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ftoplife · 2023년 12월 22일 가입 · 59권 적독
사계절 내내 버섯과 긴밀히 얽히는 윈난 버섯은 회고의 촉매가 되어 역사를 쓰게 한다
숭배, 감격, 회상으로 쓴 버섯 세계관 독본
버섯 철이던 어느 날, 저자 녜룽칭은 차를 몰고 집에 가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다. 그런데 듣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평소와 달리 표준어가 아닌 쿤밍 사투리를 쓰질 않나 감정도 점차 고조되어갔다. 이내 급히 노래 한 곡이 나왔고 노래가 끝날 즈음 진행자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나중에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일러주길, 그 진행자가 점심으로 견수청(독성이 있으나, 조리법에 따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손을 대면 파랗게 변한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을 먹고는 프로그램 도중에 흥이 나버린 것이었다. 방송국은 이날부터 근무 시간에 버섯을 먹은 사람은 생방송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매우 주의하고 있다고 한다. 단오가 지나면 버섯에 중독된 환자들이 속출한다. 저자의 아내도 버섯에 중독돼 허공에 떠오른 그림들을 잡겠다고 허우적거린 적이 여러 번이다. 윈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섯 중독과 관련된 일화 몇 가지를 알게 마련이고, 전해오는 이야기들로 마음은 복잡해진다. 행여나 탈이 날까 염려되지만, 일단 버섯이 눈에 들어오면 호기심과 식탐이 번번이 이긴다. 버섯의 마력이란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힘은 인력이다. 인력引力(끌어당기는 힘) 또는 인력因力(만물의 기원이 되는 힘)으로 쓸 수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버섯균을 “지하의 정교한 레이스 자락, 헴스티치가 된 축축한 균사, 세상의 미끄러운 탯줄”이라고 묘사했다. 조밀하게 형성된 균사체의 세계는 땅속 양분과 생의 가능성을 그러모아 한 송이 버섯으로 피어나고, 동시에 지면 위로도 그물을 치듯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버섯에 홀린 이들은 버섯을 모조리 먹어치울 자세로 덤벼들 뿐만 아니라 버섯의 신비로움을 상징화하여 창작의 소재로 되풀이하고, 버섯의 독성마저 ‘신의 선물’이라 떠받치며 독버섯을 따다 제전祭典 활동에 쓴다. 이 책 역시 버섯의 인력으로 쓰였다. 저자는 펜을 놀릴 때마다 버섯을 먹고 중독된 친구들의 일화가 떠올랐고, 왠지 모르게 신바람이 나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버섯이 이끄는 대로 거닐며 버섯을 향한 숭배와 감격, 회상을 기록한 이 책은 마치 설화 같기도 하다. 버섯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다면 버섯의 인력에 몸을 맡기는 편이 좋다. 그로써 당신과 버섯을 잇는 가느다란 실 역시 막힘없이 뻗어나가며 기억 저편의 감각을 두드릴 것이다. 버섯의 생장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땅속을 수놓는 공생의 그물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때에도 생을 이어나가느라 여념 없다. 그러다 땅 위로 솟아올라 뜻밖의 기쁨을 안긴다. 그 기쁨은 놀라움, 환희 그리고 상상력이다. 언제부터 발밑의 생이 시작됐을까? 탄생의 조력자인 삼림은 언제부터 그 비밀에 공모했을까? 버섯은 창발하는 생명이며 무수한 질문을 배양하는 존재다. 버섯을 보고 삶의 삽화와 얼굴들이 우후죽순 떠오르는 것도 감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물며 매년 5월이면 버섯으로 뒤덮이는 중국 윈난에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까지 버섯이 스미는 건 자연의 이치 아닐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악하고 나쁘며 비천한 모든 것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지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운 채 다음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익사한 이들의 유산 속에서 이어가는 집요한 대화 그리고 공격의 기록들
그 오랜 시간 동안 더러운 이야기들은 어떻게 우리를 매혹했는가? 폭력과 타락을 통해 들여다보는 익사한 남자의 얼굴
여기, 한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그는 출렁이는 물속에서 눈을 감고 있다. 얼핏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다. 잠든 자의 얼굴. 그러나 사진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는 잠들어 있지 않다. 그는 ‘익사한 남자’다. 곧 묘한 설명이 이 사진에 따라붙는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남자의 얼굴을 주시한 이 사진의 제목은 바로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이다. 시체가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그려냈다는 것일까? 강덕구는 진중권의 칼럼을 빌려 사진의 후일담을 풀어낸다. 사진 속 남자는 최초의 사진 매체인 ‘다게레오타이프’를 둘러싼 특허권 경쟁에서 패배한 작가, 이폴리트 바야르다. 그는 학술원 측의 부탁으로 사진 발명의 발표를 미루던 중 경쟁자인 루이 다게르가 사진 매체의 발명자로서 학술원의 인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그는 ‘익사한 남자’로 꾸민 자신을 촬영한 사진을 학술원에 보낸다. 사진 뒷면에 적은 메모에서 바야르는 자신을 ‘썩어들어가’는 시체로 비유한다. 『밀레니얼의 마음』에서 자신을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적 정서와 그 바탕을 그려냈던 작가 강덕구는 이번에 그가 몇 해에 걸쳐 쓴 글을 묶은 예술비평서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을 통해 어떻게 허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지 그려낸다. 여기서 허구란 신화와 문화를 비롯한 이야기, 좀 더 거칠게 한 덩어리로 그려내자면 ‘예술’을 지시한다. 이 책에서 강덕구가 다루는 예술 그리고 예술가 중 일부는 오늘날 여러 의미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위악과 의도적인 오독을 통해 역사에 구정물을 부은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부터, 백인 남성의 보편성에 기댄 유토피아를 그리다가 종래에는 미국 국회의사당 시위에 동참하게 된 애리얼 핑크와 존 마우스의 음악, 미투 운동에서의 폭로와 정치적 발언이 불러일으킨 불화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경력이 끝난 스탠딩 코미디언 루이 C.K.의 시트콤까지. 강덕구가 말하는 예술의 우주는 정말이지 ‘사악하고 비천한’ 별자리들에 맞닿아 있다. 동시에 강덕구는 그들의 시대, 즉 “문화적 보편성으로 기능하던 백인의 세기”이자 “백인 남성 예술”의 시대가 근본적으로 끝났음을 설파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어제와 내일이 맞물리는” ‘오늘’을 설명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그가 이 수많은 금기의 별자리들, 그리고 오늘날의 익사한 남자인 ‘문제적 인간’들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묻는다. 왜 우리는 더러운 이야기에 매혹되었을까? 그중 어떤 부분이 우리를 삶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인 것이며, 또 그들이 꾸린 역사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비주류 안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를 다시 나누는 강덕구씨의 조밀하고 집요한 시선이다.” -백민석(소설가)
백민석 소설가의 추천사가 말하고 있듯,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이 파고드는 예술 중 다수는 오늘날 ‘비주류’로 논해지기 쉬운 것들이다. 그러나 무한한 데이터와 디깅(Digging)의 시대에, 비주류 문화는 분명 전과 다른 위상을 갖고 있다. 인터넷망의 보급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등 기술의 발전은 분명 세계를 뒤흔들어놨고, 이는 문화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문화예술의 향유자들은 전과 같은 방식, 즉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소유하는’ 방식 외에도 예술을 ‘수집하는’ 또 다른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책 본문에서 말하듯 이러한 변화는 “사라진, 실종된, 은둔한” 예술작품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으며, 비주류라 불렸던 문화는 그 안에서도 착실하게 역사와 계보 그리고 각각의 정전을 쌓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강덕구가 다루는 계보 속 이름들과 정전은 많은 이에게 낯선 것들이다. 물론 본문 곳곳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외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인 이창동, 홍상수나 한때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언 루이스 C.K. 그리고 지금 당장도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을 플랫폼인 ‘아프리카TV’ 등을 사례로 뽑을 수 있겠다. 앞선 예시들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더라도 (흔히 말하는)‘시네필’들이나 문화예술에 관심이 깊은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영화평론가 정성일 또는 마크 피셔,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나 왕빙 역시 본문에서 주요한 한 장을 차지한다. 반면 러시아의 전 부총리이자 막후 설계자로 불리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의 예명인 ‘나탄 두보츠키’나 음악인류학자 해리 스미스 같은 이름들은 대부분 사람에게 생소할 테다. 만일 이 둘의 이름을 아는 독자가 있더라도, 그가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인 커맨더지코와 BJ텐쿵의 이름까지 함께 알고 있을 확률은 낮다. 단순하게 국가와 분야로만 나누더라도, 이 낯선 이름들은 서로 아예 다른 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은 이토록 낯선 이름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맥락을 창조해낸다. 전혀 다른 몸에서 서로 다른 색깔로 흐르던 피를 하나의 혈관에 수혈하는 것이다. 하나의 혈관에 뒤섞인 서로 다른 피는 필연적으로 어떤 병증을 일으킨다. 강덕구는 바로 이 병증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이 병증이 어떤 식으로 우리 세계 곳곳에 스며 있는지 논하자고 권한다. 그에게 이 병은 고통을 일으키는 요인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지난 세기를 벗어나 다음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진화의 동인이다. 여러 색깔의 피가 흐르는 새로운 몸은 과연 어떻게 움직일 것이며, 어느 세상과 맞닥뜨리게 될까? 강덕구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거침없이 이름들을 배치하며 서로 맞닿게 한다. 그는 인터넷 방송인 커맨더지코의 리얼리티 영상,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를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리산드로 알론소의 「자유」와 함께 대조한다.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음반 《뽕》으로 4관왕에 수상했으며, 프로듀서로 참여한 뉴진스의 앨범 《New Jeans》로 잇따라 2관왕을 수상한 아티스트 250의 앨범을 각 방향에서 살피며 데이비드 린치가 그리는 ‘소도시 풍경’과 맞대기도 한다. 강덕구의 비평에서 이러한 관계 맺기는 무척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에게 비평이란 낯선 이름들을 소개하고 그에 관해 논설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름들과 그 관계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직조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언어의 존재를 살피다!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가슴 아픈 탐사 보고서『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언어학계에서 ‘현장 언어학자’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언어 세계의 이론과 경험을 전방위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니컬러스 에번스가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언어가 생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언어 다양성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기술하였다. 사라지는 언어의 위기에 대한 추상적, 규범적 논의에서 벗어나 사라져가는 언어의 증언자들과 직접 생활하며 겪은 삶의 기록에서 배어나온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 지금 대중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복잡한 현실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상황들을 다 감안하여 언어를 둘러싼 문제를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수많은 인터뷰와 관련된 참여 관찰 기록들을 통해 몸소 보여준다. 존폐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세한 지도와 도표, 사진을 수록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글자로 말해지지 않은 내용까지 풍부하게 품는다. 하나하나가 일상의 바깥, 인간의 바깥을 아우르는 파노라마다.”-심완선(SF 평론가)
한 시절이 끝나도 세계는 이어진다, 찬란히 어른거리는 빛으로.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 작가 김유정이 그리는 열 가지 풍경.
