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讀家(적독가)

적독2 積讀

명사

  1. 책을 읽지 아니하고 쌓아 두기만 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책 소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1972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연속 강의들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이 강의에서 존 버거는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어딘가 잘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아카데믹한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거의 난폭하다 할 정도로 영국의 제도화된 강단 미술사학의 암묵적 전제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기존의 표준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개정4판)

책 소개

1997년, 2006년, 2013년에 출간된 바 있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펴낸 개정판(4판).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풍부한 시각자료와 파노라마를 통해 개개의 작품을 새롭게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와 해석을 만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예리한 지적과 통찰은 예술적인 유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희랍어 시간 (한강 소설ㅣ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책 소개

그 여자의 침묵과 그 남자의 빛!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열일곱 살 겨울, 여자는 어떤 원인이나 전조 없이 말을 잃는다.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을 다시 움직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이 흘러, 이혼을 하고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다시 말을 잃어버린 여자는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만난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침묵을 사이에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한편, 가족을 모두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그녀의 단단한 침묵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프루스트와 오징어 (독서의 탄생부터 난독증까지, 책 읽는 뇌에 관한 모든 것)

책 소개

인류가 글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문학, 고고학, 언어학, 신경과학이 보여주는 ‘읽는 뇌’의 경이로운 여정! 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가 쓴 읽기 연구의 고전 《책 읽는 뇌》 재출간!

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대표작 《Proust and the Squid》가 재출간됐다. 2009년 한국에서 ‘책 읽는 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은 원제를 살려 《프루스트와 오징어》로 새롭게 이름을 달았다. 재출간을 맞아 한국어판 서문도 추가됐다. 매리언 울프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빠르게 디지털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읽기를 시도할 시간을 잃어버린 현실에 주목하고, 깊은 독서가 가져다줄 타인에 대한 공감, 비판적 사고와 추론, 사색이 좋은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독서 관련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은 역작이자 13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읽기 연구 분야의 고전으로, 전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다. 독서의 지적 세계를 상징하는 ‘프루스트’와 독서의 신경학적 측면을 상징하는 ‘오징어’가 결합된 제목에 걸맞게,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서라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에 관해 논한다. 신경과학, 문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자료와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매리언 울프는 독서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힌다.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디지털 문화로의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최근 10대를 비롯한 전 세대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경향이 크게 늘어나면서 디지털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영상 위주의 학습이 집중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런 디지털 문화로의 급속한 전환은 매리언 울프가 이미 15년 전부터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통해 경고해온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유효한 이유다.

정적과 소음

책 소개

이수명의 ‘날짜 없는 일기’ 2권 출간!

