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nymphea · 2024년 1월 8일 가입 · 266권 적독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책 소개

“현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정신적 문제는 우울이나 불안이 아니다. 지루함과 공허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때, 마음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때 우리는 ‘우울증인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이것은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이며, 지루함은 언제든지 우리를 슬그머니 휘감는 근본기분이라고 말한다.

지루함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든 아니든, 성실한 사람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지루함은 어쩌면 산만함, 중독, 가학성, 폭력 등 현대의 모든 문제적 감정과 행동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루함은 부정성만 지니지는 않는다. 의미를 추구하게끔 부추기고 새로움에 도전하도록 이끌며, 나아가 우리가 타성에 젖어 흘려보낸 일상을 능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저자는 지루함의 이러한 복합적인 면을 깊은 공부와 유려한 문장으로 분석한다. 중세 신학 및 하이데거, 니체, 벤야민, 톨스토이, 카뮈 등 지루함을 다룬 철학적·문학적 탐구부터 현대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돋보기는 빈틈이 없다.

지루함이라는 아득한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심리학과 철학으로 단단히 엮은 구명줄!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타자화된 나이고, 자신을 타자화하기 위해 인간은 늘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를 구하는 건 나로 표현되는 온 세상이다.”

이 문장을 쓰는 데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가 바로 변지영 작가님의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필로소픽, 2024)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에 대한 분석은 많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을 담은 책은 드물 것이라 생각해요.

변지영 작가에 따르면, 지루함은 어떠한 감정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자기 소외’에서 옵니다. ‘노동 소외’가 자신이 만든 노동생산물에 의해 역으로 지배받는 상태라면, ‘자기 소외’는 사회적 쓸모와 생산성을 인정받기 위해 만든 나로 인해 내가 억압받는 상태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소통하려 노력하는데도 세상과 잘 연결되지 못할 때 느껴지는 초조함,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서서히 다가오는 두려움,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등이 그 억압의 결과입니다.

나로부터 억압받고 배제되는 ‘자기 소외’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지영 작가는 그럴 때일수록 ‘에고를 무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외부 세계와 나의 경계를 지우고, ‘자아’라는 거울에 비친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죠.

왜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를 덜 의식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할까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신경망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인간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오갈 때 비로소 “‘나’라고 하는 것을 경험”(p.184)합니다. 인간은 자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외부 세계를 계속 내면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나와의 비틀린 관계를 풀려면 먼저 나의 일부이기도 한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작가의 주장입니다.

이 책 덕분에 실타래처럼 엉킨 채로 제 안에 걸려있던 생각이 말로, 글로 술술 풀리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를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