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rooftoplife · 2023년 12월 22일 가입 · 415권 적독

양녕 대군 만유기

책 소개

양녕 대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양녕 대군의 유쾌 통쾌 조선 유람기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양녕 대군은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녕 대군의 동생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은 세종 대왕이며,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과 양녕 대군에 대한 여러 ‘썰’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때로 주색에 미쳐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자로, 때로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미친 척 흉내를 내는 왕자로 상반되게 그려졌던 양녕 대군. 실제 양녕 대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오랜 시간 양녕 대군을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되살려내며 그에게 역할을 부여한 대중 혹은 시대의 무의식일 것이다. 양녕 대군이라는 캐릭터에 일찌감치 주목한 이로 유추강을 들 수 있다. 그는 『야담』 1936년 12월호부터 1937년 11월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양녕 대군 만유기」를 연재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돌부처, 피 묻은 몽둥이, 죽은 지 1년 만에 다시 살아난 시체, 깊은 물 속에 웅크리고 있던 천년 묵은 이무기 등… 사건과 사연이 끊이지 않는 조선을 돌아다니며 이를 해결하는 작품 속 양녕 대군을 보다 보면 어사 박문수나 홍길동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나왔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암울한 시대를 살며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온갖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영웅과 같은 존재가 희구되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양녕 대군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위안과 감동의 서사를 제공한 유추강이, 역설적으로 일제 말에는 징병을 홍보하는 선전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는 점을 부기한다. 「양녕 대군 만유기」에서 전국을 유람하는 듯했던 양녕 대군의 행보는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충청도로 끝이 난다. “뒤에 다시 기회가 있는 대로 다시 만나 뵙기로 하겠다“던 작가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제에 협력하는 처지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양녕 대군의 서사를 다시 잇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