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325권 적독
나를 틀 안에 넣은 사람은 내가 아닌 세상 모두인데 왜 그 삶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가?
전 유럽에서 주목하는 한국계 오스트리아 작가 김안나 최신작이자 대표작 국내 최초 출간
1950년대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미혼모인 어머니는 아이가 입양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곧 병원에서 문제를 발견한다. 어머니는 백인인데 아이가 흑인 혼혈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작은 도시는 아이에 관한 소문으로 들썩인다. 아버지는 누구이며, 왜 이 어머니는 입을 열지 않는가? 그러나 떠들기 좋은 여러 사건이 그렇듯, 이 사건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지난 2013년, 그 도시의 대학에 초청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프란치스카는 자취방을 구하다가 우연히 이 사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흑인과 백인 혼혈로 살아가야 했던 한 아이의 삶은 프란치스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 역시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성장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카는 수십 년 전에 다 해결되지 못한 채 파묻힌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게 되면서 그 진상에 접근해 가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어쩔 수 없이 되돌아보게 된다.
이 작품은 차별받는 피해자가 역경을 극복하거나 아쉽게 실패한다는 단순한 구도를 피한다. 작가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방안을 떠올리고 선한 결심을 굳힌 인물들이 서로 다른 결론을 향하면서 뒤엉켜 버리는 모습을 선명히 그려 낸다. 특히 1950년대 독일에서 급성장한 ‘인류학적’ 지식을 동원해 혼혈 아이에게 가장 좋은 삶을 선사하려 애쓰는 선한 인물은 이 소설 속의 아이러니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힘을 품고 있으며, 이러한 아이러니는 세상 모든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진 편견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비극적인 고찰과 맞닿아 있다. 이 슬픈 숙명과 맞서기 위해 프란치스카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삶 속에 들어 있는 슬픔을 분석하고, 거기서 일종의 대안이라 할 만한 태도를 추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