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Astrapia · 2025년 3월 6일 가입 · 325권 적독

예외적 오리엔탈리즘의 풍경 (제국일본의 불온한 타자와 대항의 문학)

책 소개

피식민지 타자의 얼굴을 마주 본 일본

식민지 민족운동의 영향은 문학의 표상 공간에 저항하는 피식민자를 등장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갖는 중요성은 종주국의 문학자들에게 피식민자도 ‘내면’을 갖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3·1운동 이전에 일본의 문학자들에게 식민지 조선인들의 내면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타자는 문명화에 뒤쳐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지적으로 열등하고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이며, 어떤 진보의 욕망도 없는 비개성적인 존재처럼 간주되었다. 민둥산을 배경으로 흰 옷을 입고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주름진 얼굴의 노인의 모습은 바로 망국의 민중을 상징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즉, 그들은 식민지의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다. 그런데 3·1운동을 거치면서 소설 속의 조선인들 가운데 점차 내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1운동을 통해 조선인들은 지배에 순응했던 태도의 이면에 저항의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비가시적 장소로써 조선인의 내면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3·1운동을 일본인이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파악했다. 그는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는 장소로서 조선인의 내면을 정의했던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나카노 시게하루는 강제추방을 당하는 조선인들의 내면에 천황에 대한 복수심을 부여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식민지적 타자 인식에서 일어난 내면의 발견은 비단 문학 내부의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타자의 내면에 일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3·1운동과 같은 ‘반란’에 관한 기억과 결합했을 때, 그것은 타자에 대한 항시적인 불안을 식민자의 내면에 발생시켰다. 그런 점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향해 나타났던 일본의 집단적 폭력은 조선인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낳은 우연한 사건으로 처리될 수 없다. 이때의 광기에 가까운 일본인의 폭력은 조선인은 잠재적 위협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심과 3·1운동에 대한 다분히 ‘피해망상적’ 기억이 쌍방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가정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 출신자들의 반항에 대해 일본인들이 품었던 공포는 지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기 동안 식민지적 타자를 바라보는 ‘정치적 무의식’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