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493권 적독

태어나는 문제 (나쁜 유전자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우생학이 되었나)

책 소개

리처드 도킨스는 2020년에 “우생학은 소와 말, 돼지, 개, 장미에게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왜 인간에게는 효과가 없겠는가?”라는 트윗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24년에 “지금 미국에는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쪽은 선택적 번식에 대한 과학적 가정, 다른 한쪽은 정치 지도자의 선동적 언사처럼 들린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자리에서 나온 이 두 발언은 동일한 전제를 공유한다. 인간의 가치를 ‘유전자’로 평가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

에릭 L. 피터슨은 바로 이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생학’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무엇이 ‘좋은’ 유전자이고 무엇이 ‘나쁜’ 유전자인가. 우리는 어떤 삶을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삶’이라고 판단하는가. 그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 불편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우생학을 특정 시대의 극단적 이념이나 과학의 외피를 두른 기괴한 신념으로 단순화하는 대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개인의 선택,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정책적 판단,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합리적 계산 속에서 반복되어온 하나의 “관행”으로서 재조명한다. 실제로 우생학은 인종, 장애, 범죄, 빈곤 등 “사회가 겪는 고통의 원흉”을 제거한다는 명목 아래,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지속되어왔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에도 복지 정책, 유전자 기술, 이민 담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생학은 비정상적인 광기가 빚어낸 괴물이 아니다. 건강한 아이를 원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욕망이 특정 삶을 배제하고 통제하는 논리로 이어질 때, 우생학은 가장 설득력 있는 얼굴로 우리 곁에 되돌아온다. ‘태어나는 문제’를 둘러싼 욕망과 두려움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동안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생학은 지나간 사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