대하 판타지 『영혼의 물고기』로 2000년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김유정의 소설집 『용의 만화경』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전자책으로 출간된 『고래뼈 요람』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마법이 존재하는 중세에서 우주 개척 시대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와 SF를 넘나드는 작가의 폭넓은 세계를 보여 주는 10편의 중단편이 담겨 있다.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초기 사이에 쓰인 수록작들은 시대상을 반영하듯 대체로 어떤 시기의 마지막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인간 속에 섞여 살며 숙주의 생기를 흡수하던 흡혈귀가 팬데믹 사태로 생존의 위기를 맞고(「장미흔」), 파국적인 소식을 전할 사명을 띤 순례자가 쇠락하는 마을을 방문하며(「나무왕관」),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려 택한 냉동수면에서 깨어나 보니 모두가 사라진 절대 고독의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M과 숨」). 그러나 이러한 종말들은 항상 절망적으로 그려지지만은 않으며, 주류에서 벗어난 다채로운 인물들은 과거를 품에 간직한 채 새로운 갈망과 미래를 꿈꾼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힘으로 주인공을 경이의 세계로 안내하는 표제작의 초월자처럼, 『용의 만화경』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만화경의 빛깔 같은 찬란한 꿈으로 안내할 것이다.
세이료인 류스이옥탑방
JDC 월드 2탄! L범죄의 시대, 예술가 VS JDC, 새로운 대결이 시작되었다 일본 미스터리계를 충격에 빠뜨린 『코즈믹』의 속편, 마침내 정발. 미스터리의 모든 문법을 해체하는 모비딕!
환영성에서 합숙을 하던 추리소설 작가들. 그 중 한 명인 다쿠쇼인 류스이가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모두가 아는 〈녹스의 10계〉 + 〈밴 다인의 20칙〉 = 〈추리소설 구성요소 30항〉을 망라한 실명소설 작품 구상을 발표,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그 구상을 실현하는 것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현장에는 스스로를 「예술가artist」라고 부르는 범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잠에 들기 전, 나는 여덟 개의 제물을 원한다. 모든 것은 (화려한 몰락을 위해).” 우연히 환영성에 머물고 있던 JDC 소속 탐정 기리기리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JDC 본부에 도움을 요청, JDC를 대표하는 탐정들이 하나둘 환영성에 도착하는데,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살인은 멈추지 않는다. JDC 사가의 ‘4대 사건’ 중 하나인 ‘환영성 살인사건’, 누가 이 광기의 비밀을 간파할 수 있을까?
티에리 크루벨리에옥탑방
1만2000명을 죽인 S-21 교도소장 그는 인간인가, 악마인가
인간성의 기이한 본성과 시대의 진실을 밝히는 다큐, 아니 차라리 스릴러! 국제 전범재판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프랑스 저널리스트의 작품
“그땐 혁명이 죄수들을 한 명씩 없앤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저는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고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저는 평생 뭔가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_두쿠의 법정 진술 중에서
“1만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S-21 교도소에서 죽었으니 눈은 두 배가 되겠군요. 나는 적어도 2만 4000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피고인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숨을 곳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_희생자 가족의 증언 중에서
2009년 3월, 프놈펜. 깡 켁 이우란 이름보다 두크로 더 유명한 고문 및 사형 책임자는 뚤슬렝 S-21에서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국제 재판소 앞에 홀로 서는 순간을 맞이했다. 희생자들의 가족 앞에, 또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하게 된 두크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기조차 어려운 대학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백의 대가』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에 가담한 사형집행인의 범상치 않은 운명에 대해 들려준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매공판에서 예기치 않은 놀라운 에피소드가 불거지면서 한 편의 ‘인간 희극’이 펼쳐진다. 저자 티에리 크루벨리에는 기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연극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법정에서 일어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작품마다 치밀한 취재와 정교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캐릭터와 강렬하고도 서늘한 서사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고루 받으며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열어가고 있다 평가받는 작가 성해나가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를 선보인다.
성해나는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4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선정한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로 선정되는 등 이미 그 화제성을 증명한 바 있다.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부드럽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첫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창비 2023)에서 오해와 결별로 얼룩진 과거에 애틋한 인사를 건네고자 했던 그가 『혼모노』에 이르러 더욱 예리해진 문제의식과 흡인력 넘치는 서사를 통해 지역, 정치, 세대 등 우리를 가르는 다양한 경계를 들여다보며 세태의 풍경을 선명하게 묘파해낸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는 지난해 끊임없이 호명되며 문단을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표제작 「혼모노」를 비롯해 작가에게 2년 연속 젊은작가상을 선사해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이 계절의 소설과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스무드」 등이 수록되어 더욱 눈길을 끈다. “작가의 ‘신명’이라 불”릴(추천사, 이기호) 만큼 “질투 나는 재능”(추천사, 박정민)으로 빛나는 『혼모노』, 그토록 기다려왔던 한국문학의 미래가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도착해 있다.
전통과 유물에 대한 톡톡 튀는 관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김서울의 박물관 에세이. 박물관 소풍이 취미이자 특기인 저자가 1년 362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국공립 박물관 10곳을 소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왕벌들은 다양한 출신 배경이었음에도 하나같이 계급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에서 과단성 있고 야심만만한 〈출세주의자〉 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다들 애초에 결혼을 발판 삼아 영국 사회의 권력층에 안착했으며, 일단 〈이름〉을 알린 후 지성과 재치와 수완을 한껏 발휘해 자신의 열정을 좇아갔다. 런던 사교계를 호령하며 사회 각계의 유명 인사, 백만장자, 영화배우, 왕족, 귀족 등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 이 여성들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미야베 미유키옥탑방
일본을 뒤흔든 공개 연속살인사건의 시작!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모방범』 제3권. , 와 함께 작가를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로 꼽히는 이 소설은 2001년 출간 이후 일본에서만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범죄조차 이벤트로 전락해버린 현대사회의 잔혹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도쿄, 한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 핸드백의 주인은 3개월 전에 실종된 20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오른팔과 핸드백의 주인이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방송국에 알려오고 피해자의 가족을 전화로 농락한다.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범인의 목소리에 전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수사는 난항을 거듭하는데….
미야베 미유키옥탑방
일본을 뒤흔든 공개 연속살인사건의 시작!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모방범』 제2권. , 와 함께 작가를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로 꼽히는 이 소설은 2001년 출간 이후 일본에서만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범죄조차 이벤트로 전락해버린 현대사회의 잔혹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도쿄, 한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 핸드백의 주인은 3개월 전에 실종된 20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오른팔과 핸드백의 주인이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방송국에 알려오고 피해자의 가족을 전화로 농락한다.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범인의 목소리에 전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수사는 난항을 거듭하는데….
미야베 미유키옥탑방
일본을 뒤흔든 공개 연속살인사건의 시작!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모방범』 제1권. , 와 함께 작가를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로 꼽히는 이 소설은 2001년 출간 이후 일본에서만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범죄조차 이벤트로 전락해버린 현대사회의 잔혹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도쿄, 한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 핸드백의 주인은 3개월 전에 실종된 20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오른팔과 핸드백의 주인이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방송국에 알려오고 피해자의 가족을 전화로 농락한다.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범인의 목소리에 전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수사는 난항을 거듭하는데….
우아하고 위트 있는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 제인 오스틴 식 미스터리!
영국범죄소설가협회 평생공로상, 미국추리작가협회 그랜드마스터상을 동시에 수상한 추리소설가 P. D. 제임스가 쓴 빅 미스터리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 저자가 타계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오만과 편견》 완결 시점에서부터 6년이 흐른 후의 펨벌리를 배경으로 고전 미스터리의 그윽한 향취와 사건 해결에 이르는 탄탄한 구성을 펼쳐 보인다. 섬세한 일상 묘사 속에 시대상과 보편적 인간상을 녹여 내는 제인 오스틴의 장점은 그대로 계승하면서 작품 내에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오만과 편견》이 남긴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맺어진 후 6년이 흘렀다. 둘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펨벌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연례 무도회 준비로 바쁘던 가을밤, 저택 근처 숲에서 살해된 데니 대위의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시체 옆에 무릎 꿇고 있던 위컴을 체포한다. 사건의 심리와 재판이 이어지고, 엘리자베스 부부는 인척인 위컴의 무죄를 증명해야만 하는데……. 2013년 《오만과 편견》 출간 200주년을 기념해 BBC에서 3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그림 속에 숨겨진 당대의 음모와 살인사건을 밝힌다!
독일 태생의 역사학자 베른트 뢰크의『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르네쌍스 시대 ‘회화의 군주’로 불린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의 그림 속에 숨겨진 음모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가 세우는 중심가설은 이 그림의 난해한 도상 뒤에 500년 전에 펼쳐진 한 편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당시 벌어진 한 살인사건을 고발하는 기소장임을 밝히면서, 그림 속에 나타난 살인자와 희생자, 그리고 그림의 주문자를 추적해나간다. 그림의 세세한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파헤쳐가는 저자의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15세기 이딸리아 르네쌍스시대의 매혹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14년의 세월 동안 공들여 만든, 만화책 유일의 퓰리처상 수상작!
만화책 유일 퓰리처상 수상작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 새로운 표현 양식을 설계하고 실험적인 기법으로 《쥐》를 탈고하기까지 아트 슈피겔만은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소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슈피겔만은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다.
유태인 출신이면서 동시에 유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작가 슈피겔만은 독일의 구겐하임상, 미국의 퓰리처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대학살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버지의 기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 유태인은 단순한 대학살의 피해자, 나찌는 가해자가 아니다.
