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140권 적독

공명 사회 (위기의 민주주의 경청에서 답을 찾다)

책 소개

격해지는 사회 갈등과 소통의 공백 소외를 넘어 사회를 봉합할 해결책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려는 독재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여러 학자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막스베버 고등문화사회연구소장인 하르트무트 로자가 뜻밖의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독일의 한 가톨릭 교구 초청 연설문을 바탕으로 출간된 《공명 사회》에서 그는 종교적, 특히 기독교적 가치와 관계 맺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재건할 희망을 역설한다. 사회학자가 종교의 한복판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간 가속화하는 세계를 지적해온 저자는 이제 공명을 해법으로 제안하면서, 공명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을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현대 사회의 종교는 선명한 명암을 지니고 있다. 상업적, 배타적으로 변질한 종교 단체를 향한 합당한 지적과 별개로, 분명 종교의 기본 가치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오직 이기는 것만이 중요할 뿐 다른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배제하는 이 시대”, 민주주의 위기의 한가운데서 “듣는 마음을 가지고 타인이 말 걸어 올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 다시 말해 공명이 가능한 사회가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사회를 뒤덮은 소외 현상은 공동선으로 나아갈 논의는커녕 의견 교류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개인은 타자, 다른 세계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소외로 인해 위협받는 배경을 살펴보고, 이 위기를 해소할 방안을 탐색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회를 지탱할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종교와 정치 성향, 개인 가치관을 막론하는 어떤 배경에서든 사회 정치 체제의 회복을 위해 연대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을 소모하며 ‘질주하는 정지’ 사회 성장이란 환상 끝에 번아웃이 들이닥쳤다

근대의 성장 논리는 사회의 발전과 개별 구성원의 더 나은 삶을 약속했다. 내 노동이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발전시키고, 다시 사회로부터 보상이 돌아온다는 믿음은 사회가 급속히 발전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에 의존해야 하는 현재로서는 그런 믿음이 기만적인 표어일 뿐이다.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무의미한데도 사회가 존속하려면 어느 분야에서건 더 빨라지고, 높아지고, 많아져야만 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강박을 초래한다. 물론 이는 갈수록 사회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사회 구조의 불안이 악화된 영향이 크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질주하는 정지’로 정의한다. 성장하기 위해 달리고 있지만, 한편 사회는 운동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경직된 상태다. 세상은 이미 생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발전했다. 다만 일자리를 유지하고, 세금을 걷고, 복지 제도를 존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다. 제자리에 정체되는 순간 사회가 받는 제도적 압력이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기나긴 인류 역사 동안 변화와 상향은 꾸준한 흐름이었지만, 단지 현상 유지만을 위해 매년 더 성장해야 하는 사회 형태는 현대가 최초다. 가속과 혁신의 부담을 떠맡은 인간은 세계와 공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매출을 증대하고자 환경을 회복 불가능할 만큼 파괴하고, 개인은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유명무실한 복지로 압박받으며 외부와 불화한다. 이 모든 악순환은 극단적으로 자신과 소속 집단의 안위만 챙기는 이기주의를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태도로 만들었다. 번아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창궐한 사회적 질병이다. ‘좋은 삶’을 곧 ‘소외되지 않는 삶’으로 여기는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누구도 좋은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 사회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다른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을 위한 경쟁이 이어지는 현재로서는 이해받거나 이해할 여지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믿을 수 없어도 들어보겠다는 다짐 민주주의에는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공격적인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를 약속했지만, 그 목소리를 서로 들어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외침으로 흩어질 뿐이다. 사회를 가로지른 분열은 사람들 간 간극을 만들어 내고, 서로 의견이 다른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두 정당이 반목하는 모습은 흔하다 못해 당연할 지경이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없이 상대를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설령 불합리한 주장일지라도 나름의 근거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맥락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비난할 따름이다. 이런 갈등은 다른 집단을 완전히 제압하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응답하고자 하는 ‘듣는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적 이해로 대화의 단절을 해소하고자 한다. 상호 접촉과 소통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다른 의견을 지닌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듣는 상황을 꿈꾼다. 물론 인간을 변화시키는 대화는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허락하고, 나는 그의 말을 듣겠다는 결심이 함께 요구된다. 저자는 타인이 말을 걸어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공명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에게 다른 존재가 와닿아 공명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 이 책에서 공명은 세계와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일을 의미하는데, 자극, 자기 효능감, 변화, 통제 불가라는 네 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여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루는 성가정과 크리스마스가 지닌 거룩한 메시지와 연결되려고 애써봐도 공명이 일어나기는커녕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기존 의견을 강화할 뿐인 대화는 공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존에 생각하지 않았던 낯선 느낌을 받는, 아주 다른 목소리를 듣는 일이 공명이다. 자기 효능감은 타인과의 연결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타자와 연결됨으로써 소외를 벗어나 살아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누군가와 접촉하기 위해 자신을 열었을 때 변화가 이루어져 세상을 다르게 보고 듣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공명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적은 투자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보고 싶어 하는 현대 사회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공명은 비효율적인 수단이기에 외면받고 있다.

“우리의 근원에는 응답의 관계가 있다” 종교의례는 공명이 일어나는 최적의 공간이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이자 장소로 종교를 호명한다. 종교가 제공하는 공간과 특성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다. 따라서 성장 지향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식의 관계의 가능성을 상기시킬 수 있고, 특히 종교의 전반적 사고와 전통이 공명과 그의 실천에 가깝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기도만 떠올려보아도, 종교적 행위는 인간 실존의 근원에 응답의 관계가 있다는 약속을 전제한다. 내가 누군가를 부를 때, 이 말을 듣고 나를 불러주리라는 믿음이 관계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종교의 사회적 위치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종교는 글로벌 경쟁에서 성장을 방해하는 시대착오적 제도일 뿐일까? 혹은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따를 수 있어도 공적으로는 가급적 침묵에 붙여야 할 일종의 미신에 불과할까? 종교 내부의 문제점이 제기될 때마다 종교가 사회의 정의와 선의를 보장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종교는, 최소한 종교적 특성은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현대 사회의 발전과 회복을 위해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종교가 없다면 현대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땅의 교회들이 봉착한 위기와 별개로, 민주 사회에서 종교적 특성이 더 이상 어떤 공명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회의 회복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저자는 종교적 자원으로부터, 또한 공명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회복할 희망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