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rooftoplife · 2023년 12월 22일 가입 · 534권 적독

fin (위수정 소설)

책 소개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쉰여섯 번째 책 출간!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여섯 번째 소설선 위수정의 『fin』이 출간되었다. 2024년 10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자신만의 고통과 고독을 품은 채 그 감정들을 감추고 살아가는 네 남녀의 욕망으로 질주하는 삶이 단막극처럼 펼쳐지는 소설이다.

무대 위, 빛과 어둠 사이에서 흔들리는 가면을 쓴 네 사람의 시작과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

“천천히 죽어가는 인생과 그 사이에 출몰하는 사랑의 숙명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고통스럽지만 차분하게 그려 낸다”는 평을 받으며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으로 등단한 위수정은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적인 불안과 충동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작품들이 수록된 소설집 『은의 세계』와 “당대의 윤리와 도덕에서 벗어난 위악적인 태도로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 등을 상자하며 위수정 문학세계를 견고히 만들어나가고 있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속에,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위수정은 이번 신작 『fin』에서도 배역이 가져다준 성공으로 부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인생을 점유당해버린 배우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유진 오닐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자전작 『밤으로의 긴 여로』는 지금도 무대에 종종 올려지는 명작이다. 『fin』은 그 무대에서 시작된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여주인공 메리 역의 독보적인 존재 기옥은 2년 전 스캔들로 배우 삶이 끝날 위기에 놓였으나 다시 무대에 오르며 재기를 꿈꾼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기옥은 다시 메리가 되어서야 ‘현실을 사는 느낌을’ 회복하지만 장막 너머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런 기옥의 옆에는 늘 매니저 윤주가 있다. 한결같이 기옥의 곁에서 그녀를 살뜰히 보살피는 윤주는 “기옥을 위하는 척하다가 자신이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그러면서도 가끔은 기옥을 해치고 싶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는 괴물이 된 것일까” 자문한다. 배우로 성공했으나 돈에 집착해 가정을 파탄 낸 〈밤으로의 긴 여로〉의 제임스처럼 태인은 영화배우로 명성을 얻었으나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동료들은 폭력적인 태인을 기피한다. 알코올중독에, 가끔 살인 충동에도 시달리던 태인은 연극판으로 유턴해 새로운 삶의 의욕을 꿈지만 여전히 엄습하는 불안감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태인의 곁을 지키는 상호는 어린 시절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꿈을 포기하고 서른이 넘어 태인의 매니저가 된다. 배우로 승승장구하는 태인과 달리, 아무런 변화 없는 자신의 처지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 상호는 태인의 삶을 동경함과 동시에 커져만 가는 그에 대한 반감에 괴롭기만 하다. 「밤으로의 긴 여로」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함께한 자리에서 기옥은 술에 취한 태인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매니저 상호의 차로 귀가하던 태인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다음 날, 태인의 사망을 기사로 접한 기옥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질투와 연민 속에서 기옥을 살뜰히 보살피는 윤주, 그리고 태인의 죽음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상우는 숨겨진 고통과 분노로 끝없이 흔들린다.

배우와 관객, 배우와 연출가, 배우와 매니저, 배우와 배우의 가족. 이들 사이에는 선망과 질투, 분노와 연민, 몰입과 몰이해, 환멸과 향수, 동경과 증오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위수정은 이 복잡한 갈등의 기저에 돈 문제, 바로 불평등한 계급 문제가 깔려 있음을 이야기한다. 스타 배우는 가난했던 과거를 가끔 그리워하면서도 돈을 버는 현재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매니저는 스타 배우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동경하면서 누구보다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한다. (……)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묻는다. 배역에 인생을 점령당한 배우들은 어떻게 살게 되는가? 배우에게 최상의 사건은 무엇일까? 위수정은 각자의 인생에서 우리가 맡은 배역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장영은(문학평론가)

연극이라는 삶, 그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