이 책은 폴란드 부호 일가의 영락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지옥의 문턱에 섰을 때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또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고한다. 여느 홀로코스트 보고서에 견주어 《쥐》가 이룬 주요한 성과는 탁월한 사실성과 객관성에 기인한다. 《쥐》는 소스노비에츠에서 아우슈비츠까지의 행로에 절망과 죽음의 사례를 즐비하게 제시하면서, 단순히 나찌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과거 사건이나 생존자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개인사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상대의 존재를 말살시키려는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별일이 생기면 그냥 생기는 거야.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 아직 오지 않은 일에 겁먹고 모든 게 불길한 예감으로 느껴질 때 그만하면 괜찮다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마음 편히 말하는 날에 다다를 수 있을까?
첫 소설집 《트랙을 도는 여자들》을 통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는 여성 인물들을 그려온 차현지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 《다다른 날들》이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별스럽지 않은데 마치 예언처럼 운명처럼 다가오는 장면과 꿈들이 있다. ‘준이’는 사고처럼 죽은 새를 밟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애인과 6년째 동거하던 집을 떠나 엄마가 홀로 지키는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또 무슨 꿈이라도 꾼 듯 전혀 놀라지 않고 준이를 맞이한다. “근심과 기우”는 별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통제 아래 놓여 있지 않고 어떤 노력에도 생각지 못한 나쁜 일들이 들이닥치곤 한다. 아득한 “낙관이나 희망”이 아닌 그만하면 괜찮다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미리 내다보고 대비할 용기가 아니라 걱정하지 않을 용기로 나아가는 준이의 여정이 시작된다.
《뉴욕 타임스》 21세기 100대 소설 작가 리베카 머카이의 작품, 국내 첫 소개 그루밍 성범죄와 미투 운동, 교내 성폭력의 본질을 다루며 평단과 독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여성 혐오 범죄 미스터리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소설에 이름을 올린 작가 리베카 머카이의 작품이 황금가지에서 국내 최초로 출간되었다.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는 23년 전,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소녀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 소설이다. ‘젊고 부유하고 어여쁜 소녀’의 죽음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관음적 시각을 조명하는 한편으로 그루밍 성범죄, 미투 운동, 교내 성폭력, 성차별적 시각 등이 10대의 삶에 작용하고, 그것이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묘사하며 ‘세련된 플롯을 갖춘 문학적인 미스터리(《AP》)’라는 찬사를 받았다. 높은 작품성과 흥미진진한 플롯, 정교한 캐릭터 조성으로 출간 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유수 언론의 극찬과 10만 건이 넘는 독자 리뷰를 받고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한 사서들에 의해 선정되는 상인 리비 상 오디오북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아스펜 상과 캐롤 실드 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리베카 머카이의 전작 『Great Believers』는 ALA 카네기 메달과 《LA 타임스》 도서 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하였고 퓰리처 상과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도서로 꼽혔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옥탑방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
범죄학자 히무라와 그 친구인 작가 아리스가와가 활약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자물쇠 잠긴 남자』는 한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던 남성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남성의 죽음을 마주하며 남성의 삶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탐정 행위가 죽은 자에 대한 진혼에 다름없다는 주제를 전한다.
오사카 나카노시마의 한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던 노인 나시다 미노루가 목을 매단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내리지만 그의 지인인 작가 가게우라 나미코는 의문을 가지고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사건의 조사를 부탁한다. 입시철이라 바쁜 히무라 대신 아리스가와가 조사에 나서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과연 이 남성은 대체 누구인가? 그 죽음에 얽힌 진상은 무엇일까?
아리스가와 아리스옥탑방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
범죄학자 히무라와 그 친구인 작가 아리스가와가 활약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자물쇠 잠긴 남자』는 한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던 남성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남성의 죽음을 마주하며 남성의 삶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탐정 행위가 죽은 자에 대한 진혼에 다름없다는 주제를 전한다.
오사카 나카노시마의 한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던 노인 나시다 미노루가 목을 매단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내리지만 그의 지인인 작가 가게우라 나미코는 의문을 가지고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사건의 조사를 부탁한다. 입시철이라 바쁜 히무라 대신 아리스가와가 조사에 나서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과연 이 남성은 대체 누구인가? 그 죽음에 얽힌 진상은 무엇일까?
‘논란’은 어떻게 유행이 되는가? 온갖 논란을 유행처럼 소비하는 온라인 공론장의 구조를 파고드는 정교한 문화비평서이자 문화기술지. 저자는 논란에 가장 취약한 존재인 케이팝 아이돌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공론장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학교폭력, 갑질, 성폭력, 인권 의식부터 역사 인식, 인성 등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모든 사건이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하나의 ‘논란’으로서 조직적으로 생산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곧 화폐가 되는 이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논란은 특정 종류의 관심을 생산하고 그와 결부된 대중 및 공론장을 구성한다. 그러면서도 《망설이는 사랑》은 온라인 공론장의 문제를 다루는 여느 책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하고도 참신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다. ‘망설이고 주춤하는 팬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대화를 통해 그 공론장 내부에서 형성되는 거대한 폭력의 네트워크를 꿰뚫기 때문이다. 이때 망설임이란, 논란의 중심에 선 아티스트의 팬으로서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 무분별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찾고 윤리적 분투를 벌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팬, 특히 아이돌 팬들은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무지하다는 혐오와 편견에 둘러싸여 있지만 저자가 만난 팬들은 우리에게 그와 전혀 다른 경로를, 즉 팬심과 덕질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중-팬-사이버렉카-언론-알고리즘-소셜미디어 플랫폼 등의 행위자가 결합하는 무분별한 논란과 폭력의 네트워크 내지는 캔슬 컬처에 가담하지 않고 망설이는 팬들을 통해 우리는 ‘가해자 감별’과 ‘무조건적 퇴출’을 넘어서는 논의/사유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이들의 윤리적 실천이 어떻게 좀 더 나은 온라인 공론장 문화를 상상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지 살펴보자.
자본과 인간이 싸우는 미세 허파, 서울 쪽방 탐사 대기록 대도시는 어떻게 먹이사슬망이 되었나 쪽방에 들어가는 순간 생은 늪이 된다
이 책은 르포다. 기자 정신으로 잠입해 취재를 하고, 하나의 단서를 잡으면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증거를 수집해나간다. 사회부 소속으로 경찰서를 출입하는 일은 ‘사망’ ‘빈곤’ ‘불법’ 등 중요한 사회 문제를 사건의 발생과 종결로만 보게끔 시야를 제한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기획취재부로 옮겼다. 이제 기자 신분임을 숨기고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 혹은 부동산 투기꾼으로 가장해 쪽방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나간다. 그러자 서울 대도시 밑바닥층의 빈곤 문제가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체계적인 이윤 추구 행위에 둘러싸여 있음이 드러났다.
이 책은 작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부산 출신의 저자는 서울로 진학하면서 대학 시절 내내 주거빈곤자로 불안한 생활을 했다. 기숙사, 하숙, 반지하 원룸, LH 매입임대 주택, 산동네 분리형 원룸, LH 대학생 전세자금대출이 저자가 거쳐온 주거 역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가난한 과거사를 숨겼다. 요즘 가난은 훌륭한 서사의 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악바리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줘 불리한 약점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 세대들이 자신이 직면한 빈곤을 외면하자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주거 빈곤사와 가난의 경험을 적극 드러내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난에 대한 한 사람의 시선이 바뀌고 넓어지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수많은 빈자, 중간 착취자, 소유주가 이 책에 등장한다. 실명을 밝히기도 하고 가명 처리한 인물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빈곤의 실태를 이야기해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쪽방에 한번 발을 담갔다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에 대하여 증언했다. 바로 서울 동자동, 창신동, 사근동 주민들이다.
“저것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인간을 만드는 기계에서 나왔으니까요.” 인간과 욕망에 관한 듀나식 질문들
2024년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한국 SF의 거장 듀나의 신작 《바리》가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멸종을 두려워했던 인간들은 다른 항성계에 새로운 인간 문명을 건설하고자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기계’와 ‘기계에서 태어난 인간을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할 로봇’을 우주선에 실어 쏘아 올렸다. 감속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서 우주선 속 로봇 ‘바리’는 먼 항성계까지 떠밀려오고, 먼저 도착해 인간들을 위한 도시를 짓던 로봇 ‘하늘구름’과 동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머나먼 새 행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그들은 바리와 함께 망가진 기계를 수리해 탱크에 배양액을 채우는데, 249일 후 기계에서 나온 것은 ‘네발 달린 트럼펫’이었다. 인간을 양육하고 싶어 하는 바리와 인간에게 봉사하며 문명을 건설하고 싶어 하는 하늘구름에게, 인간이면서 인간 아닌 트럼펫들이 예측 불허의 사건들을 불러일으킨다.
“문장을 구성하는 사이에 현재는 떠밀려간다. 현재는 영원히 기술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자동 피아노》 천희란, 이미 써버린 소설에 관한 소설
예리한 감각과 치밀한 문장으로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 내면을 종이 위에 펼쳐내는 작가 천희란의 신작 《작가의 말》이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천희란 작가의 작품은 자주 작품에 수록된 ‘작가의 말’과 함께 독해되어왔다. 이번 신간 《작가의 말》은 바로 그 ‘작가의 말’에 관한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을 ‘소설’로 부름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환상적으로 흐려놓고 소설에 개입하려는 현실을 유머처럼 혼란에 빠뜨린다. ‘죽음’은 천희란 작가가 오래 천착해온 주제였고, 이는 그가 ‘삶’을 써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작가에게 삶과 같은 글쓰기와 죽음 사이를 오가며 죽음을 양팔 벌려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완벽하게 평행을 이루는 삶과 죽음의 시소를 촘촘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그려낸다.
아내의 노트북에서 전 연인의 이름으로 된 폴더들을 발견했다 안온한 삶 아래 도사린 불온한 마음을 들추는 위수정 신작 소설
언뜻 평온해 보이는 일과를 끝내고는 잠을 설치며 밤마다 뒤척이는 인물들이 간직한 내면의 모순과 균열을 그려온 《은의 세계》《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의 신작 소설 《칠면조가 숨어 있어》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특별히 어려울 일도 고민할 일도 없이 흘러가는 ‘유미’와 ‘선호’의 결혼 생활. 함께 산 지 1년, 유미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가벼운 취미 정도로 여긴 선호의 예상과 달리, 유미는 밤마다 침대를 빠져나와 선호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글을 쓴다. 궁금증을 키워가던 선호는 유미의 노트북을 몰래 들여다보는 데 이르고, 칠면조라는 폴더 아래 늘어선 전 연인의 이름으로 보이는 폴더들, 그리고 선호의 이름을 발견한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불현듯 이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불안과 혼란이 찾아온다. 속속들이 알고 싶지만, 알고 싶은 만큼 두려운 연인의 진심. 칠면조가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것을 알아야 할까? 끝없는 의심과 믿음을 가장한 무관심을 양팔저울에 올려둔 채 선호의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장 낯선 이별을 이해하려는 어리고 늦된 스물아홉 살의 서툰 간병기, 유심한 작별기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스물 다섯번째 작품 『오늘의 엄마』. 주인공 ‘정아’가 겪는 상실의 시간을 기록한 소설이다. 3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애인을 잃은 정아는 여전히 그 기억에 몰두해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언니에게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직 그의 죽음조차 납득하지 못한 정아가 이십 대의 마지막 해에 받아든 역할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의 보호자다. 똑부러지고 야무진 언니 정미와 세상일에 늦되고 어색한 정아. 두 자매의 서울과 부산, 경주를 오가는 간병기가 시작된다.