날것의 반형식, 반문학적인 쓰기 시를 버리고 지상에 도달하는 언어들

시인 이수명의 ‘날짜 없는 일기’ 두번째 권 『정적과 소음』이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가볍고 조용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일기를 한 권에 묶었다. 2022년의 일기를 담은 『내가 없는 쓰기』에 이어지는 책이나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루의 어느 행간에서, 짧은 틈새에서 사소하고 밋밋한 것들과 함께한 흔적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문학화시킬 필요가 없는 평평한 순간들, 어떠한 의미도 들어서지 않는 평이한 순간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고. 시인 이수명은 이번 책을 쓰며 시가 아닌 쓰기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으면서도 그런 쓰기가 가능한 것처럼 움직여보았다고 말한다. 내용 없이, 내용의 회전과 동력 없이, 마치 호흡하듯 문장만을 따라가는 무미한 글을. 그러나 이마저도 문학을 온전히 걷어내진 못하리라는 의구심을 내버려두고서. 날짜 없는 일기 첫 권 『내가 없는 쓰기』에 이어 써내려간 이번 책에서는 작년보다 더 두드러지게 두 갈래 글들이 들어섰다. 하나는 가벼움과 조용함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무의미한 조각들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의 의구심 쪽으로 난 길이다. 시인 자신의 시와 글쓰기를 비롯하여 문학사, 시인들과 그들의 행로를 포괄하는 글들, 시와 글쓰기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시와 문학을 다시 바라본 글들. 이수명에게 이 두 가지는 모두 시로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시가 아닌 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글이다. 단지 형식으로부터 놓여남에 불과한 정적과 소음이다. 그것들은 흩어지면서 잠시 숨을 쉬듯이, 중얼거리듯이, 혼잣말하듯이 놓여 있다. 집 앞의 돌계단은 작년처럼 여전히 검지만, 조금 더 검다(14쪽). 시인은 찬바람을 쐬며 자신이 존재라는 모여 있음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감각한다(15쪽). 텅 빈 물. 비었지만 물로 꽉 차 있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물이 주는 감각을 통해 말은 어느 방향이든 반쪽만을 표현할 수 있고 절반만 볼 수 있거나 절반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다. 앞 페이지와 뒤 페이지를 한 번에 볼 수 없는(24쪽) 삶. 시인은 모여 있는 날들, 어제 오늘 내일,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선형적인 시간성에서 하루라는 감각을 온전히 구해내려 한다. 물병이 쓰러지며 쏟아지는 물이 방향 없이 납작해지는 순간, 물병 속 물이 물병을 잊듯, 시를 버리고 지상에 도달하는 언어들(34쪽)이다. 빛 속에는 손 위를 스치는 부유물이 있다.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잡을 수 없는, 우리가 편리하게 먼지라 부르는 것들(54쪽). 무엇이든 아래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것들을 우리는 잡지 못한다. 단지 떨어진 것을 치울 뿐(38쪽)이다. 절벽에서 절벽으로, 불확실한 곳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인간은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맹목적으로 추락해간다. 절벽에 부딪힌 물방울은 부서지면서 다음 절벽으로 떨어진다. 최후까지, 더이상 부서질 수 없을 때까지(99쪽). 시인은 아무리 써도 쓴 것 같지 않은 어둠, 뚫을 수 없고 간직할 수 없고 반지 같은 확실한 것을 끼울 수 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어둠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100쪽). 이수명은 박물관 어두운 전시실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수백 점의 백자를 본다. 백자가 억제를 통해 드러낸 형체, 그 순백의 색에 물결이나 나뭇잎, 꽃과 열매와 새의 극미한 순간들이 새겨지는 것을. 운명을 넘어선 예술, 자생하는 현재다(77쪽).

빛 속에서 흔들리는 그것들은 빛을 건너고 있다. 제자리에서 빛을 건너고 있다. 최소한의 크기로 존재를 축소시켜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동과 부동이 일치하는 상태가 이 부유물들이다. 언제나 그중 어느 한쪽으로 나아가려 하는 나의 미천한 시도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이 존재들이 빛에 흔들리며 빛을 흔들고 있다. -2023년 3월 일기 4

내가 없는 쓰기

책 소개

시를 쓰는 사람이 맞닥뜨린 언어의 편린들 문학의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날것의 글쓰기

출판사 난다에서 시인 이수명의 ‘날짜 없는 일기’ 1권 『내가 없는 쓰기』를 출간한다. 난다에서 시로 향하되 시가 아닌 자리를 엿보는 난다의 새 시리즈 ‘詩란’ 첫 권으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이 책을 향후 매년 출간될 이수명의 ‘날짜 없는 일기’ 시리즈로 새롭게 단장하여 2권 2023년의 일기 『정적과 소음』과 함께 내놓는다.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비교적 규칙적으로 하루에 몇 줄, 한 단락을 넘지 않게 아주 조금씩 써내려간 『내가 없는 쓰기』는 “시를 쓰는 사람이 맞닥뜨렸을 언어의 편린들을 주워올린 일종의 문학 일기”(「책머리에」)이다. 이수명은 시에 대한 생각 옆에 무심하게 펼쳐진 시공간과 일상, 사물과 현상을 이리저리 스케치해나가며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 시어와 시어 아닌 것의 차이가 흐려지는 순간을 포착해보려 했다고 말한다. 이수명은 의도적으로 문학적 외관을 갖추지 않은 쓰기, 자유롭고 흘러가기로서의 쓰기를 매 장면에서 실천하려 한다. 글이 형체를 이루거나 시처럼 이미지가 형성되려고 하면 그 지점에서 돌아나와 느슨한 호흡을 유지하는 식이다. 이수명에 따르면 이는 글을 미결 상태로 두는 것이고 평등하고 사소한 직시를 통해 잠재적인 방향의 넓이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는 바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쓰기, 기다림과 두려움으로부터 놓여나는 멀어지기이다. 이수명은 쓰기로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호흡한다(2022년 1월 일기 7, 21쪽). 그것은 겨울나무의 마른 가지들을 연결하고 따로 떨어져 움직이지 않는 나무들을 연결해 전체를 보려는 마음, 그럼으로써 나무로부터 떠나고자 하는 시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2022년 1월 일기 14, 31쪽). 규칙적이고 단순한 생활 속에서 시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시도를 덧붙이는 모순은 세계 내 존재들이 무의 지평선 아래 잠겨 있다고 느끼게 한다(2022년 5월 일기 8, 119~120쪽).

