라운이 제시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이야기
'로마의 그리스도교화'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학계에서는 그 학자의 종교 여부, 신학 감수성, 역사관, 정치적 시선이 은연중에 드러나곤 한다. 회의적인 세속학자들은 '로마의 그리스도교화'라는 현상 자체가 사실은 허상이었다고 말하거나, 찬란한 로마 문명이 쇠락하는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어떤 로마 가톨릭 학자들은 찬란한 중세 문명으로 향하는 부드러운 전환으로 보기도 하고, 주님의 승리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보기도 하며, 어떤 개신교 학자들은 순전했던 신앙이 제국과 야합해 타락해 가는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런 관점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깔끔하다. 고대 후기 연구를 사실상 개척한 역사가로 평가받는 피터 브라운은 이 문제 앞에서, 특정 해석 진영을 선택하기보다는 문제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택한다.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는 바로 그런 그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저작이다. 1993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진행된 세 차례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사유의 밀도는 그의 대표작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며 그의 방대한 연구물로 들어가게 해주는 입문서로 적절하다. 이 책에서 브라운은 한편으로 회의적인 세속학자들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며 로마의 그리스도교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학자들의 추정과는 달리 그리스도교화라는 과정은 결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보기에 이 현상은 단지 다신교에서 일신교의 전환, 혹은 이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전환이 아니라 사회에서 권위 개념, 권력의 작동 방식, 성스러움과 세속을 상상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열한 일종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에서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교인들은 (흔히 생각하듯) 기존 질서(및 종교)를 단순히 배척하거나 분쇄하지 않았으며 그 요소들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교회는 제국을 허물어 뜨리는 방식이 아닌, 기존의 정치적 상상력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고, 더 나아가 세계를 상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다단했다. 이른바 그리스도교 세계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십자가는 신전을 박살내고, 콜로세움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만 세워지지 않았음을 피터 브라운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다. 브라운은 종교와 정치, 신앙과 사회, 권위와 신비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피며 질문한다. '권위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신성은 어떻게 사회적 에너지가 되는가?', 그리고 '종교는 어떻게 기억되고, 재배열되는가?' 이 물음은 다양한 일들을 통해 교회와 국가, 시민과 신자의 관계, 다원화된 사회 속 교회의 역할에 대해 숙고해야 할 그리스도교인들도 마주해야 하는 문제다. 그리스도교화에 대한 단순한 승인도, 냉소적 해체도 아닌, 의미의 궤적을 탐구하는 이 책은 종교와 사회가 맺는 복잡한 관계에 관심이 있는 인문 독자와 그리스도교 독자 모두에게 좋은 사유의 자극제이자 지적 지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우리 시대와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