이별만큼 필연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잘해 내는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우리에게 『오늘의 엄마』는 동행이 되어 준다. 다만 앞서 가는 길잡이도, 뒤에서 받쳐 주는 안전요원도 아니다. 그저 매번 겪는 이별에 매번 리셋되는, 그러면서도 온몸으로 그것을 겪어 내는 우리의 현실 친구다. 병든 엄마 곁을 지키며 정아가 보여 주는 유치한 투정, 짜증과 무심에서 우리는 그 이면의 마음을 느낀다.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사랑, 어쩔 수 없이 생생한 최선을. 김초엽 소설가의 추천의 말처럼 “사랑은 언제나 상실의 고통을 가져온다. 『오늘의 엄마』는 끈질기게 그 사랑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타이완의 ‘스카이 캐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넷플릭스 드라마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원작 작가가 내놓은 타이완 학부모 세계의 ‘신분상승 게임’ 사립 초등학교 부유층 엄마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욕망의 반전 드라마
“운명의 문이 화려하게 열릴 때, 당신은 아이를 데리고 온몸을 던져 신분 상승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가?”
“행복해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순간, 행복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어른들의 허영심으로 얼룩진 싸움, 아이들이 무고한 희생 아이를 부유층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과연 신분 상승의 지름길인가? 운명의 문이 화려하게 열릴 때, ‘청출어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은 아이를 데리고 온 몸을 던져 신분 상승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가?
천윈셴은 최선을 다해 신분 상승 게임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원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어 타이베이 중심가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상류사회의 럭셔리한 삶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댁의 재력이 결혼하자마자 일순간에 무너져버리면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 그녀는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 양페이천에게 제일 좋은 모든 것을 주고 싶지만 그러나 경제적인 사정으로 이는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날이 되자 천윈셴과 아들 페이천의 운명이 화려하게 탈바꿈한다. 남편 회사 사장 테드는 아들 크리스의 생일 파티 날,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아들이 페이천과는 잘 어울리는 걸 보고 흡족해한다. 테드와 부인 량자치는 페이천과 크리스가 일명 귀족학교인 ‘쑹런 초등학교’에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페이천의 학비를 내주기로 한다. 천윈셴은 상류 사회로 가는 티켓을 이토록 쉽게 손에 쥘 수 있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윈셴는 량자치와 점점 친해지면서 애프터눈 티, 명품 백, 미슐랭 셰프 초청 요리 강습 등 상위 0.1퍼센트 여자들의 럭셔리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들 페이천의 성적까지 좋다보니 많은 이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아들 성적이 더 오르면서 천윈셴과 페이천은 나란히 손을 잡고 피라미드 꼭대기로 차츰 올라간다. 그러나 배후에 가려져 있던 모든 것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쯤 천윈셴은 영혼을 팔아야 정도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온 가족이 이 소용돌이에 급속히 휘말리는데…… 상류층 게임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도 고통이지만 사실 더 큰 고통은 게임에 참여하고 나서야 발을 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데뷔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의 후속편 격이자, 아이가 상류층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욕망을 한층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부모가 될 준비를 하면서, 또는 이미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에게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을 하게 될 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분량이 그다지 길지 않고 담담한 필체로 서술된 책이지만,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도 순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결코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 주인공의 여러 가지 심리를 담백하게 서술하는 데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가난한 친정집으로 인한 자괴감, 결혼 생활을 하며 쌓인 시댁에 대한 불신 등 이런 상태에서 주인공은 예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위기 속으로 점점 휘말려 들어간다. 상류 사회의 각축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이와의 유대감을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또한 미스터리한 요소가 극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왜 남편 회사 사장 부인이 주인공에게 접근하여 주인공 아이의 사립 초등학교 학비까지 대줄까, 남편 회사 사장 부인이 아들의 성적과 주인공 아들의 성적을 바꾸자는 제의에 주인공은 과연 응할 것인가, 남편 회사 사장 아들의 잘못을 주인공 아들이 뒤집어쓰게 된 누명을 벗어나는 계기가 된 익명의 문자 메시지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다소 일상적인 요소들로 이뤄져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독자가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미스터리하게 풀어나감으로써 작품의 주제의식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부유층 사립 초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들을 중심으로 타이완 상류층의 삶을 흥미롭게 서술함과 동시에 누구나 경험했던 학창 시절의 치열한 입시 교육 제도를 섬뜩할 만큼 적나라하게 묘사해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젊은이로 산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의 불황에 빠져들었고 젊은 세대들을 걱정하는 ‘젊은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결과 20대의 75%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라고 응답해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부조리한 사회, 워킹푸어, 젊은이들에게 불리한 산업구조까지 이러한 일본의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째서 20대의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행복한 젊은이들과 대면한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이 사토리(깨달음) 세대 즉 21세기 젊은이들의 현주소 보여준다. ‘젊은이란 무엇인지’ 태평양전쟁 시기를 포함해 젊은이에 대한 담론을 살피고 ‘젊은이’란 일종의 환상이 아닐지 의문을 갖는다. 또한 ‘물건도 사지 않고, 해외여행도 다니지 않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는 초식 생활을 하며 내향적’이란 젊은이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사실일지 현장 연구에서 얻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일본’과 ‘젊은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다’는 점을 ‘세대 간 격차’와 ‘노동 문제’를 통해 고찰하여 미래의 ‘젊은이들’ 행보를 전망한다.
저자는 사토리 세대가 발견한 행복한 삶의 방식을 의지박약한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토록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업보라고 말한다. 그동안의 기성세대은 격차사회, 비상식적인 고용 구조 등의 사회 정책이 이 사회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열세인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겠는가? 결국 젊은이들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현실에 ‘안주’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현혹되기 보단 하루 일상에 만족하며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 이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혁명’이자 최대한의 ‘행복’인 것이다.
“문학이라는 연못에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돌을 던지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문학이 그리는 빈곤한 세계 남류문학, 관습과 권위를 깨고 거울 앞에 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시마 유키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시마오 도시오… 일본 문학을 대표해온 남성 작가들을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거울 앞에 세운다면 어떤 모습이 비칠까. 일본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젠더 연구의 개척자 우에노 지즈코와 여성의 주체성을 탐구한 소설가 도미오카 다에코, 가부장제와 여성 억압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비판한 심리학자 오구라 지카코가 근대문학사의 쟁쟁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겁 없이 메스를 들이대고, 이를 ‘남류문학론’이라 이름 붙였다.
세 여자는 남성 중심적인 텍스트로 대문호 자리를 차지한 ‘남류작가’는 물론이고 이들을 무비판적으로 떠받드는 ‘남류평론가’, 다른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문단까지 가차 없이 비판한다. ‘페미니즘’이나 ‘여성혐오’라는 말조차 낯설던 일본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남류문학론》이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출간된다. 아밀, 이서영, 백설희, 밀사 등 여성 작가 및 활동가가 이 책을 먼저 읽고 추천했다.
전자책
인터넷 친구를 만나러 간 소녀들이 실종됐다 타이완판 ‘N번방’을 고발하는 우샤오러 신작
타이완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 우샤오러의 신작 장편소설 《죽음의 로그인》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의 자랑에서 가족의 수치로 굴러떨어진 ‘천신한’과, 가정과 학교에서 내몰려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루이안’은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게임에서 우정을 나눠온 유일한 친구다. 어느 날 죽음의 안개가 루이안을 덮치고, 천신한은 루이안을 구하기 위해 게임에서 단서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이들이 온기를 찾아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듯 게임과 인터넷으로 모여든다. 1인분의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의 말에 유일하게 귀 기울여주는 곳. 그곳에는 애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소녀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인터넷 늑대’도 있다. 인터넷에서 아이들은 죽거나 구원받는다. 마치 현실에서 그러한 것처럼.
세계의 고통을 제 삶으로 연결해낸 공모자-저항자들
“이 세계 다수는 사실상 연루자다”
나에게 인류학적 세계 읽기란 단단한 이해를 거쳐 책임 있는 비판을 길어내는 과정이었다. 이해가 모든 앎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되었고, 비판이 손쉽게 조준할 과녁만 찾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이해가 홀연한 불가지론에 닻을 내리면서 불의에 눈감게 되는 사태도 저어됐고, 비판이 제 수사적 고향을 판단의 유일한 준거로 삼는 것도 우려됐다.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믿음, 가치, 윤리, 삶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길 바랐고, 이러한 비판이 무수한 세계의 마주침을 이끌어 삶의 이해를 확장하길 원했다. 이 과정은 때로 자기수양에 가까워서 ‘더’라는 어중간한 단어를 붙들 수밖에 없다. 더 단단한 이해를 거쳐 더 책임 있는 비판을 시도하기. 그리하여 진리를 포획한 권위로부터 이해와 비판을 해방시키기. _「서문」
전자책
경력 30년 작가가 말하는 작가 되기의 과정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글쓰기의 원칙들
시장에서의 옷 장사, 사업가로의 변신과 좌절, 모든 걸 내려놓고 글쓰기에만 투신한 삶의 드라마 속에서 글쓰기 원칙과 작가정신이 단련되는 과정을 보여주다
이 책은 『악녀서』로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30년간 타이완 소설의 중심부에서 활동해온 중견 작가 천쉐의 글쓰기 특강이자 작가 되기 수업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될 만큼 작품에 생을 건 저자는 쓰는 자의 존엄과 생존의 기술을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이 책의 쓰임새를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글쓰기가 내 생명의 핵심이라 여기지만 완성은 잘 못 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다. 둘째, 생업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이들에게 둘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다. 셋째, 내가 쓰려는 작품과 외부 일(청탁 원고, 강연, 심사)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전업작가들을 위한 조언이다. 글을 쓸 때에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그 단계를 건너온 선배로서 조목조목 짚어 해결해준다. 천쉐는 스무 권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수많은 상을 받았고, 편집자 출신 애인과 결혼한 퀴어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글을 쓸 때는 쓰는 것 역시 ‘노동’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품이 없으면 작가라는 타이틀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을 출간해본 사람이라도 그다음 작품은 늘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작가는 언제나 백지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백지를 대면하는 두려움을 뚫고 계속 쓰는 게 중요한데, 이 부분의 노하우를 심도 있게 제시한다.
