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rooftoplife · 2023년 12월 22일 가입 · 352권 적독

설산의 사랑 (딩옌 소설)

책 소개

단조롭고 차가운 일상 속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탁 트인 곳으로 데려와 몇 번이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 삶을 스쳐간 수많은 파편을 끄집어내 서늘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장으로 완성시키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딩옌은 위화, 옌롄커 등에게서 “젊은 세대 중 최고의 작가”로 찬사받았다. 그의 문장은 수면 밑을 깊이 흐르며 종종 차가워진 빛의 반점을 건져올린다. 광막한 자연 속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인물들은 어느덧 훠캉(온돌) 귀퉁이에 앉아 무심함, 쓸쓸함, 신경질, 버림받은 기분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감정들이 결코 발설되진 않는다. 말꼬리를 흐리며 탁 하고 뱉는 가래, 구겨 신은 신발로 그 가래를 쓱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허공에 걸린다. 티베트 고원과 설산 근방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삼키는 말은 자연이 도로 내뱉는다. 와들와들 떠는 새하얀 빛, 갑자기 방향을 바꿔 뺨을 때리는 바람, 대나무 장대가 부러지는 것처럼 거슬리는 수탉의 울음소리, 고목의 가지를 통과한 햇빛이 억눌러진 인물들의 심경을 툭툭 불거지게 한다. 문학의 언어는 먼 길을 에둘러 가야 하며 가능한 한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랑시에르나 제발트 등은 강조했는데, 딩옌의 문체와 서사가 그런 문학성을 이뤄내고 있다. 딩옌은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둥샹족 출신으로, 그의 작품들은 중국 북서쪽 칭하이와 티베트의 탁 트인 땅을 배경으로 한다. 이 지역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와 이슬람교 신자는 일상에서 수시로 부딪치며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히잡을 쓴 무슬림이 탁자 위에 놓인 친지의 불상을 치워버리고, 모스크에서 예배 드리고 나온 남자는 마니차를 돌리며 경을 외는 불교 신자를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없어 한다. 한때 국제적인 상인들의 교역이 활발했던 이곳은 이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허무함이 문득 고개를 치켜드는 도시가 되었고, 절정의 역사는 작가의 문장 속에서 긴 기억을 재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