내가 쓴 모든 글이 완전히 낯설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까. 모르는 어떤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것처럼 내 글을 처음 만나고 싶다. 나는 나를 만나고 싶다. 이 불가능이 가능해지도록 한 글자 한 글자 끄적거린다. (2022년 8월 일기 4, 177쪽)

백합의 지옥 (최재원 시집)

책 소개

천국도 연옥도 없는 이 시대의 신곡(神曲) 영원히 불투명한 이물(異物)들의 지옥

최재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백합의 지옥』이 민음의 시 325번으로 출간되었다. 최재원 시인은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로 2021년 제4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의 도발적인 제목이 한눈에 보여 주듯, 최재원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변형되고 뒤틀리며 낯설어지는 형식, 방대한 이론과 형이상학을 넘나드는 언어, 성역도 금기도 없는 속된 말들이 한데 모여 우글거리고 충돌하며 만드는 에너지는 최재원의 시가 가진 독보적인 개성이다. “일상과 세속에 직접 육박해 들어가는 과감함”(이수명 시인)이라는 평이 보여 주듯, 최재원 시인이 형식과 언어를 뒤틀고 충돌시키며 돌진해 들어가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진짜 삶이다. ‘시적인 것’보다 시가 되지 못한 ‘잔여’로 가득 찬 시간, 어쩌면 기억도 못 할 순간들이다. 최재원은 그 ‘잔여’들로 시를 쓴다.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을 통해 ‘잔여’의 언어로 삶의 생기와 욕망을 다채롭게 보여 주며 ‘시적인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데 이어, 『백합의 지옥』에서는 ‘가치 있는 것’과 ‘잔여’가 분리되기 전 삶을 통째로 올려 낱낱이 들여다볼 거대하고 독창적인 무대를 설계해 보인다. 『백합의 지옥』의 무대는 사후세계에 지어진다. 최재원의 사후세계에는 가치의 위계를 정할 신이 없으므로 신의 집인 천국도, 신을 기다릴 장소인 연옥도 없다. 오직 무가치하고 성스럽지 못한 이들을 위한 지옥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순간이 시적이지도, 가치 있지도, 성스럽지도 못하다면, 삶은 잔여물, 이물들의 집합일 것이다. 최재원은 가치와 의미가 그토록 희소하다면 ‘삶’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이 지옥을 통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각자의 삶에 관해 각자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면 삶에 관한 한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일 것이다. 최재원 시인은 이 지옥 입구에서 우리의 운명을 이렇게 선언한다. “영원히 불투명한 이방”을 “그대여 담담히 맞이하시오”라고.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산문)

책 소개

“어쩌면 ‘싫음’은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연중무휴의 사랑》 《헤아림의 조각들》 임지은 작가가 모노톤의 일상에서 발견한 미움과 사랑의 ‘낙차’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그 진실로 나는 적어도 나에 대해 풍요롭게 알게 되었다. (…)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프롤로그 중에서)