전자책
Buruma, Ian옥탑방
제2차 세계대전, 권력을 도운 부역자들의 생을 추적! 이 책은 역사가 가진 힘과 신빙성에 대한 검증이다
하인리히 힘러에게 없어서는 안 됐던 개인 마사지사 케르스텐 중국에서 일본 비밀경찰을 위해 스파이가 된 만주족 공주 요시코 동료 유대인들을 독일 비밀경찰에 팔아넘긴 네덜란드의 하시드 유대인 바인레프
선악의 비중을 따져보고 도덕의 질량을 측정할 것
여기 범상치 않은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체격이 좋은 데다 늘 사는 게 즐거운 마사지사 펠릭스 케르스텐. 자그마한 체구에 남장을 하고 다닌 청나라 공주 아이신줴뤄 셴위(가와시마 요시코). 절멸수용소로 갈 유대인들에게 목숨 값으로 돈을 뜯어낸 유대인 바인레프.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남다르게 관통한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일종의 전기다. 세 사람은 독일어로 ‘호흐슈타플러Hochstapler’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사기꾼, 허풍쟁이, 협잡꾼쯤으로 번역되는 호흐슈타플러는 부역자나 저항자에 딱 들어맞지 않고 강한 도덕적 질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모순투성이 삶을 산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역사를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더욱 도덕의 질량을 세밀히 측정할 수 있고, 사람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선악의 비중을 각각 따져보게 되며, 역사에서 사실만큼 허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이 셋을 선택했을까? 전쟁 시기에 일어나는 부역과 저항의 행위들은 선악이라는 도덕적 서사에 딱 부합하지 않는다. 악한 일이 선한 의도로 행해질 수 있고, 악한 사람이 간혹 선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케르스텐은 유대인 살해 계획을 세운 힘러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지만, 훗날 유대인 구출을 돕는 일도 했다. 셋 중 누구도 완전히 타락한 존재는 아니었고, 이런 특징은 오늘날 공공 영역에서 활약하는 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성인보다는 죄인으로 상상하는 게 더 쉽지 않냐며, 이 세 명에 대입해봄으로써 부역의 문제를 반추해보자고 말한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삶의 복잡성을, 윤리의 다면성을 최대한 넓게 펼쳐서 보여준다. 거기엔 변곡점들이 있다. 도덕적 인물이 되거나 혹은 체제에 순응하거나.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독일과 네덜란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 사람의 행로를 동시간대로 나란히 펼치는 식이다. 부역자, 협잡꾼, 스파이, 증언자 이 모두가 혼합된 인물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역사를 꽤나 흔들었다. 독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짜 뉴스나 증언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관과 사실 분별 능력을 발휘해 믿을 만한 증언을 가려내기, 절박함에서 나온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인간적인 이해심은 갖되 윤리적 느슨함으로 일관하지 않기 등이다.
전자책
“슬픔의 강을 자비의 강으로 바꾸는 놀라운 서사”
단편소설의 대가 츠쯔젠 30년간 쓴 100편의 단편에서 열여섯 편의 정수만 담다
얼굴과 대기와 땅에 시간을 차곡차곡 쌓다
츠쯔젠은 단편소설의 대가다. 등단 후 30년간 1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중 열여섯 편의 정수를 작가가 직접 골라 『가장 짧은 낮』으로 펴냈다. 그의 작품들은 우선 색채 감각이 두드러진다. 그런 감각이 작가가 자란 중국 북방의 자연 풍경과 겹쳐지며 등장인물들의 심상心象을 드러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간을 얼굴에 차곡차곡 축적해와 “청포도 두 알 같은 눈두덩이” “오래된 낙엽처럼 얼굴 위를 기어다니는 검버섯” “뇌우가 닥치기 전의 하늘을 무겁게 채우고 있는 먹구름 같은 검버섯”으로 묘사된다. 사람뿐 아니라 대기와 땅도 시간에 사로잡혀 나이를 먹어왔다. “조금씩 노쇠해가는 하늘” “누런 가을처럼 늙어 있는 날들” “밤새 타고 남은 회색 재인 달”……. 츠쯔젠의 소설은 늘 계절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펼쳐지는 일상에서 사건을 포착한다. 「해빙」은 작은 봄에서 큰 봄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작은 봄에 얼음이 녹으면 샤오야오링 마을 사람들은 진흙길에 신발이 붙들려 나동그라지고 자빠진다. 관절이 부실한 노인들은 넘어지는 순간 울고 싶은 심정이 되고, 가사를 도맡고 있는 주부들은 쌓이는 빨랫감에 신경이 곤두선다. 작은 봄의 어느 날 초등학교 교장인 쑤저광에게 긴급 문건이 내려왔다. 문화대혁명 때 하방된 적이 있던 그는 혹시 또 험지로 보내질까봐 불안에 떤다. 진흙 묻은 옷 빨래를 하다가 돌연 남편과 떨어질까봐 초조해진 아내 리쑤산, 그러면서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줄지 모를 이웃 남자 왕퉁량을 향해 품는 욕망, 마침내 남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모든 욕망이 무위로 돌아가 짜증만 덕지덕지 달라붙게 된 평온한 일상. 시간이 흘러 이내 큰 봄이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는 얼음이 녹을 때 사람들의 욕망도 함께 꿈틀거려, 그들의 마음에 달라붙는 계절의 모습은 더없이 감각적이다.
전자책
국내 첫 소개되는 신장위구르의 자연문학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달나라의 감각’ 루쉰문학상과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한 신장 작가 류량청의 데뷔작이자 대중과 평단을 놀라게 한 걸작
그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서른 중반인 1998년 『한 사람의 마을一個人的村莊』이라는 첫 산문집을 내고 수십만 부가 팔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서유기』에서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건너갔던 화염산이 있는 신장위구르 톈산 아래 마을의 시골 청년은 이 성공으로 시인이 되었고, 이어 소설가가 되었으며 걸작 장편들을 쏟아내며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2023년엔 『본파』라는 소설로 마오둔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류량청劉亮程이다. 이 벽촌의 한 작가가 쏟아낸 문학적 에너지와 메시지가 무엇이었기에 이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 그 답은 그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인 『한 사람의 마을』에 전부 드러나 있다. 빽빽한 글자로 55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산문으로 쓰였지만 사실 시에 가까우며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그 안에 녹아 있는 근원적인 자연이 그 모습을 드러낸 세계다.
전자책
“아직 어렸던 우리를 향해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던 그 햇빛” 얼어붙은 줄 알았던 시간 속으로 날아든 작은 기적 부드러운 흰빛으로 가득 찬 백수린의 새로운 계절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 백수린의 네번째 소설집
아무리 살아봐도, 거듭 생각해봐도 그 답을 알 수 없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는 듯. 그와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내겐 없다. ─최진영(소설가)
손안에서 조용히 흘러내리는 모래가 나를 위로한다. 우주가 내 마음을 다독인다. ─이정향(영화감독)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 우아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고유의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백수린의 네번째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초 김윤식 문학평론가로부터 “물건 되겠다”는 평을 들은 바 있는 백수린은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안정적인 호흡으로 “가장 내밀한 내면”을 담아 “가장 보편적인 사건을 만”(김성중 소설가, 제10회 젊은작가상 심사평)들어왔다. 이러한 독자적인 스타일은 문단과 독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고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등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아주 환한 날들』 등 그의 소설 속에는 ‘빛’이 함께해왔다.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 당시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그 희미한 희망의 전조를 기억하고 다시 쓰”(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작가라는 평은 왜 그가 ‘빛의 소설가’라 불리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번 소설집 역시 작가 특유의 빛을 가득 품고 있지만, 작품마다 조금은 다른 색채를 펼쳐나간다. 한때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영영 떠나보낸 사람과의 시간, 그리하여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없는 나날 속에 놓인 화자들에게 한 줌의 빛이 닿는 순간을 포착한 일곱 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p. 266)는 ‘작가의 말’처럼 상실과 죽음 앞에서 꽁꽁 얼어붙어 부서질 듯한 마음들에게 온기가 깃든 “봄밤의 모든 것”을 건넨다.
