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nymphea · 2024년 1월 8일 가입 · 237권 적독

퀴즈쇼

책 소개

인생은 퀴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으로 잘 알려진 김영하 신작소설집. 2007년 서울, 스물일곱의 이민수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이제 20대 후반이 된 80년생 젊은이들의 내밀한 욕망과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던 해에 태어나 컬러텔레비전을 보며 자라고, IMF 금융위기를 지켜보며 그 동안 향유했던 경제적인 풍요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실감한, 이제 20대 후반이 된 1980년생.

소설은 부모 없이 외할머니와 함께 자랐다는 것을 제외하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1980년생 이민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다운받아놓은 미국 드라마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이 고작인 그의 일상은 외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외할머니가 남겨놓은 거액의 빚 때문에 빈털터리로 길바닥에 나앉게 된 그는 햇볕 한 줌 안 드는 1.5평 고시원에 자리잡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근근히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해고당하고 고시원에서도 쫓겨나 오갈데 없던 이민수는 우연찮게 TV퀴즈쇼에 출연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민수에게 처음 접근해온 이춘성이란 사내는 천만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그는 정신의 피와 살이 튀기는 실전 퀴즈쇼에 출전하라고 제안하고, 퀴즈 그 자체의 '절대가치'를 숭배하는 '그들만의 퀴즈배틀'에 참가하게 된 이민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 작품 자세히 들여다보기! 2007년 2월부터 일간지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었으며, 가장 '김영하다운' 면모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도시적 감수성과 세련된 필체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21세기 청춘의 풍속도를 그려낸다.

『검은 꽃』(2003)은 대한제국 말기,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망해가고 흩어지던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망명을 자처한 조선인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빛의 제국』은 1987년 이후의 형식적 민주주의체제에서 1997년 IMF 이후의 후기자본주의체제로 사회시스템이 급변한 이십여 년의 삶을 살아가는 한 망명객(간첩)의 이야기이다. ... 『퀴즈쇼』는 『빛의 제국』에서 작중인물들이 살아가는 현재, 즉 1997년 이후 남한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일그러진 모더니티의 수도에서 배제되고 탈락된 젊음에 관한, 젊음을 위한 이야기다. ... 그렇다면, 생존이 삶의 유일한 지상목표가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으로 대표되는 웰빙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살벌한 적자생존의 현실과 그 맞은편에 놓인, 무기력과 의기소침이 만성화된 이 시대에 이제 막 세상으로 입사하려는 젊은이들의 추방당한 삶 ... 이 소설에서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인정투쟁의 세대적 갈등이 아니라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계형 고시원 생활, 임시고용과 계약 등 비정규직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서처럼 자본에 의해 고용 및 추방을 당하면서 대두되는 신빈곤계급에 대한 도시생태학적 관찰이다. ...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 또는 개개인의 형태로 형상화되는 기성세대의 질서는 알 수 없는 덫처럼 도처에 잠복해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연기하는 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하 소설에서 연기는 지금껏 타락한 세계를 나름대로 견디어가고 극복하는 자아의 자기 연출이었지만, 『퀴즈쇼』에서의 그것은 이미 기성질서의 일부로 굳어져버렸으며, 또 거기에 안주하거나 편입하려는 완고한 자기 방어와 기회주의적 술책의 일환으로 속화되어 묘사된다. 연기는 더이상 '댄디즘'(보들레르)도 '자기의 배려'(미셸 푸코)도 아니다. ... '연기'는 『퀴즈쇼』에서 이제 거의 모든 세대와 관계없이, 사회의 구성원들이라면 알게 모르게 채택하고 있는 세상살이에 순응하는 주된 전략전술이 된다. ...
리처드 세넷이 『공인의 몰락』(1977)에서, 그리고 크리스토퍼 라쉬가 『나르시시즘의 문화』(1979)에서 공통적으로 해부한 바를 참조한다면, 김영하의 『퀴즈쇼』에서 관찰되는 '예술을 빼앗긴 연기자'(세넷) 또는 '나르시스트'(라쉬)로 부르르 수 있는 작중인물들의 형상과 스펙터클적인 세계의 이미저리가 공적 문화의 몰락, 또는 아버지로 표상되는 상징적 네트워크의 기능부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작품해설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 (복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