“내 사랑이 이토록 옹졸하고 좀스러울 줄이야”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

총 2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1부에서는 ‘나’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라며 균질하고 온화한 사랑만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세상 제일의 개 호두”를 위해 엄마가 다른 개를 흉보는 것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뿐인 동생을 향한 자신의 독점욕·집착 등을 마주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자신에서 벗어나 소중한 이가 끝내 자신을 “배반”하고 홀로 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편 작가는 타인을 이유 없이 혐오하는 사람의 마음 또한 들여다보는데, 딥페이크 범죄를 당한 작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낱낱이 밝히며 여성을 향한 그릇된 혐오감에서 저지른 범죄자의 훼손된 영혼을 고발하기도 한다. 작가는 사람을 방해하는 것도 사람, 버티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삶과 맥락을 공유할 수 있는 지인들을 통해 치유를 얻는다. 2부에서는 작가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러준다. 양극성 장애를 앓는 동생을 보며 심장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고, 때론 삶을 저버리려고 하는 동생에게 “죽여버린다”며 깊은 사랑에서 오는 두려움을 분노로 드러내기도 한다. 화실 강사로 일하며 만난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나무는 갈색이지만 갈색이 아님”을 익히는 법을 알려준다. 눈 오는 날 한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곤 반대로 위태로운 장소에 서 있는 타인을 상상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핼러윈 이태원의 한 거리, 완벽하고도 어색한 옷차림으로 자기 자신을 한껏 꾸민 젊은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오늘을 허락해주는 것. 그 승인으로 인해 무언가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을 상상하며 그 어떤 거대한 슬픔과 비난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그날의 이태원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한때는 내 사랑이 너르고 깊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동생을 향한 내 사랑은 깊긴 하되 목구멍마냥 좁은 모양이다. 때론 목구멍 안쪽부터 뜻하지 않은 말들이 울컥 올라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서서 입을 벌리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거기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컴컴한 심연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켰다간 나를 곤란하게 할 심연이. 입을 닫으며 생각한다. 내 사랑이 이토록 옹졸하고 좀스럽고 짜칠 줄이야.”(60~61쪽)

“미움받을 용기만큼 미워하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 도사린 갖가지 모순과 양가적 감정에도 더욱 세게 용기를 움켜쥐는 책

한때 도서에서 비롯된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움받을 용기만큼 무언가를 미워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싫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내세운다. ‘미움’을 드러내는 이를 종종 곤란하게 여기기도 한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나쁜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품지 말고 털어버리라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괜찮은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쌓아야 하는 ‘스펙’처럼 세상을 향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지 않는 이는 ‘별로’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사실 그래서 곤란한 건 내 쪽”이라고 말한다. 마음먹은 대로 감정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온 사람들과 달리 일찍이 세상 모든 풍파와 쓴맛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매번 긍정해야 하는 마음이란 때론 가질 수 없는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온전한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을 공평하게 받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늘이 자란다. 사랑과 욕망하는 것 앞에서 가질 수 없음을 인지할 때 결코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은 차별을 포함한다. 작가는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에 생기는 미움 탓에 찌질하고 옹졸한 스스로가 싫다가도 자신이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안의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곰곰이 들여다본다. “삶의 도사린 갖가지 모순과 양가적인 감정”에 위선을 떨기보다 ‘미움’에서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한다.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과,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 진실을 품은 채 작가는 오늘도 한 발 나아갈 용기를 움켜쥔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105쪽)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106쪽)

둘도 없는 사이

책 소개

“보부아르는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자유롭게 출렁이는 감정의 모험을 다룬 자전 소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발표 유작 『둘도 없는 사이』가 백수린 소설가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고전적 명제로 기억되는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한국에서도 대표작 『제2의 성』,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작 『레 망다랭』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둘도 없는 사이』는 보부아르의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가 그녀의 입양 딸인 실비 르 봉 드 보부아르에 의해 202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보부아르 사후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소설가 백수린의 국내 첫 완역으로 마침내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보부아르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친구 ‘자자’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 소설이기에 실존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희귀 화보와 친필 편지가 부록으로 수록된 원서의 구성을 최대한 살려 편집했다.

그레이엄 그린 (정원 아래서 외 52편)

책 소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출발점!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인물로 꼽히는 영국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거의 모든 단편을 수록한 단편 전집이다. 순수문학과 오락물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며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바꾼 그레이엄 그린의 67년에 걸친 작품 활동 기간 중 네 시점에서 출간한 단편집을 한데 모은 것으로, 여기에 기존에 단행본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던 4편을 추가하여 53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사랑, 강박, 열정, 환상, 환멸, 꿈, 공포, 연민, 폭력 등 인간인 경험하는 온갖 극한의 감정들을 조망하는 53편의 작품들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저자의 단편소설들을 한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시기에 따른 작품 경향의 미묘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때로는 냉소적이면서 기지 넘치게, 때로는 탐색적이고 철학적으로 저자의 모습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