“그 무엇도 그들이 공유했던 서로의 온기와 감촉, 그 봄의 밀도와 향기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오해와 이해 사이에 쏟아진 한 움큼의 선명한 온기 소설집을 열면 가장 처음 마주치는 작품이 「아주 환한 날들」이다. 어두운 날의 반어적 표현 같기도 하고 무방비한 빛을 머금은 희망을 예고하기도 하는 듯한 이 소설은 일흔이 넘은 여성 옥미에게 느지막이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을 펼쳐 보인다. 딸과는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인, 외롭게 홀로 지내는 그녀에게 사위가 문득 앵무새를 들고 찾아온다.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들였지만 막상 아이들이 무서워해서 키울 준비가 될 때까지만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낯선 앵무새와의 동거를 시작한 옥미가 새를 돌보면서 딸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느끼는, “새가 닿았던 자리만큼의 크기로 따스”(p. 36)한 감정을 섬세하게 구현해낸다. “딸은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p. 109)라는 첫 문장이 암시하듯 「흰 눈과 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거의 8년 만에 조우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딸이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빠인 ‘그’는 여전히 못마땅하다. 딸 역시 자신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스위스로 부모를 초대했으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한다. 오해로 인해 서로의 자리를 비워둔 채 지나온 세월로 되돌아가듯 설원 위에서도 그들은 다툴 뿐이다. 그러다 그들의 감정이 눈 녹듯 풀리는데, 절정과 결말의 틈에 놓인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생명력”(p. 141)을 목도하면서부터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눈 덮인 그곳엔 관계의 균열을 무화시키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있다. 「빛이 다가올 때」와 「봄밤의 우리」는 우정과 사랑이 깃든 소설들이다. 또한 그때는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기억의 편린에서 찾아내 비로소 반짝이는 그것을 움켜쥐는 길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다고 예단했던 일들이 결국 나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이 여정은 “발을 담그기만 해도 휩쓸릴 급류인지, 서서히 젖어갈 빗줄기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채로”(p. 88) 기꺼이 백수린식 사랑 속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잃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안에 숨어 있음을, 그러므로 모든 오해를 거두고 언제든 다시 환한 빛과 온기를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담은 봄밤이 짙은 향기를 머금을 꽃잎이 되어 쏟아진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존재했던 삶의 부재가 그려놓은 마음속 드라마
백수린은 허무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사소한 계기로 말미암아 생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삶의 행로를 방해하는 불순물로 치부됐던 불편한 기억, 복잡한 감정, 경직된 갈등의 실타래가 풀릴 때, 백수린은 그 실들로 다시 욕망하는 법, 다시 슬퍼하는 법, 요컨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기워 인생 뒷면에 찬란한 삶을 수놓는다. [……] 이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어진 빛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빛이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빛을 만드는 백수린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다. 암흑 같은 마음을 살리는 소중한 백야다. ─박혜진, 해설 「잘 적응된 허무」에서(pp. 263~64)
『봄밤의 모든 것』의 화자들은 저마다 커다란 상실을 하나씩 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존재인 딸과의 갈등, 죽음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과 이웃, 각자의 삶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 사랑했던 애인과의 이별. 소설집 후반부에는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 편을 연작소설의 형태로 재구성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상실감’을 더욱 깊이 있게 그려냈다. 「호우豪雨」의 소희는 도서관에 가는 것과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전업주부다. 한때 작가를 꿈꿨을 만큼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상상 속 이야기로 빠져들기를 즐기는 그에게 죽음은 두렵지만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소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밖 허름한 주택가의 파란색 대문 집에 놓여 있던 모든 게 사라진 것을 본 후 노인의 죽음을 상상하며 밤새 뒤척이는 까닭은,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고 상실은 늘 곁에 머무는 그림자와 같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음에 놓인 「눈이 내리네」는 소희의 대학 친구 다혜의 이십대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한다. 엄마의 먼 친척인 이모할머니의 하숙집에 머물며 열정 가득한 대학 생활을 시작한 다혜는 학교에서 연애는 물론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집에 돌아오면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아침잠 없는 칠십대 이모할머니와 생활했는데, 일찍 일찍 다니라는 이모할머니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다혜에게 사랑의 훼방꾼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 “젊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자각하게 되는 날”(p. 201) 다혜는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生)의 중반기에 들어서며 더는 죽음을 쉽게 여길 수 없어진 마음들이 작가가 그려낸 부재와 상실의 설계도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앞선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인 여행지 리조트를 배경으로 각자의 과거와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가 촘촘하게 구성된 인상적인 작품이다. 주미, 소희, 다혜 그리고 화자인 ‘나’는 이제 사십대 후반이 되었다. 그들의 대학 동아리 시절 이야기는 그들을 잠시 청춘의 그날로 되돌려놓기도 하지만 청춘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실감하게도 한다. 가족 누군가가 세상에 없거나 아이가 곧 대학생이 되는 그들에게 주미는 11년 전 독일에서 겪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 끝에서 그들은 죽음으로 점점 다가가는 삶의 허무와 공백의 자리에 “상처 하나 없이, 기적처럼”(p. 245) 날아오를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는다. 더 올곧고 선명하며 “강직한 빛”(해설, p. 263)으로 찾아온 백수린의 소설들은 상실과 긴 허무의 밤을 걷는 모두에게 새봄을 선사할 것이다.
비르지니 데팡트옥탑방
르노도상 수상, 부커상 파이널리스트, 공쿠르상 선정위원…… 유수의 문학상 수상자를 넘어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사랑받은 비르지니 데팡트. 여성이자 비주류로 살아오며 겪은 폭력과 차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데팡트가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한국 독자를 찾는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페미니즘, 미투 운동, 나이 듦, 중독, 우울증, 코로나 등 21세기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한 장편소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세 주인공, 오십대 여성 배우 레베카, 사십대 남성 작가 오스카, 이십대 여성 조에를 통해 지금 가장 뜨거운 ‘혐오’의 문제를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프랑스 문단에 다시 노벨상의 기회가 온다면 그 영광은 데팡트의 몫이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프랑스 4대 문학상인 메디시스상 파이널리스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기시 유스케옥탑방
“다시 울려퍼지는 모리타트의 선율” 미공개 단편과 함께 돌아온 『악의 교전』
일본 모던 호러의 대표 작가,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 현대문학에서 재출간 된다. 『악의 교전』은 우리가 ‘선하고 안전한’ 공간이라 인식하는 학교가 “정말 그러한 곳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시작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학교는 이미 도덕적 올바름은 잃은 지 오래. 배움의 전당이라는 허울만 남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 폭력, 절도, 마약, 성추행 등. 학생에서 학생에게로, 그리고 교사에서 학생에게로 이어지는 악의 연쇄 속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절대 악(惡)’이 등장한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학교를 조종하는 영어교사 하스미 세이지. 그리고 하스미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다시 연쇄살인마로 각성하게 되는데…….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는 『악의 교전』에서는 본편의 전사(前史)를 다룬 「비밀」과 후일담을 다룬 「악·의·교·전」 두 편의 미공개 단편을 수록,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한층 깊이 있는 모습으로 학교라는 성선설의 공간을 다시 찾아온 ‘악의 향연’을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한다.
기시 유스케옥탑방
“다시 울려퍼지는 모리타트의 선율” 미공개 단편과 함께 돌아온 『악의 교전』
일본 모던 호러의 대표 작가,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 현대문학에서 재출간 된다. 『악의 교전』은 우리가 ‘선하고 안전한’ 공간이라 인식하는 학교가 “정말 그러한 곳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시작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학교는 이미 도덕적 올바름은 잃은 지 오래. 배움의 전당이라는 허울만 남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 폭력, 절도, 마약, 성추행 등. 학생에서 학생에게로, 그리고 교사에서 학생에게로 이어지는 악의 연쇄 속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절대 악(惡)’이 등장한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학교를 조종하는 영어교사 하스미 세이지. 그리고 하스미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다시 연쇄살인마로 각성하게 되는데…….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는 『악의 교전』에서는 본편의 전사(前史)를 다룬 「비밀」과 후일담을 다룬 「악·의·교·전」 두 편의 미공개 단편을 수록,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한층 깊이 있는 모습으로 학교라는 성선설의 공간을 다시 찾아온 ‘악의 향연’을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한다.
투명한 낙관으로 빛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 시대가 그리는 사랑의 미래
박선우의 소설은 섬세한 망설임과 서글픈 다정함을 부드럽게 엮어, 세계의 비극과 부조리를 투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나는 투명하면서도 어딘가 주저하고 있는 듯한 박선우의 말하기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 _황인찬(시인)
무엇보다도 이 엉망인 세상에 대한 존중을 버리지 않는 점이 대단하다고,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_김지연(소설가)
햇빛 속에서 밀도 높은 빛의 방울들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반사된 무지개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한없이 흔들리며, 나는 더욱 명백하게 애틋한 마음으로, 박선우가 보여주는 ‘사랑의 미래’를 같이 꿈꾼다. _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
전자책
심사위원의 열띤 지지를 이끌어낸 제3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지난해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제3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작을 선보인다. 1994년 ‘우리의 복잡한 현실을 끌어안고 그 속의 깊은 이야기들을 형상화하는 장편소설’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된 문학동네소설상이 제30회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에 수상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바로 박선우 작가의 『어둠 뚫기』이다. 『어둠 뚫기』는 심사 과정 내내 뜨거운 논의의 대상이었다. 심사 초반부터 “본심에서 내가 지지했던 단 한 편의 작품”(소설가 정한아)이라는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진 끝에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바로 글쓰기의 능력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어울리는 작품”(소설가 한은형)이라는 심사위원들의 기꺼운 동의와 함께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당선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이 소설의 작가가 2018년 『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선우임을 확인한 후 심사위원들은 다시 한번 열띤 축하를 보냈다. 박선우 작가는 그간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자음과모음, 2020)와 『햇빛 기다리기』(문학동네, 2022)를 통해 다채로운 사랑의 형태를 단정한 문장으로 형상화하며 차근히 문학세계를 다져왔다. 『어둠 뚫기』는 『햇빛 기다리기』에 수록된 단편 「겨울의 끝」을 확장한 장편소설이다. 「겨울의 끝」은 삼십대 남성 인물이 삶에서 겪는 여러 부침과 더불어 엄마와의 끈끈한 애증 관계 등을 은근한 온도의 문장들로 펼쳐내는 소설이다. 박선우는 여기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에피소드들을 더하고, 우리 삶의 본질적인 질문, 즉 괴롭고 힘든 삶의 돌부리들에 끝없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우리는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더욱 심화시킨 끝에 『어둠 뚫기』를 완성해냈다.
전자책
『친밀한 이방인』(드라마 〈안나〉 원작소설) 이후 8년 만의 신작 장편! 모두가 기다려온 스토리텔러, 정한아의 귀환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학교 4학년생 신분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린 지 20년, 정한아는 어느덧 한국문학의 탄탄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소설로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성취를 꾸준한 속도로 이뤄왔다.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2009), 『애니』(2015), 『술과 바닐라』(2021)를 통해 인생이라는 오묘한 심연을 단편 속에 압축적으로 길어냈고, 장편소설 『달의 바다』(2007), 『리틀 시카고』(2012), 『친밀한 이방인』(2017)으로 한 편의 긴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할 구성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친밀한 이방인』이 수지ㆍ정은채 주연의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로 드라마화되며 차기작에 이목이 쏠린 지금, 정한아가 8년 만의 신작 장편 『3월의 마치』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과거의 나와 직접 대면하는 것. 이를 위해 정한아는 성공한 노년의 여성 배우 ‘이마치’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무수한 파도를 넘으며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그녀는 세월이 남긴 깊고 묵직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마치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마지막 파도로 들이닥치고, 그녀는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한 가상현실을 누비며 유실된 기억을 되찾고자 한다. 과연 이마치는 수많은 예전의 자신과 재회하며 삶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처럼 밀려오는 상실과 망각의 물결을 막아내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간직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피엔딩일까. 『3월의 마치』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가상의 무대 위로 우리를 초대한 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갖가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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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정체성과 성 정체성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게이로서,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을 떠났던 한 사회학자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푸코 평전 및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을 펴내고,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랭스로 되돌아가다』(2009)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에리봉은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계급적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동성애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했던 그는, 오랫동안 부정하고 멀어지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이라는 과거의 인장이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러한 부정의 과정이 현재의 그를 빚어낸 과정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사회적 지배질서와 정상성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 아래 개인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훌륭하게 포착해내고, 교육의 재생산 효과와 프랑스 지성계의 뿌리 깊은 계급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식 장을 넘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영미권, 동유럽과 북유럽, 남미, 아시아 국가들에서 잇따라 번역되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1년 만에 8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러한 반향은 출판계를 넘어 예술계에까지 이르렀는데, 2014년에는 프랑스 연출가 로랑 아타가 이 책을 각색해 아비뇽 연극제에 올렸고, 2017년에는 ‘사회학적 연극’으로 유명한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공연 작품으로 만든 후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현재까지도 상연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에리봉은 2008년 예일대학 LGBT 연구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브러드너 상’(주디스 버틀러, 이브 세즈윅, 조지 천시 등이 이 상을 받았다)을, 2019년 영미권 국제학회인 노동계급연구회가 수여하는 제이크 라이언 저술상을 받았다.
