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359권 적독
박단 · 이수정 외한뉘
“유럽은 단일 문명인가?” 불안정한 시대, 낡은 경계의 틀을 넘어서는 역사적 사유를 만나다
2025년,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 충돌이 격화되어 세계는 다시 ‘문명 충돌’의 징후에 잠식되었다. 뉴스와 담론은 다시금 이슬람을 ‘외부자’, ‘위협’, ‘서구 문명과 대립하는 타자’로 호출한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이슬람 문명이 유럽 역사에 함께 뿌리내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사실을 가려버린다. 『기억의 장소: 유럽 속 이슬람 문화』는 바로 이 낡은 프레임에 도전하는 책이다. 지워진 흔적을 복원하고, 공존의 지형을 다시 그리는 시도로서 이 저작에 참여한 21인의 연구자들은 유럽의 도시와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이슬람의 기억’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유럽 정체성과 문화 형성에 깊숙이 스며든 이슬람 유산의 자취를 되짚어본다. 특히 이 책은 문화적 경계의 역사, 유럽 문명의 ‘순수 신화’를 해체하는 공간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리 아랍 세계 연구소, 플라멩코의 뿌리, 독일어와 스페인어 속 아랍어 차용어, 아베로에스와 이븐루시드의 철학까지… 도시의 건축과 언어, 문화와 예술, 몸짓과 음식 속에 각인된 이슬람 유산의 흔적을 추적하며, ‘유럽’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다문화적 접촉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지중해의 건너편에서 온 문명이 어떻게 유럽의 일부가 되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학술적, 문화정치적 탐색이자 이주와 혼종, 갈등과 공존의 서사를 담은 인문지리적 여정이다.
유럽 다시 그리기-이슬람과 공존의 지층을 따라서 현대 유럽은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면서도 이슬람은 유독 배제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공공장소의 히잡 착용 금지,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감시와 격리 정책 등은 유럽 내 이슬람 공동체에 실질적인 제약을 가한다. 이 책은 묻는다. 과연 이슬람은 유럽의 ‘밖’에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슬람은 유럽 역사 안에, 다양하게 표출된 문화의 결 안에, 기억의 흔적 속에 늘 함께 존재해왔다. 따라서 이 책은 “누가 유럽의 내부이고, 누가 외부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유럽 중심의 민족-종교-문명의 신화를 걷어내고, 유럽을 복수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로 복원하려 한다. 21인의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한 『기억의 장소: 유럽 속 이슬람 문화』는 “파트1-종교의 기억”, “파트2-문화의 기억”, “파트3-사상·언어의 기억”, “파트4-일상의 기억”이라는 구조 아래,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사례들을 펼쳐낸다. 예를 들어 ‘종교’ 장에서는 무슬림 공동체가 유럽 안에서 신앙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살피고, ‘문화’ 장에서는 십자군 전쟁 이후에도 이슬람이 유럽 예술과 도시 구조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탐색한다. ‘사상/언어’ 장은 유럽 언어와 철학의 전통이 이슬람의 영향을 어떻게 흡수해왔는지를 조명하며, ‘일상’ 장은 지금도 유럽인의 삶에 녹아 살아 숨 쉬는 ‘이슬람적 생활문화’를 섬세하게 다룬다.
왜 지금, ‘유럽 속 이슬람’을 이야기하는가? 이슬람은 이제 유럽과 세계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존재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에게 이슬람은 여전히 ‘유럽 밖의 이방 문명’, 혹은 ‘최근에 유입된 위협’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인식은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기억의 장소: 유럽 속 이슬람 문화』는 이슬람이 단지 ‘이민자 문화’나 ‘경계 밖의 타자’가 아니라,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이라는 공간의 일부분이었고, 그 정체성을 함께 구성해온 존재였음을 입증한다. ‘왜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첫째, 정치적 이유로 ‘유럽 가치’라는 이름 아래 이슬람을 배제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즉 유럽 각국에 이슬람 공동체를 공공영역에서 점점 밀어내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히잡 금지법, 무슬림 신자에 대한 감시 정책, 이슬람 학교 폐쇄 등은 명목상 ‘세속주의’ 혹은 ‘유럽적 가치 수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편협한 상상력에 기초한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이미 유럽 안에 있었고, 구성원이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상상에 균열을 낸다. 둘째, 문화적 이유로 유럽의 ‘단일문명 신화’를 해체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기독교와 백인 중심 질서를 축으로 구성된 유럽의 정체성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유럽 건축, 음악, 언어, 철학 등은 이슬람 문명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 산물이다. 아베로에스와 이븐루시드의 철학은 중세 유럽 사상사의 기초였고, 알안달루스의 학문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기반이 되었으며, 아라비아식 도시 설계는 유럽 남부 도시들의 물리적 구조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유럽의 자화상을 다시 그릴 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잊힌 계보’를 복원한다. 셋째, 사회적 이유로 다문화 공존의 현실과 그 뿌리에 대한 이해를 요청한다. 유럽은 이미 다문화 사회이며, 무슬림 공동체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주요 시민집단이다. 그러나 이들과의 공존은 현실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관계의 결과이기도 하다. ‘공존’은 단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그 역사적 전제를 이해하고 재구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책은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논쟁을 ‘현재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이 책은 단지 “이슬람도 유럽의 일부다”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역사적 인식이 필요한지, 그것이 오늘날의 유럽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절박한지를 구체적 사례와 논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독서 포인트 및 추천 독자층 이 책은 교양과 학술, 현실 감각과 역사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텍스트다. “유럽 속 이슬람”이라는 국내 초유의 관점을 다룬 최초의 집단연구 성과물이며, 장소 중심, 사례 중심 서술로 시각성과 몰입감이 탁월하고, 난민과 이민, 탈식민, 다문화 공존 등 동시대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전시 및 북토크, 지역연계(유럽 도시사), 독서모임 주제로 이 책의 쓰임새는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종교, 정체성, 공존 문제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세계사, 문화사, 종교사에 관심 있는 독자는 유럽 중심주의의 허상을 넘어서는 확장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건축·예술·음식·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를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이들에겐 매우 실용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학생·교사·교육 활동가에겐 교양수업, 다문화교육,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1차 자료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