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crose · 2023년 12월 9일 가입 · 259권 적독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달크로즈
“파국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보겠는가? 그러한 도래-보기, 그러한 시간-응시의 감각기관은 무엇인가?”
역사의 시각자료 아카이브 속에서 망각되었던 것들을 발굴하는 사유의 방법론을 전개해온 디디-위베르만의 에세이 “파국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미래의 역사를 위한 증언, 아카이브, 문헌 조사에 호소하는 에너지뿐이다.”
광산 가스를 어떻게 감지할 것인가? 역사의 광산 가스, 파국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감지할 것인가?
한때 광산 가스로 인한 폭발 사고는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표적인 산업적, 사회적 재난 중 하나였다. 우리는 광산 가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무색무취의 광산 가스를 감지해내기 위해 옛 광부들은 카나리아와 함께 갱도에 내려가곤 했다. 광부들은 어린 새가 깃털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위험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의 광산 가스’, 다시 말해 파국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 일견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 사회 체제 안에서, 아무런 기미 없이 다가오는 파국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기관은 무엇인가?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이 책 『가스 냄새를 감지하다』에서 예기치 않은 폭발을 야기하는 광산 가스를 도래할 파국의 징후 이미지에 비유하며, 가시화된 적이 없고 따라서 기억되지 않는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되돌아와 가독성을 획득하게 되는지 질문한다.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토대로, 역사가의 임무는 역사를 단순히 참조 대상으로 삼거나 판테온에 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현재의 순간 예기치 않게 솟아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포착해내는 것,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을 감지하고 읽어낼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공식적인 행렬 속에서 이미 완결된 과거의 파국에 대해 수행하는 애도나 추모의 작업과, 앞으로 일어날 파국의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조망하기 위해 과거를 복기하는 일은 분명 다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기억과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이자 시인, 소설가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다큐멘터리 영화 〈분노〉(1963)를 오가면서, 역사가 어떻게 시적 분노와 몽타주를 통해 가독성을 획득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 이미지의 스펙터클은 얼마나 억압적인가, 얼마나 살인적 광경인가?” 기존의 시각적 질서, 권력의 표상 체계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파솔리니의 변증법적 몽타주 혹은 ‘시적 분노’
프랑스 북부 생테티엔 출신인 디디-위베르만은 과거의 광산 사고 목록을 훑어보다가 1968년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 마을에서도 커다란 광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그는 이 사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기억상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경우 상실된 기억이 다시 돌출해 인식 가능성을 얻게 되는지 질문한다. 그러면서 디디-위베르만은 파솔리니의 몽타주 영화 〈분노〉를 소환한다. 디디-위베르만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파솔리니를 주목한 바 있다. 『반딧불의 잔존』(2009)에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미한 빛을 내며 잔존하고 있는 민중의 몸짓을 가시화하는 일을 언급하며 반딧불-민중의 춤을 찬미했던 파솔리니의 시적 응시에서 그 모델을 찾았고, 『민중들의 이미지』(2012)에서는 주변부의 것이라 할 인류학적 기록들을 조직하여 미미하게 잔존하고 있는 몸짓과 얼굴을 시대착오적으로 다시 출현하게 하는 감독, 형상적 섬광을 담아내는 감독으로 그를 소개했다. 이 책에서는 변증법이 작동하는 장소로서의 시영화를 통해 리얼리티에 도달하고자 한 파솔리니의 영화 〈분노〉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1962년 파솔리니는 제작자 가스토네 페란티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던 9만 미터 분량의 1950~60년대 뉴스릴 자료를 사용해 몽타주 영화를 만든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파솔리니의 단일 장편 다큐멘터리로 구상된 것이었으나 1963년 파솔리니가 완성한 급진적 결과물에 당황한 제작자는 계획을 바꿔 영화를 총 2부로 구성하기로 하고, 『신부님 우리 신부님』으로 잘 알려진 우파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에게 후반부의 연출을 맡긴다. 제작자는 훗날 영화가 좌파와 우파 이데올로기 사이의 일종의 영화적 논쟁으로 재구성된다면 더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는 대중적으로 철저히 외면당했고 곧 잊혔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파솔리니의 영화만 복원되었고, 비판적 힘을 가진 몽타주 영화의 예외적이면서도 탁월한 사례로 재평가된다. 디디-위베르만은 파솔리니의 이 몽타주 영화가 무로부터 세계를 다시 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시도들보다 훨씬 더 시적이고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당황한 제작자로 하여금 시급히 영화를 ‘중화시킬’ 수단을 찾아나서게 만들었던 파솔리니의 몽타주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