한편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분석의 재료로 삼아 일종의 ‘사회 분석’을 시도하는 이 책의 글쓰기 형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테뉴에서 사회학자 부르디외, 소설가 아니 에르노에 이르기까지 ‘자기에 대한 쓰기’와 관련해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에리봉의 이 책은 자기기술지/오토픽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으로 꼽히게 되었다. 또한 정상성 규범의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탐구하며 스스로를 재발명해나가는 소수자의 글쓰기 사례로서도 숙고할 만한 모범을 제시한다.
“나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권김현영 작가의 첫 소설,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
남들보다 높은 체온과 정전기를 일으키는 독특한 체질의 ‘씨씨’. 사람이 아니거나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거나 심지어 사물이나 동물들조차 틈만 나면 씨씨에게 몸을 붙인다. 그런 씨씨 앞에 나타난 ‘D’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며 씨씨를 안심시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D의 말과 행동에서 씨씨는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씨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 ‘권’은 씨씨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 권은 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애쓰는지 답답해하며, 차라리 여자를 만나라고 권한다. 씨씨는 결국 여성의 몸과 이름에 가해지는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기. 실망하지 않기.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않기. 나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지 않기.” 권태와 우울로 잠기는 날이 오더라도, 다시 한번 뛰어오를 수 있다고 믿어보기
《나주에 대하여》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고, 《동경》 《공룡의 이동 경로》 등을 펴내며 마음의 모양을 그려내는 다정한 언어로 사랑받아온 김화진 작가의 《개구리가 되고 싶어》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잠깐씩 연기가 되어 미래의 일을 내다보고 돌아오는 수경, 1년 동안 가은과 기쁨과 슬픔을 나눴지만 어느 날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멀어져버린 완, 완이 떠나고 더 이상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기로 한 가은.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김화진 작가는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하고 연약한 유대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그처럼 느슨한 유대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야망’의 끈을 붙들며 관계의 힘을 긍정한다.
간절해서 탐욕스럽고, 절실한 만큼 지나친 소망 아래 사라져버린 이들을 반복해서 불러내고 기억하는 이야기
사회와 불화하는 여성들의 내면과 현실을 촘촘하게 재현하고 그 너머를 상상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번역가 이주혜의 신작 소설 《중국 앵무새가 있는 방》이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나’의 동갑내기 사촌 ‘연수’가 사라졌다. 이모의 소망과 소원을 하나씩 이뤄주며 자란 착한 딸,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딸 연수와 그런 연수를 거울삼아 질투와 동경 사이를 오가던 ‘나’. 어느 날, 연수는 아침 일찍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 물 위를 걸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온갖 계절이 혼재하고, 돌탑이 사람의 욕심처럼 끝없이 늘어선 한탄강. 연수는 각자의 소망들로 아우성치는 돌탑을 향해 “무겁고 징그러워”라며 못 박듯 내뱉고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고야 만다.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 아무리 애달프고 아픈들 사라짐 자체를 뛰어넘지 못”하지만, ‘나’는 다만 “비로소 부재를 감각하는 출발점”으로서 연수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쓰기 시작한다. 욕심과 구분할 수 없게 된 소망과 소원의 모서리를 가다듬으며 ‘한탄강 물윗길’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때, 우리는 몇 번이고 연수를 만나 손을 잡을 수 있다.
“참말이다. 그런데 나한테만 참말이다.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다.” 미신과 주술적 사고, 신비 현상이 난무하는 사실주의 소설
한국 SF의 기원과도 같은 작품들로 수많은 신진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 국내 SF 작가 최초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김보영 작가의 《헤픈 것이다》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의 무대는 진부 이씨 가족이 한데 모인 장례식장이다.
주인공 ‘주은’이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이비 종교부터 풍수지리까지, 오랜만에 모인 진부 이씨 가족들은 온갖 ‘기이’를 늘어놓고, 자연스럽게 섞여든 기이들은 서로 자신이 진짜라며 자리다툼을 한다. 지쳐서 잠에 빠진 주은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적과 신비’를 넘나드는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더욱 정교하고 섬뜩해진 ‘이상한 집 시리즈’ 2탄 출간
11채의 이상한 집, 11개의 기묘한 평면도 모든 것이 연결되는 순간 끔찍한 비밀이 드러난다!
평면도만으로 독자들을 충격에 빠트린 《이상한 집》. 그 두 번째 이야기 《이상한 집 2 - 11개의 평면도》가 리드비에서 출간된다. ‘이상한 집 시리즈’는 인기 호러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우케쓰의 대표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만든 유튜브 영상 ‘이상한 집’에서 시작된 소설 《이상한 집》(2021)은 베스트셀러는 물론 영화, 코믹스로도 제작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23년 출간된 후속작 《이상한 집 2 - 11개의 평면도》는 2024년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문고본으로 발매된 《이상한 집》 또한 그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상한 집 시리즈’는 누적 255만 부를 돌파했으며, 일본 출판 역사상 최초로 문고와 단행본 두 부문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상한 집 2 - 11개의 평면도》에는 부제처럼 모두 11채의 이상한 집이 등장한다. 다양한 평면도와 등장인물, 한층 더 커진 스케일 그리고 더 섬뜩한 공포와 미스터리까지. 우케쓰는 첫 페이지에서 독자들에게 “꼭 추리하면서 읽어 보길 바란다.”라고 도전장을 내민다.
아득한 우주에서도, 무너진 세계에서도, 저 멀리 반짝이는 ‘당신’을 발견하는 정소연의 SF
“한 사람의 마음속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알게 해주는 작품” 구병모(소설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정소연의 소설집 《미정의 상자》가 출간되었다. 지난해 먼저 선보인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나란히 놓이며 《옆집의 영희 씨》 복간 프로젝트가 완료된 것이다. 10년 전 “소박하지만 위대한 삶의 단면들”을 담아내며 “제법 묵직한 성취”(소설가 배명훈)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던 이 책은 아쉽게도 장기간 절판된 바 있다. 독자들의 꾸준한 복간 요청이 이어지던 이 책이 작가의 신작 단편들과 함께 새 짜임, 새 장정을 갖추어 래빗홀에서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비교적 초기작이 다수였던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달리 이 책에서는 구간 수록작 5편에 신작 9편이 더해져 총 14편이 묶였다. 첫 챕터인 ‘카두케우스 이야기’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배경인 연작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 거리를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비상점’을 통해 먼 항성계 사이를 건너갈 수 있지만, ‘도약’이라 불리는 이 초광속 비행 기술을 ‘카두케우스’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공유한다. 특히 〈깃발〉, 〈무심〉, 〈돌먼지〉, 〈비 온 뒤〉, 〈집〉은 기존에 책으로 묶인 적 없는 작품들이라 카두케우스 시대에 어떤 일들이 더 있었는지 궁금해했던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챕터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은 재난 상황을 테마로 한 퀴어소설이 다수 묶였다. 표제작 〈미정의 상자〉와 〈현숙, 지은, 두부〉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삶의 다른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상자가 등장하여, 극악의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고 싶고, 그래서 최선을 찾고자 시간마저 되돌리고 싶은 절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환상적인 존재나 고도의 기술 환경이 주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우리의 일상 속 익숙하게 미답의 자리에 남아온 문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정소연의 특장은 이 책에서도 빛난다. 더하여 여러 작품이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이별하는 이들을 그리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인물들의 의지로 이야기는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정소연의 소설은 조금 나은 미래를 향한 문틈을 살짝 벌리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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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 - 끝내 살아남을 사랑의 기록
어느 토요일, 지구가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지만 한 사람은 무사하다. 종말의 비망록인 듯한 이 소설은 ‘기적의 비화’에 더 가깝다. 개개인의 사랑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더라도, 사랑이 모여 이루어낸 기적은 어떤 식으로든 기록되기 마련임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에는 달의 뒷면처럼 영영 모습을 감출 뻔했던 ‘궤도 밖 아이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록되었다. 우리는 지구가 반파되는 비극을 목도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무사함에 깊이 안도하게 된다. 그 한 사람은 누군가의 세계였기에. 그러므로 이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놓지 않은 연대의 기록이자 한 세계가 끝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연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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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화려한 삶의 이면에 숨어 있던 작품
19세기 말 파리를 무대로 한 오스카 와일드의 숨겨진 이야기 『텔레니』. 저자 이름 없이 출간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으로, 그의 미학적, 도덕적, 성적 관심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두 남성의 사랑을 생생하고 대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남성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정면에 드러낸 영어권 최초의 게이 에로틱 소설로 손꼽힌다. 당대 최고의 유명 인사였던 오스카 와일드가 익명으로 위선적인 사회의 베일에 가려진 진면모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소수자의 외침이나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오락물을 넘어선,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 자체의 영향력 또한 뛰어넘은 의미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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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죽음과 예술에 관한 고찰’ 한국에서도 40년 넘게 사랑받았던 스테디셀러 기존 번역 누락분을 추가한 국내 최초의 완역판
자살을 다룬 책 중에 국내에서 가장 꾸준한 관심을 얻은 책은 무엇일까. 이 분야의 고전인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책이 바로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다. 이 책은 1982년에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판본이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이후 40년 가까이 판매를 이어 오며 한국 독자들에게 시대를 넘어선 명저로 자리 잡았다. 암실문고에서 새롭게 내놓은 『자살의 연구』는 이 최승자 번역본을 바탕으로 전면 개정했으며, 여기에 기존 판본이 누락했던 내용을 추가 번역한 국내 최초의 정식 완역판이다. 추가한 분량은 원서 기준으로 약 50쪽에 이른다.
잊힌 논문, 잃어버린 인터뷰, 묻힌 증거로 가득한 연구 1300페이지 분량의 녹취록 분석
“아렌트는 지나치게 성급하고 위험했다”
왜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 중요한가
1906년 10월 14일, 한나 아렌트가 태어났다. 그보다 7개월 앞선 3월 19일, 아돌프 아이히만이 세상의 빛을 봤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피해자-가해자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주인공 삼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아이히만 역시 자신을 주인공 삼아 『다른 이들이 말했고, 이제 내가 말할 차례다!』를 썼다.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한 뒤 이 책을 썼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문서고에서 굽은 등을 하고 아이히만이 남긴 자료를 추적하며 읽고 해석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쓴 슈탕네트가 그중 한 명이다. 아이히만이 악필로 쓴 원고를 잇는다면 길이가 총 240킬로미터에 달하는데, 그녀는 이 자료들을 손에 넣는 대로 읽었다. 그러고는 “아렌트가 너무 성급하고 무엇보다 위험”했다고 평가한다. 아렌트 책 출간 이후 50년 만의 반박이다. 이런 평가는 아렌트의 저술 이후 수십 년간 연구가 누적됐고, 자료가 계속 수집됐으며, 통계 데이터가 산출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고쳐 말하자면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의 상징이 아니라, 매우 노련하고 체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법원에 서기 전 아이히만의 생을 쫓는다. 아렌트의 책은 현재적 가치를 여전히 갖는다. 다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광적인 칸트 애호가로서 쓴 상세한 기록물은 물론이고, 급진적 신학자 윌리엄 헐과 종교철학을 두고 논쟁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 또한 법정에서 아이히만이 자신의 최후 진술을 대부분 칸트의 말로 채웠다가 변호사에게 제지당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철학도처럼 보이려 한다는 점은 간파했지만, 이것이 어리석은 허영심과 철학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이 망명지 아르헨티나에서 가졌던 대담의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의 존재는 오랫동안 알려져왔지만, 그 품질이 좋지 않아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슈탕네트는 이 테이프들을 해독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과 함께 정리해 아이히만에 대한 완전한 분석을 제공하려 한다. 850쪽이 넘는 이 책의 전반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이히만의 모습과 전후의 도주생활을 조명한다. 그는 신분증 위조, 여러 개의 가명, 도주 경로에 대한 거짓말 흘리기 작전 등으로 도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름과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고, 유대인 1030만 명이 아니라 600만 명밖에 죽이지 못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을 아낀 그는 도주 기간에 아내와의 사이에서 넷째를 출산하기까지 했다.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언급했듯이 “참으로 적당한 정신적 재능”과 “판단 능력의 부재” 및 “자기표현에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히만을 300시간 동안 심문했던 아브너 레스는 그를 “충분한 지식을 갖추었고, 매우 지적이며 노련하다”고 묘사했다. 아이히만은 모든 텍스트를 자신의 쓸모에 따라 왜곡하는 지적 체계를 가졌지만, 어쨌든 그는 칸트 외에도 니체, 플라톤, 쇼펜하우어를 인용하고 심지어 유대인인 스피노자의 텍스트까지 끌어들여 자기 변론을 하던 사람이었다.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모래그릇』 제2권.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로, 다섯 번에 걸쳐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0년을 배경으로, 신원불명의 시체와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새벽, 전차 조차장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발견된 남자의 시체.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지만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알아낸 것은 피해자가 도호쿠 지역 사투리를 쓴 것 같다는 증언과 ‘가메다’라는 단어뿐이다.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는 미궁에 빠질 것 같은 사건에 끈질기게 매달리며 조사를 계속하지만,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사물을 왜곡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울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이다.”
어둠 속에 고립된 한 여자의 시선으로 세계의 이면을 밝힌 진 리스의 대표작
시대를 앞선 문제 의식과 스타일을 선보인 진 리스의 대표작 『한밤이여, 안녕』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한밤이여, 안녕』은 진 리스가 1939년 발표한 소설로 1958년 BBC 방송에서 극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점, 분열된 자아의 중첩된 목소리,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법 등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진 리스는 가장 주목받는 영국 작가로 떠올랐다.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이자 소설가인 데보라 아이젠버그는 『한밤이여, 안녕』을 두고 “깨진 수정 조각처럼 날카롭고 투명하며 놀랍다.”라고 평했다. 『한밤이여, 안녕』은 193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술에 의지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여성 사샤의 삶을 그린다. 남편과 연인들에게 버림받고 허름한 호텔로 흘러들어온 마흔 살 여인 사샤, 세상의 냉대와 가난에 지친 그녀의 바람은 오직 술에 취해 세상을 떠나는 것뿐이다. 그런 사샤를 부유한 여인으로 착각한 청년 르네가 그녀에게 접근하며 함께 밤을 보내길 청하지만, 남자를 불신하는 사샤는 르네에게 그간 받아온 모욕을 분풀이하려 한다. 소설은 죽음을 향해 가는 한 여자와 삶의 열망에 이끌리는 젊은 남자의 열흘 간의 만남을 그린다. 고요히 침잠하고자 하는 사샤와 상승 욕구로 충만한 르네. 두 사람은 하락과 상승, 닫힘과 열림, 원숙함과 젊음의 대비를 보여주며 소설의 긴장감을 형성한다. 『한밤이여, 안녕』은 사샤의 분열된 자아와 복잡하고 모순된 심리, 그녀가 접하는 일그러진 세계의 이면을 예리하고 탁월하게 그려낸다.
“화가의 삶과 그림을 떼어놓고서는 작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화가의 인생을 통해 들여다보는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 27인의 찬란한 명화들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누적 조회 수 4천만! 화제의 칼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을 책으로 만나다
좋은 음악과 훌륭한 글은 처음 한 소절만으로도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배경지식과 작곡가의 의도를 예습하면 더 좋지만, 그냥 즐겨도 좋다. 하지만 미술은 조금 다르다. 대체 뭘 그린 건지, 어떤 의미가 담긴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예습하지 않은 사람에게 때로 미술관은 난처한 장소가 된다. 작품을 보는 취향은 분명 제각각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그림도 본인의 눈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막연히 잘 모르겠고 어렵다는 이유로 미술을 싫어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자는 미술을 재밌고 알기 쉽게 전해보자는 취지로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됐다. 해당 칼럼은 현재 네이버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포털 누적 조회 수 4천만을 넘어서며 화제의 코너로 자리 잡았으며, 보기 쉽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달라는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연재분을 모아 다듬고 미연재분을 추가해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이란 이름으로 독자 곁에 찾아왔다.
“위대한 화가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려야 한다.” -에두아르 마네
마네의 말처럼 작품에는 당시의 현실, 화가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림의 주재료인 작가의 관점과, 그 관점의 원료인 삶을 알게 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그림을 작가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또한 작가의 삶을 풍부하게 전하기 위해 외국의 미번역 최신 문헌을 최대한 참고했으며, ‘많이 읽고, 조금 판단하고, 있는 그대로 전하려 노력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작가의 인생과 철학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건널 수 있는 다리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다리를 건너면 나도 모르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명화의 뒷이야기를 통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H. G. 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 19세기 멕시코를 무대로 다시 태어나다!
공포, 판타지, 역사, 누아르 등을 누비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장르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가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가 SF 장편 『모로 박사의 딸』로 돌아왔다. 고딕 소설의 전통과 라틴아메리카라는 배경을 결합한 『멕시칸 고딕』으로 영국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이번에는 『우주 전쟁』, 『타임머신』으로 잘 알려진 H. G. 웰스의 또 다른 대표작 『모로 박사의 섬』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동물 생체실험으로 탄생한 기이한 피조물들이 사는 섬을 다루며 과학만능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린 원작의 무대를 멕시코로 옮겨 반식민주의적 메시지를 보다 강화한 동시에, 가부장제의 모순을 깨닫는 젊은 여성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제시하며 여성주의적 색채를 더했다. 한편 작품의 배경으로서 지배 계급과 원주민 사이의 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세기 중반 멕시코의 역사가 생생히 그려진다. 『모로 박사의 딸』은 《뉴욕 타임스》, 《타임》, 《NPR》 등 유수의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휴고 상과 로커스 상 최종 후보작에도 올랐으며, 현재 제임스 완 감독의 제작사 아토믹 몬스터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산하의 UCP에서 판권을 획득하여 드라마로 개발 중이다.
청말 태감들이 직접 겪은 궁중 회고록을 생생하고 현장감있게 만나본다!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이 책은 청대의 태감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태감제도의 유래,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 직무, 녹봉 그리고 그들의 품성과 불운한 일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궁중의 비화와 5000년 동안 이어져온 태감 제도의 최후의 모습까지 기록으로 담고 있다. 중국 최후의 구중궁궐에 가려진 권력의 내밀한 일상과 쇠락하는 시대의 사실적 기록을 환관의 눈으로 촘촘히 조감하고 있다.
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에서는 70대에 접어든 마지막 태감 신슈밍이 직접 겪은 태감의 실상과 은밀한 황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에서는 마더칭 외 14인의 태감이 들려주는 자금성의 생활과 한 많은 삶을 구술한 회고록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에서는 서태후가 상주하던 궁전인 영수궁에서 일했던 태감 겅진시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중국 역사상 최후의 환관들이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것으로 황궁의 화려한 모습과 그 이면의 쇠잔한 풍경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로즈너옥탑방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 2세의 역사와 기억과 트라우마에 관한 걸작 논픽션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잔혹 행위, 그 파멸적 유산을 품어낼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 2세인 유대인계 미국인 작가가 부모 세대의 기억이 망각되는 것이 두려워 독일의 노쇠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부모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아 자기 몸속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괴롭혀왔다는 것을 자각하며 2세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터뷰어가 되어 생존자들의 기억을 파고들어간다. 작가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신의 부모 이야기와 자랄 때의 가정환경이 얼룩처럼 덧칠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 집단적 고통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몸에 새겨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대해서는 프리모 레비나 파울 첼란 등 생존자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 이미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 엘리자베스 로즈너의 책은 희생자 1세의 자식 세대인 2세가 그 기억과 마주하고자 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로즈너는 자신이 이 기억과 고통의 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3세대, 4세대로까지 이어질 문제임을 상기시켜준다. 한편 저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만나는 와중에도, “우리는 가해자를 비판하려는 본능을 되도록 억제해야 한다”면서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듯 가해자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곧 가해자일 수 있고, 또 가해자들 역시 우리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안아야만 우리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고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관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